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로 오세요" 산길 물길
장마후 더 청정… 돌피리·꺾지 퍼덕퍼덕

덕풍마을에서 제1 용소로 올라가는 길. 덕풍계곡이 들어있는 응봉산은 비록 소수이지만 ‘마니아’를 갖고 있다. 그들은 매년 휴가를 몽땅 투자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이곳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강릉의 단경골은 놀라운 ‘자연의 복원력’을 보여준다. 태풍 루사(2002년)와 매미(2003년)가 가져다 주었던 만신창이 피해를 스스로 치료하고 청정한 모습을 되찾았다. 강원도에는 같은 아픔을 간직한 계곡과 물길이 많다. 시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모두 원상 회복됐다. 과거 수마에 피해를 입었다가 제 모습을 회복한 지역을 찾아본다면. 올해의 아픔도 반드시 극복된다는 신념과 힘이 생기리라.

# 아침가리계곡(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1999년 이 계곡에 들었었다. 풍광에 홀려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를 떠올렸다. 주인공이 머물던 환상세계의 3일은 인간세계의 3년이라 했다. 계곡을 빠져나가면 훌쩍 세월이 흘렀을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변한 것은 아닐까. 변했다면, 이 곳처럼 변했으면 좋겠는데…’라고 상념에 잠겼었다.

아침가리는 그런 계곡이다. 숲과 물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오지 탐험가들만 간간이 드나들 뿐 일반인은 범접하기도 힘든 곳이었다. 매스컴에 알려지면서 트레킹을 하는 이들이 늘었지만 지금도 사람 구경하기가 어려운 골짜기이다.

태풍은 이 골짜기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었다. 계곡에 훤한 마을 사람조차 “집채만한 바위들의 위치가 몽땅 달라져 어디가 어딘지 모를 지경”이라고 할 정도였다. 계곡 입구인 진동리로 들어가는 방태천길은 진짜 폭탄을 맞은 것 같았다. 겨울에 눈 때문에 자주 고립되는 진동리는 태풍 때문에 한여름의 고립을 겪어야 했다.

아침가리계곡의 물은 청정옥수 그 자체다. 바라보고 있으면 눈이 시원해진다.
사람과 중장비가 길을 정비하는 사이 아침가리는 스스로의 회복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떠돌았던 바위들은 제자리를 잡아 적응했고, 뿌리째 떠밀려온 아름드리 나무들은 풍화돼 자연의 색에 합류했다. 지금은 한여름의 눈이 시린 녹음과 그 색깔을 닮은 ‘천하 제일급수’를 만날 수 있다.

아침가리 트레킹은 길을 찾는 작업이다. 길은 스스로 희미해지다가 결국 지워진다. 앞에는 절벽이 가로막고. 그러면 물을 건넌다. 건너편에 이르면 신통하게 다시 길이 이어진다. 출발지인 갈터에서 목적지인 방동초등학교 조경동분교터까지 직선거리는 약 3km. 계곡이 굽어있어 실제거리는 7km가 넘는다. 길을 잃어 헤매는 거리까지 합치면 약 10km. 오르는 데만 3, 4시간이 족히 걸린다.

신발은 물론 모든 복장은 ‘잠수’가 가능한 것으로 준비한다. 초입부터 계곡을 첨벙거리며 건너야 한다. 몸이 더워지면 그냥 물에 누워버리면 된다. 물안경을 반드시 챙길 것. 열목어, 돌피리, 꺾지…. 물 속에 요정들이 산다. 사람을 잘 모르는 이들은 꽁무니를 빼지 않는다. 얼굴을 물에 담그면 빤히 쳐다본다. 물고기와의 눈맞춤. 진한 추억이 아닐 수 없다.

트레킹 출발지인 갈터의 진동산채가(033-463-8488)는 단순한 맛집이 아니다. 이곳 여행의 중요 아이템 중 하나이다. 산채비빔밥의 원형을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제군 기린면 현리 남쪽에 진동리로 들어가는 418번 지방도로가 있다. 이 도로도 이번 비에 조금 피해를 입었지만 여행에는 지장이 없다. 인제군청 문화관광과 (033)460-2081

# 덕풍계곡(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덕풍계곡은 삼척시의 응봉산에 들어있다. 해발 999m의 중급산이지만 바위가 많고 골이 깊어 속살을 보기가 힘들었다. 이 산 중턱에 덕풍마을이 있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이 마을은 진짜 오지였다. 외부에서 약 8km의 계곡을 거슬러 올라야 마을의 굴뚝이 보인다.

계곡에는 희미한 길이 전부였다. 지게를 지고 걷고, 물을 건너고, 가파른 곳에서는 기어서 마을에 들어갔다. 마을은 수백 년 전부터 있었다는데, 처음 이 곳에 자리를 잡은 조상은 병적인 인간 기피증의 소유자였으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접근이 어려웠다.

21세기가 되면서 이 마을로 길이 났다. 사람이 걷기 편해진 것이 아니라 차도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길이다. 청정한 오지의 아름다움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덕풍계곡은 삼척시가 ‘기대하는’ 관광지로 떠올랐다. 그러나 조상의 뜻을 거역하는 일이었을까. 태풍 루사는 그 길을 완전히 없애버렸다. 길 뿐만 아니라 그림 같던 계곡도 엉망으로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처럼 응봉산의 봉우리들을 넘고 넘어 겨우 외부와 교통해야 했다.

4년이 지난 지금 덕풍계곡은 완전히 모습을 되찾았다. 길이 다시 놓인 것이 진정한 ‘제 모습’인지는 모르겠으나, 외부인들은 다시 덕풍의 청정자연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덕풍마을까지 이르는 약 6km 계곡길은 트레킹 코스이다. 쉬엄쉬엄 걸어도 1시간 30분이면 마을에 닿는다. 마을은 산 속 분지에 자리를 잡았다. 깊은 골짜기 안에 이렇게 넓은 분지가 있다니. 우선 감탄이 터져 나온다.

덕풍계곡 트레킹의 하이라이트는 마을에서부터 시작된다. 응봉산을 오르는 계곡이다. 골짜기는 갑자기 바위 벽으로 바뀐다. 그 바위 벽 아래로 사람 하나가 다닐만한 길이 나 있다.

약 2㎞을 오르면 제1 용소. 일반인은 여기까지가 끝이다. 그 위로는 본격적인 암벽등반 코스이다. 삼척시청 문화관광 tour2.samcheok.go.kr/culture/main/

# 남대천(양양군)

태풍 루사와 매미가 덮쳤을 때, 양양의 남대천은 매스컴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동해안 하천 중 비교적 규모가 큰 곳이기 때문에 피해 역시 컸었다. 전쟁의 폐허를 연상케 할 정도로 처참했던 것은 양양읍에서 어성전리에 이르는 22km 구간이다. 모두 8개의 다리를 지그재그로 건너며 415번 지방도로가 남대천을 따라간다. 당시 새로 포장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이 길과 다리는 대부분 망가졌다. 길따라 강물따라 예쁘게 지어 놓은 펜션들도 둥둥 떠내려 갔다.

남대천은 북쪽으로 흐르는 남한에서 흔치 않은 강 중의 하나다. 동해안으로 흘러 드는 대부분의 하천이 시멘트 공장과 송어 양식장 등으로 제 색깔을 잃었지만 남대천은 여전히 건강하다.

남대천의 진객은 은어다. 가을이 올 때까지 물에 반쯤 몸을 담근 채 긴 낚싯대를 드리우고 은빛 보석을 건져내는 태공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은어낚시터는 강의 최하류에 있다. 큰 비가 내려 강물이 많아질 때를 제외하면 언제나 모래톱이 드러나고 수심도 깊지 않다. 특히 옛다리 주변에 낚시꾼이 많다. .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수리, 도리, 장리등 예쁜 이름의 마을들이 이어지다가 어성전에 닿는다. 어성전(漁城田)은 ‘물고기가 많고 산이 성벽을 이루며 땅이 기름지다’는 의미. 한마디로 사람이 살기에 좋다는 뜻이다. 어성전리는 1990년대 들어 오지 여행지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도로가 생긴 이후에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오지는커녕 양양읍과 하조대, 강릉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가 됐다. 계곡을 따라 사람 허리 정도의 얕은 소(沼)가 이어지고 울창한 숲이 강변에 그늘을 드리운다. 아무데나 자리를 잡고 물에 풍덩 빠지면 그만이다. 한여름에도 소름이 돋는 차가운 물이 압권이다. 양양군청 문화관광과 (033)670-2721,2


강원=권오현 기자 koh@hk.co.kr

오지 중의 오지 3둔 4가리를 아시나요?
[여행지에서 쓰는 엽서 41] 당신도 떠나보세요
오지여행이라는 이름을 달고 떠나는 곳의 대표적인 곳으로 '3둔 4가리'가 있습니다. 살둔(生屯), 달둔(達屯), 월둔(月屯) 등 3둔은 홍천군 내면에 자리 잡은 곳들이며, 4가리중 아침가리, 적가리, 연가리는 인제군 기린면에, 명지거리는 홍천군 내면에 있습니다.

▲ 아침가리의 맑은 물빛이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 구동관

둔과 가리는 뜻으로 풀어 보자면 정 반대의 개념입니다. 둔(屯)은 산중에 있는, 그중에서도 산 기슭의 평평한 땅을 말하며 사람 몇이 숨어 살만한 곳의 의미랍니다. 가리는 계곡 안에 자리 잡은 땅인데, 한나절 밭갈이를 할 수 있는 정도를 말합니다. 어떻든 두 곳 다 몸을 피하고 살만한 곳인 셈이고, <정감록>에서 난리를 피할만한 곳으로 3둔 4가리를 꼽아 두었습니다.

▲ 물이 맑아 바닥의 자갈들이 훤하게 보입니다.
ⓒ 구동관

<정감록>에서 난을 피할 곳으로 꼽던 때와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오지 중의 오지였던 그곳에도 포장도로가 생기고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하지만 아직도 오지는 오지입니다. 그저 쉽게 찾기는 어려운 곳입니다. 7월31일부터 8월2일까지 다녀온 이번 휴가에서 3둔 4가리 중 두 곳을 스쳐왔습니다. 스쳐왔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오지 깊숙이 다녀온 것이 아니라 그 입구에서 오지의 맛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 아침가리의 물들이 합류된 진동계곡의 모습입니다.
ⓒ 구동관

아침가리 입구에서는 정말 맑은 물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맑은 물들이 아침가리 계곡에서 나온 물들입니다. 바닥의 돌들이 환히 보이는 그 아름다운 계곡.

한참동안 머물러도 좋았던 곳입니다. 사진으로 올린 곳은 살둔입니다. 내린천 물길이 뱀처럼 휘감아 도는 곳에 평평한 땅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땅중 물길과 가까운 곳에 살둔산장이라는 여행자들의 쉼터도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살둔을 스쳐가는 내린천 계곡은 레프팅으도 유명한 곳인데, 그곳에서 시작되는 레프팅은 우리나라 여러 코스 중 가장 좋은 경관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 계곡의 맑은 물에서 아이들은 신나는 여름 한나절을 보냅니다.
ⓒ 구동관

이번 여행은 우리가족의 여름휴가였습니다. 내린천 가까운 곳의 봉덕동이란 곳에서 이틀을 머물렀습니다. 그중 한나절을 아침가리 초입에서 보냈습니다. 개울가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 자리를 펴고 앉아 흐르는 물을 바라보았습니다. 물이 너무 맑았습니다. 물소리도 청정하였습니다. 발조차 물에 담지 않아도 몸도 마음도 모두 시원했습니다.

▲ 살둔을 찾아 가는길에 내린천이 나란히 이어집니다.
ⓒ 구동관

살둔은 여행 마지막 날, 추억을 따라 잠깐 들린 곳입니다. 아내와 결혼하고 첫 휴가를 함께 했던 곳입니다. 여행을 떠났던 1991년에는 내린천 주변의 도로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미산계곡에서 살둔까지 이틀을 걸었던 곳입니다. 이틀 동안 만난 사람은 단 세명. 그 세명도 뱀을 잡는 땅꾼이었습니다. 많은 여행중에서 그렇게 호젓한 여행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그 추억이 떠올라 한번 더 돌아보게 된 것이겠지요.

▲ 이곳이 살둔입니다. 산들틈에 꽤 넓직한 밭이 자리잡았습니다.
ⓒ 구동관

그렇듯 호젓한 느낌을 강원도 계곡 여행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단 세명만을 만나는 그런 호젓함은 아닙니다. 하지만 현지분들의 말씀으로는 계곡을 찾는 여행객들이 작년의 반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제가 보아도 정말 한가해 보였습니다. 사실 우리 가족도 이번 여행을 떠나며 고민이 많았습니다.

▲ 살둔에 자리잡은 살둔산장은 여행자들의 쉼터이기도 합니다.
ⓒ 구동관

숙박을 예약해 둔 곳이 수해로 피해가 많았던 인제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약해둔 숙소는 수해 피해가 없었다고 하여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의 여행 기간 동안에도 인제지역은 피해 복구가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미안한 마음도, 불편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런 여행자들의 마음을 생각했는지 여행지마다 여행객을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어 마음이 놓였습니다.

▲ 살둔 앞쪽의 내린천은 래프팅과 카약을 즐기기 좋은 환상적인 코스입니다.
ⓒ 구동관

아직 여행을 떠나지 않은 당신께 강원도 계곡여행을 권합니다. 호젓한 여행이 될 길에서 당신의 마음도 넉넉해질 것입니다. 더욱 좋은 것은 계곡 여행에서는 열대야를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지역이 열대야가 한창인 때에도 우리 가족이 추워서 문을 꼭꼭 닫고 자야만 했습니다.

당신께 강원도 계곡 여행을 권하면서도, 다시 그 계곡의 물빛이 그리워졌습니다. 다시 떠올려도 참 아름다운 곳들입니다.

▲ 살둔산장 앞쪽의 내린천 풍경입니다.
ⓒ 구동관
[자연주의 살림법]

꽃차 전문가 민정진의 향기로운 살림살이


민씨가 살고 있는 집은 지은 지 1백 년 된 농가를 개조한 것. 건축가인 남편 윤태서씨가 사진 촬영을 왔다가 풍경에 반해 주인 할머니에게 들고 있던 카메라를 계약금 삼아 단박에 구입했다고 한다. 집은 겉으로 보기엔 소박한 농가 같지만 안은 리모델링 작업을 거치면서 카페 같은 독특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본래 외양간이었던 곳부터 대문까지 사각뿔 모양의 지붕을 얹고, 석회와 흙을 반죽해 안마당을 덮고, 벽에는 흙을 발라 손질해 마당을 집안으로 불러들였다. 지붕 삼면에는 창을 달아 햇살이 오랫동안 집안에 머문다. 대문을 활짝 열면 바깥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음악을 틀고 차 한잔 마시며 풍경을 바라볼 때가 그에게는 가장 호사스러운 시간이라고 한다.

옛 향기가 자연스레 묻어나는 주방

주방도 마찬가지로 지붕을 덮고 나무 바닥을 깔아 공간을 넓혔다. 일하기 편하도록 입식으로 디자인한 덕에 조리도구들은 천장에 조르르 매달려 있다. 못 없이 나무를 서로 끼워 만든 서랍장, 나뭇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원목 식탁은 비죽비죽 걸려 있는 조리기구와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부엌 한 켠에 놓인 벽난로는 ‘코쿨’을 응용해 만든 것. 코쿨은 전기가 들어오기 이전 강원도 산간지방에서 사용하던 우리나라 전통 벽난로로 생김새가 사람의 콧구멍과 비슷하다고 해 ‘코굴’이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밤이 길고 추운 겨울에는 난방과 조명의 역할을 하고 여름에는 습기를 없애는 역할을 맡는다. 바짝 마른 참나무나 소나무를 때면 황토와 나무 향이 섞여 아로마향 부럽지 않은 향긋한 냄새가 난다고. 여기에 고구마나 밤을 구워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한다.

은은하고 향이 그윽한 우리 꽃차

외국산 허브는 향이 강하지만 우리 꽃으로 만든 차는 은은하고 그윽해 많이 마셔도 질리지 않는다. 커다란 도자기에 물을 붓고 목련, 황매화 등의 꽃잎을 섞어 띄우면 여러 사람이 함께 마시기 좋은 파티 음료가 된다. 도자기는 민씨가 직접 만든 것.

서울에서 찻집을 운영하던 민씨는 적당한 나이가 되면 전원 생활을 하리라 꿈꿔왔던 터라 남편이 시골에서 살 것을 제안했을 때 별 고민 없이 모든 것을 툭툭 털어버리고 따라 내려올 수 있었다고 한다. 자연이 주는 여유를 만끽하며 살던 그가 꽃차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3년 전, 아주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어느 날 보니 집 앞 찔레나무에 꽃이 너무도 탐스럽게 피었더란다. 향도 그윽하고 깊어 꽃을 따다가 뜨거운 물을 부어봤더니 외국산 허브 차는 비할 바가 못 될 정도로 맛이 좋더라고. 그렇게 관심을 갖기 시작해 꽃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욕심에 ‘동의보감’이나 ‘본초강목’을 보아가며 공부하다 보니 지금은 1백여 종이나 되는 꽃차를 만드는 전문가가 되었다. 외국산 허브는 향이 강하지만 우리 꽃으로 만든 차는 은은하고 그윽해 많이 마셔도 질리지 않는다고 한다. 때문에 그는 꽃차를 타두고 물 대신 수시로 마시고 있다고.

자연이 키운 모든 꽃은 차로 만들어 마실 수 있지만 무작정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꽃은 비타민, 단백질 등 다양한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영양 덩어리예요. 반면, 독의 집합체이기도 하지요. 종자를 보호하기 위해 독을 가지고 있거든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런 독을 빼내야 하지요.” 때문에 꽃차로 태어나기 까지는 꽃을 깨끗이 씻어 찌고 말리기를 아홉 번이나 반복하는 긴 여정을 거쳐야 한다. 횟수를 더하거나 덜하면 차 맛이 크게 달라지므로 꼭 아홉 번을 지켜야 한다고. 잘 말린 꽃은 바로 우려 마실 수 있는데 그해 만든 차가 가장 맛있다. 밥도 여러 곡식을 넣어 잡곡밥으로 만들어야 건강에 좋듯, 꽃차 역시 여러 꽃을 섞어 마셔야 영양 균형이 맞고 맛도 좋다고 한다.

01_ 국화과에 속하는 뚱딴지는 해열작용이 있고 출혈을 멈추게 한다.

02_ 따뜻한 성질을 지닌 벌개미취는 기침을 멈추고 가래를 없애는 데 효과가 있다.

03_ 국화과에 속하는 엉겅퀴는 정력제로 주로 쓰인다. 신경통에도 효과가 있고 이뇨작용, 항 바이러스, 항 염증 작용을 돕는다. 산후 자궁수축에도 좋다.



04_ 호박꽃은 지방유, 단백질, 비타민 B군 등이 풍부해 폐결핵과 생리불순, 당뇨, 각막건조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 효과가 있다. 이뇨와 산후 유즙 분비도 돕는다.

05_ 동백은 어혈과 부종을 없앤다. 타박상이나 출혈을 멈추는 데도 효과적. 연고제와 화장품의 원료로도 사용된다.

06_ 오래전부터 동서양에 두루 걸쳐 중요한 약재로 쓰인 달맞이꽃은 비타민 E가 풍부해 여성의 피부미용에 좋다. 피부병이나 당뇨, 고혈압에도 효과가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민정진씨가 즐겨먹는 대추. 가을철 소쿠리에 담아 말려두면 요모조모 쓰임이 많다고. 삼계탕이나 닭도리탕 등의 요리에 넣거나 약식을 만들어 먹고, 차로 마시기에도 좋다. 그 외 음식을 할 때 대추를 넣으면 단맛이 더해진다.

제철 꽃을 따서 차를 만드는 일은 보통 손이 가는 일이 아니다. 특히 이른 아침 이슬을 머금은 꽃이 가장 영양가도 높고 맛이 좋기 때문에 그는 새벽같이 집을 나선다고 한다. 하지만 과욕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철칙. 한 가지에 달린 꽃을 모두 따지 않고, 줄기는 건드림 없이 꽃만 따야 하며, 처음 본 꽃은 씨가 퍼지도록 따지 않는 등의 몇 가지 규칙을 정해놓고 꽃을 채취한다. 이렇게 모은 꽃은 바로 찌고 말리는 법제 과정을 거치게 된다. “솔직히 예쁜 꽃을 보면 모두 따고 싶은 욕심도 생겨요. 하지만 앞뒤 가리지 않고 꺾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에요. 자연과 주고받는 것이 중요하답니다. 하나를 가져갔으면 두 개를 돌려주어야 다음에 자연이 다시 베풀게 되거든요.”

자연에서 살면 심심할 틈이 없다

그 흔한 TV 드라마 하나 보지 않지만 꽃차를 만들고 시골 살림을 하는 그에겐 사계절이 너무도 바쁘게 돌아간다. 반듯하게 찍어내는 것이 싫어 그릇도 직접 빚어 굽고, 텃밭에 야채를 기르고, 퀼트로 옷도 만들어 입는다. 간식 외 먹을거리도 모두 직접 만든다. 음식 만드는 것을 워낙 좋아하는 데다 슈퍼마켓도 멀어서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는데 계절 과일과 곡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건강에도 좋고 만드는 재미도 그만이라고. 간장, 된장은 물론 과실주며 장아찌, 한과, 외국으로 치자면 시럽에 해당하는 당장까지 직접 담가 먹고 있으니 심심할 틈이 없다. 그는 최근 우리 음식을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농업대학에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들으며 꽃차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자생하고 있는 꽃만도 4천여 종이 된다니 논문을 끝냈을 때 얼마나 더 많은 차를 우리에게 선보일지 사뭇 기대가 된다.

01_ 재봉틀, 선풍기 등 손때 묻은 오래된 물건들은 그냥 놓아두는 것만으로도 운치 있는 인테리어 소품이 된다.

02_ 지붕에 창을 내 햇빛이 집안 가득 들어오도록 설계했다.

03_ 간장, 고추장, 된장 할 것 없이 그는 모든 양념을 직접 만들어 먹는다.

*출처 - 여성동아

굽이굽이 돌담길 흙냄새 맡아볼까?
돌담길과 전통이 살아 숨쉬는 '한개마을'
손현희(hanbit) 기자
▲ 멋스런 돌담길이 이어진 한개마을
ⓒ 손현희
며칠 앞서 나흘 동안 짧은(?) 휴가를 받았다. 일터에서 벗어나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우리 둘레에 있는 볼거리를 찾아가보기로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 가까이에 '전통문화마을'이 여러 곳이 있다. 성주 한개마을, 군위 한밤마을, 대구 옻곶마을, 이 세 곳은 마을마다 옛 돌담길로 알려진 곳이다. 그 가운데 한개마을과 한밤마을을 이틀에 걸쳐 다녀왔다. 먼저 한개마을을 소개하려고 한다.

▲ 한개마을에는 집마다 흙돌담에 둘러싸여 있다.
ⓒ 손현희
돌담길과 함께 예부터 살던 전통집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흙냄새, 시골냄새가 물씬 난다. 이런 풍경을 무척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나들이하기 앞날부터 마음이 설레고 소풍가는 아이처럼 기뻤다.

경북 칠곡군 왜관 남부정류장에 가서 버스를 갈아타고 성주에 닿았다. 성주정류장 안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더구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생각보다 꽤 많았다. 요즘 시골에 젊은이들은 거의 없고 어르신들이 마을을 지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우리가 본 정류장 풍경이 꼭 그랬다.

표 파는 곳에서 한개마을 가는 버스 시간을 물으니, 금방 떠났다고 하면서 다음 차를 타려면 오후 세 시까지 기다려야 한다. 지난번 선산 도리사에 갔을 때도 하루에 두 번밖에 차가 다니지 않는다고 하더니, 이곳도 그랬다. 그도 그럴 것이 어지간하면 저마다 차가 다 있고, 그다지 이름난 곳도 아니니….

이번에도 택시를 타야 했다. 차비가 7~8천 원쯤 한다더니, 성주 버스정류장에서 그다지 멀지도 않았다.

▲ 한개마을 들머리
ⓒ 손현희
선비정신을 품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사는 한개마을

마을 들머리에 다다르니 커다란 돌에 '한개'라고 써 놓았다. 마을을 둘러보니, 마을 뒤쪽으로 영취산 줄기에 둘러싸여 있는데 조그맣고 아늑하게 보였다. 그 옛날 조선 세종 때, 진주 목사였던 '이우'가 터 잡고 살면서 지금까지 이어왔다.

▲ 마을 할머니가 쌀을 씻고 있는 모습
ⓒ 손현희
마을로 올라가며 오른쪽으로 보이는 첫 집에서 머리가 흰 할머니가 수돗가에서 쌀을 씻고 있고 그 옆 도랑 건너편에는 또 다른 할머니가 땅콩밭을 매고 계셨다. 인사를 하자 더운 날씨에 여기까지 구경 왔느냐고 반겨주었다.

▲ 돈재 이석문 공을 기리는 신도비
ⓒ 손현희
드디어 옛 집이 눈에 들어올 즈음,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둘 때 뒤주 위에 돌을 얹으라는 어명을 어기고 고향에 돌아와서 살았던 '돈재 이석문'을 기리는 비석을 보면서 이 마을 사람들이 품은 '선비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 한개마을 옛 집- 북비고택, 한주종택, 교리댁,하회댁
ⓒ 손현희
집마다 안내판이 있고 그걸 읽으면서 이 마을이 전통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되었다. 골목마다 돌과 흙을 섞어 만든 흙돌담길이 구불구불 끝없이 이어져 있다.

ⓒ 손현희
처음 마을에 들어설 때 그다지 커보이지 않더니 볼수록 꽤 넓고 큰 곳인 걸 알았다. 대문마다 빗장을 채우지 않아 낯선 나그네가 불쑥 들어가 구경해도 누구 하나 나무라지 않는다. 다만, 대문마다 붙어있는 '개조심'이라는 글이 퍽 재미있었다. 컹컹 큰 소리로 짓는 개들도 불쑥불쑥 찾아오는 나그네에게 꽤 익숙했는지 이내 짖는 소리를 멈춘다.

▲ 한개마을에서 만난 어르신들
ⓒ 손현희
한개마을을 지키는 큰 나무

마을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머문 시간이 두어 시간쯤 되었을까?

한 바퀴를 다 돌아 나온 길 끝에 큰 나무가 있다. 몇백 살이 되었을 법한 나무가 반으로 쪼개졌는데, 그래도 거기에서 줄기를 뻗고 잎을 내어 드러누운 채로 살아있다.

▲ 열여덟에 시집와서 일흔이 넘도록 사셨다는 할머니
ⓒ 손현희
마침 계모임에 다녀온다는 마을 어르신을 만나 이 나무 이야기도 들었다.

열여덟 살에 시집와서 지금 일흔이 훨씬 넘도록 사셨다는 할머니는, 옛날에 사람들이 이 나무를 잘라서 땔감으로 썼다고 한다. 그러다가 언젠가 그만 그 큰 나무둥치가 반으로 쪼개졌는데 그 뒤로는 두 번 다시 나무에 손을 대는 일이 없다고 한다.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큰 나무가 틀림없이 한개마을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더운 여름날, 골짜기에 시원한 물을 찾아 떠나는 것도 좋겠지만 둘레에 이런 곳이 있다면 식구들과 함께 한번쯤 가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 한개마을을 지키는 큰 나무
ⓒ 손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