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은 몽고의 침략을 받은 고려가 부처님의 힘으로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만들어졌다. 고려 사람들은 불경이 곧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하여 글자 하나를 새길 때마다 절을 세 번씩 했다고 한다. 그런 정성을 담은 덕분에 8만1천258장의 경판에 5천272만9천 자를 새겼는데도 틀린 글자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글자를 새기는 사람이 500명을 넘었는데도 서체가 거의 같아 마치 한 사람이 새긴 것 같은 솜씨를 보여준다.

이처럼 놀라운 문화유산이지만 팔만대장경은 너무나 어이없이 우리 역사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조선 세종 때 일본은 팔만대장경을 보내 달라고 조선에 끊임없이 요청했다. 지혜로운 임금이지만 성리학을 숭상한 세종은 “모두 주어도 아까울 것이 없다.”며 일본에 넘겨주려 했는데 신하 한 사람이 나서 “일본의 요청을 계속 들어주다가 나중에 줄 수 없는 물건을 달라고 하면 어쩔 것입니까?”하며 반대해 그만두었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는 공군의 폭격을 받을 뻔한 상황도 있었다. 가야산에 숨어 있는 공산군을 공격하기 위해 절 건물을 폭파하라는 명령이 공군 전투기 편대에 떨어졌는데, 이곳에 불교에서 귀하게 여기는 유물이 있다는 사실을 안 편대장이 명령을 거부했다. 그는 명령 불복종으로 처벌을 받았지만 팔만대장경과 해인사 건물을 살려내는 엄청난 일을 했다. <중앙도서관 역사논술 강사>

1. 고려는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마다 대장경을 만들어 부처님의 보살핌을 기원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나가 싸워야 할 전쟁 때 수많은 인력을 동원해 대장경을 만드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말해 봅시다.
2. 팔만대장경은 그 자체도 대단한 문화유산이지만 보존하는 방법도 과학적이어서 지금까지 원래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보존했는지 알아봅시다.
3. 고려는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만든 금속활자보다 훨씬 일찍부터 금속 활자를 만들어 썼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사실이 세계적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삼별초의 항쟁>

삼별초는 몽고의 침입에 끝까지 맞서 싸운 군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삼별초가 항쟁을 시작한 것은 민족을 위해서라거나 자주정신과는 상관이 없다는 견해가 많다. 삼별초는 무신정권의 최우가 나라 안에 들끓는 도적을 잡는다는 이유로 만든 특별 부대다. 이를 야별초라고 했는데, 그 숫자가 늘어나자 좌별초와 우별초로 나누었다. 여기에 몽골에 잡혀갔다가 도망 온 사람들로 부대를 만들어 신의군으로 편성했다. 이 세 부대를 합쳐 삼별초라고 불렀다.

그런데 실상 야별초가 잡으려 한 도적은 무신정권 때 수없이 봉기한 농민과 천민들이었다. 한편으로는 무신정권이 사사로운 권력 싸움에 이용해 반대파를 제거하는 데 동원하기도 했다. 몽고 침입을 받은 후 삼별초는 무신정권의 호위군으로 함께 강화도로 옮겨갔다.

무신정권이 무너지자 해산 명령을 받은 삼별초는 반란을 일으켜 왕을 세우고 관리를 뽑는 등 스스로 조정을 만들었다. 장기전을 위해 진도로 옮긴 삼별초는 성을 쌓고 궁궐을 짓는 한편 제주도를 비롯한 근처 섬들을 수중에 넣고 전라도, 경상도까지 위협했다. 몽고가 일본 정벌을 위해 세운 조선소를 불태워 버리기도 했다.

고려 조정을 거부하는 삼별초가 점차 백성들의 지지를 받게 되자 몽고와 고려 연합군은 결국 진도를 공격했고, 2년 뒤에는 옮겨간 제주도까지 쳐들어가 전멸시켰다. 그들이 몽고와 항쟁한 마지막 군대인 것은 사실이지만 삼별초의 출발과 초기의 역할, 항쟁의 과정 등을 살펴보면 일반적인 평가와는 다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