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0년 8월30일 고려 18대 왕인 의종은 이날도 신하들을 거느리고 나들이 중이었다. 화려한 연회와 방탕한 놀이를 즐기던 왕은 전날 밤 흥왕사라는 절에서 자고, 이날은 보현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길을 가던 의종은 행차를 멈추고 술자리를 열면서 “무신들의 오병수박희를 보고 가자.”고 말했다. 오병수박희는 택견과 비슷한 무예인데 발보다 손을 주로 쓰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이때 나이가 많은 무신 이소응이 젊은 무신에게 지자 왕의 총애를 받던 젊은 문신 한뢰가 그의 뺨을 때려 섬돌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모욕을 당했다. 예전에 내시의 장난으로 수염을 촛불에 태우는 일을 당한 상장군 정중부는 “이소응은 벼슬이 3품인데 어찌 이처럼 심하게 모욕하는가” 하며 분노했다. 오랫동안 반란을 준비해온 정중부 등 무신들은 이 일을 계기로 그날 밤 보현원에서 반란을 일으켜 문관과 내시 등을 죽이고 의종을 추방한 뒤 정권을 잡았다. 이후 100년 동안 고려는 무신들의 세상이 되었다. <중앙도서관 역사논술강사>

◇생각해보기
1. 역사 속에서 문신과 무신은 대립과 화합을 되풀이해왔습니다. 흔히 ‘붓은 칼보다 강하다.’고 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2. 고려 무신정권 직전에 무신들은 문신들에게 갖은 모욕을 당했지만 문신을 우대하는 왕의 정책 때문에 참고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남에게 싫은 말을 듣고 참은 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무슨 이유 때문에 참았나요?
3. 여러분이 역사의 재판정에서 재판관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만약 고려 왕 의종과 문신, 무신들이 재판을 받으러 나왔다면 각자에게 어떤 이유를 들어 어떤 판결을 내릴지 말해 보세요.

◇알고 있나요
부모가 늙으면 깊은 산속에 버리고 돌아오는 풍습을 ‘고려장’이라고 해. 그런데 정말 고려 시대에는 늙은 부모를 내다 버렸던 걸까?
고려장 이야기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일본에도 널리 퍼져 있어. 유럽과 중동 지방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고 해. 따라서 고려장은 우리만의 고유한 풍습이라고 할 수 없단다. 게다가 고려 시대의 장례 풍습은 더더욱 아니었어. 고려 때 고려장이 행해졌음을 알려주는 자료나 유물, 유적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어.
그런데 어째서 고려장이란 말이 생겼을까? 불교 경전인 ‘잡보장경’의 기로국 편에 고려장 이야기가 실려 있어 기로국(棄老國)은 ‘노인을 버리는 나라’라는 뜻이야. 이 기로국 이야기가 널리 퍼지면서 ‘기로국’이 ‘고려국’으로, 또 ‘기로의 장례’라는 뜻인 ‘기로장’이 ‘고려장’으로 변해 굳어진 것이 아닐까 해.
고려 시대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을 주로 했어.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절에서 스님의 인도를 받아 화장한 후 유골을 절에 모셔 두고서 아침 저녁으로 음식을 올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유골을 항아리나 돌로 만든 작은 관에 담아 땅에 묻었단다. 산이나 물에 뿌리기도 했지. -한국사 편지

사진설명: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에 있는 청평사 회전문.(보물 164호) 고려 광종 때인 973년 백암선원이란 이름으로 창건돼 보현원, 문수원으로 불리다 조선 때 청평사로 바뀌었다. 무신들의 반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