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년 나무’ 벤 사진가를 어떻게 찾아냈냐고?

등록 : 2014.07.18 19:20수정 : 2014.07.18 21:29

 

사진은 잘려나간 ‘신하송’ 그루터기 확대된 모습. 독자 제공

[친절한 기자들]

안녕. 나는 곽윤섭이라고 해. 이곳은 처음이라 낯설기 짝이 없어. 하지만 서슴없이 반말체를 쓰는 것을 보면 그렇게 경황이 없는 것 같지는 않아. 반말체는 최근에 읽었던 산문집 <마술라디오>의 정혜윤이 최고라고 생각해. 좀 수다스럽긴 하지만 글 속에서 어떻게 말을 놓아도 거부감이 없었어. 나도 따라해 보려고.

25년 넘게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내가 (찍은 게 아니라) 쓴 기사가 이렇게까지 많이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린 적이 없어. 장국현이란 사람이 울진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에서 금강송을 찍기 위해 다른 금강송을 베어버린 사건이야. 사건의 내막은 이랬지. 7월 초로 기억해. 사진을 사랑하는 한 <한겨레> 애독자가 전화를 했어. 울진 금강송 이야길 꺼내는 게 아니겠어. 이야기를 하는 그 애독자도, 듣는 나도 확 달아올랐지.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고 받아보니 가관이야. 220년 된 금강송이 600년 넘은 금강송을 찍는 과정에서 처참하게 잘려 나간 거야. 그 애독자는 나에게 익명 제보를 부탁했어. 카메라 대신 전화기를 들고 취재에 들어갔지. 나는 원래 사진기자거든. 지금도 사진기자라는 정체성에 대해선 자랑스럽고. 딴말을 해서 미안해.

우선 울진국유림관리소와 통화를 했고 사건 경위를 팩스로 받았어. 그리고 경북지역의 우리 기자와 통화해서 영덕의 검찰 쪽에 사건 내용을 알아봐 달라고 했고. 기사를 마무리하기 전에 장국현씨와 통화를 했지. 반론 기회를 주기 위함이지만 화가 났거든. 시작은 부드러웠어. 장국현 작가님이시죠? 그렇다는군. 그러곤 바로 뚜껑이 열려버렸어. 금강송을 벤 사실이 있습니까? 그렇다는군. 왜 벴어요? 그래도 되는 겁니까? 어떻게 살아있는 나무를? 나는 흥분했어. 장씨는 무려 지구온난화 이야길 했어. 지구온난화는 막을 수 없다. 더위에 약한 소나무를 보호하려는 심사로 참나무가 소나무를 가리는 게 슬퍼서 잘랐다…. 금강송도 11그루 잘랐던데요? 어. 그것도 사실이다. 600년 넘은 ‘대왕송’이 220년 된 ‘신하송’의 그늘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어서 잘랐다. 그게 말이 돼요? 목소리를 높였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더군. 또 그러실 거냐고 물었더니 이제 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더군.

장국현씨 일행이 ‘대왕송’ 촬영을 위해 불법 벌목한 현장 사진. 아래쪽에 잘려나간 ‘신하송’의 그루터기가 보인다. 독자 제공
전화를 끊었고 국립산림과학원 이경재 박사의 소나무 이야길 들었지. 7월11일에 기사를 완성하여 사회부에 보고했지. 그사이에 장씨가 걸어온 두번째 전화를 받았어. 무조건 만나자는 거야. 그래서 하실 말씀이 있으면 전화로 얼마든지 들을 테니 하시라고 했고 만날 일은 없다고 했어. 절대로 손도끼나 전기톱이 무서워서 그랬던 것은 아니야. 이 이야길 지인에게 했더니 만났어야 했다는군. 혹시 현금을 주려 했다면 그 장면을 자신이 찍어서 다시 기사화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는 거야.

컥. 촌지를 받을 리는 없지. 내가 안 만난 이유는 만약 장씨가 나에게 촌지를 주려고 했다면 내가 안 받더라도 소문을 낼 수 있는 부류라고 짐작했기 때문이야. 월요일치 사회면 머리에 실렸어. 곧 인터넷판에도 올라갔지. 그다음은 여러분이 아는 그대로야. 약 270회 이상 다른 매체들이 무단전재했어. 한두군데 매체는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이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작권법 위반에서 자유롭지는 않아. 몇 줄 이상을 그대로 베끼면 다 걸려. 법원 판결문은 저작권에 해당하지 않아. 그런데 인터뷰 내용을 옮긴 것은 다 걸려. 지금 어쩔까 고민하고 있어. 포털사이트에 속속 올라오는 출처불명의 내 기사를 보며 이래서 언론이 망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고 보니 예전 취재 현장도 떠오르는 게 아니겠어. 내가 나타나면 급히 연출을 멈추던 몇몇 동료와 선배 사진기자들. 내가 엄청나게 뭐라 그러고 다녔거든. 현장을 연출하면 결국 사진기자의 앞길을 스스로 막는 거라고. 그러지 말라고. 그때 그분들이 나에게 뭐라고 그랬는지 알아? 넌 마감도 안 하니? 마감시간이 다 되었는데 연출 안 하면 어쩌자는 건데? 기자 정신이 없다고 날 몰아붙였지. 기자 정신이 아니라 어이가 없었어.
곽윤섭 선임기자
결국 2014년 오늘날 사진기자의 수는 대폭 줄었어. 기자든 사진작가든 현장에 손을 대면 안 된다는 점은 똑같아. 사진은 기록이라고 최민식 선생과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이 합창했어. 보도 이후에 이메일로 제보가 몇 건 들어왔어. 전국적인 현상인 것 같아. 이제 앞으로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게 부끄러워지는 날이 올지도 몰라. 그렇다 하더라도 계속 찾아낼 거야. 그런 분들은 앞으로 조심들 해야 해.

곽윤섭 콘텐츠기획부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