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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31 강원도의 인물
- 2018.03.30 삼척의 문화유산- 삼척기줄다리기
- 2018.03.30 삼척의 문화유산-준경묘
글
11:52:51 [이상주 종묘스토리]
목조대왕(穆祖大王) 재치로 왕업을 닦다
목조대왕(穆祖大王) 위키백과 자료
목조(穆祖)의 아버지 이양무(李陽茂) 장군과 어머니 이씨(李氏)의 묘(墓)
준경묘(濬慶墓) · 영경묘(永慶墓)
[요약]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에 있는 목조(穆祖)의 아버지 이양무(李陽茂) 장군과 그 부인의 묘
[주소]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92, 98, 산 149, 하사전리 산 53
1981년 8월 5일 강원도기념물 제43호로 지정되었고, 2012년 7월 12일 사적 제524호로 승격되었다. 준경묘는 목조의 아버지 양무(陽茂) 장군의 묘, 영경묘는 목조의 어머니 이씨의 묘이다. 1899년에 두 무덤을 수축하여 제각, 비각을 건축하였다.
묘소 일대는 울창한 송림이 원시림 상태로 우거져 있는데 특히 이곳 송림은 황장목이라 하며 경복궁 중수 때 자재로 사용하였다. 전주이씨 실묘로는 남한에서 최고 시조묘이며 해마다 4월 20일 전주이씨 문중 주관으로 제례를 지낸다.
강원도기념물로 지정된 뒤 1984년 8월에 삼척군(지금의 삼척시)에서 제각, 비각, 재실, 홍살문 등을 일제히 보수하였다. 묘에 관하여 목조가 한 도승의 예언대로 백우금관(百牛金棺)에 부모를 안장한 이후 5대에 이르러 조선(朝鮮)을 창업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개설
이양무는 고려시대 인물로 태조의 5대조이며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의 부친이다. 그의 부인인 삼척이씨는 상장군 이강제(李康濟)의 딸이다. 목조가 전주를 떠나 강원도로 이주할 때 이들도 함께 동행하였다고 전한다. 강원도 삼척의 마을인 노동(蘆洞)과 동산(東山)에 있는 고총(古冢)이 그들의 무덤이라는 주장이 조선 초기부터 있었다. 확실한 증거가 없어 조선 조정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무덤은 국가의 수호를 받았다. 그리고 대한제국기인 1899년에 이르러 황실에서는 이 고총을 목조의 고비(考妣: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 무덤으로 인정하고 노동의 이양무 무덤을 준경묘(濬慶墓), 동산의 부인 무덤을 영경묘(永慶墓)라 하여 국가 사전(祀典)에 포함시켰다.
백우금관(百牛金棺)의 전설(傳說)
태조 고황제의 고조부인 목조(穆祖)께서 부친(이양무) 상(喪)을 당하여 묘지를 구하려고 사방으로 헤매다가 지금의 준경묘(濬慶墓)가 위치한 노동(盧洞)에 이르러 나무 밑에서 쉬고 있는데 한 도승(道僧)이 지나다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두루 살펴 인적이 없음을 확인한 뒤 혼자 말로 “참 좋구나, 대지(大地)로다” 하는 것이었다.
목조께서 나무 밑에 앉아 있었으므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도승은 이처럼 탄성을 올리면서 계속해서 “그렇지만 개토제(開土祭)에 소 일백 마리를 잡아 제사를 지내야 하고 관(棺)을 금으로 만든 것을 싸서 장사(葬事)를 지내야 하겠다. 그러면 5대손 안에 왕자가 출생하여 기울어 가는 이 나라를 제압하고 창업주가 될 명당이로다!” 하는 말을 남기고 수 백보를 가더니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었다.
자신의 귀를 의심한 목조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생각에 골몰하였으나 가난한 살림살이에 소 백마리를 어디서 구하며, 금으로 만든 관은 더욱이 어디서도 구할 수가 없었다. 부친의 묏자리를 명당에 쓰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형편상 어쩔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러나 지혜로운 목조께서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궁여지책을 찾아내게 되었다.
“그렇다!” 손바닥을 친 이안사는 소 일백마리는 흰 소 한마리로 대신하고 금관은 귀리 짚이 황금색이니 이것으로 대신하면 될 것 같다.
마침 처가에 흰 얼룩소가 있었는데, 흰 소를 한자로 쓰면 백우(白牛)이므로 숫자상 일(百)자와 발음이 통하게 되어 백우(百牛)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부인과 의논을 하였다. 부인에게는 다른 말을 일체 하지 않고, “내일 밭갈이를 할 터이니 처가의 흰 소를 잠시 빌려 오시오” 라고만 하였다.
다음날 친정에 가서 흰 소를 몰고 부인이 오자 이 소를 잡아서 제물(祭物)로 사용할 것이다. 그리고는 부친의 귀중한 영가(靈駕)를 넣은 관에 씌울 금은 귀리 짚으로 대신하였는데, 같은 황금색이므로 금관과 의미가 통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하여 1231년 부친의 장례를 치른 묘가 지금의 준경묘라고 전해지고 있다.
영경묘(永慶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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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유명한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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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시대
* 도선(道詵) : 827(흥덕왕 2)∼898(효공왕 2), 신라말의 승려이며 풍수설의 대가이다. 성은 김씨, 영암출신.
* 의상대사(義湘大師) : 625(진평왕 47)∼702(성덕왕 1) 신라시대의 고승으로 우리나라 화엄종의 개조(開祖)이다. 성은 김씨.
2. 고려시대
* 남은(南誾) : 1354(공민왕 3)∼1398(태조 7), 고려의 문신, 공민왕때 문과에 급제하여 우왕때 삼척에 쳐들어온 왜구를 격퇴하였다. 그후 이성계를 도와 개국공신1등에 봉해졌다.
* 문관(文冠) : 1042(정종 8)∼1112(예종 7), 고려의 무신으로 본관은 정선이다. 문종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진과 싸워 공을 세웠다.
* 원충갑(元忠甲) : 1250(고종 37)∼1321(충숙왕 37), 고려말 무장으로 원주에서 출생, 본관은 원주이다.
* 이승휴(李承休) : 1224(고종 11)∼1300(충렬왕 26), 고려의 문인으로 삼척 두타산 구동에 들어가 살았다. 《제왕운기(帝王韻記)》의 저자.
* 지광국사(智光國師) : 984(成宗 3)∼1067(文宗 21), 고려 문종때의 國師이며 法相宗의 고승으로 성은 元氏, 본관은 原州.
* 최영(崔瑩) : 1316(충숙왕 3)∼1388(우왕 14), 고려시대 무신으로 본관은 창원으로 철원 출신.
3. 조선시대
* 김시습(金時習) : 1434(세종 16)∼1493(성종 24), 조선전기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본관은 강릉
* 김장생(金長生) : 1548(명종 3)∼1631(인조 9), 조선중기 문신으로 본관은 광산, 광해군 2년(1610) 철원부사에 부임하여 정치를 함에 있어, 먼저 충효로서 부민을 다스리는 법도를 세웠다.
* 김제남(金悌男) : 1562(명종 17)∼1613(광해군 5), 조선중기 문신으로 원주출생, 선조의 장인이다.
* 박팽년(朴彭年) : 1417(태종 17)∼1456(세조 2), 조선시대 문신 사육신의 한 사람, 회덕 출신.
* 원호(元昊) : 1396(태조 5)∼1464(세조 10), 조선시대 생육신의 한사람으로 1396년 4월 9일 원주에서 출생.
* 유성원(柳誠源) : ?∼1456(세조 2), 조선전기 문신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본관은 문화.
* 유응부(兪應孚) : ?∼1456(세조 2), 조선전기 무신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포천출신.
* 이승훈(李承薰) : 1756(영조 32)∼1801(순조 1), 한국 최초의 천주교 세례인으로 본관은 평창.
* 이이(李珥) : 1536(중종 31)∼1584(선조 17), 조선중기 학자 문신으로 강릉 출생.
* 인열왕후(仁烈王后) : 1594(선조 27)∼1635(인조 13), 인조의 비로 원주 인동 출생.
* 조엄 : 1719(숙종 45)∼1777(정조 1), 조선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풍양(豊壤), 대마도에서 고구마 종자를 들여옴.
* 허균(許筠) : 1569(선조 2)∼1618(광해군 10), 조선중기 문신으로 본관은 양천(陽川), 홍길동전 지음.
* 허난설헌(許蘭雪軒) : 1563(명종 18)∼1589(선조 22), 조선중기의 여류시인으로 강릉 석성리에서 출생, 허균의 여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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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기줄다리기
삼척기줄다리기(三陟기줄다리기)는 강원도 삼척시 지방에 전승되는 줄다리기이다. 1976년 6월 15일 강원도의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다.
개요[편집]
줄다리기는 줄쌈이라고도 하며 풍년을 기원하는 농경의식의 하나로 정월 대보름에 행해졌다. 기줄은 큰 줄에 매달린 작은 줄이 마치 게의 발과 같다해서 게줄이라고도 하며, 기줄다리기는 한자어로 해색전(蟹索戰)이라고도 한다. 기줄다리기 유래에 대하여는 조선 현종(재위 1659∼1674) 때 삼척지방에 저수지를 많이 만들면서 시작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
삼척기줄다리기는 음력 1월 1일이면 우선 어린이들이 양편으로 나뉘어 북, 꽹과리 등을 두드리며 기줄다리기를 하는데 줄이나 규모면에서 작다하여 속닥기줄이라고 한다. 차츰 규모가 커지면서 7·8일 경이면 청소년들이 주동이 되는 중기줄다리기로 번지고, 15일경에는 어른들을 대상으로 해안지방과 산간지방으로 나뉘어 본격적인 큰기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이기는 편에는 풍년이 든다는 믿음도 있지만 그보다는 진편에서 삼척읍성의 수리나 제방수리 등의 노역을 해야하기 때문에 해마다 경쟁이 치열하다.
삼척기줄다리기는 재앙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는 민간신앙을 담고 있으며 주민들의 단결과 협동을 도모하는 마을 공동축제로서 그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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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준경묘·영경묘(三陟 濬慶墓·永慶墓, 사적 제524호)와 묘역의 미인송
삼척 준경묘·영경묘(三陟 濬慶墓·永慶墓, 사적 제524호)의 묘역(墓域)과 재실(齋室), 목조대왕구거유지(舊居遺趾)등으로 구성된 ‘삼척 준경묘·영경묘’는 조선 태조 이성계(太祖 李成桂)의 5대조(목조의 부모, 즉 이양무 장군(李陽茂 將軍)과 그 부인 이씨)의 능묘로 비록 왕의 능침은 아니지만 조선 왕조가 인정한 선조의 묘역이다.
이양무 장군(李陽茂 將軍)은 본래 전라도 전주에 거주하였는데, 이곳으로 170여호(戶)와 함께 이주하여 살다가 1231년(고려 고종 18) 별세하여 이곳에 안장되었다. 이양무가 죽자 묘지를 구하러 사방을 헤매다 나무 밑에 쉬고 있는데 마침 한 스님이 지나다 “이 자리에 묘를 쓰면 5대 후손이 왕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귀가 번쩍 뜨인 목조는 스님에게 달려가 자세히 물었다. 그는 “이 자리에 말 백 마리를 잡아 제물로 하고, 황금으로 만들어진 관을 쓰면 된다”라고 일러주었다. 부유하지 못했던 이안사(李安社, 穆祖)는 이 말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꿈속에서 동자가 들판과 장에 나가 보라고 했다. 다음날 일찍 들판에 나가 보았더니 벼의 황금빛 물결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무릎을 쳤다. 다음으로 장에 나가 보았더니 흰 말을 팔러 나온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백마를 사 가지고 와 볏짚으로 관을 싸 황금관에 준하여 사용하고, ‘百馬’를 ‘白馬’로 해석해 흰 말을 잡아 제를 올렸다는 백우금관(百牛金棺)의 전설이다. 그렇게 하여 두타산의 배꼽 위치에 준경묘를 안장하니, 5대에 이르러 이성계가 탄생하여 조선을 건국했다는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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