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이 50%라는데…" 우정 사라진 '삭막한 교실'
"수업 필기내용·시험정보 공유 안해"
내신반영률 상승따라 경쟁심리 확산
“몇 개 틀렸나” 주요 국·사립대학들이 전날 2008학년도 대입 내신성적 50% 이상 확대를 핵심내용으로 하는 공동입장을 발표한 가운데 3일 서울 시내 한 여고에서 중간고사를 마친 학생들이 귀가 도중 시험문제를 맞춰보고 있다. 허정호 기자
3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의 한 고교. 중간고사 시험을 마친 학생들이 교과서와 참고서, 공책을 모두 가방에 넣고 학교를 빠져나갔다. 책을 넣을 수 있도록 개인 사물함이 있지만 체육복이나 예·체능 용품만 들어 있을 뿐 교과서와 같은 책을 넣어 놓은 학생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학교 2학년 김모양은 “내신 경쟁이 심해지면서 자기가 필기한 공책이나 교과서를 보여주지 않는 친구들이 많아졌다”며 “나도 수업 필기내용을 보여주기 싫어 사물함에 책을 넣지 않은 지 오래됐다”고 고교 교실의 ‘살풍경’을 말했다.

2008학년도 대입 전형에서 내신 반영비율이 높아지면서 학생들 사이에 필기 공책을 보여주지 않고 시험범위를 알려주는 것마저 꺼리는 등 교실 분위기가 삭막해진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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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난 2일에는 주요 국·사립대가 학생부 성적 반영비율을 50%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발표한 뒤 현재 중간고사가 진행 중인 각 고교의 분위기는 냉정하다 못해 살벌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W고 1학년에 다니는 최모군도 “중학교와 달리 고등학교에선 내신관리 때문에 수업을 충실히 듣는 학생들이 많아졌다”면서도 “경쟁심 때문에 친구 사이에 시험범위조차 서로 알려주지 않는 일도 있을 정도로 부작용도 일어나고 있다”고 교실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대해 학부모들은 경쟁으로 인해 교우관계가 훼손되는 등 학생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딸이 서울 K여고 2학년에 다닌다는 이모(46·여)씨도 “교실 내에서 사물함에 있는 교과서나 공책을 훔쳐가는 일이 가끔 일어난다고 딸이 말했다”며 “내신 경쟁 때문에 교우관계가 훼손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내신성적 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면서 교사들의 고민도 깊어졌다. 특히 중간고사를 치르는 고교의 교사들은 1점에 목을 매는 학생들 때문에 시험 관리감독과 채점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서울 H고 김모(31·여) 교사는 “수 우 미 양 가로 평가되는 과목별 평어 평가가 사라지면서 교사와 학생 모두 ‘총점보다는 석차가 우선’이라는 인식이 매우 강해졌다”며 “학생들이 한 명이라도 더 제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는 것처럼 교사들은 동점자가 나오지 않도록 시험점수를 부여할 때 소수점까지 철저히 계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교사는 이어 “특히 석차가 중요해지면서 동점자 양산을 막기 위해 문제를 어렵게 낸다”며 “결국 절반의 학생들은 평균점수 이하를 받게 돼 좌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대구 청구고 남기재 교사는 “보통 학년이 바뀐 뒤 치르는 첫 시험은 분위기가 어수선했는데, 올해는 성적 정정기간이 아닌데도 찾아오는 학생이 있는 등 시험에 임하는 학생들의 태도가 달라졌다”며 “특히 정정 문의가 많은 수행평가의 경우 1년 전에 홈페이지에 시험범위와 방법, 채점기준 등을 공지해 문의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내신반영 비율 대폭 상향조정으로 고교의 면학 분위기가 좋아지는 긍정적인 측면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서울 K고교의 한 교사는 “내신 반영률이 높아지면서 학생들 간에 교우관계가 소원해지는 등 부정적인 면이 있으나 수업시간에 졸거나 딴짓을 하는 학생들이 거의 사라지는 등 순기능적인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조풍연·김재홍 기자

jay2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