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부터 논술 공부까지 사이버 학급은 ‘만물상’
친구사진 돌려보고 음악공유
국·영·수 공부에 독서토론…
흥미 붙자 학원 줄이고 자기 학습 생각 나누니 친구관계도 돈독
한겨레
» 광주 풍암중 3학년6반 학생들은 학교 교실과 사이버학급을 통해 온-오프라인이 통합된 새로운 교육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최영미 교사가 사이버학급에 올라온 직업·진로 탐색 콘텐츠를 가지고 학생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다.
“너희들이 모둠일기로 이 공간에서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선생님도 이 곳에 내 일년의 흔적을 남기련다. 나와 3학년 6반 악동들의 인연이 이곳을 통해 더욱 끈끈하게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멋지고 특별한 중3생활이 되도록 우리 모두 노력하자.”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풍암중학교 3학년 6반은 교실이 2개다. 하나는 학교에 있고, 또 하나는 사이버공간에 있다. ‘급우일심동체’(gedu.net/Community/actions/Uh_ClubMainServlet?cmd=main)가 그것이다. 실물로는 보이지 않는 공간이지만, 이 곳에서 아이들은 참 많은 것을 한다. 아니 교실에서 이뤄지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한다.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 과목 공부는 물론, 글쓰기와 논술을 하고, 독서토론을 하며, 시험을 보며, 과제를 제출한다. 뿐만 아니라 수다를 떨고 모둠일기를 쓴다. 친구들끼리 찍은 사진들을 올려 돌려보고, 좋은 음악을 같이 감상한다. 올초 이 방을 개설한 최영미(35) 교사는 “급우일심동체가 없는 3학년 6반은 상상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 이해와 협동… 더불어 살아가는 법 익히기 =

‘급우일심동체’는 알리는글, 수다방, 모둠일기, 모둠활동계획서, 과제제출방, 추억조각찾기, 마음의여유, 온라인평가 등 평범한 메뉴로 꾸려져 있다. 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 숨겨진 아이들의 열렬한 활동은 대단하다.

» 온라인상의 활발한 활동은 오프라인으로 이어진다. 지난 체육대회에서 단합된 모습으로 우승을 한 뒤 화이팅을 외치고 있는 3학년6반 학생들.

우선 44명 급우들은 모두 12개의 모둠으로 나뉘어 있다. ‘원라조’(원빈은 라면을 좋아해) 등 개성 넘치는 이름들로 모둠 이름을 짓고, 대부분의 활동을 모둠원들끼리 같이 한다. 가령 독서채팅을 한다고 하면 책 선정, 채팅 토론, 서평 쓰기, 논술문 쓰기 등을 모둠별로 진행한다. 공동 과제, 프로젝트, 중간·기말고사 대비 스터디 등도 모둠 단위로 이뤄진다.

모둠 단위 활동이기 때문에 긴밀한 의사소통은 필수. 모둠일기와 수다방이 그 창구가 된다. 모둠일기에 올라온 글들은 나중에 사이버 학급신문을 만들 때 중요하게 사용된다. 친구들끼리 사진을 돌려보고, 음악을 나눠 듣는 것도 모둠원들간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든다.

최 교사는 “아이들이 사이버 상에서 참여하고 협동하는 정도가 그대로 드러난다”며 “개인주의, 이기주의 성향이 강한 학생들에게 함께 하는 것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데 사이버 학급이 큰 구실을 한다”고 말했다. 최 교사는 모둠 활동을 북돋우기 위해 매달 우수 모둠을 뽑아 보상(선생님과 노래방 1시간 등)을 하는 한편, 일주일에 한번 정도 한 모둠이나 학생을 뽑아 칭찬하는 글을 연달아 싣는 ‘칭찬 샤워’ 코너도 운영한다.

주라미(15)양은 “처음에는 같이 공부하는 것도 꺼렸는데, 이제는 공부는 물론 대부분의 일을 친구들과 같이 하는데 익숙해졌다”며 “그러면서도 마음이 기쁜 걸 보면 사이버 학급의 역할이 큰 것 같다”고 했다.




● 직업도 탐색하고 성적도 올리고 =

중3은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갈 때다. 하지만 입시 위주의 교육 여건상 학교에서 가르치기는 어려운 상황. 이에 따라 ‘급우일심동체’에서는 다양한 직업과 진로에 대해 알아보고 실제 체험해보는 활동도 의욕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최 교사가 이 방에 올려놓은 직업은 사회복지사, 큐레이터, 쇼호스트, 메이크업아티스트, 동물미용사, 벨소리 제작자, 컬러리스트, 회워권 딜러 등 모두 13개. 교육부에서 만든 동영상 콘텐츠를 확보해 이 곳에 실었다. 학생들은 사이버가정학습을 통해 이들 직업에 대해 알아본 뒤 그와 관련된 직업소개신문 만들기, 직업체험 탐방활동, 나의 미래 직업신문 만들기 등의 활동을 한다. 역시 모둠별로 활동이 이뤄지나 미래 직업신문은 개인별로 해야 한다.

» 직업·진로 탐색 프로젝트의 하나로 각 모둠들이 만든 직업소개 신문.

정소연(15)양은 “직업 동영상을 보고 실제 현장에 가서 일하는 모습도 보고 하니까 몰랐던 직업도 새로 알게 되고 나의 진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학교에서의 부족한 공부를 보충하고 시험을 대비하는 데도 사이버학급은 큰 구실을 한다. 이 곳에는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등 주요 과목 학습 콘텐츠가 어느 사이트 못지 않게 풍부하다. 모두 최 교사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올린 것들이다. 최 교사는 “요약 정리, 심화 자료, 시험 기출 및 예상문제 등이 혼자서도 공부할 수 있게끔 충분히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학원에 가거나 과외를 받지 않고도 자기주도적으로 학습을 하는 데 적절하다.

3학년 6반 학생들이 평균 이 방에서 공부하는 시간은 약 1시간. 어떤 학생들은 1시간 30분에서 2시간까지 머물기도 한다. 출석률도 90%를 넘어 사이버학급이 학습방으로서도 손색이 없음을 보여준다. 자발적 학습을 돕기 위해서 최 교사는 온라인평가와 오프라인 평가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다니던 학원 수를 줄이거나 아예 학원을 다니지 않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올초부터 학원을 끊었다는 황지수(15)양은 “사이버로 공부한 뒤 교육방송을 보면 이해가 훨씬 잘 된다”고 했다.

김용하 교장은 “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3학년 6반의 평균성적이 매번 다른 반보다 6~7점 가량 높게 나온 점으로 보아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 신장에 효과가 큰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여전히 학생당 학생수가 많은 오프라인 교실에서 교사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부분들을 온라인을 통해서 학생들 스스로 해결한다는 점에서 사이버학급은 새로운 교육적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해석했다.

광주/글·사진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