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이가 알아야 할 인권이야기

[서평] <시민의식 만세!>를 읽고

강임수(kis941113) 기자

ⓒ 초록개구리

얼마 전 '사계절' 출판사에서 나온 <자이, 자유를 찾은 아이>라는 책을 읽었다. 어린 소년 자이는 공장에서 양탄자 짜는 일을 하며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자이가 같이 일하던 친구들과 함께 양탄자 공장에서 자유를 찾아 도망쳐 나온다는 내용이다. 이 책을 아이들이 읽으면 무얼 생각할까, 궁금했다. '세상엔 자이처럼 힘들게 사는 아이들도 있구나.' 혹은 '자이는 정말 용감한 소년이다.' 정도 일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세상엔 자이처럼 사는 아이들도 있다'는 새로운 정보와 '자이는 용감한 소년이다'라는 교훈에 머문다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몇 가지 문제 때문에 속이 시원하지 않을 것이다. 첫째, 자이와 자이 친구들이 도망쳐 나오다 붙잡히거나, 거리에서 공장주에게 다시 붙들려 갈 수도 있다. 둘째, 자이와 자이 친구들은 빠져나왔지만 어린이 노동노예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셋째, 처음부터 자이와 같은 어린이 노동노예가 생기지 않았어야 했다.


그러나 아직은 우리 아이들이 이런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물음을 가질 수 있을 런지 의문이다. 아이들이 이런 의문을 갖게 하기 위해선 인권이나 자유와 관련된 책을 읽기 전에 그것과 관련된 사전 정보를 먼저 줘야한다. 예를 들어 사회의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인간이 태어나면부터 받게 되는 권리가 무엇인지, 어린이들이 보장받아야 할 권리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이런 정보를 미리 알고 사회현상이나 책을 접한다면, 아이들은 훨씬 깊고 넓게 생각을 할 수 있다.


<시민의식 만세!>는 어린이들에게 세상을 이루는 구성과 그 속에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것과 요구해야 할 것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다. 이 책은 '나'라는 아주 작은 단위에서 시작해서 가족, 친지 그리고 서로 다른 다양한 가족들인 이웃으로 퍼져나가며 설명하고 있다. 또 사람을 코끼리와 생쥐에 비유하며 서로 다른 능력을 갖은 사람들이 돕는 모습과 힘을 합하는 모습을 알려주고 있다. 그 과정에서 구성원이 지켜야 할 예절들도 알려준다.


그렇게 기본적인 요소들을 알려준 뒤, 한 걸음 더 나가 지구라는 공동체 속에 '나'를 바라보게 한다. 지구라는 공동체 속에서 구성원 모두가 공동으로 안고 있는 문제를 인식하게 한다. 환경오염문제와 인간과 더불어 사는 또 다른 생명체에 대한 배려가 그것이다. 또 서로 각기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살면서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규칙과 법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려준다. 장난꾸러기 원숭이들이 규칙과 법을 만들고 대표자를 뽑는 것을 보여주면서 질서와 안정을 지키는 방법을 설명한다. 이 단원에선 국민, 시민의식, 헌법, 민주주의, 세금, 재판관 따위의 단어의미를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놓고 있다.


국민 : 한 국가에 속해 있으면서, 국가의 일에 함께 참여하는 사람이에요.

시민의식 : 사회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나라가 잘되도록 갖는 마음 자세나 생활 태도를 말해요.

헌법 : 국가가 하는 일과 국민이 누릴 기본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 법입니다.

민주주의 : 국민이 투표를 통해 자신들의 대표나 지도자를 뽑아서 국가를 이끌어 가게 하는 제도를 말해요.

세금 : 국가에서 벌이는 일, 예를 들면 학교와 유치원, 또는 병원을 지을 때 드는 비용을 얻기 위하여 국민들에게 받는 돈이에요.

재판관 : 국민들 사이에 다툼이 생기면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판가름을 내기도 하고 법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법을 주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고 운영되는지 알아본 뒤, 사회구성원 중 하나인 '나'(어린이)는 어떤 존재이면 어떤 권리를 갖는지 알려준다. '세계 인권 헌장'이 있듯이 어린이에겐 '어린이 권리 헌장'이 있다. '어린이 권리 헌장'은 국제연합이 전 세계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정한 것이다. <시민의식 만세!>에서는 두 헌장의 세부 조항을 몇 가지 적어 놓았다. 또 어린이 권리를 위한 단체의 개별 성격과 사이트를 따로 정리했다.


아이들에게 이 정도 정보를 알려준다면 책을 보거나 뉴스를 들을 때, 혹은 자신에게 행해지는 부당한 문제를 접할 때, 그 해결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대책 없이 울분에 싸여 있기보다는 당면과제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 문제가 '어린이 권리 헌장' 어떤 부분에 위배되는지 찾아 볼 수 있다. 또 어느 기관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지도 알 수 있다.


물론, 인권을 지키는 일은 어른도 쉽지 않다. 더욱이 아이 스스로 인권을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인권을 지키는 일은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일이기에 어렵다고 방치할 수 없다. 또 아이나 어른들이 이 일을 어렵게 느끼는 까닭은 지금까지 인권에 관한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배워야한다.


인권을 지키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나의 인권을 지키는 동시에 타인의 인권을 지켜주는 것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자신을 지키고 타인을 존중할 줄 알아야, 자라서도 스스로를 지키고 타인을 존중할 수 있다.


<어린이 권리 헌장>

국제연합이 만든 어린이 권리헌장

1. 어린이는 이 헌장의 모든 권리를 누려야 합니다. 어린이는 자신과 가족의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정치, 또는 어떤 견해나 국가,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지위 때문에 구별되거나 차별 받아서는 안 됩니다.


2. 어린이는 특별한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신체적, 지적, 도덕적, 정신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건강한고 정상적인 태도를 발달시킬 수 있도록 법률이나 기타 방법으로 자유와 존엄 안에서 편안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법률은 '어린이 우선의 이익'을 생각해야 합니다.


3. 어린이는 태어날 때부터 이름과 국적을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4. 어린이는 사회 보장 헤택을 받아야 합니다. 올바른 성장과 발달을 위하여 출산 전후의 어머니와 어린이에게 도움과 보호가 필요합니다.


5. 신체적, 정신적, 또는 사회적으로 장애를 가진 어린이는 그 상황에 맞는 특별한 치료와 교육, 그리고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6. 어린이가 완전하고 조화롭게 자라기 위해서는 사랑과 이해가 필요합니다. 어린이는 부모의 보호와 책임 속에서 자라야 하며, 어떤 겨우에도 어머니와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사히와 공공 권력은 가족이 없거나 생계 수단이 충분하지 못한 어린이를 특별히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어린이를 키우는 가족을 위해 국가나 다른 기관에서 보조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7. 어린이는 적어도 초등 과정에서 무료 의무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어린이는 문화적 소양을 개발하고 자신의 능력과 판단력, 도덕성, 사회적 책임감을 개발하여 사회에 꼭 필요한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평등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어린이 우선의 이익'은 어린이의 교육과 방향성에 책임을 지는 지침이어야 하며, 이 책임은 어린이의 부모에게 있습니다. 어린이는 재미있는 활동과 놀이 기회를 충분히 가져야 합니다. 사회와 공공 권력은 어린이가 이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8. 어린이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가장 먼저 보호받고 구조되어야 합니다.


9. 어린이는 방임, 학대, 착취로부터 보호 받아야 합니다. 어린이는 어떤 형태로든지 매매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린이는 적절한 나이에 이르기까지 노동을 착취당해서는 안 됩니다. 어린이는 건강 또는 교육에 해를 입거나 신체적, 정신적, 도덕적 발달에 방해 받는 일을 하는 처지에 놓여서도 안 되고, 그런 상황을 강요받아서도 안 됩니다.


10. 어린이는 인종과 종교, 그 밖의 모든 형태의 차별 받는 관습에서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어린이는 인간 상호간의 이해, 관용, 우정, 평화, 그리고 보편적인 형제애의 정신으로 키워져야 합니다. 또한 어린이는 자신의 힘과 재능을 자신의 동료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자각 속에서 키워져야 합니다 ./ 국제연합


시민 의식 만세! / 실비 자라르데 글 / 초록개구리 펴냄

대상:초등전학년 / 값 8,500원 / p71


"특별하지 않아도 난 괜찮아"

아이다운 상상으로 아이들의 고민을 풀어낸 <위대한 마법사 호조의 수상한 선물 가게>

강임?kis941113) 기자


ⓒ2005 국민서관

<위대한 마법사 호조의 수상한 선물 가게>의 작가 류가미는 어릴 적에 특별한 아이가 되고 싶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구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마법의 지팡이는 나타나지 않았어요. 대신, 나는 마법의 주문을 거는 방법을 알게 되었어요.특별하지 않아도 난 괜찮아! 괜찮아!

▲ 책 표지



내가 스스로에게 '나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게 되자,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너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가 키가 작아 고민하면 '키가 작아도 괜찮아, 난 그런 네가 좋아'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게임이나 TV만화를 통해 가상세계를 접하고 있다. 아이들은 스스로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 낼 여유도 없이 어른들이 만들어 낸 가상세계에 갇혀 버리고 만다. 어린아이들에게는 풋풋하고 순수한 상상의 세계가 필요하다. 생활 속에 보여지는 문제들에 접근해 상상력을 발휘할 때 건강한 가상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컴퓨터게임 속 가상의 세계와는 달리, 동화 속 상상들은 아이들의 일상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상상의 세계라도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올바르게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 <위대한 마법사 호조의 수상한 선물 가게>와 같은 책이 아이다운 상상력을 빌려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 책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 '각자 자신의 개성을 소중히 생각하고 키워 나가자'는 주제를 담고 있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 자신이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었다. 나 역시 특별한 존재가 되는, 수없이 많은 상상들을 하며 자라났다. 때로는 가짜인 줄 알면서도 원더우먼 팔찌를 사서 차던 것처럼, 터무니없이 마법과 같은 힘을 빌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우고 싶어 했다.


이 책의 주인공 유정이는 평범한 아이다. 그래서 친구들이나 선생님께 주목을 받지 못하고 봉팔이 생일에도 초대받지 못한다. 그러나 아무리 특별한 아이라 해도 한 가지씩 단점은 있기 마련이다. 예은이는 마음씨 착하고 얼굴도 예쁘지만 뭐든지 느리다. 봉팔이는 운동을 잘하지만 수학 공부는 못한다. 호영이는 부잣집 아이지만 뚱뚱하고 외모에 자신이 없다. 민지는 똑똑하지만 가난하다. 그래도 그 아이들은 적어도 한 가지는 특별한 구석이 있기 때문에 친구들이나 선생님께 시선을 끌 수 있다. 적어도 유정이처럼 생일파티 초대에서 제외되는 일은 없다.


특별하지 못하다는 것을 늘 속상해 하던 유정이는 그림 숙제를 잘해 눈에 띄고 싶다. 유정이는 마을을 그리려고 동네를 둘러 보았다. 그러다 '위대한 마법사 호조의 선물가게'를 발견한다. 신기한 물건들로 가득 찬 호조 아줌마 선물가게. 호조 아줌마는 동물과 대화할 수 있는 안테나와 영혼을 바꾸자고 유혹적인 제안을 하지만 유정이는 거절하고 돌아선다.


며칠 후, 반 아이들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느림보 예은이의 모든 행동이 갑자기 빨라졌다. 수학 공부를 못하던 봉팔이가 안경을 끼고 나타나더니 아무리 어려운 수학 문제라도 척척 풀어냈다. 뚱보 호영이는 하루만에 날씬해져 연예인 같은 외모를 갖게 되었다. 가난한 것이 불만이던, 민지는 부자가 되어 어떤 물건이든지 마음대로 살 수 있게 되었다.


달라진 아이들은 다음 날이 되면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유정이는 다른 행성에서 온 솔트의 편지를 받고 이상한 병에 걸린 친구들을 구하러 나선다. 재치를 발휘해 마녀에게서 마법의 지팡이를 빼앗고 마녀를 물리친다. 유정이는 비로소 알게 된다. 내가 선생님이나 친링湧?시선을 끌지 못해 속상해 했던 것처럼, 특별하게만 보였던 아이들도 한 가지씩 고민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유정이 눈에 아이들은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언제나 천진스럽게 즐겁기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고민거리를 두고 무작정 상상의 세계로 떠나서도 안 된다. 유정이는 고민거리를 마법지팡이로 풀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나서 자신의 고민을 해결했다. 친구들 속에서 소외감을 느꼈지만 친구들 속에서 자신을 찾았다.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했을 법한 내용에 상상력을 실어 담백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예쁜 동화이다.

류가미 글 / 국민서관 펴냄


리더스 가이드와 알라딘에 실었습니다.



나는 나, 그리고 희망은 있다

가슴뭉클한 나의 존재감

이선미(sozu20) 기자

ⓒ 보림

정말 선물 같은 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의 <중요한 사실>. 빨간 리본이 곱게 묶여진 표지를 보면 누구라도 첫 장을 조심스럽게 넘기고 싶었을 것이다. 책의 첫 장을 넘기자, 포장된 책이 펼쳐진 그림이 한 장 나온다. 또 한 장 넘겼을 때는 여러 가지 '중요한 사실'들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숟가락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다는 거야. 숟가락은 작은 삽처럼 생겼고, 손에 쥐는 것이고, 입에 넣을 수 있고, 숟가락은 납작하지 않고, 숟가락은 오목하고, 그리고 숟가락으로 뭐든지 뜨지. 하지만 숟가락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다는거야."


누가 봐도 옳은 이야기다. 작가는 이런 이야기들을 차분하고 다정하게 독자에게 알려준다. 데이지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데이지가 하얗다는 것, 비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비가 모든 걸 촉촉하게 적신다는 것, 사과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사과가 공처럼 둥글다는 것, 하늘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하늘이 언제나 거기에 있다는 것.


'맞아, 맞아'하고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예상치 못한 그림 한 장이 나온다. 바로 나를 비추는 거울이 번쩍이는 그림!


"너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너는 바로 너라는 거야. 예전에 너는 아기였고, 무럭무럭 자라서 지금은 어린이고, 앞으로 더 자라서 어른이 된다는 건 틀림없어. 하지만 너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너는 바로 너라는 거야."


너는 바로 너라는 것. 긴 여운을 남기는 '너는 너'를 생각하며 바로 옆 장에 펼쳐진 거울에 내 얼굴을 담아본다.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의 <중요한 사실>은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삶이 힘들고 지친 이들에게 다시금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나라는 존재. 나는 나이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을까?


ⓒ 풀빛

선물같은 <중요한 사실>을 읽고 나서, 또 한권의 책을 뽑아들었다. 숀 탠의 <빨간 나무>. 종이배에 올라타 눈을 내리깔고 있는 지쳐 보이는 빨강머리 소녀가 눈에 띈다. 종이배를 띄운 물 위에는 잔잔한 비가 내리고 있다. 아마도 그 비는 소녀의 지친 눈물과 같다.


"때로는 하루가 시작되어도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첫 장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어린이들에게 하루가 시작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니. 침대에서 일어난 빨강머리 소녀는 무표정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모든 것은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하고, 어둠이 밀려오고, 아무도 날 이해하지 않습니다."


소녀에게 세상은 귀머거리 기계이고, 모든 일은 한꺼번에 터졌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들은 그냥 자신을 지나쳐 갔다. 아주 고요하지만, 아주 끔직한 세상. 때로는 자신이 누군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소녀. 그래서 소녀는 하루가 끝나가도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러나 문득, 바로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밝고 빛나는 희망의 빨간 나무였다. 나의 욕망, 나의 바람, 나의 희망을 한데 실은 빨간 나무. 시들시들, 땅바닥으로 내려놓은 소녀의 풀죽은 시선을 번쩍 빛나게 한 빨간 나무. 빨간 나무, 나의 희망.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이 왠지 위로되는 기분이었다. 도서관에 오는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지치고 힘들어하는 나의 가까운 친구에게도 꼭 이 두 권의 책을 읽어주고 싶어졌다. 나의 존재감을 찡하게 느끼며, 희망에 찬 나직한 목소리로 말이다.



자유로움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간다

<꼬마 파브르, 웅태의 벌이야기>를 읽고

오마이뉴스 강임수(kis941113) 기자

▲ <벌이야기>표지

ⓒ2005 청어람아이들

웅태는 일본 나가노현 호쿠세이부의 북알프스 산자락에 있는 하쿠바가 고향이다. 이 곳은 해발 700m나 되어 여름은 아주 짧고 겨울엔 눈이 잔뜩 쌓여 스키 천국이다. 웅태가 관찰한 '쌍살벌'은 날씨가 추운 홋카이도나 일부 외딴 섬을 제외하면 일본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벌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큰 도시를 제외하고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웅태는 초등하교 2학년 때부터 시작하여 '노란범나비 관찰', '별쌍살벌 관찰'로 과학상 작품 전람회에서 상을 받았고 '쌍 살벌한테 배운다'로 2000년 나가노현 학생 과학상 작품 전람회 우수상등, 초등하교 재학 중 많은 상을 받았다. 현재는 초등학교를 졸업 후, 뉴질랜드에서 유학중이다. <꼬마 파브르, 웅태의 벌이야기>란 책은 웅태가 4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벌을 관찰하고 기록한 것을 재편집한 것이다.


웅태의 관찰기록문의 가장 큰 특징은 '초등학생이 직접 보고, 실험하고, 배우고, 느낀 것'이라는 것에 있다. 그러니까 이미 연구하여 밝혀진 것을 아이수준에 맞추어 기획된 책이 아니라 뜻이다. 지금까지 내가 보지 못했던, 전문적인 지식이나 특별한 목적 없이, 직접보고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본 순수한 의미의 관찰기록문이다.


그래서 잘 못 알고 기록된 부분도 있다. 그 예로, 교미를 했다고 해서 일벌을 여왕벌로 착각하는가하면 수컷이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알기도 한다. 실내에서 키우던 벌들을 밖으로 풀어 주어 죽게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편집과정에서 이런 부분을 수정하지 않고 책 속에 그대로 남겨 놓았고, 전문가의 조언을 실어 잘 못된 부분을 고쳐주고 있을 뿐이다.


또, 웅태가 관찰하는 동안에 쌍살벌에게 갖는 감정의 기복을 여과 없이 실었다. 웅태는 다른 여왕의 애벌레도 똑같이 사랑스럽게 키워 준 장미란 이름의 여왕벌을 보며 기뻐하고, 죽어가는 장미를 바라보며 가슴아파한다. 늦가을 말벌의 습격으로 뿔뿔이 흩어진 벌들을 보고, 한 벌집에서 자란 여왕벌들의 세력다툼을 지켜보면서 자연의 냉혹함을 깨닫는다.


이렇게 자유롭고 정감어린 웅태의 관찰은 그 실험 또 한 그러하다. 벌집 옆에 면봉에 벌꿀, 멜론시럽, 간장, 올리브기름을 따로 따로 묻혀 붙여 놓는가하면, 여왕벌이 죽자 다른 벌집을 옆에 가져다 놓아 자기가 낳은 애벌레가 아닌데도 애벌레를 돌보는지 알아본다. 관찰하우스를 지을 때 방을 넷으로 구분하여 각방에 다른 벌집을 넣기도 하고 두 종류의 벌집을 한 방에 넣기도 한다.


이런 웅태의 자유로운 관찰방법은 전문가들에게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여러 가지 관찰사례를 만들어 간다. 아마 기존 틀에 매여 이미 알려진 사례만 확인하려 했다면 이런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것이고 웅태의 관찰은 재미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또, 자신의 연구결과에 대해 전문가의 조언을 얻으려는 적극적인 자세로 관찰자로써의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훌륭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출판되고 있는 어린이를 위한 관찰기록문은 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과학적 지식을 알려주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전문가나 어른들이 만든 책은 전반적인 과학상식을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다는 것과 대체로 정확한 정보를 전한다는 장점이 있다.


웅태의 벌이야기의 경우 쌍상벌 위주로 관찰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벌에 관한 지식이나 곤충의 생태에 관한 지식을 알려주고 싶다면 굳이 이 책을 권하지 않겠다. 이 책은 관찰하는 과정 속에 배어 있는 관찰자의 자세, 관찰방법, 틀에 매이지 않는 기록방법, 장기간에 걸쳐 이沮測?관찰물에 대한 애정, 그 속에서 생겨나는 따뜻한 감성 따위가 살아 있는 감동을 준다.


웅태의 이런 관찰결과를 만들 수 있었던 것에는 부모님의 도움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벌의 습성이나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했을 것이고, 관찰하우스를 함께 만들고 연구 성과를 전문기관에 문의하는 방법 따위를 알려 주었을 것이다. 그 과정이 생각보다 번거로웠을 것이고 웅태를 지켜보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웅태가 참 행복한 아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 부모님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아이들이 웅태와 같은 관찰하는 즐거움을 갖게 하려면, 부모가 우선 열린 마음으로 아이교육에 적극 참여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