제출하는 보고서가 곧 승진 청원서”(이코노믹리뷰 2006-03-06 )

출간된 지 한 달 만에 인문과학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글쓰기 전략》의 저자 연세대 정희모 교수는 “리더의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글쓰기”라고 단언한다.

정 교수는 “현대는 정보화 사회”라고 전제한 뒤, “전문지식을 전달하는 매체로써 글쓰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한다. 정 교수는 지난 2004년 미국 명문대학의 글쓰기 교육현장을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고 고백한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달리, 미국 대학의 글쓰기 교육 시스템은 체계화되어 있다”며 “한국도 이런 시스템을 빨리 도입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리더의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글쓰기
정 교수가 방문한 미국 대학은 세계적 명문인 하버드와 MIT다. 정 교수는 특히 이공계인 MIT의 글쓰기 교육현장을 보고, 글쓰기 교육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정 교수는 MIT 글쓰기 교육프로그램의 책임자인 제임스 패러디스 교수를 만나, MIT가 글쓰기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를 들어봤다.

패러디스 교수의 설명은 간단했다. MIT 학생은 대부분 사회의 리더로 성장할 것이며, 리더가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글을 쓰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마디로 리더에게는 글쓰기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미국사회에서는 고급인력일수록 글쓰기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사회적 리더를 길러내는 미국 대학들의 교육은 글쓰기로 시작해서 글쓰기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뿐 아니라, 기업에서도 글쓰기와 커뮤니케이션 교육은 필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한 미국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문 기술인력이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 중 적어도 3분의 1은 쓰기· 편집·프리젠테이션 준비 등에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승진할수록 글쓰기와 관련된 일이 차지하는 시간의 비중은 점점 늘어난다. 중간관리자는 업무시간의 40%, 매니저는 50%를 글쓰기와 관련된 일로 보낸다는 것이다.

특히 매니저들에게 문장력은 필수라고 한다. 전체 매니저의 71%가 글쓰기가 업무에 필수적이라고 답했다. 한마디로 ‘제출하는 보고서가 곧 승진 청원서’라는 얘기다.

미국 대학교육 글쓰기로 시작해 글쓰기로 끝나

미국의 글쓰기 교육의 역사는 약 100년 이상이다. 영어를 배우러 많은 유학생들이 미국으로 건너오기 때문에, 글쓰기 과목은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미국에서 글쓰기 교육이 시작된 것은 1636년부터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미국 대학의 글쓰기 교육은 각 전공 교수가 주제에 따라 글쓰기 과제를 주고, 평가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미국의 글쓰기 교육방법은 현재도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MIT의 경우만 하더라도, 글쓰기 교육에 매년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29명의 교수진은 소설가·에세이 작가·시인·번역가·전기 작가·역사가·과학자 등으로 다양하다. MIT 학생들은 졸업할 때까지 4과목의 글쓰기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교육과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설명 및 수사학, 창작, 과학기술 쓰기 등 크게 세 분야로 나뉘어진다. 학생들은 현대공상과학소설, 과학에세이, 과학저널리즘,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수사학 등 총 36과목 가운데 선택해 수강하면 된다.

하버드 대학의 경우 매주 12시간 정도 글쓰기 수업을 한다. 자습과 독서, 논문 작성, 리포트 작성 등을 감안하면, 매주 30시간 정도를 글쓰기에 투자하는 셈이다.

이처럼 미국 명문대학들은 글쓰기 교육을 점차 강화해 나가고 있다. 기술력이 신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정보화 시대에 있어 커뮤니케이션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글쓰기는 단순히 생각이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만들어 내고 지식을 구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996년 노벨수학상 수상자인 피터 도허티 교수나 MIT의 바버라 골도프타스 교수도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사고가 명확해 연구 성과가 뛰어나다”고 단언하고 있다.

위대한 과학자 중에는 위대한 작가 많아
실제로 위대한 과학자들 가운데는 위대한 작가가 많다. 지난 500년 동안 과학혁명을 주도해 왔던 코페르니쿠스·갈릴레이·뉴턴·다윈·프로이드·베게너, 슈뢰딩거·자크 모노·제임스 왓슨·레이첼 카슨 등은 단지 논문뿐 아니라 대중이 읽을 수 있는 훌륭한 책을 쓴 사람들이다.

갈릴레이는 지구중심설과 태양중심설을 믿는 두 학자와 한 명의 지식인간의 논쟁을 희곡처럼 구성한 《대화록》을 써 단숨에 유명해졌다.

다윈이 5년 동안 남미와 갈라파고스를 둘러본 후 쓴 《비글호의 항해》는 보고 경험한 것을 너무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 문학사에서도 고전으로 꼽힌다. 진화론을 체계화한 《종의 기원》은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매진된 베스트셀러였다.

최근 국내 대학가의 글쓰기 교육이 강화되고, 대학마다 글쓰기 강좌가 잇달아 개설되고 있다. 또 글쓰기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별도의 기관을 설립하고 있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글쓰기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정 교수는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 “글은 글쓰기를 통해 늘어난다”고 강조한다.

이어 그는 “일상생활에서 쓰는 기회를 많이 갖고, 발표 등을 통해 남의 지적을 받는 것도 중요하며, 독서와 자기분야에서 좋은 글을 뽑아 따라 하기 등 연습이 필요하다”고 효과적인 글쓰기에 대한 방법을 제시했다.

임원이 되려면"글쓰기부터 배워라" [연합뉴스 2006.02.19 09:11:01]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기자 = 두산중공업이 사내교육의 일환으로 엔지니어들을 위한 글쓰기 교육을 실시해 눈길을 끌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최근 글쓰기 전문 강사인 임재춘 영남대 객원교수를 초빙해 임원과 팀장급 50여명을 대상으로 `테크니컬 라이팅'이라는 주제로 글쓰기 교육을 가졌다고 19일 밝혔다.

이번 글쓰기 교육은 R&D 분야의 엔지니어 육성 프로그램
인 기술혁신과정의 하나로 이날 강의에서는 읽는 사람을 고려한 논리적인 글쓰기 등 간결하고 명확한 글을 쓸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진행됐다.

두산중공업처럼 전통 제조업체에서 기술자들을 대상으로 프리젠테이션이나 기술 교육이 아닌 글쓰기 강의를 연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두산중공업이 이같은 교육을 실시한 이유는 대부분의 엔지니어들이 글쓰기 능력이 부족해 각종 보고서나 기술논문집 작성을 아예 포기하거나 작성하더라도 정확한 의사전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이날 강의를 맡은 임 교수는 "이공계 출신 직장인들이 글쓰기에 막연한 공포를 갖기 쉽다"면서 "엔지니어도 중요 정보를 알기 쉽고 간결하게 정리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두산중공업 기술연구원 윤종준 부사장은 "엔지니어들의 글쓰기 및 의사전달 능력의 부재는 기술공유 및 이전 측면에서 큰 손실이며 임원으로 승진하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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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결정(디지털 타임즈2006년 5월 22일)


김창곤 한국전산원장


얼마전 모 월간지가 국내 매출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이공계 CEO가 상경계 CEO 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100대 기업 CEO 가운데 이공계 출신이 상경계를 넘어선 것은 이 잡지가 1994년 조사를 시작한지 13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더욱이 공학계열 졸업자들의 대기업 취업 비율도 여타 계열 전공자들에 비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이공계 기피현상에도 불구하고 기술이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고, 이공계 출신이 사회조직 전반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공계 출신들은 대체적으로 기술에 대한 이해가 깊어 멀리 보는 안목이 발달해 있으며, 시대 변화나 트렌드 파악에도 기민하고 빠르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새로운 기회를 잡는 기회 포착력에서도 이공계 출신들의 능력이 출중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조직의 빠른 의사결정과 신속한 대응이 기업의 생존을 좌우하는 디지털시대, 정보통신의 시대에서는 이공계출신의 역할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유비쿼터스 사회에 접어들면서 지금보다 훨씬 더 급격한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과거보다 더욱 빨리 변하고 변화의 폭도 지금 보다 훨씬 큰 미래 사회에서 코드를 미리 읽어낼 수 있는 안목과 상황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공계 출신들의 대처능력과 지혜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미래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이공계CEO가 되기 위해, 혹은 능력을 갖춘 미래형 인재가 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우선, 더 이상 국내용이 아닌 세계를 상대로 일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인터넷과 WTO라는 새로운 무역질서에 의해 국가간 장벽이 무너지고 세계는 하나의 공통체로 글로벌화가 가속화되는 시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같은 세계화의 물결을 제대로 타려면 `세계인'으로 거듭나는 수밖에 없다. 세계인이란 다른 생각, 다른 문화, 다른 인종을 포용할 수 있는 넓은 시야와 개방적인 마인드를 갖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하고 대응해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이제 더 이상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닌 세계를 상대로 일하는 세계의 일꾼이라는 마인드와 더 넓은 시야를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래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상'을 구현함으로써 세계인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식견과 교양을 넓히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 이공계 출신들은 자신의 전공분야만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전공이 아닌 타 분야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 자체를 두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공대 전공자들이 `세계인'에 동참하고 합류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편협한 시각을 과감하게 털어 내야 한다. 사회, 문학, 예술,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식견을 넓히는 것 또한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미국의 리드대학은 1학년때 그리스신화, 로마고전 같은 책 40권을 반드시 읽게 하는 등 교양과목을 의무적으로 이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초가 없다면 깊이 있고 폭넓은 지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우는 것도 시급한 사안이다. 이공계 전공자들의 경우, 프리젠테이션 발표능력, 글쓰기 능력, 설득 능력 등 자신을 표현하고 알리는 부분에 있어 요령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자주 받는다. 때로는 심각할 정도의 문제점을 갖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무리 능력과 성과가 뛰어나도 제대로 알리고 표현하는 능력이 없다면 인정도, 평가도 제대로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래는 모르는 자에겐 두려움이고 아는 자에겐 즐거움이다' 라는 말처럼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몫이다. 미래를 선도할 기술력을 갖춘 이공대 후학들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미래사회가 원하는 진정한 인재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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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이 공교육 혁신 이끌 수 있을까?


[인터뷰]'주입식 문학 교육' 비판한 숙대 최시한 교수
[프레시안 최서영/기자]'논술이 뭐길래….'

"논술이 대체 뭐길래 이 난리일까. 요즘 고1 언니와 중2인 나, 초등학교 5학년인 남동생은 때아닌 '논술전쟁'에 시달리고 있다. 방학인데! 지난 1학기 내신성적까지 별로여서 엄마의 불안을 샀던 언니는 '지금도 한참 늦었다'며 바로 논술과외로 들어갔고, 난 중학생 논술학원에 등록했다. 초등학생인 동생에겐 문학전집이 안겨졌다.

생물학자가 꿈인 언니는 국문과 출신 논술과외 선생이 들고 오는 시사이슈 정리집에 불만이고, 난 논술학원은 놔두고라도 학교 수업부터 불만이다. 오늘 배운 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국어 선생님은 옥희 어머니가 사랑방 손님에게 애정을 느끼면서도 옥희를 위해 재혼을 포기했다며 중요 대목에 밑줄 치고 '아름다운 희생 정신, 어린아이의 눈으로 본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받아적으라 하셨다. 웃겼다. 뭐가 순수하나? 청승맞고 한심하지. 요즘 같으면 겨우 대학생 나이인데 평생 과부로 살라고 하는 인습은 거의 '인권유린' 아닌가? 내 친구는 엄마가 마흔 넘어 재혼할 때 새 아빠가 데려온 애랑 잘만 지내던 걸. 고리타분하다. 축구와 <해리포터..>에 열광하는 남동생은 오늘 엄마에게 잡혀서 약속 하나를 하고서야 나갈 수 있었다. 해리포터 대신 '초등학생의 창의력 향상을 위한 문학전집'을 하루에 한 챕터씩 꼭 읽겠다고…."

한 중학생의 시선으로 쓴 '가상일기'다.
숙명여대 국문과 최시한 교수. ⓒ프레시안

서울대 본고사 논란이 일어난 지도 한 달. 김진표 교육부 장관이 '논술의 본고사 여부를 밝히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겠다는 8월 말이 다음 주로 성큼 다가왔다. '논술 파동' 이후 교육부가 논술교과서 개발, 중등교사 독서지도 연수 등 '혁신 수업' 방안을 연이어 내놓는 동안 사교육 논술시장은 시장대로 들썩이고, 출판계 또한 각종 창의력 개발, 논술 교재 출판으로 한층 분주해진 모습이다.

이 와중에 중등 문학 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 온 숙명여대 최시한(53) 교수가 수십년 간 이어져 온 이른바 '밑줄 치고 땡땡' 주입식 문학 교육을 정면으로 비판한 책을 내 눈에 띈다. <소설의 해석과 교육(문학과 지성사)>은 대학입시 위주의 주입식 소설교육이 우리의 청소년을 얼마나 문학에서 멀어지게 하는지 통렬하게 비판한다.

우리의 문학 교육이 충실한 작품 읽기을 통해 학생들의 감성과 사고력을 키우기는 커녕 오히려 작가 연보, 수사법, 문학사적 평가 등 잡다한 자투리 지식을 외우게 하느라 문학을 골치 아픈 것으로 치부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직접 만나본 최시한 교수는 역시 '문학 교육과 읽기 능력', '독서에 대한 오해', '창의성과 논술' 등에 대해 할말이 많았다.

"오죽하면 시인이 수능시험에 나온 자기 시 문제를 틀리나"

-저서에서 수십년간 이어진 주입식 문학교육의 폐해와 국어 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하셨다. 현재 문학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뭔가. '평가의 용이성'이 주입식 교육의 가장 큰 이유인가.


"문학뿐 아니다. 우리나라 교육이 그동안 지식 교육에만 치중하고 능력 교육을 소흘히 해 온 게 문제의 핵심이다. 문학에서 능력 교육이란 작품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능력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특히 사고력을 소흘히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얼마든지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데 관련 프로그램을 절대 개발 안 한다.(웃음)

비극은 그나마 주입되는 지식마저 부적절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소나기'를 두고 3인칭 관찰자 시점이라고 딱지 붙이는 게 맞지도 않지만 작품 이해에 무슨 도움이 되나? 주입되는 지식 자체에도 깊이가 없다. 파편적이고 쓸모 없는 작품 관련 정보들을 학생들이 암호풀이 하듯 외워서 시험 보게 하니 문학을 싫어할 수밖에…. 오죽하면 어떤 시인이 수능시험에 나온 자기 시에 관한 문제를 풀고 틀렸겠나(웃음). 정해진 유형 앞에 오히려 창조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틀리게 된 것이다.

"선생이 다른 걸 물어야 하는데, 뭘 물을지 모르는 거다"

주입식 교육이 된 이유는 우선 문학 교육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국어교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선생이 학생에게 다른 걸 물어야 되는데, 뭘 물을지 모르겠는 거다. 돈트(Don't)가 아니라 캔트(Can't)다. 또 현장에 가면 참고서가 교육을 지배하고 있어 이를 깨는 게 참 힘들다. 서울시교육청이 서술형을 시험의 30%로 의무화했던데 교사들이 이로 고민이 많다. 학부형이 학교로 달려온다는 것이다. 그만큼 적절한 평가 기준이 부재하다는 것이고 연구의 빈곤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문학을 해석하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문화 수준이 낮은 거다. 학교 수업에서 작품 읽히고 줄거리 쓰는 교육활동이 없는 게 아니라 답의 기준에 대한 이론적 모색이 없는 거다.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답안을 평가하는 기준의 적절성이 필요한 것이다. 일률성이 아니라 다양성, 상투성이 아니라 참신성과 같은."

-소설 읽기가 말하기ㆍ듣기ㆍ쓰기 등 다른 언어능력과 연계돼야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가능한가. 또 문학이 주입식이 아닌 체험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활동을 해야 한다. 1인칭을 3인칭으로 바꿔쓸 수 있고 또 소설을 소재로 논술도 할 수 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옥희 엄마의 선택이 적절한지를 두고 논술하라는 거다. 학생들이 자연히 작품을 깊이 읽을 수밖에 없다. 선생님이 밑줄 쳐주는 게 아니라 의문을 던져야 한다. 언어능력은 타고나는 게 아니다. 훈련받아 커질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런 활동이 이뤄지려면 교육자는 학습자가 그 글을 읽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학습자의 눈높이에서 철저히 이해해야 하고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현재 국어 교과서에도 심화학습이 있지만 뭘 심화하려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렇게 학습의 명분과 실제가 괴리된, 가장 큰 이유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지 않은 데에 있다."

문제제기 1. 독서ㆍ논술교육은 꼭 국어ㆍ사회 교사가 맡아야 하나?

-저서에서 '독서의 개념'을 문제 삼았다. 독서는 기본적으로 '인식행위'인데 독서지도를 꼭 국어 교사가 전담하는 것은 문제라고. 그러나 교육부는 현재 국어ㆍ사회 과목 교사 중심으로 독서교육 연수를 준비하고 있다.
ⓒ프레시안

"독서라는 말에 대한 관습과 고정관념이 정책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독서 대신 '읽기'라고 하자. 이 교육을 왜 꼭 국어ㆍ사회 선생만 맡아야 하나. 읽기는 미술, 체육, 과학 선생도 다 한다. 화학 선생은 화학 선생대로 학생들에게 읽을 책을 안내해야 한다. 화학 분야를 국어 선생이 안내할 순 없다. 읽기 지도는 기본적으로 모든 교사가 해야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왜 '국어'에 집중하나. 이는 우리의 뿌리박힌 문학 중심의 독서관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읽기라고 하면 문학 중심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세상의 읽을 책 중에 문학은 극히 일부다. 그런데 물론 아이들일수록 정서함양과 재미를 위해 문학 비중이 높긴 하다. 그러나 고등교육과정으로 올라갈수록 현저히 떨어진다. 대학에서 국문과 말고는 누가 소설을 교육자료로 쓰나.

또 하나는 감상문 쓰기 중심으로 독서지도를 생각한다는 거다. 제가 교사 연수 때 묻는다. 파브르곤충기 독후감이랑 이광수의 <무정> 독수감 양식이 같을까요? 다르면 어떻게 다르게 써야 한다고 지도한 적 있습니까? 묵묵부답이다. 이건 폭력이다. 이 세상에는 글이 아주 다양하고 글 읽고 공부하는 방법도 많다. 왜 하필이면 독후감만 쓰라고 하냐. 그냥 읽고 얘기해도 된다. 왜 자꾸 쓰라고 하냐. 선생도 못 쓰면서. 억지로 시키니깐 다 베끼는 거다.

문제제기 2. 문학책, 어렸을 때부터 그저 많이 보면 좋다?

모 신문사가 중학생 논술대회를 열던데 중학생이 논술을 왜 하나. 물론 논리적 사고는 필요하다. 그러나 논술은 양식이다. 소설에도 얼마든지 논리적 사고가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비판적 사고력에 필요한 논리가 부족하다. 그냥 작문하면 된다. 논술은 고등학교에 와서 해도 된다. 그런데 요즘은 뭐든지 논술 붙여야 장사되니까 초중등학생들까지 논술로 밀어넣는데 애들한테 부담만 줄 뿐이다."

-현재 출판시장은 '우리 아이 창의력 기르기'라는 이름 하에 '고전 읽기 시리즈' 등 독서교육과 창의력 기르기 시장이 활황세를 맞고 있는데, 이런 '독서 범람'을 어떻게 보나.

"안 읽히는 것보다 낫지만 낭비가 심하다.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이 곧 교육적으로 중요한 작품은 아니다. 게다가 책 읽기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가공하고 프로그램을 짜서 주지 않으면 억압일 뿐이다. 학생에게 읽혀야 할 자료의 선정에도 여러 기준이 있는데 무작정 문학전집을 아이들에게 던져주면 어쩌자는 거냐. 영국에서는 햄릿을 초등학교용, 중학교용, 고등학교용으로 각각 출판해서 읽힌다."

문제제기 3. 대학 입시에는 꼭 배운 게 나와야 하나?

-논술 도입 등 '대학 입시 변화'가 '공교육의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보나, 아니면 모순을 심화시킨다고 보나.


"원론적으로는 대학 입시가 중등 교육을 개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비관적이다. 왜? 선생도 학생도 학부형도 우리나라에서는 시험에는 꼭 '배운 게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험에 꼭 배운 게 나와야 되나? '배운 것'이라는 게 뭘까. 대부분의 한국인들 생각은 '지식'이다.

물론 너무 동떨어진 것을 물어선 안되지만 똑같이 물으면 안 된다. 응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암기형 시험만 양산할 뿐이다. 문제를 틀어서 능력을 물어야 한다. 얘가 비판할 줄 아나. 추리력이 있나. 상상력이 있나. 가치의식이 적절하고 탄력적인가. 대학에서 그런 걸 묻겠다고 하는데, 학교에서는 그런 교육을 해 오지 않았으니,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새로운' 문제 유형을 익히겠다고 사교육 기관으로 몰려가고, 학교 선생님들이 그걸 눈뜨고 보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 선생님들의 재교육이 우선이다. 물론 이것은 하루 이틀에 안 된다. 교육부가 논술대비 교과서를 개발한다던데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 학생들의 수학능력을 테스트하겠다는 시험을 본 지가 10여년이다. 그러면 그동안 실제로 수학능력을 기르는 쪽으로 교육이 바뀌어야 되는데, 바뀔 힘이 없는거다.

우선 대학에서부터 교사를 양성할 때 그런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참고서가 지배하고 있는 학교 현장도 같이 바뀌어야 한다. 뜻있는 교사들이 있어도 옆 선생이 관행대로 참고서에서 시험 출제하면 도로묵이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이 문제는 대학들조차 아직 답을 못내고 있는 상황이다."

최서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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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이 희망이다 2006-02-14 19:10
카테고리 : 논술 에세이 http://blog.paran.com/djsdjshstnf/8246384
논술이 희망이다
평준화 교육의 결과는 '표준화된 과외'
교과서 이치에 주목하는 서울대 논술, 더디 깨달아야 한다


수년전 세계 최고라는 하버드 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한 한국 청년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저에게 미국법은 너무 익숙지 않았습니다. 미국친구들은 당연하게 여기고 넘어가는 것도 저는 이해하기 쉽지 않았죠. 그 이해하기 힘든 이유를 곰곰이 따져나가다 보니 법의 숨겨진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자신의 좋은 머리나 피나는 노력에 대한 언급은 없는 매우 겸손한 멘트였다.(역시 수석은 아무나 하는게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익숙지 않은 남의 나라 법을 공부하느라고 숨겨진 뜻까지 꿰뚫게 되었다는 그의 고백에는 중요한 보물이 묻혀있다.

무엇이든지 쉽게 이해하는 학생이 있다. 이런 학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머리가 좋다고 칭찬을 받으며 자랐을 것이다. 수능과 내신에서 이런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머리 좋은 학생들에게 2008년도 서울대 정시논술은 만만치 않은 시험이 될 것 같다.

서울대는 2008년부터 논술의 비중을 60%까지 크게 늘리고 교과서 중심으로 출제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주었다. 이제까지 논술은 고전이나 신문을 읽어야 한다는 억측이 가능할 만큼 제시문과 주어지는 주제가 광범위 했으나 2008년도 예제는 대부분 교과서에서 지문을 선택했고 문제도 교과단원을 넘어서지 않았다.

‘논술이 사실상 본고사 부활이고 사교육시장을 확장해 서민의 자녀들의 기회를 박탈할 것이라’는 평준화 진영의 반발을 의식한 서울대의 대답은 바로 ‘교과서’였던 것이다. ‘논술은 교과서에서 내겠다. 학원 안 가도 된다. 학교 선생님들이 교과서를 제대로 가르치고 학생들이 교과서를 깊이 이해하면 된다’는 것이다.

교과과정을 넘어선 난해한 논술이 무조건 좋은 사교육을 받은 부잣집 자녀에게 유리하다는 측의 주장은 근거없는 억측에 불과하다. 오히려 문제가 어려울수록 유전자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서민의 자제에게도 서광이 비춘다고 보는게 과학적이다.

그렇지만, 정말 교과서를 이해하면 논술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맞다. 그러나 교과서의 이치를 꿰뚫어야 한다. 이 당연한 말이 ‘쉬운 교육이 곧 민주교육’이라는 근거 희박한 교육철학이 지배하는 현실의 고등학교 현장에서는 전혀 당연한 말이 아니다. ‘내신이 강조되면 지방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유리해진다. 그래서 민주적이다.’ 이 논리가 학교현장에 오면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시험범위와 함께 예상문제를 찍어주는 코미디로 전개된다. 문제를 어렵게 내서 학생들의 내신을 까먹은 선생은 학생들의 앞길을 막는 역적이 되기 때문이다.

수능이 쉬워지고 TV과외에서 출제되면 사교육이 없어진다고? 매번 변별력 시비를 겪을 만큼 쉬워진 지난 7-8년간의 수능과 같은 기간 사교육시장의 추세를 비교해서 입증해 보라. 제발 그 논리를 믿게 해 달라. ‘메가스터디’같은 맥도날드 형 학원이 코스닥의 우량주가 되어 과외공부도 표준화 네트워크화 국제화(?)까지 넘보게 된 것도 다 쉬워진 수능 때문이다. (진보주의자들이여 제발 한번이라도, 자신들의 의도가 아닌 자신들의 열매를 보라. ‘메가스터디’가 바로 당신들의 열매다. 당신들이 그토록 혐오해 마지않는 ‘맥도날드 과외공부’가 학교를 삼키고 있단 말이다.)

예측 가능한 학교시험. 쉬운 수능. 이런 공부를 위해서라면 굳이 이치까지 깨달을 필요가 없다. 공식을 이해하는 정도의 이해력과 여러 공식을 암기할 정도의 암기력 다양한 형태로 조금씩 비튼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응용력과 반복된 훈련을 수행할 성실함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 출제되는 서울대의 논술문제. 좋은 답안을 위해서는 교과서를 뒤집어 볼 수 있어야 한다. 서울대는 이미 2003년도 논술에서 문화상대주의를 비판하라는 문제를 출제했었다. 교과서에서는 ‘문화상대주의가 문명이고 문화보편주의 혹은 일방주의는 야만’이라는 공식을 가르치고 있는데 말이다.

교과서를 성실히 이해한 학생은 그 논술에서 당연히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그럼, 왜 중국과 일본 동남아는 한국의 TV드라마에 열광하지?’ 라며, 교과서의 공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둔한 학생이라야 눈에 띄는 답안을 작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고등학교 교과서의 단원들은 나름대로 고전의 맥락에 맞닿는 주제들이다. 그 단원 하나하나가 고등학생들에게까지 가르쳐져야 한다는 공감을 얻기까지 수 십년 혹은 수 백년에 걸친 논쟁이 그 주제를 휘감았다. 인류가 자랑하는 수많은 천재들의 인생이 그 단원 하나하나에 녹아 있다.

그 천재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어 평생을 바쳐 씨름한 주제. 고등어 대가리와 꽁지를 잘라 먹기 좋은 몸통만 밥상에 올려 놓은 것이 바로 교과서인 것이다. 이 자반을 덥석덥석 잘 받아먹으면 천재라고 쓰다듬어 준 것이 우리 교육이었다. 민주적이건 8학군이건 고등어 몸통만 먹는 교육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갈릴레오가 중력가속도는 똑같다고 피사의 탑에서 실험을 보여주었을 때도 사람들은 눈앞의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무거운 것은 빨리, 가벼운 것은 느리게 떨어진다는 관념이 2000년 동안 사람들의 상식을 지배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생활에도 이 관념이 더 맞았다.

‘중력가속도는 같다.’는 어색하고도 부자연스런 이론을 우리 학생들은 덥석덥석 잘도 이해한다. 그 뿐인가 바로 다음시간에는 또 다른 놀라운 이론을 쉽게 이해해 버린다. 천재가 분명하다. 노벨상 그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천재들이 매년 100만 명씩 배출되는 나라다.

2008년도 서울대 논술 예제는 교과서와 교과서의 이치에 주목하고 있다. 이 대목이 마음에 든다. 교과서의 주제와 단원은 수도 없이 많지만 이치는 단원과 과목을 꿰뚫고 몇 개의 뿌리로 통합되기 때문이다.

서울대 예제에 나온 ‘시장이냐 정부개입이냐’ 하는 문제의 이치는 사회의 단위와 주체를 개인으로 볼 것이냐 집단으로 볼 것이냐 하는 오래된 맥락에 닿아있고 이 이치는 다시, 자연법 사상을 둘러싼 논쟁의 뿌리이기도 하다. 자연법 사상은 ‘법과 정치’ 과목의 중요한 산맥이다. 이렇게 교과목의 단원들을 흔들고 털어 맥락의 뿌리만을 걸러 낸다면 그 수가 십 여개를 넘지 않을 것이다. 원래 학문이라는 게 개별 현상들의 배후를 찾아내어 이를 보다 보편적인 법칙에 꿰어 맞추고자 하는 노력이고 보면 이는 당연하다 못해 너무 평범한 주장이다.

더욱이 대학이 강조하듯이 좋은 논술 답안이 미려한 문장의 ‘세련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대한 참신한 접근과 독창적 표현이라는 ‘기본기’를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과서를 쉽게 이해하지 못해 궁극의 이치를 깨닫는 스타일의 학생들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기회이다.

교과서를 쉽게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둔해서 성찰을 통해서만 더디게 이치를 꿰뚫는 학생이 뭐든 쉽게 이해하는 ‘머리 좋은’학생들 보다 유리한 서울대학의 논술이 사교육 시장의 확장을 줄일 수는 없더라도 분명한 것은 ‘메가스터디’와 같이 표준화된 교육방식의 대량생산이라는 코미디는 더 이상 양산하지 않을 것이다. 이 대목에는 확신이 간다. 단, 누군가 더디 깨우치는 깊은 성찰마저도 표준적으로 대량 보급하는 방식을 개발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오태민 (명지외고 통합논술강사)
박용성 교사의 실전강좌
1부-논술 이해하기 ②논술, 이렇게 쓰자

논술은 문제·해결의 과정이다

논술이란 옛날이나 동시대의 통찰력이 담긴 남의 글을 읽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글쓰기야. 곧, 삶의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고전의 맥락과 연관지어 생각하되, 그 해결은 고전(그때·그곳)이 지니는 의의와 한계를 바탕으로 오늘날(지금·이곳)의 현실적 삶에 대한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이지.

제시문의 관점의 통찰력과 한계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논제를 해명하는 게 바로 논술이야. 그때·그곳의 관점으로 지금·이곳의 문제를 비추어 보아 문제의 매듭이 어디에 있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를 성찰하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고나 할까. 이를 거칠게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아.

▲ 12면

설문에는 해결의 실마리가 들어 있다

어떤 문제든 설문에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들어 있어. 따라서, 설문을 구성하는 각 부분의 내용을 면밀히 분석한 뒤 이를 바탕으로 제시문을 독해하고, 이를 토대로 논지를 전개하는 거야. 또한, 설문 분석의 과정에서 유의 사항에 대한 면밀한 검토도 필요해. 논술에서 유의 사항은 글의 분량 등을 제시하지만, 글의 구성이나 논리 전개에 대한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소홀히 하면 안 돼. 논술 시험에 자주 등장하는 유의 사항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어.

■ 한 편의 완성(완결)된 글이 되게 할 것
서론·본론·결론의 체계를 완전히 갖추라는 뜻이야.


■한 편의 독립된 글이 되게 할 것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이 읽는 글이 어떤 문제에 대한 답안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도록 글을 쓰라는 뜻이야. ‘위 문제에서’, ‘제시문에서는’과 같은 표현들이 있을 경우 읽는 이는 문제나 제시문 없이는 그 글을 이해할 수 없어. 그러므로 문제나 제시문 없이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작성하라는 요구 사항이지.

■ 본문부터 바로 시작할 것
본문은 본론이 아니야. 본문을 본론이라고 생각하고 서론 없이 글을 써서는 안 돼. 글 앞에 제목을 쓰지 말고 원고지 첫 줄부터 곧장 글의 내용으로 들어가라는 뜻이야.

■ 수험생 신분을 노출시키지 말 것
채점 과정에서 부정을 막기 위한 장치야. 자신의 이름이나 낙서 등 불필요한 내용을 적어 놓을 때 0점으로 처리되기도 하지.

■ 띄어쓰기 포함하여 1600자(±200자 허용) 내외가 되게 할 것
글의 분량을 지시하는 유의 사항이야. 대개 제시한 글의 분량의 약 10퍼센트 정도가 여유 분량이지. 대개 여유 분량은 ‘±200자 허용’처럼 직접 제시해 주는데, 가급적이면 주어진 분량에 꼭 맞도록 글을 쓰는 것이 좋아.

제시문을 제대로 분석해야 논술이 산다

제시문은 출제자가 설문의 범위를 제한하면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려고 제시한 글이야(경우에 따라 제시문뿐만 아니라 도표나 통계 자료, 사진이나 만화 등이 나올 수도 있어). 대부분의 경우, 설문과 제시문 부분을 왕복하면서 두 부분의 관계를 철저히 이해해야만 드디어 무엇을 쓸 것인가를 알게 돼. 설문에 나타난 문제 의식과 논의의 방향은 제시문 독해의 실마리가 되고, 제시문의 내용은 설문의 주요 논점과 논의 전개 방향을 제한하지.

그렇다면 제시문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우선, 전체의 대강을 파악하는 단계―전체적으로 읽기―가 필요해.

전체적인 흐름을 통해 대체적인 주제 파악을 하는 단계야. 나아가, 형식 문단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분석하면서, 그들 사이의 관계까지 면밀히 파악하는 단계―부분적으로 읽기―가 필요해. 반복되는 핵심 단어나 강조되는 주장이나 논거에 밑줄을 그어 가면서 읽으면 내용을 분석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돼. 마지막으로, 앞서 두 단계의 과정을 종합하는 단계―종합적으로 읽기―가 필요해. 1단계에서 세웠던 가설을 확인하거나 수정하면서, 설문과 제시문 간의 접점을 찾는 것이 바로 이 단계에서야.

아무리 바빠도 개요는 작성해야 한다

개요는 머릿속의 구상을 요점만 뽑아 적은 것이야. 즉, 설문과 제시문 분석을 통해 주요 논점을 잡고 그 논점마다 주제문을 작성한 뒤에, ‘서론·본론·결론’에 맞게 이것을 일관성 있게 조직적으로 배치하는 글쓰기 계획표를 말하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설문의 물음과 제시문의 내용, 유의 사항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무엇을 쓰라는 것인지, 어떤 관점과 방식으로 쓰라는 것인지를 세부 항목으로 구체화하는 단계야.

어떤 학생들은 조급한 마음에 글 쓰는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하려고 개요도 짜지 않은 채 곧장 글을 쓰기 시작하지. 그러나 이런 사람은 몇 줄 못 쓰고 나서 이내 무엇을 써야 좋을지 모르는 깜깜한 벽에 부딪히고 말아.

시간을 아끼려다 공연히 시간을 더 낭비한 셈이지. 개요를 작성하지 않고 쓰면, 논의해야 할 내용이 빠지거나 글의 앞뒤가 바뀌어서 글의 흐름이나 논리가 헝클어질 수 있어.

원고지 세계에도 법이 있다

▲ 박용성/여수여고,〈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뛰어넘기〉 저자
개요가 완성되면 그것을 문장화하는 작업이 이어져야 해. 미리 써 보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교정이 이루어져야 하지. 원고지 위에서 잘못된 부분을 수정할 경우 원고지가 지저분해져서 채점자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옮겨 쓰기 전에 모든 교정을 끝내야 해. 그리고 정성스럽게 원고지에 옮겨 적어야 해. 글씨를 잘 쓰느냐 못 쓰느냐는 채점 항목에 포함되지는 않아. 하지만 마구 흘려 쓴 글씨를 대할 때와 정성스럽게 쓴 글씨를 대할 때 채점자가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생각해 봐. 따라서 글씨는 원고지의 4분의 3 정도의 크기로 또박또박 바르게 쓰는 것이 좋아. 생각보다 옮겨 쓰는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옮겨 쓰는 데에 할애해야 해. 마지막으로 형식적인 실수는 문장 부호를 사용하여 정확히 고쳐야 하지.

여수여고, <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뛰어넘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