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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GUSTAVE COURBET
구스타프 쿠르베는 자기 자신을 거칠고 세련되지 못한 반란군으로 그리고 싶어 했지만,
사실 그는 스위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부르주아 출신이었다.
가족들 역시 예술을 추구하고자 하는 그의 열망을 이해해주고 그가 안정적인 출발을 할 수 있도록
재정상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840년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할 계획으로 파리로 갔지만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다.
1850년 전후로 자신의 고유 화풍인 사실주의 색채를 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천사를 그려 달라는 주문에 " 실제로 천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림을 그릴 수 없다"라고 말한 일화는
사실주의에 대한 그의 신념을 잘 드러낸다.
회화의 주제를 눈에 보이는 것에만 한정했고 견고한 마티에르와 스케일 큰 명쾌한 구성으로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젊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 만남, 혹은 "안녕하세요, 쿠르베씨", 1854 >
19세기 중엽 프랑스는 아직도 혁명 중일 당시.
오르낭이라는 이름없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파리로 상경해
부모님은 법률가가 되라고 했건만 그저 자유로운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한 구스타프 쿠르베.
보통 구스타프하면 클림트가 나오는 것이 더 익숙하지만
서양미술사에서 구스타프 쿠르베는 구스타프 클림트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인물이다.
더구나 이 그림 < 만남, 혹은 "안녕하세요. 쿠르베씨" >는 서양미술사에 큰 획은 그은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
도대체, 왜 이렇게도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작품이 유명하고 중요하게 여겨지는 걸까?
정말 이 그림은 '볼거리'는 없다.
19세기 파리의 살롱에 걸렸던 대부분의 그림들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그려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역사적인 알레고리를 통해 교훈을 전달하는 것 같지도 않다.
등장인물들이 특별한 아우라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배경을 이루는 풍경도 그저 평범한 시골길일 뿐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들릴지는 모르나 이 그림의 특별한 점은 바로 그 '평범함'에 있다.
이 그림의 특별한 점은 바로 그 '평범함' 이다.
오른쪽에 평범하기 그지없는 등산복 차림을 하고, 언덕을 막 걸어 올라 더러워진 신발을 신은 채
무식하게 긴 작대기를 짚고 있는 사람이 바로 쿠르베 자신이다.
왼쪽 중앙에 트랜디한 신사복을 입고, 저 멀리 지나가는 마차를 타고 막 도착해 흙이 묻지 않은 맵시있는 구두를 신은 채,
우아하게 지팡이를 짚고 있는 사람은 쿠르베의 후원자인 알프레드 브뤼야스(Alfred Bruyas, 1821~1877)다.
그의 오른쪽에는 고개 숙여 인사하는 하인이, 왼쪽에는 늠름한 개 한 마리가 양쪽에서 브뤼야스를 보좌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쿠르베가 그의 후원자 일행을 동네 언덕에서 우연히 만나 “안녕하세요. 쿠르베씨”라고 말하는 그들과 인사를 나눈다는 내용이다.
얼마나 특별한가. 이렇게도 ‘평범한’ 소재를 예술작품이라고 그린 것이…….
실제로 이 그림이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처음 발표되었을 때 사람들은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시만 하더라도 미술계의 아카데미즘은 역사화, 종교화, 초상화, 풍경화, 풍속화 등의 규범화된 장르적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쿠르베가 내놓은 이런 장르의 그림은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러한 ‘평범함’ 뒤에는 화가 나름의 치밀한 계산이 숨어 있다.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를 잘 보라.
쿠르베는 허름한 등산복 차림에 무거운 화구통을 짊어지고 힘겹게 언덕을 올라, 자신의 작품을 사주는 후원자를 만났어도 조금도 주눅 든 기색이 없다.
인사를 하면서도 턱수염은 치켜 올라가 거만할 정도로 당당해 보인다.
반면 부자 후원자는 모자를 벗으며 점잖게 인사를 건네고 있지만 좌우로 그를 지켜주는 사람 혹은 개를 대동해야만 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돈은 있으나 ‘생기’가 없어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쿠르베는 이 그림에 “천재에게 경의를 표하는 부(富)”라는 부제를 붙였다.
예술가는 돈은 없지만 천재적인 존재고, 그러니 돈 많은 부자들이 예술가를 후원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 세느강변 둑의 아가씨들, 1856-1857 >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와 유사한 스캔들을 일으킨 그림이다.
1857년 살롱전에 출품되었지만 야외에 누워있는 여자들의 모습이 음란하고 천박하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기존의 미화된 여인과는 판이하게 다른 화법으로 당대의 풍속을 반영한 사실주의에 충실한 작품이다.
<화가의 아틀리에, 1855 >
쿠르베는 이 대작을 통해 화가로서의 정체성과 화가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림 왼쪽에는 젖먹이는 어머니, 옷감파는 유대인, 부르주아, 노동자, 창녀를 통해 사회의 계급적 불평들을 폭로하고 있다.
오른쪽에는 자신의 사실주의 노선을 지지했던 프루동, 보들레르 등 사상적 지지자를 그려 넣었다.
중앙 화폭에 자연을 그리고 있는 화가가 쿠르베.
자연의 진슬을 캐는 연구자라는 화가의 우월적 지위를 나타내며 어린아이는 창조의 영감, 누드모델은 진실을 의미한다.
주위에 널려 있으나 발견하지 못하는 평범한 ‘진실’을 그리다
그의 그림은 ‘아름다움’보다는 꾸밈없는 ‘진실’이 들어있다.
그저 특별할 것 없는 풍경과 소박한 옷차림이 웅장한 자연이나 화려한 의상보다 진실함을 담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남프랑스 특유의 따사로운 햇살과 그 햇살이 만드는 땅 위의 그림자따위나,
그리고 아무렇게나 피어난 듯한 길거리의 들풀등이 참 진실해 보인다.
우아한 포즈도 유려한 선도 인상적인 색채도 없어 ‘볼거리’가 없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가깝고 친근하다.
쿠르베는 부르주아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아름다움’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 널려 있으나 발견하지 못하는 평범한 ‘진실’을 그리고자 했던 것이다.
그의 작품이 서양미술사상 혁명적인 작품 중의 하나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부르주아로 태어났지만 자신을 낮추고 사실주의에 입각해 그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획기적으로 표현했던 작품들, 구스타프 쿠르베의 정신이 깃든 작품들은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나는 그림으로 먹고 살면서 단 한 순간이라도 원칙을 벗어나거나 양심에 어긋나는 짓은 하고 싶지 않네.
또 누구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아니면 쉽게 돈을 벌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싶지도 않네.”
- 쿠르베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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