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에 논술문제 도입한 일본, '혁명'이라 부르는 이유

2020학년도부터 실시… 아시아 최초로 IB 논술형 교육과정도 공교육에 도입

17.09.19 13:53l최종 업데이트 17.09.19 13:53l

'잃어버린 20년은 공교육의 경쟁력 상실에서 시작됐다.'

일본이 '교육평가혁명'을 시도하고 있다. 부실한 공교육이 국가발전의 걸림돌이라는 값비싼 교훈을 얻은 결과다.

한국 교육계가 대입수학능력시험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문제를 놓고 갈등하는 가운데 일본은 대학입시와 일선 중고교 교육현장에서 '평가혁명'에 착수했다. 그것도 한국보다 질적으로 수준 높은 '평가혁명'이다. 객관식·선택형 시험문제를 줄이거나 폐지하고 서술·논술형으로 바꾸는 혁명적인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서울대, 고려대, 서울교대 등이 대입전형에서 논술고사를 전면폐지하고 다른 대학들도 논술전형을 축소하는 한국과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 산케이신문과 일본경제신문, 일본 고교생신문의 보도와 도쿄에서 만난 일본 교육 관계자들에 따르면, 일본은 한국의 수능에 해당하는 대입시험에 서술(논술)형 문항을 부분적으로 출제한 뒤 이를 점차 확대하기로 했다.

"여기가 도쿄대" 일본 도쿄대학교 교정 풍경.
▲ "여기가 도쿄대" 일본 도쿄대학교 교정 풍경.
ⓒ 신향식

관련사진보기


또, 일본은 아시아 최초로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논술형 교육과정을 공교육에 도입했다. 유럽의 중·고교처럼 책읽기와 토론과 글쓰기로 진행하는 과제연구 중심의 수업방식을 1단계로 200개 학교에서 실시한 뒤 점차 대상 학교를 늘릴 예정이다.

adad
한국과 일본은 ①교육 관료주의(교육부, 문부과학성), ②암기·주입식 교육, ③객관식·선택형 시험 위주란 공통점이 있다. 한국 교육계에서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 한국 교육은 일본 교육을 모방한 사례가 많다.

그런데 이제 일본은 학생들에게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워주기 위해 객관식·선택형 시험을 지양하고 서술·논술형 평가를 도입하는 등 교육과정을 크게 바꾸고 있다. 4차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객관식·선택형 시험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마디로, 일본은 '객관식 정답 맞히기 교육'이 아니라 '사고력 창의력 교육'에 초점을 맞춘 교육과정 개편작업에 착수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이런 움직임을 '교육혁신', '평가혁신'보다는 '교육혁명', '평가혁명'으로 부르고 있다. '혁신'보다는 '혁명'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는 뜻이다.

교육과혁신연구소의 이혜정 소장은 "중·고교의 수업 내용을 바꿔도 상급학교  입학시험의 문제형식을 그대로 두면 교실 수업에 질적인 발전이 없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평가혁명'이 일어난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시험문제 형식 자체를 근원적으로 바꿔 교실수업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겠다는 일본의 전략을 한국 교육계도 참고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직접 글로 쓰는 문제 출제" 2020학년도부터 도입하는 일본 대학입학공통테스트의 예시문제 표지.
▲ "직접 글로 쓰는 문제 출제" 2020학년도부터 도입하는 일본 대학입학공통테스트의 예시문제 표지.
ⓒ 신향식

관련사진보기


"논거에 기초하여 자기 생각을 글로 쓰라"는 일본 수능

① 일본 수능시험에 서술·논술형 문항 일부 도입 : 한국의 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하는 일본의 대입센터시험은 지금의 고교 1학년이 시험을 보는 2019학년도(2020년 1월)에 폐지된다. 1989년 도입한 대입센터시험은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2020학년도(2021년 1월)부터 새롭게 '대합입학공통테스트'(가칭)가 시작된다. 대학별고사와 AO 입시(한국의 학생부종합전형)의 개혁도 진행되고 있다.

문부과학성은 대학교육, 고교교육, 대학입시의 전반적인 개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새로운 대학입학공통테스트는 그 중의 하나다. 명칭뿐만이 아니라, 출제 내용과 답안 작성 방식도 현행 대입센터시험과는 많이 다르다. 기존 객관식·선택형 문제에 더해 서술(논술)형 문제가 추가된다. 심층적인 논술형 문제는 아니지만 깊이 생각해야 풀 수 있는 논제다.

문부과학성은 '대학입학공통테스트'의 개요를 지난 5월 16일 처음 발표했다. 예시문제는 국어와 수학에서 각각 2문항씩 나왔다. 국어에서는 가상 도시의 '경관 보호 가이드라인'이 소재다. 아버지와 딸의 대화와 논의의 대립점 등을 설명한 제시문을 읽고 자기 생각을 글로 써야 한다. 답안 분량은 80자 이상 120자 이내다.

수학 예시문제에서는 공원의 동상을 소재로,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코사인 법칙'을 응용하여 상이 보이기 쉬운 위치나 각도를 유추하여 논술하게 했다.

"국어는 이렇게 출제" 2020학년도부터 실시하는 일본 대학입학공통테스트 예시문제의 국어 문항.
▲ "국어는 이렇게 출제" 2020학년도부터 실시하는 일본 대학입학공통테스트 예시문제의 국어 문항.
ⓒ 신향식

관련사진보기


서술형 문제 개발에 참여 중인 한 대학교수는 "국어학습은 읽고 말하고 듣고 쓰는 것"이라며 현재의 객관식·선택형 시험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쓰기능력을 평가하려는 것이 새 제도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수험생들은 '논거에 기초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라'는 요구를 받는 느낌이라고 입을 모았다.

일선 고교 관계자들은 "대학입학공통테스트가 학교 수업을 바꿀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평가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게 과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교육 전문가 하시노 아쓰시(橋野篤指導) 씨는 "새 시험은 기존 시험보다 사고력을 묻는 문제가 많다"면서 "본질을 이해하는 수업이 더 중요해졌다"고 평가했다.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문부과학상은 지난 5월 16일 기자회견에서 "향후 대학입시를 (지식, 사고력, 다양한 사람들과의 협동 등) 학력의 3요소를 다각적이고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면서 대학들도 대학별고사에서 이런 점을 반영하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대학입시센터는 올해 11월에 고교생 5만 명을 대상으로, 서술(논술형) 문항을 포함하여 새로운 입시제도에 맞춘 모의고사를 실시한다. 국어, 수학은 2학년 학생들을 주 대상으로 하고, 과학, 지리, 역사는 3학년 학생들에게 치르게 할 방침이다. 응시생들의 성적 등을 근거로 난이도와 채점기준을 분명히 할 예정이다.

"도쿄대 풍경" 일본 도쿄대학교 교정.
▲ "도쿄대 풍경" 일본 도쿄대학교 교정.
ⓒ 신향식

관련사진보기


사고력과 비판력 중시하는 IB 논술형 교육 확대

② 일본 공교육에 유럽형 IB 논술형 교육과정 도입 : 일본 문부과학성은 IBO(International Baccalaureate Organization)와 제휴하여 초·중·고 교육과정 전체를 일본어로 번역해 200개 학교에 보급했다. 2015년에 IB 논술형 교육과정으로 첫 수업을 시작해서 2016년 11월에 일본어 버전의 IB 논술형 대입시험을 처음으로 실시하였다. 2017년에는 IB 논술형 전형으로 입학한 대학 신입생이 처음으로 탄생했다. 문부과학성 측은 2017년 3월 요코하마에서 열린 IB 글로벌 컨퍼런스에서 'IB 논술형 교육과정을 도입하는 학교를 200곳 이상으로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본 아베 총리는 2013년 6월 '각의결정'에서 '일본어에 의한 IB 교육과정을 개발하여 국제바칼로레아 인정 고교를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2018년까지 200개 학교에 IB 논술형 교육과정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하였다. 200개 학교는 일본 전국 학교(공교육)의 4%에 해당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해당 내용이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됐다는 점이다. 정부의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회의를 '각의'라고 한다. 수상 및 모든 각료의 의사결정수단 중 가장 위치가 높은 것이 '각의결정'이다. 정부의 통일된 견해가 되기 때문에, 각의결정은 모든 각료의 의사를 통일하는 게 원칙이다. 반대하는 각료가 있다면 각의결정은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2013년 6월 각의결정에서 IB 바칼로레아 논술형 학교를 늘리기로 한 것은 국가 차원의 목표로 판단할 수 있다.

"도쿄대 게시판" 일본 도쿄대학교 정문 근처의 게시판에 각종 안내문이 붙어 있다.
▲ "도쿄대 게시판" 일본 도쿄대학교 정문 근처의 게시판에 각종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신향식

관련사진보기


IB 논술형 교육과정은 '전인교육'을 교육이념으로 하고 있다. 초등교육프로그램(PYP), 중등교육프로그램(MYP), 디플로마 프로그램(DP)을 거쳐 '탐구하는 인간', '지식이 있는 인간', '생각할 수 있는 인간' 등의 10가지 학습자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IB 교육과정은 1968년에 스위스에 본부를 둔 비영리기관 IBO에서 개발했다. 전 세계 146개국에서 채택하고 75개국 2000여 개 대학이 인정하는 국제적인 교육과정이다. 객관성과 신뢰성이 검증된 표준화 시험이면서도 객관식 정답 맞히기형 시험이 아니라 학생들의 독창적인 사고와 비판적인 능력에 중점을 두고 평가하는 게 특징이다.

"글로 자기 생각 표현 못하면 앞으로 사회생활 힘들 것"

[인터뷰] 일본 대학생이 말하는 독일과 일본의 대학교육 차이점

17.09.23 19:36l최종 업데이트 17.09.23 19:37l

 

"독일과 일본 교육은 정말 달라요" 다카시 키무라 군이 독일과 일본 교육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다.
▲ "독일과 일본 교육은 정말 달라요" 다카시 키무라 군이 독일과 일본 교육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다.
ⓒ 신향식

관련사진보기


"아베 신조 총리가 일본 공교육에 도입 중인 유럽의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논술형 교육과정에 매력을 느끼는 것으로 보입니다. 독일에서 만난, IB 논술형 교육과정으로 공부한 친구들은 무척 논리적이고 창의적이었습니다. 아베 총리가 왜 논술형 교육과정을 공교육에 도입하는지 이해가 됩니다."

일본은 아시아 최초로 IB 논술형 교육과정을 공교육에 도입했다. 유럽의 중·고교처럼 책 읽기와 토론과 글쓰기로 진행하는 과제연구 중심의 수업방식을 1단계로 200개 학교에서 실시한 뒤 점차 대상 학교를 늘릴 예정이다. 일본은 또 한국의 수능에 해당하는 대입시험에 서술(논술)형 문항을 부분적으로 출제한 뒤 이를 점차 확대하기로 했다.

일본 교육에 어떤 문제점이 있기에 이런 변화를 시도하는 것일까. 일본과 독일에서 모두 대학을 다녀본 일본 청년을 만나봤다. 그가 일본 교육의 문제점을 대표로 설명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본과 독일의 대학 교육을 경험해 보았기에 일본 교육을 좀 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적임자 중 하나라고 판단했다.

ad
다카시 기무라 군(24세)은 일본 코난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반 학생으로, 2015년 9월부터 1년 동안 교환학생으로 독일 베를린의 훔볼트대학교를 다녔다. 훔볼트대학에서는 미국의 문학과 역사를 배웠다.

(훔볼트대학교는 1809년에 설립한 국립종합대학으로, 2015년 영국 일간지 <타임스>(The Times)의 세계 대학 순위에서 49위로 선정된 명문대다. 2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사회주의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 마르크스주의 창시자 프리드리히 엥겔스, 사회학자 게오르크 짐멜,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 등이 이 대학 출신이다.)

"일본 대학은 암기·주입·객관식, 독일은 발표·토론·논술형 시험"

"서술 논술형 문제 포함된 일본 수능 예시문제" 다카시 키무라 군이 서술 논술형 문제가 포함된 일본의 수능 예시문제집을 들어보이고 있다.
▲ "서술 논술형 문제 포함된 일본 수능 예시문제" 다카시 키무라 군이 서술 논술형 문제가 포함된 일본의 수능 예시문제집을 들어보이고 있다.
ⓒ 신향식

관련사진보기


지난 7월 7일 낮 12시, 도쿄 신주쿠의 쇼쿠안도리에서 다카시 기무라 군을 만난 뒤 이메일로 추가 취재를 했다. 쇼쿠안도리는 한때 한류 문화의 중심지였으나 지금은 혐한 시위의 집결지다. 기무라 군은 수수한 아날로그 손목시계에 검은 테의 안경을 착용했다. 넥타이를 매지 않은 흰색 와이셔츠 차림으로 곱상하고 지적인 모습이었다.

기무라 군은 일본과 독일의 대학교 수업방식을 차근차근 비교했다. 일본과 독일은 가르치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고 잘라 말했다. 일본에서는 교수가 설명을 하고 학생들은 공책 필기를 하고 암기식으로 공부했지만 독일은 토론과 발표와 글쓰기 위주라고 했다. 일본이 '암기'라면 독일은 '사고력'이라는 점에서 가장 차이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서는 교수가 중요한 내용을 강조하면 학생들은 그것을 외워서 답안을 작성합니다. 그래야 좋은 점수를 받습니다. 교수가 짚어준 핵심을 얼마나 정확하게 답변했는지를 놓고  평가하는 겁니다."

기무라 군은 "일본에서는 고등학교나 대학교나 암기식으로 교육하는 건 마찬가지"라면서  "독일 대학에서는 토론하면서 자기주장을 밝히고 그것을 글로 작성하여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기무라 군은 "일본은 대학입시에서도 암기를 중시하는데 한국도 일본과 비슷한 상황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글쓰기 논술형 시험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독일 대학서 학점 나빠 확인해 보니 "자기 생각이 부족하다" 지적 받아

기무라 군은 독일 대학에는 세 가지 종류의 수업이 있다고 전했다. 첫 번째는 일본처럼 공책에 필기하고 암기하는 방식이다. 독일 대학 수업의 20~30%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했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이 수업방식을 중시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로는 토론 수업이라고 설명했다. 학생들끼리 열심히 논쟁하고 교수는 토론이 잘 진행되도록 보조 역할을 하는 데 그친다. 약 20~30%가 이 수업에 속한다고 한다.

세 번째 방식은 첫 번째와 두 번째 방식이 섞여 있는 수업이다. 물론 암기할 내용이 많지만 교수는 그것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자기 생각을 표현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도록 이끈다.

"학점이 좋지 않게 나온 과목이 있어서 확인해 보았습니다. 제 생각을 별로 적지 않은 데 원인이 있더군요. 그 다음 시험부터는 주장을 강하게 밝히면서 논거를 제시했습니다.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칭찬해 주셨습니다. '답안을 작성하는 핵심적인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이처럼, 일본과 독일의 대학 교육은 수업 방식과 평가 방식이 완전히 다릅니다."

기무라 군은 "일본과 독일의 이공계 대학은 어떤지 모르겠다"면서도 자신이 겪은 영문학과 언어학, 비교문학 계열의 수업은 앞서 지적한 대로 차이점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왜(Why), 왜(Why), 왜(Why)... 따져 들어가는 독일 교육

"독일 친구들과 함께" 다카시 키무라 군이 독일 훔볼트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 독일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장면.
▲ "독일 친구들과 함께" 다카시 키무라 군이 독일 훔볼트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 독일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장면.
ⓒ 신향식

관련사진보기


그는 독일 대학에서 경험한 토론 수업도 소개해줬다. 영어 수업 때 교수가 '문화란 무엇인가?(What is culture?)'를 질문하고 다섯 개 조로 나누어 토론하게 한 경험담이었다.

"우선, 문화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조별로 발표를 합니다. 그것이 왜 문화라고 할 수 있는지 사례를 곁들여서 발표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속한 조에서는 약간 일반적인 답변을 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정답은 없겠지만 좀 더 창의적으로 답변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수업 뒤에도 어떻게 답변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깊이 있게 더 생각해본 경험을 한 겁니다."

기무라 군은 그 주제에 끌리지는 않았지만 수업과정은 의미 있었다고 평가했다. '왜(Why), 왜(Why), 왜(Why)'를 따지면서 심층적으로 파고 들어가는 과정에서 사고력, 창의력이 향상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교수님께서는 '발표한 내용 자체보다도, 토론하고 생각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문화가 무엇이라고 주장을 하고, 그 논거를 찾아내면서 문화의 개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발표까지 하면서 급우들에게 쉽게 이해를 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문화의 개념을 아주 확실하게 정리하게 됩니다. 이것은 암기해서 머리에 넣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일본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글쓰기 과제 많은 독일 대학"

기무라 군은 "독일에서도 전공과목에 따라 글쓰기를 하는 방법과 정도에 차이가 있을 것"이라면서 홈볼트대학에서 공부한 과목에서는 일본 대학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글 쓰는 과제가 많았다고 했다.

"A4 용지 한두 쪽 분량의 글을 수시로 써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 대학에서는 글을 써야 하는 수업이나 과제가 사실상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독일 대학에서 무척 힘들었습니다. 일본 대학에서 교수님 강의를 필기하고 암기만 하다 보니, 제 생각을 발표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겁니다."

기무라 군은 "일본의 다른 대학에서도 글쓰기 대신 지식 암기 위주로 교육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대학의 문과 계열 학과에서는 문학, 역사, 경제, 언어 등을 배우는데 자기 생각을 표현할 기회가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글쓰기가 왜 필요하냐"고 묻자 기무라 군은 "말과 글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사회생활에서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효율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기 생각 명확히 못 밝히는 일본, 국제회의에서도 불리"

 독일 베를린에 있는 훔볼트대학 수업 장면.
 독일 베를린에 있는 훔볼트대학 수업 장면.
ⓒ 신향식

관련사진보기


"자기 생각을 명확하게 논거를 들어 발표하지 못하면 국제회의에서도 불리할 겁니다. 일본이 현재 그렇습니다. 논리적으로 생각을 밝히지 못하기 때문에 손해 보는 일이 생기는 겁니다."

기무라 군은 발표력이 부족해서 자신이 고생한 사례도 소개했다. 독일 훔볼트대학 기숙사에서 지낼 때 골탕을 먹은 것 같다며 살짝 웃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 2명과 셋이서 같은 방을 썼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기 의견이 뚜렷했습니다. 저 혼자서만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데 미숙했습니다. 그 바람에 청소를 비롯해 궂은일을 더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제 생각을 효율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바람에 기숙사 생활을 힘들게 한 겁니다."

기무라 군은 "이것은 바로 일본교육의 문제점에서 비롯한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일본 고교생들이 글을 쓰는 기회는 대입 논술시험을 볼 때로 한정될 겁니다. 논제에 맞춰 한두 쪽 분량의 답안을 글로 쓰는 게 아마도 유일한 기회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자세한 건 모르겠으나 저는 고등학생 때 필기하고, 암기하고, 객관식 문제에 답을 표기했을 뿐입니다. 글을 쓰면서 깊이 생각할 기회는 별로 없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독일 교육 본받으면 좋겠다"

기무라 군은 "일본의 대학입시가 '생각하는 교육'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하는데 정말 바람직한 현상"이라면서 "앞으로는 학생들이 글을 더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기무라 군은 "한국과 일본이 독일의 교육을 본받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한국도 일본처럼 주입식, 암기식 교육에 가깝다고 들었는데 이제는 독일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객관식 선택형 대신 논술형으로 평가를 해야 수업 방식도 그에 맞춰 혁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무라 군은 학생들이 미래 진로를 설정하는 방식에서도 일본과 독일에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진로 탐색을 시작하는 시점이 근원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했다.

"독일은 어려서부터 미래진로를 고민하여 결정합니다. 약사가 되고 싶으면 10세 때부터 미리 준비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일본은 진로 방향을 늦게 잡습니다. 일본인들은 대학에 입학한 뒤에야 앞으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탐색합니다. 더 앞당겨야 한다고 봅니다."

[대입 개혁 키워드]③대학별 고사 - ‘교과서 밖’ 논술·구술, 교사도 “난해”…사교육으로 내몰아

남지원·김경학 기자 somnia@kyunghyang.com
인쇄글자 작게글자 크게

ㆍ대학별 고사

<b>올 마지막 수능 모의평가</b>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6일 서울 서초구 서초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시험지와 답안지를 받고 있다. 이번 평가는 올해 공식 모의평가 중 마지막 시험이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수능과 비슷하거나 다소 어려운 수준으로 출제됐다고 평가했다. 김기남 기자

올 마지막 수능 모의평가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6일 서울 서초구 서초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시험지와 답안지를 받고 있다. 이번 평가는 올해 공식 모의평가 중 마지막 시험이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수능과 비슷하거나 다소 어려운 수준으로 출제됐다고 평가했다. 김기남 기자

서울시내 한 사립대학은 지난해 수시모집 논술시험에서 국방비 지출액과 민주주의 성숙도, 물질주의에 대한 긍정적 인식의 국가 간 격차를 보여주고 “A국가와 B국가의 평화지수가 낮은 이유를 앞선 제시문에 근거해 설명하라”는 문제를 냈다. 또 다른 대학에서는 자연계열 구술면접 때 ‘인디오의 감자’라는 시, 정자와 난자의 수정 시 자손의 염색체 구성 유형의 개수, 탄소화합물에 대한 설명, 전자기파에 대한 설명, 효율성에 대한 설명 등 5개의 지문을 제시하고 “지문에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단어를 말하라” “이와 연관된 자연 현상의 예를 들라”고 했다. 

2015년부터 대학별 고사가 선행학습을 부추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선행학습 영향평가’가 의무화됐고, 대학들은 고등학교 교육과정 선에서만 문제를 낸다고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정말로 고교 수업만 받은 아이들이 이런 문제를 풀 수 있을지 고개를 갸우뚱한다. 지난해까지 서울 강남의 학원에서 논술을 가르쳤던 이모씨(34)는 “사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아이들은 제시문을 이해하지도 못한다. 나도 가끔 이해가 안될 정도”라고 말했다. 대학들이 고교 교육과정 내에서 출제한다고 하지만, 학교에서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제대로 배운 적 없는 아이들이 사교육 없이 이런 질문에 답하기는 어렵다. “학원에서 시험에 맞춰 대학 수준의 인문학과 사회학을 가르치는 일도 다반사”라고 이씨는 말했다.

■ “학교에선 준비하기 힘들어” 

수능을 절대평가로 바꾸고, 고교학점제에 맞춰 내신도 성취평가제로 전환할 때 현장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대학들이 “변별력이 없다”며 대학별 고사를 대폭 확대하는 상황이다. 1년 미뤄졌지만 지난달 수능 절대평가화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일 때도 대학들 사이에서는 “수능이 절대평가가 되면 정시에 구술면접 등 다른 전형요소를 추가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나왔다. 교육부는 수시 논술전형을 없애도록 이끌고 대입전형을 학생부교과전형·학생부종합전형·정시로 단순화할 계획이다. 하지만 대학들이 구술면접 반영비율을 높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교사들 사이에선 당국이 논술전형을 줄이겠다는 기조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래야 내신이나 학종에서 다소 불리한 학생들에게 ‘다른 길’을 열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안연근 잠실여고 교사는 “수능을 절대평가하려면 상위권 학생을 변별할 수 있는 대학별 고사가 시행돼야 한다. 학생부 관리에 실패한 아이들에게 어떻게 재도전의 기회를 줄 것인지도 문제”라며 “선행학습이나 사교육에 대한 영향평가를 철저히 한다는 조건하에서 대학별 고사를 실시할 길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객관식 문제풀이 수업 위주로 굴러가는 고교 교실에서, 문제 유형이 천차만별인 데다 논술·구술형인 대학별 시험을 대비하기는 현실적으로 무리다. 대학별 고사를 준비하는 아이들이 사교육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주현 논술강사는 “논술·구술을 학교에서 준비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교사에 따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 ”라고 말했다. 교사들 스스로가 대학별 고사에서 요구되는 ‘과학적 에세이’를 써본 경험이 없으니 대부분 학교에서는 가르칠 여건이 안된다. 50~60명이 쓴 글을 꼼꼼하게 고쳐가며 지도해주기도 어렵다. 

■ 학생 맞춤형 구술면접으로 가야 

[대입 개혁 키워드]③대학별 고사 - ‘교과서 밖’ 논술·구술, 교사도 “난해”…사교육으로 내몰아
                  

학교에서 수능에 맞춘 문제풀이 수업과 서술형 평가에 대비한 수업을 병행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몇몇 상위권 학생들을 빼면 여전히 대다수는 수능에 집중하는데, 교사가 대학별 고사를 염두에 두고 토론이나 글쓰기 수업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역사교사 출신인 이현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은 “논술·구술 평가가 지금의 입시교육보다 나은 교육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면 수능을 서술형으로 바꿔 수업과 평가가 함께 바뀌도록 유도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정주현 강사는 “교사 연수를 비롯해 공교육 현장을 혁신하는 투자가 있어야 공교육에서 말이나 글로 자신의 사유를 표현하는 교육을 할 수 있다”며 “대입경쟁이 심한 현실에서, 지금대로라면 학생들은 사교육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입시를 단순화해 학생들 부담을 줄이고 공정한 기회를 주겠다며 입시개혁을 추진하려 한다. 동시에 대학들의 선발 자율성을 살리고, 획일적 시험으로 나타나지 않는 학생의 잠재력과 성취를 평가할 방법도 찾아야 한다. 선택형 교육과정이 처음 도입된 2005년 7차 교육과정 이후로는 학생들마다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에게 같은 것을 묻는 기존 논술·구술 시험에서 탈피해 맞춤형 면접을 하되, 사교육이나 선행학습을 유발하지 않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 입학본부 전문위원을 지낸 김경범 교수(서어서문학과)는 “학생 선택권을 늘린 교육과정의 취지를 살려 대학들은 ‘고등학교 때 배웠던 것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구술면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학생부를 토대 삼아 응시생이 고등학교 때 무엇을 배웠는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 어디까지 성취했는지 학생 맞춤형으로 묻는 구술면접이 대학별 고사의 올바른 방향”이라며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잘 작동하게 하는 방향으로 대학별 고사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9062149005&code=940401#csidx67213159812abcd86409f0d30fb5a4c

[단독]문재인-안철수 누가 되든 "대입 논술 폐지"

입력 2017.04.17. 03:02 댓글 195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020학년도(현 고1 해당) 대학 입시부터 논술과 특기자전형(어학·수학·과학 부문)을 폐지할 방침인 것으로 확인됐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역시 2020학년도 입시부터 논술전형을 폐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논술전형은 현 고2를 마지막으로 대입 역사에서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문 후보 측은 16일 동아일보에 대학 입시 구조를 △학생부 종합전형(학종) △학생부 교과전형 △수능 3개 축으로 단순화하겠다고 밝혔다.

[동아일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020학년도(현 고1 해당) 대학 입시부터 논술과 특기자전형(어학·수학·과학 부문)을 폐지할 방침인 것으로 확인됐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역시 2020학년도 입시부터 논술전형을 폐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논술전형은 현 고2를 마지막으로 대입 역사에서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문 후보 측은 16일 동아일보에 대학 입시 구조를 △학생부 종합전형(학종) △학생부 교과전형 △수능 3개 축으로 단순화하겠다고 밝혔다. 수시모집을 100% 학종으로 뽑는 서울대 등 주요 대학 입시에서 학종 선발 비율이 과도하게 높다고 보고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방침이다. 문 후보 측 관계자는 “학생 선발 경쟁 과정에서 학종의 취지가 왜곡되고 있어 고교 교육 정상화를 위해 학생부 교과전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 후보 측은 “학종은 선발 공정성 논란이 있는 만큼 대학별 입시 정보와 졸업 및 취업 정보 등을 ‘공공재’로 규정해 모든 대학이 의무적으로 관련 정보를 공개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안 후보 측은 “정보 공개 결과 입시의 공정성을 훼손한 것으로 판단되는 대학에는 엄중한 책임을 묻는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또 교사 추천서 제도를 폐지하고 학생부 전형에서 교내 대회 수상 실적을 반영하지 않도록 할 방침이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