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짝마 논술-가슴으로 읽는 책이 마음도 논술도 살찌운다
한겨레
논술을 시작하는 중학생들에게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은 항상 책을 열심히 읽는다는 말을 한다. 우리는 이 말을 너무 의례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책을 읽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독서를 강조하는 부모이건, 독서교육을 하려고 애쓰는 교사이건, 그리고 실제로 책을 읽고 있는 개인이건 나에게 먼저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 책에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과 책이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는 것을 꼽는다. 그런데 지식적인 측면은 꼭 책이 아니어도 가능한 것은 아닐까? 사실 지식이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얼마든지 널려 있다. 그러면 독서가 생각하는 힘을 갖게 한다는 것은 어떤가? 이것 역시 꼭 책을 통해서만 가능한가?

겉으로는 거창한 주장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대부분의 부모나 교사들이 논술이나 입시를 염두에 두고 독서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책을 읽으면 정말 논술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또 다른 질문을 던져두고 답해 보자.

한번이라고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거나 어떠한 일을 이루어내기 위해 노력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는 데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때의 누군가의 도움은 단순한 정보나 어설픈 조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끌고 나갈 확신과 믿음이다. 이 확신은 어디에서 올 수 있을까? 여러 경로가 있겠지만 꾸준한 독서를 통해 내 판단이 강화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또 그러한 내 생각은 사회 속에서 표현이 되었을 때 의미가 있다.

우리의 사회생활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말이나 글로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다. 또 논술이란 지식이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서 사회생활에서 논리적인 의사 표현은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에 너무도 중요하다. 따라서 논술을 통해 그것을 길러가는 것이 중요하다.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이 끊임없이 데생 연습을 하는 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창의적이 선이 나올 수 있도록 평소에 그 형식을 익혀 놓는 것이다. 나의 생각이 말과 글로 표현될 때도 마찬가지다. 멋진 미술 작품이 감동을 주듯 내 생각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인 표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를 해야만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이 가능하려면 데생처럼 언어에 있어서도 이러한 훈련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선긋기 연습만 가지고 감동을 주는 예술작품이 나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논술의 기본 틀을 아무리 훈련하고 익혀도 논리적인 생각이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형식이 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는 있지만 형식이 내용 자체가 될 수 없듯 그 표현은 내 지식과 내 사고에서 나온다. 창의력 역시 내 지식에 그 밑바탕을 둔다.
독서를 통해 지식이 쌓이고 생각을 해 나갈 수 있는 힘이 강화되면 그것을 체계화시켜 표현하는 논술은 약간의 훈련과 반복을 통해 가능해진다.

논술만을 위한 독서교육은 공허

그런데 지금은 독서 자체를 위한 독서교육보다는 논술을 위한 독서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소한 대학을 들어가기 전까진 그러한 경향이 있다. 하지만 독서의 중요성이 본질적인 측면에서 받아들여진다면 독서교육의 방향이 바로잡힐 거라고 본다.

사람들이 왜 대학을, 그것도 좋은 대학에 가려 하는지 생각해 보자. 좀 근사하게 표현해서 세상에 나를 드러내기 위해, 세상 속에서 내 역할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소위 좋은 대학에 가면 세상 속에서 내 역할을 다 할 수 있나?

사람들은 대학에서 좋은 스승과 좋은 친구 그리고 좋은 책을 통해 지식과 사고를 깊게 하리라 기대한다. 사실 좋은 대학을 가지 않았어도 최소한 좋은 책을 보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결코 뒤처지지 않고 그런 예는 많이 있다. 그 반대로 이런 여건이 갖추어진 대학에 갔어도 좋은 책을 읽는 것을 게을리 한다면 결코 사회 안에서 내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愎?

정리해 보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즉 입시에서의 논술을 위해 독서교육을 하고 있다면 부모인 나나 교사인 내가 진정한 독서의 의미를 알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내 자식에게, 또는 학생들에게 독서를 이야기할 때 최소한 논술을 위해 입시를 위해 좋은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인식을 주어선 안 된다. 부모가, 교사인 내가, 독서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독서를 통해 우선 지식이 쌓이고 생각하는 힘을 기른 다음 그것들을 체계화시켜 논리적으로 표현하여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더 잘 해나갈 수 있어야 진정한 독서교육의 의미가 있다. 그리고 진정한 독서는 능동적으로 책을 읽을 때 일단 가능하다. 여기서 능동적으로 책을 읽는다 함은 글자를 단순히 읽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 지은이가 말하려고 하는 바를 알고 그 의미를 내 것으로 만들면서 읽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책이 나에게 유익해야 한다. 유익하다는 것은 재미를 포함해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말한다. 궁금증을 풀어준다든지 내 진로에 영향을 준다든지 해야 하고 따라서 책이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안내해 주어야 한다. 무조건 책을 읽으라든지 아니면 논술을 잘 쓰기 위해서라거나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읽어야 한다는 말은 책을 읽는 좋은 습관을 만들지 못하고, 그러다보니 당연히 좋은 글을 쓸 수 없게 된다. 설혹 일시적인 노력으로 그것이 가능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그 학생은 경쟁력 있는 사회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차피 독서의 본질적인 의미를 깨닫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중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초등학교 2학년 독서수준에 머물러 있는 아이들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덩치나 머리는 있지만 가슴이 없는 아이들처럼 미래에 대한 설레임이 없는 것도 독서교육의 부재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1학년이나 3학년이나 독서수준만큼은 학년의 차가 아니라 개인차가 더 컸다. 더구나 책읽기는 이야기책이나 위인전 몇 권을 읽는 것으로 알고 있거나 또는 글짓기를 잘하기 위한 것으로 왜곡되어 있고, 학교 현장에서는 독서교육 프로그램 자체도 많이 부족했다. 게다가 사고력 부재가 독서의 부족 때문이라는 주장으로 논술이 입시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자 이번엔 좋은 대학을 가기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며 그런 목적의 도서목록까지 범람하다 보니 중학교 시기의 독서는 더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필요한 책은 그런대로 부모가 신경 쓰다가 중학교 즈음이 되면 부모조차도 공부와 책읽기를 별개의 것으로 보고 책을 깊이 있게 읽는 것을 염려할 정도니 중학교 시절에 필요한 책은 대부분의 가정에서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다. 그것도 기본적으로 독서환경이 조성되지 않는 중요한 원인이다. 따라서 학교에서라도 그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중학교에서 독서교육이 학교도서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다양한 독후활동이 ‘생각하는 힘’ 길러

중학교 교사로 있다 보면 중학교 시기가 부모의 관심이 가장 적어지는 시기임을 느낀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아주 중요한 시기로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제대로 독서가 이루어졌다면 중학교 시기에는 미래를 설계하고 그 미래에 맞게 자신을 강화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앞에서 이 강화는 독서에서 나온다고 짚었다. 따라서 중학교 시절의 독서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부모와 교사 아이들 스스로 그리고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마침 2001년을 기점으로 교육청별로 먼지 덮인 도서관에 대한 전산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학교 구석에 자물쇠가 잠겨 무용지물이 되어있던 도서실을 밝고 아이들이 쉽게 오고가는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전산화 작업보다 더 뜻있는 것은 오래되어 낡고 고리타분한 책만 있던 곳이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새 책이 있는 공간으로 변신한 점이다. 나도 도서실을 맡긴 했지만 국어교사로서 도서실 운영은 어려운 점이 많았다. 도움되는 곳이 없을까 찾다가 그해 전교조 주최 참교육 실천대회 도서관 분과의 연수에 참여한 것이 인연이 되어 뜻이 같은 동료교사와 매주 모임을 가지고 도서관 운영 및 독서교육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는데 다음은 그 모임에서의 성과이다. 이 성과가 나름대로 중학교에서의 독서교육의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 간추려 소개한다.

(1) 우선은 왜 책이어야 하는지 책의 중요성을 인식시켜주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도서실을 중심으로, 책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각종 자료를 통해 특히 1학년 신입생인 경우 도서실 오리엔테이션을 갖고 도서실 홍보 및 이용법, 책의 중요성, 각 나라별 도서실 이용사례, 훌륭한 사람들은 책에서 어떤 도움을 받았는가 등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다.

(2)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책 선정이다.

도서목록은 범람하지만 잘 선정된 도서목록을 만나는 것은 어렵다. 뜻을 같이 하는 여러 명의 교사가 함께 직접 책을 읽고 중학생이 꼭 읽어야 할 책 100권을 가렸다. 비록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려 선정되었지만 100권을 모두 읽고 선정한 것이라 독서교육을 하고 책을 권할 때 수월하고 자신감이 있었다. 이 목록은 1차로 ‘서울 도서관을 사랑하는 교사들’ 모임인 ‘전교조’ 산하 도서관분과 1차 자료집으로 나와 많은 학교와 많은 도서실에 배포되었다.

그후 1년 더 넘게는 5명의 교사가 각 학교에서 단계별 독서프로그램을 실제 아이들과 함께 하고 그 결과물을 책으로 엮어 내 놓았다. 이 책은 가슴으로 읽을 책을 소개하고, 정확히 읽은 책을 내 생각으로 나타내도록 안내했다. 이런 독후 활동은 자신들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게 돕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또래들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만날 수 있게 실례도 풍부하게 실었다.

(사진)책 소개

(3)단계별 독서프로그램을 응용하여 각 학년에 맞는 여러 형태의 독서교육을 시도하였다. 이때 좋은 책을 읽게 하고 교과서 내용과도 접목시켜 공부와 독서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주는데 주력하였다.

현재 중학교 3학년 국어교과서에 “문학작품이 그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상황을 반영한다”는 말이 나온다. 이를 지식적으로 이해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 의미도 없다.

다음 예는 실제로 수업시간에 교과서에 나오는 문학작품을 학교 도서실에서 찾아 읽게 하고, 독서가 생각하는 힘을 얼마나 길러주는지 평상시 학습을 수행하는 평가를 통해 훈련한 사례다.

※다음 교과서에 실린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은 어떠한 사회적 문화적 배경에서 쓰여진 작품인지 생각하고, 글을 읽으면서 들었던 여러 가지 생각을 작가나 등장인물에게 질문하여 본다. 질문의 방법으로는 인터뷰 형식이나, 편지글 형식, 마주보고 하는 대화의 형식 등 자유롭게 한다. 질문에 대한 답은 내가 한다. 작가에게 질문했으면 내가 작가가 되고 등장인물에게 질문했으면 내가 등장인물이 된다. 내가 작가가 되거나 등장인물이 되어 대답을 할 때 작가가 이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생각하면서 답하자 . 3학년 ( )반 ( )번 이름 ( )

책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독후 활동을 하는 것은 생각하는 힘을 기르게 한다. 결국 내 생각을 체계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이런 독후 활동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로 아이들이 좋은 책을 가슴으로 읽게 하는 것이다. 시기에 맞는 좋은 책을 접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손쉽게 그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학교도서실에 비치하여 느끼며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능동적인 독서가 선행되지 않고는 독후 활동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입시위주의, 논술을 위한 독후 활동은 독서가 선행되지 않고도 이루어진다. 요약본을 읽는다든지 책 내용을 암기한다든지 기술적인 부분만 강조한다. 가슴으로 읽은 책이어야 자신의 생각이 더해져 논리적인 본인의 사고가 쓰여지는 건 당연하다. 따라서 어차피 논술을 위한 책읽기는 좋은 논술을 쓰는데도 실패할 확률이 높다.

세상이 너무 변해 죽은 지식이 더 필요 없는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이다. 창의력 있는 아이로 키우려면 논술을 위한 글쓰기, 입시를 위한 책읽기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데 길잡이가 되어주고 내 미래를 설계해 주며 내 꿈을 키워주는 유익한 책읽기가 선행되도록 부모가 교사가 잘 안내해주자.

≫ 강애라/서울 남서울중 교사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나 교사가 먼저 실천하여 보여주자. 책을 통해 내가 먼저 변화하고 아이들이 그런 변화된 내 모습을 보고 즐거운 책읽기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말이다.

유아기에 아이에게 들려주던 동화에서 책을 놓지 말고, 항상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 부모로 변화하자. 더 나아가 학교 도서실에 관심을 가지는 학부모로 그리고 교사로 독서 환경을 만들어 주자.

강애라/서울 남서울중 교사 ark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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