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이 공교육 혁신 이끌 수 있을까?


[인터뷰]'주입식 문학 교육' 비판한 숙대 최시한 교수
[프레시안 최서영/기자]'논술이 뭐길래….'

"논술이 대체 뭐길래 이 난리일까. 요즘 고1 언니와 중2인 나, 초등학교 5학년인 남동생은 때아닌 '논술전쟁'에 시달리고 있다. 방학인데! 지난 1학기 내신성적까지 별로여서 엄마의 불안을 샀던 언니는 '지금도 한참 늦었다'며 바로 논술과외로 들어갔고, 난 중학생 논술학원에 등록했다. 초등학생인 동생에겐 문학전집이 안겨졌다.

생물학자가 꿈인 언니는 국문과 출신 논술과외 선생이 들고 오는 시사이슈 정리집에 불만이고, 난 논술학원은 놔두고라도 학교 수업부터 불만이다. 오늘 배운 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국어 선생님은 옥희 어머니가 사랑방 손님에게 애정을 느끼면서도 옥희를 위해 재혼을 포기했다며 중요 대목에 밑줄 치고 '아름다운 희생 정신, 어린아이의 눈으로 본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받아적으라 하셨다. 웃겼다. 뭐가 순수하나? 청승맞고 한심하지. 요즘 같으면 겨우 대학생 나이인데 평생 과부로 살라고 하는 인습은 거의 '인권유린' 아닌가? 내 친구는 엄마가 마흔 넘어 재혼할 때 새 아빠가 데려온 애랑 잘만 지내던 걸. 고리타분하다. 축구와 <해리포터..>에 열광하는 남동생은 오늘 엄마에게 잡혀서 약속 하나를 하고서야 나갈 수 있었다. 해리포터 대신 '초등학생의 창의력 향상을 위한 문학전집'을 하루에 한 챕터씩 꼭 읽겠다고…."

한 중학생의 시선으로 쓴 '가상일기'다.
숙명여대 국문과 최시한 교수. ⓒ프레시안

서울대 본고사 논란이 일어난 지도 한 달. 김진표 교육부 장관이 '논술의 본고사 여부를 밝히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겠다는 8월 말이 다음 주로 성큼 다가왔다. '논술 파동' 이후 교육부가 논술교과서 개발, 중등교사 독서지도 연수 등 '혁신 수업' 방안을 연이어 내놓는 동안 사교육 논술시장은 시장대로 들썩이고, 출판계 또한 각종 창의력 개발, 논술 교재 출판으로 한층 분주해진 모습이다.

이 와중에 중등 문학 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 온 숙명여대 최시한(53) 교수가 수십년 간 이어져 온 이른바 '밑줄 치고 땡땡' 주입식 문학 교육을 정면으로 비판한 책을 내 눈에 띈다. <소설의 해석과 교육(문학과 지성사)>은 대학입시 위주의 주입식 소설교육이 우리의 청소년을 얼마나 문학에서 멀어지게 하는지 통렬하게 비판한다.

우리의 문학 교육이 충실한 작품 읽기을 통해 학생들의 감성과 사고력을 키우기는 커녕 오히려 작가 연보, 수사법, 문학사적 평가 등 잡다한 자투리 지식을 외우게 하느라 문학을 골치 아픈 것으로 치부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직접 만나본 최시한 교수는 역시 '문학 교육과 읽기 능력', '독서에 대한 오해', '창의성과 논술' 등에 대해 할말이 많았다.

"오죽하면 시인이 수능시험에 나온 자기 시 문제를 틀리나"

-저서에서 수십년간 이어진 주입식 문학교육의 폐해와 국어 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하셨다. 현재 문학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뭔가. '평가의 용이성'이 주입식 교육의 가장 큰 이유인가.


"문학뿐 아니다. 우리나라 교육이 그동안 지식 교육에만 치중하고 능력 교육을 소흘히 해 온 게 문제의 핵심이다. 문학에서 능력 교육이란 작품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능력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특히 사고력을 소흘히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얼마든지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데 관련 프로그램을 절대 개발 안 한다.(웃음)

비극은 그나마 주입되는 지식마저 부적절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소나기'를 두고 3인칭 관찰자 시점이라고 딱지 붙이는 게 맞지도 않지만 작품 이해에 무슨 도움이 되나? 주입되는 지식 자체에도 깊이가 없다. 파편적이고 쓸모 없는 작품 관련 정보들을 학생들이 암호풀이 하듯 외워서 시험 보게 하니 문학을 싫어할 수밖에…. 오죽하면 어떤 시인이 수능시험에 나온 자기 시에 관한 문제를 풀고 틀렸겠나(웃음). 정해진 유형 앞에 오히려 창조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틀리게 된 것이다.

"선생이 다른 걸 물어야 하는데, 뭘 물을지 모르는 거다"

주입식 교육이 된 이유는 우선 문학 교육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국어교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선생이 학생에게 다른 걸 물어야 되는데, 뭘 물을지 모르겠는 거다. 돈트(Don't)가 아니라 캔트(Can't)다. 또 현장에 가면 참고서가 교육을 지배하고 있어 이를 깨는 게 참 힘들다. 서울시교육청이 서술형을 시험의 30%로 의무화했던데 교사들이 이로 고민이 많다. 학부형이 학교로 달려온다는 것이다. 그만큼 적절한 평가 기준이 부재하다는 것이고 연구의 빈곤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문학을 해석하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문화 수준이 낮은 거다. 학교 수업에서 작품 읽히고 줄거리 쓰는 교육활동이 없는 게 아니라 답의 기준에 대한 이론적 모색이 없는 거다.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답안을 평가하는 기준의 적절성이 필요한 것이다. 일률성이 아니라 다양성, 상투성이 아니라 참신성과 같은."

-소설 읽기가 말하기ㆍ듣기ㆍ쓰기 등 다른 언어능력과 연계돼야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가능한가. 또 문학이 주입식이 아닌 체험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활동을 해야 한다. 1인칭을 3인칭으로 바꿔쓸 수 있고 또 소설을 소재로 논술도 할 수 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옥희 엄마의 선택이 적절한지를 두고 논술하라는 거다. 학생들이 자연히 작품을 깊이 읽을 수밖에 없다. 선생님이 밑줄 쳐주는 게 아니라 의문을 던져야 한다. 언어능력은 타고나는 게 아니다. 훈련받아 커질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런 활동이 이뤄지려면 교육자는 학습자가 그 글을 읽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학습자의 눈높이에서 철저히 이해해야 하고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현재 국어 교과서에도 심화학습이 있지만 뭘 심화하려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렇게 학습의 명분과 실제가 괴리된, 가장 큰 이유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지 않은 데에 있다."

문제제기 1. 독서ㆍ논술교육은 꼭 국어ㆍ사회 교사가 맡아야 하나?

-저서에서 '독서의 개념'을 문제 삼았다. 독서는 기본적으로 '인식행위'인데 독서지도를 꼭 국어 교사가 전담하는 것은 문제라고. 그러나 교육부는 현재 국어ㆍ사회 과목 교사 중심으로 독서교육 연수를 준비하고 있다.
ⓒ프레시안

"독서라는 말에 대한 관습과 고정관념이 정책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독서 대신 '읽기'라고 하자. 이 교육을 왜 꼭 국어ㆍ사회 선생만 맡아야 하나. 읽기는 미술, 체육, 과학 선생도 다 한다. 화학 선생은 화학 선생대로 학생들에게 읽을 책을 안내해야 한다. 화학 분야를 국어 선생이 안내할 순 없다. 읽기 지도는 기본적으로 모든 교사가 해야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왜 '국어'에 집중하나. 이는 우리의 뿌리박힌 문학 중심의 독서관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읽기라고 하면 문학 중심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세상의 읽을 책 중에 문학은 극히 일부다. 그런데 물론 아이들일수록 정서함양과 재미를 위해 문학 비중이 높긴 하다. 그러나 고등교육과정으로 올라갈수록 현저히 떨어진다. 대학에서 국문과 말고는 누가 소설을 교육자료로 쓰나.

또 하나는 감상문 쓰기 중심으로 독서지도를 생각한다는 거다. 제가 교사 연수 때 묻는다. 파브르곤충기 독후감이랑 이광수의 <무정> 독수감 양식이 같을까요? 다르면 어떻게 다르게 써야 한다고 지도한 적 있습니까? 묵묵부답이다. 이건 폭력이다. 이 세상에는 글이 아주 다양하고 글 읽고 공부하는 방법도 많다. 왜 하필이면 독후감만 쓰라고 하냐. 그냥 읽고 얘기해도 된다. 왜 자꾸 쓰라고 하냐. 선생도 못 쓰면서. 억지로 시키니깐 다 베끼는 거다.

문제제기 2. 문학책, 어렸을 때부터 그저 많이 보면 좋다?

모 신문사가 중학생 논술대회를 열던데 중학생이 논술을 왜 하나. 물론 논리적 사고는 필요하다. 그러나 논술은 양식이다. 소설에도 얼마든지 논리적 사고가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비판적 사고력에 필요한 논리가 부족하다. 그냥 작문하면 된다. 논술은 고등학교에 와서 해도 된다. 그런데 요즘은 뭐든지 논술 붙여야 장사되니까 초중등학생들까지 논술로 밀어넣는데 애들한테 부담만 줄 뿐이다."

-현재 출판시장은 '우리 아이 창의력 기르기'라는 이름 하에 '고전 읽기 시리즈' 등 독서교육과 창의력 기르기 시장이 활황세를 맞고 있는데, 이런 '독서 범람'을 어떻게 보나.

"안 읽히는 것보다 낫지만 낭비가 심하다.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이 곧 교육적으로 중요한 작품은 아니다. 게다가 책 읽기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가공하고 프로그램을 짜서 주지 않으면 억압일 뿐이다. 학생에게 읽혀야 할 자료의 선정에도 여러 기준이 있는데 무작정 문학전집을 아이들에게 던져주면 어쩌자는 거냐. 영국에서는 햄릿을 초등학교용, 중학교용, 고등학교용으로 각각 출판해서 읽힌다."

문제제기 3. 대학 입시에는 꼭 배운 게 나와야 하나?

-논술 도입 등 '대학 입시 변화'가 '공교육의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보나, 아니면 모순을 심화시킨다고 보나.


"원론적으로는 대학 입시가 중등 교육을 개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비관적이다. 왜? 선생도 학생도 학부형도 우리나라에서는 시험에는 꼭 '배운 게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험에 꼭 배운 게 나와야 되나? '배운 것'이라는 게 뭘까. 대부분의 한국인들 생각은 '지식'이다.

물론 너무 동떨어진 것을 물어선 안되지만 똑같이 물으면 안 된다. 응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암기형 시험만 양산할 뿐이다. 문제를 틀어서 능력을 물어야 한다. 얘가 비판할 줄 아나. 추리력이 있나. 상상력이 있나. 가치의식이 적절하고 탄력적인가. 대학에서 그런 걸 묻겠다고 하는데, 학교에서는 그런 교육을 해 오지 않았으니,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새로운' 문제 유형을 익히겠다고 사교육 기관으로 몰려가고, 학교 선생님들이 그걸 눈뜨고 보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 선생님들의 재교육이 우선이다. 물론 이것은 하루 이틀에 안 된다. 교육부가 논술대비 교과서를 개발한다던데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 학생들의 수학능력을 테스트하겠다는 시험을 본 지가 10여년이다. 그러면 그동안 실제로 수학능력을 기르는 쪽으로 교육이 바뀌어야 되는데, 바뀔 힘이 없는거다.

우선 대학에서부터 교사를 양성할 때 그런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참고서가 지배하고 있는 학교 현장도 같이 바뀌어야 한다. 뜻있는 교사들이 있어도 옆 선생이 관행대로 참고서에서 시험 출제하면 도로묵이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이 문제는 대학들조차 아직 답을 못내고 있는 상황이다."

최서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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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이 희망이다 2006-02-14 19:10
카테고리 : 논술 에세이 http://blog.paran.com/djsdjshstnf/8246384
논술이 희망이다
평준화 교육의 결과는 '표준화된 과외'
교과서 이치에 주목하는 서울대 논술, 더디 깨달아야 한다


수년전 세계 최고라는 하버드 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한 한국 청년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저에게 미국법은 너무 익숙지 않았습니다. 미국친구들은 당연하게 여기고 넘어가는 것도 저는 이해하기 쉽지 않았죠. 그 이해하기 힘든 이유를 곰곰이 따져나가다 보니 법의 숨겨진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자신의 좋은 머리나 피나는 노력에 대한 언급은 없는 매우 겸손한 멘트였다.(역시 수석은 아무나 하는게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익숙지 않은 남의 나라 법을 공부하느라고 숨겨진 뜻까지 꿰뚫게 되었다는 그의 고백에는 중요한 보물이 묻혀있다.

무엇이든지 쉽게 이해하는 학생이 있다. 이런 학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머리가 좋다고 칭찬을 받으며 자랐을 것이다. 수능과 내신에서 이런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머리 좋은 학생들에게 2008년도 서울대 정시논술은 만만치 않은 시험이 될 것 같다.

서울대는 2008년부터 논술의 비중을 60%까지 크게 늘리고 교과서 중심으로 출제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주었다. 이제까지 논술은 고전이나 신문을 읽어야 한다는 억측이 가능할 만큼 제시문과 주어지는 주제가 광범위 했으나 2008년도 예제는 대부분 교과서에서 지문을 선택했고 문제도 교과단원을 넘어서지 않았다.

‘논술이 사실상 본고사 부활이고 사교육시장을 확장해 서민의 자녀들의 기회를 박탈할 것이라’는 평준화 진영의 반발을 의식한 서울대의 대답은 바로 ‘교과서’였던 것이다. ‘논술은 교과서에서 내겠다. 학원 안 가도 된다. 학교 선생님들이 교과서를 제대로 가르치고 학생들이 교과서를 깊이 이해하면 된다’는 것이다.

교과과정을 넘어선 난해한 논술이 무조건 좋은 사교육을 받은 부잣집 자녀에게 유리하다는 측의 주장은 근거없는 억측에 불과하다. 오히려 문제가 어려울수록 유전자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서민의 자제에게도 서광이 비춘다고 보는게 과학적이다.

그렇지만, 정말 교과서를 이해하면 논술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맞다. 그러나 교과서의 이치를 꿰뚫어야 한다. 이 당연한 말이 ‘쉬운 교육이 곧 민주교육’이라는 근거 희박한 교육철학이 지배하는 현실의 고등학교 현장에서는 전혀 당연한 말이 아니다. ‘내신이 강조되면 지방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유리해진다. 그래서 민주적이다.’ 이 논리가 학교현장에 오면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시험범위와 함께 예상문제를 찍어주는 코미디로 전개된다. 문제를 어렵게 내서 학생들의 내신을 까먹은 선생은 학생들의 앞길을 막는 역적이 되기 때문이다.

수능이 쉬워지고 TV과외에서 출제되면 사교육이 없어진다고? 매번 변별력 시비를 겪을 만큼 쉬워진 지난 7-8년간의 수능과 같은 기간 사교육시장의 추세를 비교해서 입증해 보라. 제발 그 논리를 믿게 해 달라. ‘메가스터디’같은 맥도날드 형 학원이 코스닥의 우량주가 되어 과외공부도 표준화 네트워크화 국제화(?)까지 넘보게 된 것도 다 쉬워진 수능 때문이다. (진보주의자들이여 제발 한번이라도, 자신들의 의도가 아닌 자신들의 열매를 보라. ‘메가스터디’가 바로 당신들의 열매다. 당신들이 그토록 혐오해 마지않는 ‘맥도날드 과외공부’가 학교를 삼키고 있단 말이다.)

예측 가능한 학교시험. 쉬운 수능. 이런 공부를 위해서라면 굳이 이치까지 깨달을 필요가 없다. 공식을 이해하는 정도의 이해력과 여러 공식을 암기할 정도의 암기력 다양한 형태로 조금씩 비튼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응용력과 반복된 훈련을 수행할 성실함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 출제되는 서울대의 논술문제. 좋은 답안을 위해서는 교과서를 뒤집어 볼 수 있어야 한다. 서울대는 이미 2003년도 논술에서 문화상대주의를 비판하라는 문제를 출제했었다. 교과서에서는 ‘문화상대주의가 문명이고 문화보편주의 혹은 일방주의는 야만’이라는 공식을 가르치고 있는데 말이다.

교과서를 성실히 이해한 학생은 그 논술에서 당연히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그럼, 왜 중국과 일본 동남아는 한국의 TV드라마에 열광하지?’ 라며, 교과서의 공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둔한 학생이라야 눈에 띄는 답안을 작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고등학교 교과서의 단원들은 나름대로 고전의 맥락에 맞닿는 주제들이다. 그 단원 하나하나가 고등학생들에게까지 가르쳐져야 한다는 공감을 얻기까지 수 십년 혹은 수 백년에 걸친 논쟁이 그 주제를 휘감았다. 인류가 자랑하는 수많은 천재들의 인생이 그 단원 하나하나에 녹아 있다.

그 천재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어 평생을 바쳐 씨름한 주제. 고등어 대가리와 꽁지를 잘라 먹기 좋은 몸통만 밥상에 올려 놓은 것이 바로 교과서인 것이다. 이 자반을 덥석덥석 잘 받아먹으면 천재라고 쓰다듬어 준 것이 우리 교육이었다. 민주적이건 8학군이건 고등어 몸통만 먹는 교육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갈릴레오가 중력가속도는 똑같다고 피사의 탑에서 실험을 보여주었을 때도 사람들은 눈앞의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무거운 것은 빨리, 가벼운 것은 느리게 떨어진다는 관념이 2000년 동안 사람들의 상식을 지배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생활에도 이 관념이 더 맞았다.

‘중력가속도는 같다.’는 어색하고도 부자연스런 이론을 우리 학생들은 덥석덥석 잘도 이해한다. 그 뿐인가 바로 다음시간에는 또 다른 놀라운 이론을 쉽게 이해해 버린다. 천재가 분명하다. 노벨상 그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천재들이 매년 100만 명씩 배출되는 나라다.

2008년도 서울대 논술 예제는 교과서와 교과서의 이치에 주목하고 있다. 이 대목이 마음에 든다. 교과서의 주제와 단원은 수도 없이 많지만 이치는 단원과 과목을 꿰뚫고 몇 개의 뿌리로 통합되기 때문이다.

서울대 예제에 나온 ‘시장이냐 정부개입이냐’ 하는 문제의 이치는 사회의 단위와 주체를 개인으로 볼 것이냐 집단으로 볼 것이냐 하는 오래된 맥락에 닿아있고 이 이치는 다시, 자연법 사상을 둘러싼 논쟁의 뿌리이기도 하다. 자연법 사상은 ‘법과 정치’ 과목의 중요한 산맥이다. 이렇게 교과목의 단원들을 흔들고 털어 맥락의 뿌리만을 걸러 낸다면 그 수가 십 여개를 넘지 않을 것이다. 원래 학문이라는 게 개별 현상들의 배후를 찾아내어 이를 보다 보편적인 법칙에 꿰어 맞추고자 하는 노력이고 보면 이는 당연하다 못해 너무 평범한 주장이다.

더욱이 대학이 강조하듯이 좋은 논술 답안이 미려한 문장의 ‘세련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대한 참신한 접근과 독창적 표현이라는 ‘기본기’를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과서를 쉽게 이해하지 못해 궁극의 이치를 깨닫는 스타일의 학생들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기회이다.

교과서를 쉽게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둔해서 성찰을 통해서만 더디게 이치를 꿰뚫는 학생이 뭐든 쉽게 이해하는 ‘머리 좋은’학생들 보다 유리한 서울대학의 논술이 사교육 시장의 확장을 줄일 수는 없더라도 분명한 것은 ‘메가스터디’와 같이 표준화된 교육방식의 대량생산이라는 코미디는 더 이상 양산하지 않을 것이다. 이 대목에는 확신이 간다. 단, 누군가 더디 깨우치는 깊은 성찰마저도 표준적으로 대량 보급하는 방식을 개발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오태민 (명지외고 통합논술강사)
박용성 교사의 실전강좌
1부-논술 이해하기 ②논술, 이렇게 쓰자

논술은 문제·해결의 과정이다

논술이란 옛날이나 동시대의 통찰력이 담긴 남의 글을 읽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글쓰기야. 곧, 삶의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고전의 맥락과 연관지어 생각하되, 그 해결은 고전(그때·그곳)이 지니는 의의와 한계를 바탕으로 오늘날(지금·이곳)의 현실적 삶에 대한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이지.

제시문의 관점의 통찰력과 한계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논제를 해명하는 게 바로 논술이야. 그때·그곳의 관점으로 지금·이곳의 문제를 비추어 보아 문제의 매듭이 어디에 있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를 성찰하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고나 할까. 이를 거칠게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아.

▲ 12면

설문에는 해결의 실마리가 들어 있다

어떤 문제든 설문에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들어 있어. 따라서, 설문을 구성하는 각 부분의 내용을 면밀히 분석한 뒤 이를 바탕으로 제시문을 독해하고, 이를 토대로 논지를 전개하는 거야. 또한, 설문 분석의 과정에서 유의 사항에 대한 면밀한 검토도 필요해. 논술에서 유의 사항은 글의 분량 등을 제시하지만, 글의 구성이나 논리 전개에 대한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소홀히 하면 안 돼. 논술 시험에 자주 등장하는 유의 사항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어.

■ 한 편의 완성(완결)된 글이 되게 할 것
서론·본론·결론의 체계를 완전히 갖추라는 뜻이야.


■한 편의 독립된 글이 되게 할 것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이 읽는 글이 어떤 문제에 대한 답안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도록 글을 쓰라는 뜻이야. ‘위 문제에서’, ‘제시문에서는’과 같은 표현들이 있을 경우 읽는 이는 문제나 제시문 없이는 그 글을 이해할 수 없어. 그러므로 문제나 제시문 없이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작성하라는 요구 사항이지.

■ 본문부터 바로 시작할 것
본문은 본론이 아니야. 본문을 본론이라고 생각하고 서론 없이 글을 써서는 안 돼. 글 앞에 제목을 쓰지 말고 원고지 첫 줄부터 곧장 글의 내용으로 들어가라는 뜻이야.

■ 수험생 신분을 노출시키지 말 것
채점 과정에서 부정을 막기 위한 장치야. 자신의 이름이나 낙서 등 불필요한 내용을 적어 놓을 때 0점으로 처리되기도 하지.

■ 띄어쓰기 포함하여 1600자(±200자 허용) 내외가 되게 할 것
글의 분량을 지시하는 유의 사항이야. 대개 제시한 글의 분량의 약 10퍼센트 정도가 여유 분량이지. 대개 여유 분량은 ‘±200자 허용’처럼 직접 제시해 주는데, 가급적이면 주어진 분량에 꼭 맞도록 글을 쓰는 것이 좋아.

제시문을 제대로 분석해야 논술이 산다

제시문은 출제자가 설문의 범위를 제한하면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려고 제시한 글이야(경우에 따라 제시문뿐만 아니라 도표나 통계 자료, 사진이나 만화 등이 나올 수도 있어). 대부분의 경우, 설문과 제시문 부분을 왕복하면서 두 부분의 관계를 철저히 이해해야만 드디어 무엇을 쓸 것인가를 알게 돼. 설문에 나타난 문제 의식과 논의의 방향은 제시문 독해의 실마리가 되고, 제시문의 내용은 설문의 주요 논점과 논의 전개 방향을 제한하지.

그렇다면 제시문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우선, 전체의 대강을 파악하는 단계―전체적으로 읽기―가 필요해.

전체적인 흐름을 통해 대체적인 주제 파악을 하는 단계야. 나아가, 형식 문단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분석하면서, 그들 사이의 관계까지 면밀히 파악하는 단계―부분적으로 읽기―가 필요해. 반복되는 핵심 단어나 강조되는 주장이나 논거에 밑줄을 그어 가면서 읽으면 내용을 분석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돼. 마지막으로, 앞서 두 단계의 과정을 종합하는 단계―종합적으로 읽기―가 필요해. 1단계에서 세웠던 가설을 확인하거나 수정하면서, 설문과 제시문 간의 접점을 찾는 것이 바로 이 단계에서야.

아무리 바빠도 개요는 작성해야 한다

개요는 머릿속의 구상을 요점만 뽑아 적은 것이야. 즉, 설문과 제시문 분석을 통해 주요 논점을 잡고 그 논점마다 주제문을 작성한 뒤에, ‘서론·본론·결론’에 맞게 이것을 일관성 있게 조직적으로 배치하는 글쓰기 계획표를 말하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설문의 물음과 제시문의 내용, 유의 사항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무엇을 쓰라는 것인지, 어떤 관점과 방식으로 쓰라는 것인지를 세부 항목으로 구체화하는 단계야.

어떤 학생들은 조급한 마음에 글 쓰는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하려고 개요도 짜지 않은 채 곧장 글을 쓰기 시작하지. 그러나 이런 사람은 몇 줄 못 쓰고 나서 이내 무엇을 써야 좋을지 모르는 깜깜한 벽에 부딪히고 말아.

시간을 아끼려다 공연히 시간을 더 낭비한 셈이지. 개요를 작성하지 않고 쓰면, 논의해야 할 내용이 빠지거나 글의 앞뒤가 바뀌어서 글의 흐름이나 논리가 헝클어질 수 있어.

원고지 세계에도 법이 있다

▲ 박용성/여수여고,〈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뛰어넘기〉 저자
개요가 완성되면 그것을 문장화하는 작업이 이어져야 해. 미리 써 보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교정이 이루어져야 하지. 원고지 위에서 잘못된 부분을 수정할 경우 원고지가 지저분해져서 채점자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옮겨 쓰기 전에 모든 교정을 끝내야 해. 그리고 정성스럽게 원고지에 옮겨 적어야 해. 글씨를 잘 쓰느냐 못 쓰느냐는 채점 항목에 포함되지는 않아. 하지만 마구 흘려 쓴 글씨를 대할 때와 정성스럽게 쓴 글씨를 대할 때 채점자가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생각해 봐. 따라서 글씨는 원고지의 4분의 3 정도의 크기로 또박또박 바르게 쓰는 것이 좋아. 생각보다 옮겨 쓰는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옮겨 쓰는 데에 할애해야 해. 마지막으로 형식적인 실수는 문장 부호를 사용하여 정확히 고쳐야 하지.

여수여고, <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뛰어넘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