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가슴 뛰는 책"...이젠 직접 들어보세요
[북콘서트] <새로운 100년> 출간 기념... 오연호가 묻고 법륜 스님이 답하다
12.06.11 16:28 ㅣ최종 업데이트 12.06.11 16:28 이한기 (hanki)

"법륜 스님. 중학교 때 아인슈타인을 꿈꾸고, 청년 시절엔 유명 수학강사로 이름을 날렸을 뿐만 아니라, 우리민족의 시원과 고구려·발해사, 그리고 근현대사에 관한 자주적인 역사인식을 토대로 한 그의 '통일 이야기'는 정말로 탁월한 식견을 얻는 시간이었다. 늙은 부모를 봉양하는 과거 청산적 통일이 아니라, 어린 자식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의 미래 비전적 통일에 관한 그의 통찰력은, 그래서 더욱 뜻 깊게 다가왔다." (예스24, ID : 권또또)

'가슴을 뛰게 하는 통일 이야기' <새로운 100년>(오마이북)을 읽은 독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오랜만에 가슴 뛰는 책을 읽었다"(알라딘, ID : 공덕이), "평소 큰 무게를 두지 않았던 통일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교보문고, ID : bo**kensin), "입소문으로 산 거지만 완전 기대 이상, 대학생들 필독서로 하면 좋겠다"(인터파크, ID : jsohhy**)고 말입니다.

'오연호 기자가 묻고, 법륜 스님이 답하는' 형식의 대담집 <새로운 100년>에서는 이렇게 묻습니다.

"스님, 왜 통일을 해야 합니까? 우리 민족의 미래 비전이 통일에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너무 버거운 과제가 아닙니까?"

법륜 스님은 이렇게 답합니다.

"미래의 100년을 준비하는 이 좋은 일이 노력 없이 너무 쉽게 이뤄져버리면 안 되잖아요. 형설의 공이 들어가야죠. 통일이 너무 쉽게 되면 100년을 가기는커녕 다시 10년 만에 무너질지도 모르잖아요. 버거운 과제인 만큼 사람도 많이 모아야 하고 연구도 많이 해야 하고 힘도 많이 모아야 하니 할 만한 일거리가 생겼다고 생각합시다. 통일이라는 엄청 재미있는 일을 때마침 우리가 잘 만났다고 생각하면 힘이 돋고 기가 살 것 같아요. 우리 함께 해봅시다!"

<새로운 100년>은 그냥 한 권의 책이 아니라, 통일을 바탕으로 미래의 새로운 100년을 힘차게 열어보자는 희망 프로젝트입니다. 조국 서울대 교수와의 대담집 <진보집권플랜>이 2012년을 겨냥해 우리 앞의 벽을 넘어서기 위한 디딤돌을 쌓은 것이라면, <새로운 100년>은 그 벽을 지나서 그 너머에 있는 새로운 대지를 어떻게 가꿀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6월 15일부터'가슴 뛰는 상상, 새로운 100년' 북콘서트 열려

오마이북과 평화재단은 <새로운 100년> 출간 기념으로 '가슴 뛰는 상상, 새로운 100년'이라는 주제로 북콘서트를 엽니다. 이번 북콘서트는 6월 15일 서울을 시작으로, 대구·광주·울산·대전·부산을 거쳐 7월 9일 서울에서 막을 내립니다. 이와 더불어 7월 6일부터 8일까지 2박3일 동안 '새로운 100년 청년캠프'도 개최합니다. 이번 북콘서트는 무료이며, 선착순 입장(마감)입니다. 관심있는 분들께서는 직접 현장에 오셔서 법륜 스님과 함께 '새로운 100년'을 꿈꿔보세요.

각 지역별 공연 일정과 장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 서울 6월 15일(금) 오후 1시30분, SH아트홀 (신청하기, 문의 : 010-4807-7144) ▲ 대구 6월 17일(일) 오후 7시, 송원교육문화센터 (문의 : 010-2666-6216) ▲ 광주 6월 27일(수) 오후 7시, 김대중 컨벤션센터 4층 컨벤션홀 (문의 : 010-4807-7144) ▲ 울산 6월 30일(토) 오후 7시, 울산상공회의소 7층 대회의실 (문의 : 010-4160-9387) ▲ 대전 7월 3일(화) 오후 7시 기독교연합봉사회관 연봉홀 (문의 : 010-4807-7144) ▲ 부산 7월 4일(수) 오후 7시, 장소 미정 ▲ 서울 7월 9일(월) 오후 7시, 장소 미정. 북콘서트 관련한 이메일 문의는 yforum100@gmail.com으로 하면 됩니다.

법륜-오연호 대담집 <새로운 100년>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가 5월 10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성당 1층 북카페 '산 다미아노'에서 열렸다.
ⓒ 권우성
법륜스님
철학책 이렇게 만들 수도 있구나
입력시간 : 2012.06.08 21:23:07

소크라테스, 칸트라는 제목을 단 것 치고는 이상하게 책이 크고 얇다 싶었다. 아니나다를까 두 권의 신간을 펼쳐보니 그림책 같다. 그림에는 유머가 흐르고 은근히 지적이다. 아테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 말 많은 노인 소크라테스(그림) 경우처럼. 글 역시 철학 이론을 요약해 소개하면서도 전혀 딱딱하지 않다.

특히 시간 잘 지키기로 유명한 칸트의 일상을 재구성해서 그의 철학의 핵심을 소개한 <칸트 교수의 정신 없는 하루>는 마치 한 편의 코미디라도 보는 듯 재미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자유란 없다는 칸트의 열변을 들은 학생들은 '칸트 교수가 형이상학이라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채 하늘로 올라가 초자연적인 것을 신봉하는 군대를 몰살시키고, 신에게 보복하였으며, 자유를 부숴버렸고, 불멸의 영혼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음을 증언했다'는 식이다. <죽음, 그 평화롭고 아름다운 영혼의 여행>에서는 플라톤대화편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의 내용을 줄여서 보여준다.

프랑스 '철학 그리다' 시리즈를 번역한 이 책을 덮으며 드는 생각. 철학책을 이렇게 만들 수도 있구나! 이어서 라이프니츠, 데카르트, 노자, 아우구스티누스, 마르크스가 나오고 그 뒤에도 더 나온다. 박아르마 옮김. 함께읽은책ㆍ각권 1만3,000원.

저자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지음 역자 박이소 옮김 출판사 현실문화연구 | 2011.01.20 | 페이지 수 315 | 정가 13,500원 12,150원

원제 : Believing is seeing : creating the culture of an art

당신이 생각하는 그 작품은 미술이 아니다!

미술에 대한 오래된 편견과 신화를 뒤집는『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은

미술이 아니다?

시작부터 도발적인 선언을 하는 이 책은 사람들이 당연히 미술이라고 생각했던 작품들에 반기를 든다.

미국의 미술사가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가 해박하고 예리한 지식과 통찰을 바탕으로 예술적인

유산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이 제작될 당시에는 근대의 발명품이었으며, 오늘날 문화에 의해 차용되어

미술로 변형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풍부한 시각자료와 파노라마를 통해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미술사와 개개의 작품을 평가하는

새로운 시선을 만날 수 있다.

☞ 북소믈리에 한마디!
저자에 따르면 진정한 의미의 미술이란 작가 자신이 스스로 얻은 영감에 의해 자유롭게 창작된 것으로,

이는 ‘자유시장’ 내에서 전시, 교환됨으로써 그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따라서 뒤샹, 피카소, 몬드리안, 폴록, 워홀 등 근대 이후의 작품들이 이에 해당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미술과 미술이론에 있어 그동안 미심쩍었던 문제들에 대한 시원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Mary Anne Staniszewski
이 책을 쓴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Mary Anne Staniszewski는 미술사가로서 미국 렌셀러

폴리테크닉 대학 Rensselaer Polytechnic Institute의 전자예술사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The Power of Display: A History of Exhibition Installations at the Museum of Modern Art》(1998), 《Dennis Adams: The Architecture of Amnesia》(1990) 등이 있으며, 주로 근현대 미술과

문화에 관한 탁월한 저술가로 정평이 나 있다.

역자 박이소
이 책을 번역한 박이소는 홍익대학교와 미국 프랫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미국에서 ‘박모’라는 이름으로 33회의 크고 작은 전시에 참여했으며, 대안공간인 ‘마이너

인저리 Minor Injury’를 운영하기도 했다.

1994년 귀국해 SADI 교수를 역임했으며, 1997년 광주비엔날레와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2004년

부산비엔날레 참여작가로 활동했다.

2001년에는 대안공간 ‘풀’ 개인전과 2002년 에르메스상 수상기념전 등을 가졌다.

국내외에서 한창 주목을 받고 있던 2004년에 작고했다. 번역서로는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외에

《문화연구와 문화이론》(존 스토리 지음, 현실문화연구, 1999)이 있다.

목차

글을 옮기면서
이 책을 읽는 방법

1. 미술이란 무엇인가?
2. 미술과 근대적 주체?
3. ‘예술’이라는 용어
4. 미학: 예술의 이론?
5. 미술창작이라는 특권?
6. 아카데미?
7. 박물관
8. 미술사와 모더니즘?
9. 아방가르드와 대중문화?
10. 오늘날의 미술과 문화

모나리자? 미술이 아니다! 아담의 창조? 이 또한 미술이 아니다!
누가 예술을 결정하는가?
미술에 대한 새로운 통찰과 시각

당신이 생각하는 그 작품은 미술이 아니다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장-앙투안 와토의 〈키테라섬의 순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像과 이집트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까지.

사람들 대부분이 훌륭한 미술(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해 온 것들이다.

그러나 이 모든 작품들이 ‘미술이 아니(었)다!’라고 선언에 가까운 주장을 하는 책이 발간되어 관심을 끈다. 미국의 미술사가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Mary Anne Staniszewski가 쓴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박이소 옮김/현실문화/13,500원)가 바로 그 책이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는 지난 1997년과 2006년 같은 출판사에서 이미 발간된 책이다.

우리 독서계가 지금처럼 미술ㆍ예술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지 않던 시기에 나왔지만 이 책은

최근까지 독자들의 꾸준한 관심을 받아왔다.

이번에 판형을 바꾸고 디자인을 새롭게 하여 출간했다. 또한 색인과 참고문헌을 추가해 독자의 이해를

높였다. 미술과 미학, 예술을 전공하는 사람부터 입문자까지 두루 읽고 도움을 받을 만한 책이다.

책은 시작부터 도발적인 선언을 한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 뿐만 아니라 베르사유 궁전, 니이케상, 중국의 봉헌 그림 등의 사진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며 이 모든 작품들이 정작 미술이 아니다라고 한다.

지금까지 독자들이 갖고 있었던 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의 전복을 시도해 저자의 생각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주장을 하는걸까?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이란 근대의 발명품이라고 주장하면서 위에 나열한 작품들은 오늘날

문화에 의해 ‘차용’되어 미술로 변형된 것이라 주장한다.

‘미술’은 근대 modern era-지난 200년간-의 발명품이다.

근대 이전의 사람들이 생산한 뛰어난 건물들과 물품들은 우리의 문화에 의해 ‘차용’되어 미술로

변형된 것이다.

우리가 아는 미술은 상대적으로 최근에 나타난 현상으로, 미술관에 전시되고, 박물관에 보존되며,

수집가들이 구매하고, 대중매체 내에서 복제되는 그 무엇을 말한다.……(중략)……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다양한 제도들에 의해 형성되고 정의된다.

제도는 사물들에 그 경계와 관행을 설정해 준다.

이는 액자틀이 그 안에 있는 것을 회화로 보이게 만들고, 좌대가 그 위에 있는 것을 조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과 같다.(본문 중에서)

예를들어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는 미술로 창작된 것이 아니었다.

이 이미지는 단지 로마 교황의 권위와 성스런 의식을 위한 시각적인 은유였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로서 이 프레스코화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미술은 아니(었)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 또한 마찬가지다.

이 5인치짜리 인물상에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라고 이름을 붙인 것도, 그리하여 이 상을 미술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도 모두 현대에 와서의 일이다.

이 비너스상은 제작될 당시 단지 일상용품이었을 것이다.

이 조각상을 예술작품이라 부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인들의 속단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과연 무엇이 미술인가

그렇다면 저자가 주장하는 ‘미술’은 무엇일지에 관심이 이동한다.

뒤샹, 피카소, 몬드리안, 폴록, 그리고 워홀 등 저자는 근대 이후의 작품들을 미술이라 말한다.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작가가 예술에 대한 영감을 바탕으로 스스로 창조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미술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미술의 개념은 개인이 자신의 인간성humanity을 인식해 가는 혁명적인

변화가 시작된 후 생겨났다.

즉 미술은 유럽에서 군주제의 해체와 동시에 그 존재를 드러냈다는 말이다.

이로서 미술은 교회(종교)나 왕권(정치)의 권위를 위해 봉사할 필요가 없어졌다.

오직 작가 자신이 스스로 얻은 영감에 의해 자유롭게 창작할 뿐이다.

이렇게 창작된 작품들은 ‘자유시장’ 내에서 전시, 교환됨으로써 그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예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

미술에 대한 저자의 해박하고 예리한 지적과 통찰은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를 읽는 우리에게

예술적인 유산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미술사학자 스타니스제프스키와 함께 우리가 알지 못했던 미술사의 뒤안길을 산책하다보면 풍부한

시각자료와 파노라마를 통해 개개의 작품을 새롭게 평가하는 이데올로기와 해석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의 1장은 우리가 지금까지 미술에 대해 알고 있었던 오래된 편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2장에서는 근대를 거쳐오면서 한 개인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미술에 대한 개념도 등장하기 시작했음을 밝히고 있다. 3

장과 4장에서는 ‘예술’과 ‘미학’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배경에 대해 서술하고 있으며, 5장에서는

예술이라는 분야가 백인 남성의 전유물이었으며 여성 작가들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소외되어

왔음을 밝히고 있다.

6장과 7장에서는 ‘아카데미’와 ‘박물관’의 등장과 역사, 그리고 예술에 끼친 영향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8장부터 10장까지는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그리고 현대미술에 대해 서술하면서 책을

마무리 하고 있다.
독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작품들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순수미술과 고급미술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것은 ‘제도화된 시각’으로서의 미술이 간직하고

있는 숨은 이야기들 때문이다.

이 숨은 이야기들은 오늘날 대중매체와 대중문화를 통해 끊임없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는 미술과 미술이론은 물론 문화연구와 인문학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그동안 미심쩍었던 문제들에 대해 시원한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에로틱' 인어공주, '혁명가' 신데렐라…원작대로 읽자!

[프레시안 books] 김민웅의 <동화독법>

도종환 시인·국회의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06-01 오후 6:58:36

김민웅의 <동화 독법>을 읽는 즐거움

할 일이 쌓여 있는데 서평을 써야 한다는 이유로 책을 읽어야 할 때는 곤혹스럽다. 그런데 그 책이 재미있을 때는 더욱 힘들다. 처리해야 할 일들은 많고 시간은 부족한데 점점 책에 빠지게 될 때 우리의 감각이성은 내부에서 각각 아우성을 질러대며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한다.

김민웅의 <동화독법-유쾌하고도 섬세하게 삶을 통찰하는 법>(이봄 펴냄)이 그렇다. 동화에 대한 저자의 새로운 해석을 풀어나가는 평론적 성격이 강한 책인데 붙들고 있으면 놓을 수 없다.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을 때처럼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동화독법>은 책 읽는 재미와 즐거움을 준다. 서평적인 성격의 글은 딱딱해지고 이론 위주의 사변적인 글이 되기 십상인데 그렇지 않다. 구어체 문장, 이야기하듯 풀어가는 문체가 읽는 이를 편하게 한다.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은 작품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해석에서 온다. 동화나 우화 속에 슬며시 담아낸 현실의 긴장역사적 생동감을 읽어내는 시선이 독특하고, 작품 안에 치밀하게 숨겨 놓은 반전의 비수를 찾아내는 명철함이 돋보인다.

▲ <동화독법-유쾌하고도 섬세하게 삶을 통찰하는 법>(김민웅 지음, 이봄 펴냄). ⓒ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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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를 보자. 저자는 이 작품을 신데렐라 콤플렉스, 외모 콤플렉스, 착한 여자 콤플렉스 등의 관점에서만 보지 않는다. 신데렐라라는 이름이 '재를 뒤집어 쓴 소녀'라는 뜻에 주목한다. 잿더미 속에 쏟아놓은 콩을 골라줍는 일을 했고, 아궁이 잿더미 옆에서 잘 수밖에 없는 부엌데기. 꿈과 희망이 재가 되어버린 소녀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왕자비를 고르는 무도회에 그 나라의 모든 처녀들이 초대되는 것 또한 기존의 봉건적 질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혁명성과 파격성이 있다고 본다. 중세 봉건 왕정 체제의 무도회는 멤버스 온리의 특권적 성격의 무도회이지 모두에게 기회가 열린 무도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리 구두에 담긴 비밀을 풀기 위해선 발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데렐라의 발은 나막신을 신고 물을 긷고 장작을 패고 허드렛일을 하며 고생을 한 소녀의 발이라는 것이다. 특권과 차별과 과시의 욕망으로 뭉쳐 허황된 선망의 대상이 되는 유리 구두가 아니라, 살아오는 동안 흘린 눈물과 아픔을 담고 있는 발이 신발의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상처투성이의 작은 발로 이 힘겨운 세상을 감당하며 살지만 잿더미를 털어내고 무도회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세상을 보고 싶어 하는 갈망이 그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독특한 작품 해석은 <심청전>에도 이어진다. 심청이가 몸을 던진 인당수의 '인당'은 두 눈썹 사이의 혈 자리를 의미하는 인당(印堂)과 한자만 다름에 주목한다. 인당 자리는 제 3의 눈, 마음의 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기운이 교차하고 이 길이냐 저 길이냐 라는 선택이 엉켜 변화를 예측할 수 없는 지점이 바로 인당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심청전>은 '인당수 철학'이 관철되는 과정이라고 한다. 인당수는 풍랑이 이는 죽을 자리가 아니라, 현세를 뛰어넘는 세상을 경험한 이가 다시 살아 돌아온 생명의 현장이라는 것이다. 효의 차원을 넘어서 희생을 만들어내는 현실을 폭로하고 고발하며, 그런 현실을 하늘이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심청이의 귀환으로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서 평생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온 맹인 심학규가 비로소 눈을 뜨게 된다는 것이다. 개안과 구원문제를 종교적으로 접근한 경판본 <심청전>이 아니라 눈물과 웃음, 비장함과 비속, 해학과 놀이 정신이 어우러져 있는 완판본을 텍스트로 택해 이야기를 끌어나가기 때문에 심청전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참 재미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과 늑대>에서도 저자는 재미있는 분석을 한다. 양치기 소년을 일종의 경보 장치라고 보는 것이다. 소년이 여러 번 거짓말을 한다는 건 경보 장치가 고장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경보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는 것이다.'경보 장치 작동+마을의 대응=양들의 안정' 이런 공식이 성립하는 것인데 양치기 소년만 비난하고 상황이 종료되는 식이 되풀이 되는 바람에 결국 양들을 다 죽게 만들고 말았다는 것이다.

늑대가 나타났을 때 늑대를 퇴치하는 것은 결국 마을 사람들이고 양들도 마을 사람들의 것이라면, 늑대 출현에 대한 정보가 한 사람에 독점 되고 그 정보에 마을 전체가 휘둘리는 식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감시와 견제 또는 대안을 마련하고 마을 주민 각자가 책임 있는 주체로 나서야 했다는 것이다. 이 지점이 참여 민주주의가 바로 서는 지점이며, 고장 난 경보 장치를 고치는 것을 개혁이라 하고, 교체하거나 제 3의 대안을 실현하는 것을 혁명이라고 부른다고 덧붙인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에로틱한 관점에서 접근한다. 성에 눈뜨는 사춘기 소녀의 일기와도 같은 이야기라고 본다. 인어공주의 하반신은 여성성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이고 마녀를 찾아가 두 다리를 얻게 되는데, 이 다리는 여성의 바기나에 대한 대체어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련과 고통을 각오하고 자신의 성의 주인이 되려는 인어공주는 중세의 종교적 사슬을 끊고 등장하는 여성의 표상이라고 해석한다. 인어공주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고 그녀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지만 저자는 이런 결말을 비극적 결론으로 보지 않는다. 복수를 택하지 않고 죽음을 택했지만 공기의 딸이 되어 꽃의 향기를 퍼뜨리고 평화로운 안식과 치유하는 지식을 보내는 선행을 하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성의 사랑을 얻는 데는 실패했지만, 수중계에서 지상계를 거쳐 천상계로 상승하며 불멸의 영혼을 얻게 된 것이다.

그림 형제의 <헨젤과 그레텔>은 기근에 시달렸던 시대의 비극을 뚫고 살아난 존재의 내면 세계를 꿰뚫어 보게 해주고 있으며, 인생이라는 숲에서 실종당할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두려움에 떨지 말고 지혜롭게 위기를 돌파하라고 일깨우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어린이 책 평론가 김환희의 말대로 여동생 그레텔이 "위기에 처해 더욱 강인해지는 존재, 아기오리와 소통할 수 있는 신이한 존재, 오빠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물의 세계를 건널 수 있는 독립적인 존재"로 행동하며 위급하고 험한 상황에서도 마음이 거칠어지지 않고 지혜와 용기를 가진 여자 아이, 공감능력을 가진 인물로 성장하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 철학적 책읽기의 결과가 "무엇보다도 성서를 통해 깊이 훈련된 읽기의 힘 덕분"이라고 말한다. 동화와 우화와 고전 소설을 깊이 있게 읽는 동안 단순한 듯 보이나 그 안에 담긴 심오한 이야기에 눈뜨는 과정은 우리에게 책 읽는 기쁨을 선사한다. 그의 경이로운 발견은 우리 모두의 경이로운 발견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도종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