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 환관 김처선, 사실은 이랬다

[서평] '궁'에 관한 여러 가지 궁금증 풀어준 책, <궁>

강임수(kis941113) 기자

ⓒ 고래실

지난 5일(일), 오랜만에 아이와 함께 경복궁에 다녀왔다. 봄맞이 축제로 줄타기 공연을 한다기에 큰맘 먹고 나섰다. 영화 <왕의 남자>에 등장했던 광대가 직접 공연한다고 해서인지, 근정문 마당은 모처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사람은 많고 객석은 따로 마련되지 않아, 공연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쉬움을 달래고자 근정전으로 들어섰다.


근정전은 따뜻한 봄 햇살을 쬐려는지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경복궁을 몇 번 다녀갔지만 열린 문을 통해 내부를 볼 수 있던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구멍 난 창호지나 문틈으로 훔쳐 보듯 했던 것이다. 경복궁 좌측문을 지나 경회루에서 잠시 쉬고 다시나와 교태전과 자경전을 둘러보았다. 교태전과 자경전의 뒤뜰 굴뚝과 담장은 우리의 발걸음을 오래도록 머물게 했다.


교태전은 왕비가 쓰는 침전으로 임금이 거처하는 강령전 바로 뒤에 위치한다. '교태'는 부부가 만나 아이를 잘 낳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교태전 뒤뜰 아미산은 왕비를 위한 작은 언덕으로 중국 산동성에 있는 아름다운 산 이름에서 따왔다. 경회루를 만들 때 파낸 흙으로 쌓았다고 한다. 갖가지 꽃과 작은 나무들을 심은 뒤, 꽃담을 아기자기하게 쌓아 아름답게 만들었다. 마니산에는 불가사리 문양이 새겨진 예쁜 굴뚝이 있다. 불가사리는 쇠와 불을 먹는 상상의 동물이다. 그래서 불가사리 문양을 새겨 불이 나지 않기를 바랐다.


교태전 우측 뒤편엔 대비가 머무는 자경전이 있다. 자경전을 들어서기 전에 병풍처럼 펼쳐진 꽃담을 감상하게 된다. 자경전 꽃담은 만(일만 萬), 수(목숨 壽), 복(복 福), 강(편안할 康), 녕(편안할 寧)같은 한자와 매화, 국화, 대나무, 모란, 연꽃, 복숭아, 석류, 난초 문양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다. 자경전 굴뚝 또한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대비가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과 자손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산, 돌, 학, 사슴, 거북, 불로초, 소나무, 석류, 모란 등의 문양을 새겨 넣었다.

▲ 자경전 꽃담(경복궁에서의 왕의 하루 p18)


ⓒ 문학동네

이처럼 아름다운 궁에서 왕과 왕의 가족들은 어떻게 생활했을까? 또 그들이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알아보는 책이 <궁>이다.


임금님을 모시는 궁녀 100명, 왕비를 모시는 궁녀 100명, 세자를 모시는 궁녀 60명, 대비를 보시는 궁녀 100명, 임금님의 후궁을 모시는 궁녀까지 모두 합하면 궁 안에 500여 명이나 궁녀가 있었다. 그들은 밥과 빨래, 청소는 물론이고 아기도 돌보았다. 궁녀들은 아주 세분화된 업무를 맞았는데 당시로써는 유일한 전문직업여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궁녀들은 전문 분야에 따라 하는 일이 달랐다. 예컨대 지밀궁녀는 임금님이나 왕비 마마가 잠을 자는 곳인 지밀에서 일하였다. 바느질을 하는 침방의 궁녀는 침방궁녀, 자수를 놓는 수방의 궁녀는 수방궁녀라고 하였다. 부엌인 소주방, 빨래방인 세답방, 과자를 만드는 생것방, 세숫물 끓이는 세수간, 먹고 난 밥상을 물리는 퇴선간에서 일하는 궁녀들도 있었다."


드라마 <대장금>막?인해 조선시대 궁녀들에 대한 인식이 조금 달라지는 했지만, 궁에 사는 궁녀라고 하면 왕가의 하녀 정도로 격하시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지금시대에 빗대어 생각해 보면 좀 다르게 인식된다. 예를 들어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요리사라든지, 수행원, 의사, 아이들을 돌보는 보육사라고 한다면, 그 분야의 최고를 자랑하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따져 살펴보면 궁녀들의 위상을 하찮게 볼 수 없다.


사실, 당시 정식 궁녀들은 하녀를 거느리기도 했을 정도였다. 어린 나이에 입궁을 한 '각시' 궁녀는 약 15년 동안 공부를 해야 정식 궁녀인 '나인'이 될 수 있었다. 궁녀들은 월급으로 쌀과 콩, 북어를 받았다. 나인이 처음 받는 월급은 쌀이 네 말, 콩이 한 말 다섯 되, 북어가 열세 마리였다. 거기에 상여금까지 합하면 1년 동안 곡식으로 열 섬이 넘는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당시, 농민들 대부분이 1년 동안 열심히 농사지어도 순 수입으로 곡식 열 섬을 남기기란 매우 힘들었다. 그러니 조선 시대의 궁녀들은 사실상 고소득 직장인이었던 것이다.


환관 역시, 대전, 중전, 동궁, 대비전 등에 따로 소속되어 있었다. 대전에 50명, 중전에 10명, 동궁에 20명, 대비전에 10명이 있었다. 이들은 정식 환관이었다. 정식 환관 외에 예비환관으로 '소환' '소천시'까지 200여 명이 되었다. 정식 환관은 궁밖에 따로 가정이 있었고 결혼도 했다. 또 자녀도 두었는데 날 때부터 고자이거나 다른 요인 때문에 고자가 된 아이들을 양자로 삼았다. 같은 처지에 놓인 환관부자는 서로의 고통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친부모 이상으로 자녀에 대한 사랑과 효심이 돈독했다.


요즘 흥행하고 있는 <왕의 남자>에서 환관 김처선이 등장한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환관 처선은 왕을 부추겨 광대를 궁 안에 들인다. 광대들의 공연을 통해 썩은 권력자들의 비리를 폭로하여 왕권을 세우려 했다. 그러나 연산군의 폭정이 도를 넘자, 보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러나 이것은 극화한 것이고 이 책에선 좀 다르다.


김처선은 연산군 때의 승정색이야. 연산군이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하자, 김처선은 매번 정성을 다해 바른말을 하였어. 연산군은 마음속으로 불쾌하였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단다. 김처선이 원로 환관이었기 때문이야.


어느 날 연산군이 궁중에서 가면놀이를 하면서 못된 짓을 많이 하였어. 이때 김처선은 바른말을 하다가 죽을 결심을 하였지. 김처선은 식구들에게 "오늘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궁궐에 들어가 거리낌 없이 말하였어.


"늙은 저는 네 임금님을 섬겼습니다. 경전과 역사책을 대량 보았지만 역사상 상감마마처럼 하신 임금님은 없었습니다."


연산군은 화가 나서 활로 김처선을 쏘았어. 화살이 갈빗대에 맞았는데도 김처선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하였어.


"조정의 대신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늙은 환관이 죽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다만 상감마마께서 오래도록 임금 노릇을 하시지 못할 것 같아 한스럽사옵니다."


연산군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또 활을 쏘았어. 김처선은 다시 화살에 맞고 쓰러졌지. 김처선은 죽어 가면서도 바른말을 그치지 않았어. 김처선은 이렇게 죽었지만 조선 시대의 가장 훌륭한 환관이로 칭송을 받았단다.


이렇듯 궁에서 일하는 궁녀나 환관들은 각각 결혼을 못하거나 자식을 낳지 못하는 아픔을 갖고 있지만, 궁에서 하는 일에 대한 전문성과 그에 따른 일정한 지위와 품위를 유지하려 했다.


이 밖에도 이 책은 왕과 왕의 가족의 일상과 일생을 동화형식과 설명글로 재미있게 잘 정리해 놓았다. 그러는 사이사이 그들을 도와 일을 하는 여러 관직들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꾸며졌다. 또 첫 장에 두 페이지를 연결하여 접어 만든 경복궁 조감도로 글 내용을 읽으면서 위치를 확인 할 수 있다. 끝 부분 '나오는 말'에서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운궁, 경희궁, 인덕궁, 덕수궁, 수강궁, 인경궁 등에 대해서 역사적 배경을 따로 정리하고 있어, 분간이 어려웠던 궁 이름에 단 번에 정리할 수 있다.


<궁> 읽고 찾아간 경복궁은 다른 때와 달리 한 눈에 들어 왔다. 매번 새로웠던 근정전, 경회루,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 자경전의 이름이 익숙했고 그 곳에서 이루어졌던 일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그래서 신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아이에게 설명하는데, 실상 아이는 내 설명을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다음에 경복궁을 찾을 땐, 이 책을 아이에게 꼭 읽게 하여 아이를 가이드로 삼을 생각이다.



과연 '똥 밟을 확률'은?
[아가와 책 41] 아이들이 좋아하는 <강아지똥>·<똥 밟을 확률>
강지이(thecure8) 기자
"엄마, 똥을 싸면 방구가 나오고 똥 먹는 아이도 있대."
"서현아, 엄마가 똥 얘기 하지 말랬지? 자꾸 그러면 사람들이 싫어해."


내 친구와 그 딸이 나누는 대화의 일부다. 아이들은 이상하게 똥 얘기를 좋아한다. 엄마들은 아이가 그런 이야기를 시작하면 괜히 민망해진다. 지저분한 이야기를 일부러 밥상머리에서 늘어놓는 아이도 있으니 왜 그럴까 궁금하기도 하다.

책 읽기는 싫어하고 이런 괴짜 같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면 두 권의 똥 이야기로 책에 대한 관심을 유도해 보면 어떨까? 한 권은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동화 <강아지똥>이고 또 한 권은 똥 이야기를 하면서 수학적 개념을 전달하는 외국 동화책 <똥 밟을 확률>이다.

아이에게 세상의 가장 낮은 목소릴 들려주자

▲ 책 <강아지똥>
ⓒ 길벗어린이
<강아지똥>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더럽다고 피해가는 강아지 똥에 대한 이야기다. 똥 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똥이라고 놀림을 받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버림받는 강아지 똥. 심지어는 지나가는 새들까지도 먹을 게 하나도 없다면서 강아지 똥을 천대한다.

너무 슬픈 강아지 똥이 어느 비 오는 날 만나게 된 것은 바로 민들레 싹이다. '너는 뭐니?' 하고 묻는 강아지 똥에게 민들레 싹은 '예쁜 꽃을 피우는 민들레'라고 대답해 준다.

"얼마만큼 예쁘니? 하늘의 별만큼 고우니?"
"그래, 방실방실 빛나."

"어떻게 그렇게 예쁜 꽃을 피우니?"
"그건 하느님이 비를 내려 주시고, 따뜻한 햇볕을 쬐어 주시기 때문이야."
"그래애… 그렇구나…."


강아지 똥은 부러운 마음에 한숨만 나온다. 그러자 민들레 싹이 이야기한다. 자기가 꽃을 피우려면 한 가지 꼭 필요한 것이 있다고, 그건 바로 거름이 되는 강아지 똥이라고 말이다. 강아지 똥은 자기의 몸을 고스란히 녹여 민들레 싹을 키우고 예쁜 꽃을 피운다.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하찮은 존재일지라도 나름대로의 쓸모와 가치가 있다는 사고를 담고 있다. 원래는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아이가 읽으면 좋을 정도의 글자수를 갖고 있지만 어른과 청소년이 읽어도 감동적이다. 세상의 가장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선량한 마음의 자세를 가다듬게 하여 아이들의 정서 교육에 도움이 된다.

과연 '똥 밟을 확률'은?

▲ 책 <똥 밟을 확률>
ⓒ 됨됨
이렇게 따뜻한 동화로 꾸며진 것 외에도 재미있게 수학 상식을 알려주는 똥 얘기도 있다. 프랑스의 생물학자인 안느 장부아가 그림책 작가인 마티스를 우연히 알게 되면서 쓰게 된 이 책은 아주 재미있게 '확률'의 개념을 설명한다.

"젖소가 만드는 것: 우유와 쇠똥.
우유는 괜찮아요! 누구나 마시니까요.
하지만, 쇠똥은…
둘 중에 하나: 목장에 떨어질 때와……길에 떨어질 때.
목장에 떨어지면 괜찮아요!
그러나 길에 떨어지면…
둘 중에 하나: 사람이 없을 때와……사람이 있을 때."


책은 이런 식으로 두 가지 경우의 수 중 어떤 쪽으로 가게 되는가에 따라 일의 상황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쇠똥이 목장과 길 중 어디에 떨어질까? 길에 떨어지면 사람이 지나가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어떻게 될까? 사람이 지나가지 않으면 괜찮지만 사람이 지나갈 경우에는 또 두 가지의 경우가 발생한다.

사람이 가게 되면 다시 두 가지의 경우다. 쇠똥을 볼 경우와 못 볼 때. 사람이 쇠똥을 보면 다행이지만 못 보면 다시 또 두 가지의 가능성이 열린다. 옆으로 지나갈 때와 앞으로 지나갈 때. 앞으로 지나가는 사람은 결국 똥을 밟게 된다. 이럴 때가 바로 '똥 밟을 확률'이 되는 것이다.

'확률'이라는 수학적 개념은 아이들이 생각하기에 어려운 단어인데다가 자칫 하면 딱딱한 설명으로 얘기해 주기 쉽다. 이 책은 이렇게 어려운 개념을 재미있는 똥 이야기와 '똥을 밟을 확률'로 이야기하여 아이들의 흥미를 끈다. 책의 마지막에는 총괄적인 정리와 화살표로 사람이 똥 밟을 확률이 어느 정도인지 그려 놓았다.

아이에 따라 책 읽기를 귀찮아하고 싫어하는 경우도 꽤 있다. 그런 아이에게 그들이 흥미로워하는 소재를 다룬 책으로 호기심을 유발시키고 관심을 유도해 보자. 그러면 아이들은 책이란 딱딱하고 재미없는 것이 아니라 아주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은 것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06-09-14 10:41
ⓒ 2006
책설명
어린이 책으로 분류는 되어 있지만 청소년이나 성인이 읽어도 참 좋은 책들이 있다. 스테디 셀러인 『괭이부리말 아이들』도 그런 책 중의 하나이다. 본래 두 권으로 된 어린용이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는데, 성인용 판본을 만들어 달라는 방송국의 요청에 의해 양장본으로 새로 태어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양장본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이런 기획 아래 나온 책이어서, 판형이 좀 작고 삽화도 조금 줄었다. 은은한 표지에 손에 쏙 들어오는 것이 참 예쁜 책이다. 그러나 모양은 달라져도 작품이 지닌 감동이야 어디 가겠는가. 작가의 진한 체험이 밴 문체속에, 인천 만석동 달동네를 배경으로 온 몸으로 삶을 사는 주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두고 두고 독자의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제공 : YES24]
저자 및 역자소개

저자 : 김중미
방송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1987년부터 이 책의 배경인 인천 만석동의 괭이부리말에 살아왔고, 지금은 그 곳에서 공부방을 하고 있다.

그림 : 송진헌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서양화를 공부. 1987년부터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 지금은 경기도 파주에 살면서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vc그림책으로는 『감자꽃』『너하고 안 놀아』『돌아온 진돗개 백구』『너도 하늘말나리야』등이 있다.

[제공 : YES24]
목차
1. 괭이부리말
2. 쌍둥이 숙자와 숙희
3. 동준이와 동수 형제
4. 유도 아저씨 영호
5. 숙자와 담임 선생님의 비밀
6. 사랑하는 아빠
7. 돌아온 엄마
8. 영호, 동수와 동준이를 만나다
9. 새로운 가족
10. 동수의 가출
11. 영호의 가을
12. 사고
13. 김명희 선생님
14. 다시 만난 아이들
15. 김명희 선생님의 편지
16. 동수의 고백
17. 새로운 시작
18. 숙자의 어머니
19. 숙희 따돌리기
20. 동수의 선물
21. 김장하는 날
22. 희망
23. 크리스마스 이브에 버려진 아이
24. 새해, 눈 오는 날
25. 괭이부리말의 새 식구
26. 봄
[제공 : YES24]
책내용 소개
'......하지만 그 아이는 행복해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행복해지지 않았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해도 행복해하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는 배만 고팠던 것이 아닙니다. 배가 고플 때 마음도 같이 아팠습니다.......그 아이를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그 아이가 젓가락 한 벌 만 들고 학교로 갈 때 도시락을 넣어 줄 수 있었더라면.....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조금만 더.'(pp4-5)
[제공 : YES24]
출판사 리뷰
이 작품의 배경인 '괭이부리말'은 인천 만석동 달동네의 별칭이다. 6.25 전쟁 직후 가난한 피난민들이 모여 살면서 만들어진 이 동네는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빈민지역이다. 작가 김중미씨는 1987년부터 괭이부리말에서 살며 지역운동을 해왔고, 지금은 그곳에서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작가의 생생한 경험이 담겨 있는 이 작품은 초등학교 5학년인 숙자와 숙희 쌍둥이 자매를 중심으로 가난한 달동네의 구석구석을 착실하게 그려 나갔다.

숙자의 어머니는 집을 나갔다. 오토바이로 교통사고를 낸 뒤 빚을 잔뜩 진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친정으로 가버린 것이다. 숙자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자신이 메울 준비를 하고 있다. 동네 친구들의 어머니처럼 자기 어머니도 영영 돌아오지 않을지 모른다고 마음속으로 각오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빠, 나 엄마 없어두 돼"하며 오히려 아버지를 위로하는 모습이 코끝을 시리게 한다. 쌍둥이지만 성격이 판이한 동생 숙희를 어르는 모습이나, 친구인 동준이를 따스하게 감싸주는 모습이 마치 '몽실 언니'가 이 시대에 다시 나타난 듯하다.

동수와 동준이 형제의 아버지는 돈을 벌어오겠다고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도 일찌감치 집을 나갔다. 고등학교를 중간에 그만둔 형 동수는 친구 명환이와 함께 본드 흡입과 폭력으로 탈출구를 찾는다.

한편, 이 아이들을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거두어주는 '영호 삼촌'은 괭이부리말에서 고생고생하며 집 한캄 마련한 뒤 자궁암으로 세상을 뜬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우연히 본드에 취한 동수와 명환이를 만나 집으로 데려온다. 동수의 동생인 동준이의 친구 숙자와 숙희도 자연스럽게 영호의 집에 들락거리게 되고, 영호와 괭이부리말에서 함께 초등학교를 나온 숙자네 담임 김명희 선생님도 영호의 부탁으로 동수의 상담을 맡으면서 아이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게 된다.

김명희 선생님과 영호의 노력 못지않게 가슴 뭉클한 것은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아이들이 서로 위로하고 의지하며 꿋꿋하게 성장해나간다는 점이다. 언뜻 보기에는 아무런 희망도 의지도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동수와 명환이 같은 아이도 나름대로 꿈이 있다. 꼬박꼬박 월급 받을 수 있는 기술자가 되는 것,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다. 착한 사람으로 평범하게 살고픈 욕망이 왠지 시시하게 보이는 세상에서 이같은 동수와 명환이의 꿈은 오히려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을 남긴다.

가출했던 숙자네 어머니는 아이를 가진 것을 알고 돌아왔으나 숙자와 숙희 자매는 아버지를 사고로 잃는다. 크고작은 사건들을 겪어내는 가운데 어느덧 숙자네 집에서는 새해 첫날 아기가 태어나고, 동수는 야간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낮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명환이는 제빵 기술을 배우기로 하고, 김명희 선생님은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괭이부리말로 다시 돌아와 아이들 곁에, 괭이부리말 사람들 곁에 남기로 한다. 한편, 영홍 삼촌네 집에는 일본으로 돈 벌러 떠난다며 누군가가 맡기고 간 아이 호용이도 함께 살게 된다.

작가의 체험이 절절히 묻어나는 소박하고 진솔한 문체 속에 괭이부리말 사람들의 일상과 믿음직한 아이들의 꿈이 오롯이 담겨 있다. 화려한 성장의 그늘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이 아이들을 한번 쯤 돌아봐 주는 것, 그들의 소박한 꿈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일은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 숙제가 될 것이다.

이 작품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수차례에 걸친 취재 끝에 꼼꼼하게 괭이부리말의 풍경을 재현해낸 일러스트레이터 송진헌씨의 그림 또한 이 책의 빛나는 부분이다. 거친 듯하면서도 따뜻한 감정이 묻어나는 연필선으로 표현한 주인공들과 괭이부리말 주변 풍경은, 아무래도 이러한 풍광에는 익숙하지 못할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안내자가 되어준다.

사춘기 무렵 아이들의 절실한 고민, 성장기에 겪는 갖가지 갈등과 좌절 또한 뛰어난 현실감각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 독자들을 위한 훌륭한 읽을거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제공 : YES24]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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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의 ‘길고도 짧은 여행’

김다혜/부안 계화중학교 1학년

“으악! 지각이다. 엄마 학교 다녀 올께요.”오늘도 늦잠으로 인해 집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이것 계산해주세요.” 나는 먹는 김밥을 들고 계산대 앞에 섰다. “1900원입니다”라는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돈을 내고 지하철역을 향해 달렸다. 항상 그랬듯이 나는 집을 나서자마자, 그렇게 학교를 향해 달렸다. 매일 똑같은 학교 생활과 똑같은 하루의 반복이었다.

그날도 학원에 들러,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 공부를 하고, 날이 저물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오니 시계는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엄마는 일을 나가셨고, 언니는 중학생이라 더 늦게 끝나는 학원 때문에 나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아무 생각 없이 티비를 보며, 언니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다녀왔습니다.” 언니의 소리에 나는 밥상을 차리고, 언니랑 둘이서 밥을 먹었다. “언니, 오늘 학원에서 말이야…”언니와의 대화를 시작하며 먹는 밥은 그나마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밥을 먹고 나서 컴퓨터 하기, 티비 보기 등으로 시간을 채우고 12시쯤 잠을 잔다.

이렇게 지루한 일상으로 한 학기가 지나가고, 드디어 방학이 왔다. 시끄럽게 인사를 나누고 친구들과 헤어졌다. 들뜬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다. 집에는 어쩐 일인지 엄마가 계셨다. 엄마는 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말문을 여셨다. “다혜야, 이제 학원 안 다녀도 된다.” 나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못해 다시 물어봤다. “응?” 그러자 엄마는 다시 말하셨다. “학원 이제 가지 말라고.” 그 소리를 듣자 저절로 웃음꽃이 피어났다. “진짜? 진짜지?”나는 재차 확인을 한 뒤 소리를 질렀다. “아싸!”



나는 그 때까지 내가 학원 다니는 걸 너무 힘들어해서 엄마가 그런 결정을 내린 줄 알았다. 하지만 개학이 다가올 때 쯤 엄마는 말씀하셨다. “다혜야, 다솜아 할말이 있다”나는 어리둥절했다. 왜냐하면, 엄마의 얼굴이 심각해 보였기 때문이다.

“다솜아 너는 컸으니까 이해하겠지? 너희 이번 금요일에 시골로 내려가라.” 나는 그 말이 얼른 이해되지 않았지만, 언니와 엄마의 표정을 보고 심각하다고 느꼈다. 언니의 설명을 듣고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나와 언니가 시골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편찮으시기 때문이란다.

결국 우리는 시골로 내려왔다. 엄마는 3년만 잘 참고 살다가 오라고 하셨다. 내려오면서 나는 작정했다. ‘내 긴 인생에 있어서 시골에서의 3년간은 짧은 여행이라 생각하자고. 중학교 3년을 정말 열심히 잘 살자고’ 이렇게 나의 길고도 짧은 여행은 시작 되었고 나는 지금 이 여행을 만끽하고 있다. 이곳의 친구들과 즐겁게 놀면고 공부하면서. 주위 사람들의 이쁨을 받으면서.


<평>

삶의 속내 솔직하게 풀어내

시골에서는 이런 저런 이유로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아이들이 많다. 이런 삶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삶이 애틋하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글을 쓰게 하나 제 삶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기엔 아직 어린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써봄으로써 자신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이해하고 조절하면서 자신을 키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게 한다.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고 내보이고 싶지 않은 삶의 속내를 솔직하게 써내려 간 것이 대견하다.

박인춘/전북 부안 국어교사 모임. 계화중학교 교사. namepar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