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오늘도 열심히 했어요. 숙제 잊지 말고 해오고 내일 만나요.” 서울 영원초등학교 4학년 3반 교실에서 유미영(42) 교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서울교대를 졸업한 뒤 바로 교사가 되어 올해로 교사생활 18년째다. 유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했다. 작년 담임을 맡았던 반 아이들은 멀리서도 선생님만 보이면 두 팔 벌리고 뛰어와서 안긴다.
![](http://weekly.chosun.com/wdata/photo/news/200605/20060503000021_00.jpg) |
▲ 여교사는 가사와 직장일을 병행하기가 수월해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도 변하고 한번 안아주기만 해도 자신감이 넘쳐나요. 두 딸의 엄마로 또 교사로서 만족하고 또 보람도 느껴요.” 유씨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며 장래희망으로 ‘선생님’을 꼽을 때면 마음 뿌듯하다.
여교사의 생활 만족도는 높다. 안정적인 직장이면서 보람도 얻고 다른 직업과 비교해 가정생활과 병행하기에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실제 IMF위기 이후 취업전선에서 여교사의 인기는 갈수록 치솟고 있다.
‘학원의 메카’인 서울 노량진에는 이미 대학입시학원을 제치고 임용고시 학원이 더 많아졌다. 노량진 학원가에서 만난 임여홍(27)씨도 임용시험을 준비 중이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뒤 뒤늦게 교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교육대학원에 진학해 교원자격증을 취득했다. 임씨는 오전은 학원에서, 오후는 도서관에서 매일 10시간 이상씩 공부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 임용시험에서 낙방, 올해는 기필코 합격해야 한다며 스터디 그룹에도 나가고 다른 사람들의 임용시험 합격수기도 눈여겨본다. 취업 시기를 놓친다는 불안은 없다. 교사 임용에 나이 제한이 없어 자신보다 나이 많은 수험생도 많다고 전했다. “대학 졸업하고 무역회사에서 잠깐 직장생활을 해봤는데 전문직에 종사하지 않는 이상 오래 버틸 수 없더군요. 앞으로는 부부가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여자가 대우 받으면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업으로는 교사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일반 사범대학이나 교육대학에 몰리는 인원은 해마다 증가 추세다. 2006년 대학입학 정시 선발에서 전국 11개 교육대의 경쟁률이 평균 2.78 대 1로 지난해의 2.37대보다 높아졌다. 졸업만 하면 거의 100% 취업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10년 전만 해도 서울교대의 합격선은 서울 중·상위권 대학 수준이었지만 최근에는 서울대와 맞먹을 정도로 우수한 인재들이 몰리고 있다. 서울교대 외에 유일하게 서울지역 초등학교 임용시험에 지원할 수 있는 이화여대 초등교육과는 이 학교 문과계열 1위를 고수하기도 한다. 중등교원 2급 자격증을 주는 사범대학도 지원자가 넘쳐난다.
![](http://weekly.chosun.com/wdata/photo/news/200605/20060503000021_01.jpg) |
▲ '선생님이 되고싶다'는 학생들의 글. |
올해 초 발표에 따르면 서울대로 진학한 각 고등학교 수석졸업생 28명 가운데 사범계열을 선택한 학생이 6명으로 법대의 5명보다 많았다. 지난 대학입시에서는 고교 수석졸업생 66명 중 대부분이 의대나 사범대학으로 진학했고 서울의 명문대 외에 공주교대에 3명, 한국교원대에도 2명이 있다.
임용시험 합격률은 여자가 압도적으로 높다. 경남도와 울산시, 부산시 교육청이 최근 발표한 2006학년도 공립 중등교사 임용후보자 최종합격자를 보면 경남도 합격자 725명 중 여자가 560명으로 전체의 77.24%를 차지했다. 울산도 합격자 194명 중 여자가 164명, 부산 역시 202명의 합격자 중 여자가 182명이나 됐다. 충남도 역시 최종 합격자 123명 가운데 여성이 97명(78.9%), 남성은 26명(21.1%)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2005년 서울지역 초등교사 임용시험 최종합격자 현황도 마찬가지다. 590명 합격자 중 남자는 9.7%인 57명인 반면 여자는 90.3%인 533명이나 됐다. 임용시험 전문학원들은 우수한 성적의 여학생이 교대나 사범대 지원을 많이 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배우자 선호도 조사에서도 여교사는 단연 선두다. 결혼정보업체 듀오는 얼마 전 전국 20세 이상 미혼남녀 2296명(남 954명·여 1342명)을 대상으로 이상적인 배우자상과 결혼의식을 조사했는데 응답 남성의 절반이 넘는 52.8%가 배우자의 직업으로 교사를 지목했다. 여교사는 듀오가 설문조사를 시작한 1996년 이래 10년 연속 1위를 차지하며 부동의 ‘1등 신부감’으로 자리매김했다. 또 다른 결혼정보업체인 선우의 한국결혼문화연구소 김경화씨는 “여교사만을 지정해 맞선을 주선해 달라는 고객이 있을 정도로 여교사를 신부감으로 맞으려는 남자가 많다”고 말했다.
![](http://weekly.chosun.com/wdata/photo/news/200605/20060503000021_02.jpg) |
▲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여교사가 학생과 상담을 하고있다. |
여교사를 선호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수원에 있는 한 사립고등학교의 영어과목 박혜영(34) 교사는 육아와 병행하기에 교사만한 직업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박씨는 두 아이를 낳고 4년간 육아휴직을 한 뒤 지난해 학교로 복직했다. 현재 여교사의 육아 휴직은 자녀 1명당 3년까지 가능하다. 작년까지는 육아 휴직기간 동안 호봉 변화가 없었으나 올해부터는 호봉도 올라간다.
“다른 직장은 출산 휴가 3개월이면 바로 직장에 복귀해야 하고 그나마도 자기 자리가 언제 없어질지 몰라 전전긍긍하잖아요. 동료교사 중에는 남편이 해외지사로 발령이 나서 휴직을 한 분도 계세요. 남편이 해외 발령을 받으면 함께 떠날 수 있도록 8년까지 휴직이 가능하니 가정생활과 병행하기 여러모로 유리한 점이 많죠.”
고등학교는 보충수업이나 야간자율학습으로 밤늦게 끝나는 날이 더러 있지만 중학교는 5시면 퇴근이 가능하다. 초·중등 학교는 젖먹이 아이가 있는 여교사의 경우 출근시간을 한 시간씩 늦춰주고 퇴근도 한 시간 빨리 할 수 있도록 해 여교사 인력이 더 많이 몰리는 편이다.
퇴근이 다른 직장보다 빠르니 오후의 여유도 즐길 수 있다. 퀼트나 자수, 종이접기 같은 문화센터 강의는 물론 운동이나 컴퓨터 활용법은 여교사에게 인기 있는 강좌다. 교사끼리 동호회를 조직해 활동하는 곳도 더러 있다. 유미영 교사가 근무하는 영원초등학교에도 현재 플루트와 인라인스케이팅, 배드민턴, 컴퓨터 등 네 개의 동호회가 운영 중이다. 한 달에 두세 번 업무 시간이 끝난 뒤 교실에 모여 서로 배우고 가르친다. 유씨는 컴퓨터 동호회에서 엑셀 프로그램 다루기나 멀티미디어 학습법을 배우고 있다.
“방학 중이건 학기 중이건 그냥 쉬는 교사는 거의 없어요. 상담 교육이나 컴퓨터, 음악, 영어, 스포츠 댄스 등 교육부와 연계한 교사 연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어 강좌가 시작할 때마다 공지가 올라오죠. 인기 강좌는 마감이 빨리 되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으면 배우고 싶어도 못 배워요. 자기계발도 되고 아이들과 수업할 때 활용하기 위한 목적도 있어요.”
무엇보다 여름과 겨울에 주어지는 한 달여의 방학은 다른 직장인의 큰 부러움을 산다. 특히 겨울방학은 봄방학과 이어지기 때문에 1, 2월 합쳐 두 달 동안을 방학처럼 보낼 수 있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큰 여교사끼리 방학 동안 해외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러나 교사의 직업적 안정성과 혜택만이 여교사 증가의 요인은 아니다. 과천고등학교 원성혜(31) 교사는 올 여름 결혼식을 올린다. 남편을 만나기 전에 주변의 권유로 맞선을 몇 차례 보았는데 나오는 사람마다 자신의 직업이 교사라는 것에 큰 호응을 보였다. “조건만 따지는 것 같아 그런 남자에게 오히려 반감이 생길 정도였어요. 교사가 안정적이어서 좋은 것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일에 대한 보람이죠. 아이들을 가르치고 그 아이들이 저를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 삶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몰라요.” 원씨는 아이들에게 “너는 운동을 잘 한다” “너는 패션 감각이 뛰어나다”는 조언을 해주곤 하는데 그런 말 한마디가 아이들의 진로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고 교사의 책임감과 중요성을 실감했다.
일산 백양고등학교에서 과학 교사로 근무 중인 석상은(27)씨는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의 직업에 대한 긍지와 만족도가 높은 것을 보고 교사라는 직업에 호감을 가지게 됐다. 석씨는 “수업은 교사만의 시간이라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소신껏 일할 수 있어 성취도가 높다”고 한다. 일반 사무직 친구들이 “일하다 보면 회사의 부속품처럼 여겨진다”며 어려움을 토로할 때마다 교사라는 직업의 매력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교사의 보람은 학생들의 달라지는 변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석씨는 2년 전 담임을 맡았던 반 학생 중 따돌림을 받던 아이가 한 명 있었는데 자신과 상담을 하면서 친구도 사귀고 대학에도 진학해 잘 지내는 것을 보면 흐뭇하다고 한다. 불량학생으로 낙인 찍혀 학교에서 자퇴를 권유 받았던 학생도 있었다. 관심을 보이고 진로에 대한 고민도 같이 해주자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 뒤에도 그 학생은 계속 연락을 해왔다. 올 봄에는 재수를 해서 대학에 입학했다며 찾아와 “선생님 덕분입니다”라고 인사를 하는데 눈물이 나올 뻔했다.
승진에 대한 압박이 없는 것도 직업 만족도를 높인다. 주임교사나 교감, 교장이 될 수도 있지만 굳이 승진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면 신경쓰지 않아도 교사로서의 생활에 지장이 없다. 나이 들어 승진하지 못하면 권고사직을 받는 냉혹한 사회의 경쟁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자기가 맡은 분야만 열심히 하면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교사로서의 노하우가 쌓여 더 좋은 교사로 인정 받는다.
노후 대비도 확실하다. 한 교사는 “25년 근무하여 만 62세에 정년퇴직하면 매달 200만원이 넘는 연금을 받는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요즘은 교사 커플에 대한 호감도도 높아진다고. 남편이 교사라 함께 연금을 타면 매달 수입이 400만원을 훌쩍 넘어서므로 여유로운 노후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방학 동안 함께 여행 다니기에도 좋아 교사 커플을 원하는 미혼 여교사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교원 수에서 여교사가 차지하는 비율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1970년 전체 14만2147명 중 여교사는 3만6429명으로 25.6%에 머물렀으나 2005년에는 전체 32만3136명 중 20만9398명으로 61.0%에 달했다.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20% 안팎이었으나 1980년대 들어서면서 30% 선으로 증가, 1990년대에는 드디어 절반을 넘어서면서 남교사의 수를 추월한 것이다.
여교사 지원이 고등학교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초등과 중등은 그 비율이 더욱 높다. 초등의 경우 1970년 10만1095명 중 여교사는 2만9428명으로 전체의 29.1%였던 반면 2005년에는 전체 16만143명 중 11만3751명으로 71.0%를 차지하고 있다. 중등의 경우도 비슷해 1970년 여교사 수는 전체 3만1207명 중 5805명(18.6%)이었으나 지난해인 2005년 조사에서는 10만3835명 중 6만4659명으로 62.2%를 차지해 35년 사이 세 배 넘게 급등했음을 보여준다.
사실 우리나라 여교사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50년대 문교부의 사범학교 및 고등학교 교육심리학 교재였던 허일만의 ‘교육심리학’을 보면 ‘해방 후 일본인 교사들이 모두 귀국함에 따라 우리나라는 교사가 부족하게 되었는데 이를 메우기 위해 사범학교 외에도 여자고등학교에 잠시 교직과목을 설치하여 초등교사 양성을 하였다’고 나와 있다. 당시 교사의 대부분이 남자였기 때문에 성비 균형을 맞추기 위해 여고에만 교직 과목을 신설한 것이다.
여교사가 희박한 상황에서 여교사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 됐을 리도 없다. 1955년 1월 19일자 조선일보의 ‘응접실’이라는 칼럼에는 한 교직 이수자 여학생의 사연이 소개됐다. ‘금년 서울사범학교를 졸업한 여자입니다. 졸업 후 교원발령은 성적순으로 나온다기에 1차 아니면 2차로 발령될 줄 알고 있는데 남자발령 나오고 여자는 전원 보류되었으니 남녀차별 대우 원인은 무엇입니까?’ 다음 해인 1956년에는 ‘서울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대기 중에 있는 서울경기지구 여자 미발령 교원 189명에 대하여 문교부가 발령할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여교원을 도저히 받을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표명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1960년대에는 학교장이 법으로 보장되어 있는 여교사의 생리나 출산 휴가를 싫어하는 경향이 뚜렷해 대부분 여교사들이 특별 휴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례도 빈번했다. 당시 발표된 석사학위 논문 중에는 생리기간 동안 학교를 쉰 여교사는 14%뿐이고 휴가를 받은 사람 중 97%도 그나마 결근으로 취급되었다고 나와 있다. 출산 휴가도 원래는 두 달이지만 교장의 눈치가 보여 대부분 30일만 쉬고 나왔으며 임신 중인 여교사가 야근을 하다 순직한 사건도 있었다. 여교사 중 가정과 직장의 이중 역할에서 오는 고통으로 배우자에게 충분히 내조를 하지 못해 어려움을 느낀다는 사람이 전체 여교사의 87.2%나 됐고 아내의 교직생활에 대한 배우자의 반대도 48.8%에 달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교원 중 여성의 비율은 80%를 육박하고 여교장의 수는 1971년 초등학교가 49명, 중학교가 47명, 고등학교가 42명이 고작이던 것이 최근에는 전국 공립 초·중·고 여교장 수가 500여명을 넘어섰다. 또 장학사나 연구사 중에도 여자가 451명이나 된다. 여교사의 수적 증가는 여교사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원동력이 됐고 우수한 여성인력 양성에도 한몫한 셈이다.
여교사들은 오늘도 전국의 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하고 있다. 과천고등학교 원성혜 교사는 “속속들이 드러내면 교사라는 직업이 핑크빛만은 아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으니까 어려운 것도 참아낼 수 있다”며 “정년퇴직 이후에는 동네 공부방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며 살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