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별곡 원문해설

 

원문

해설

살어리 살어리랏다
靑山애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靑山애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널라와 시름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로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가던 새 가던 새 본다
믈아래 가던 새 본다
잉무든 장글란 가지고
믈아래 가던 새 본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이링공 뎌링공 하야
나즈란 디내와 숀뎌
오리도 가리도 업슨
바므란 또 엇디호리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어듸라 더디던 돌코
누리라 마치던 돌코
믜리도 괴리도 업시
마자셔 우니노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살어리 살어리랏다
바라래 살어리랏다
나마자기 구조개랑 먹고
바라래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가다가 가다가 드로라
에졍지 가다가 드로라
사사미 짐대예 올아셔
해금(奚琴)을 혀거를 드로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가다니 배브른 도긔
설진 강수를 비조라
조롱곳 누로기 매와
잡사와니 내 엇디하리잇고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살으리로다 살으리로다
청산에 가서 살으리로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가서 살으리로다

☞ 청산에의 귀의

 

우는구나 우는구나 새여
자고 일어나서 우는구나 새여
너보다 시름이 많은 나도
자고 일어나서 울며 지낸다

☞ 고독과 비애

 

갈던 새(밭)를 본다 갈던 새를 본다
들판에 있는 갈던 새를 본다
이끼 묻은 쟁기를 가지고
들판에 있는 갈던 새를 본다

속세에의 미련

 

이럭저럭하여
낮일랑 지내왔구나
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는
밤은 또 어찌 하리오

처절한 고독

 

어디에다 던지던 돌인가 ?
누구를 마치려던 돌인가 ?
미워할 사람도 사랑할 사람도 없이
맞아서 울고 있노라

운명적 삶

 

살으리로다 살으리로다
바다에 가서 살으리로다
나문재나 굴 조개 따위를 먹고
바다에서 살으리로다

새로운 세계 동경

 

가다가 가다가 듣노라
외딴 부엌 옆을 지나다가 듣노라
사슴이 장대에 올라가서
해금을 타는 것을 듣노라
생의 절박감

 

가더니 배부른 술독에
진한 술을 빚는구나
조롱박꽃 모양의 누룩이 매워
붙잡으니 낸들 어찌하리까
고뇌의 해소

 ● 작품 정리

* 갈래 : 고려 가요
* 작자 : 미상
* 형식 : 8연의 연장체, 3음보 (3.3.2조)
* 특징 : 유음 (ㄹ,ㅇ)을 사용하여 음악성이 두드러짐
* 주제 : 생의 고독과 비애
* 의의
..........1) <서경별곡>과 함께 고려가요 중 문학성이 가장 뛰어난 작품
..........2) 고려 시대 사람들의 생활관이 잘 나타나 있음
* 출전 : 악장가사, 시용향악보

 

● 이해하기

전 8연으로 이루어져 있는 고려 가요로, 오랫동안 구전되다가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 문자로 정착되었다. 시용향악보라는 책에 이 노래 첫 연의 악보가 실려 있는데, 원래 민간의 노래였던 것이 궁중으로 유입되어 불려지다가 문헌에 기록되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 노래에는 고려인들의 자연애, 현실 도피, 은둔 사상, 낙천성 등이 잘 드러나 있다. 화자는 현실의 생활을 벗어나 자연(청산, 바다) 속에 묻혀 살고자 하는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또 매연 마다 반복되는 후렴구가 음악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 노래에 대한 해석은 다양한데, 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해석이 대표적이다.
1) 고려 후기에 계속되는 전란을 피해 이리저리 떠돌며 정처없이 유랑하는 서민의 애상적인 처지를 노래한 것으로 보는 견해
2) 속세의 번뇌를 해소하기 위해 청산을 찾아 위안을 구하면서도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는 지식인의 술 노래로 보는 견해
3) 실연한 사람이 슬픔을 잊기 위해 현실을 도피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 노래는 산이나 바다를 찾아 외롭게 사는 민중의 애닯은 심정과 삶에 대한 비애를 읊은 내용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그 이면에는 낙천성이 엿보이기도 한다. 즉 비애와 고독을 노래한 뒤에 밝고 명랑한 후렴구를 반복함으로써, 단순힌 인생의 고통을 노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고려인의 낙천성과 강한 정신을 엿볼 수 있다는 말이다.

1연과 6연에 나오는 '청산'과 '바다'는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현실을 벗어나 고뇌를 달랠 수 있는 생의 안식처, 즉 화자의 이상향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2연에 우는 '새'는 시적 화자가 동병상련을 느끼는 존재로 화자의 감정이 이입된 것이다.

또한 3연의 '가던 새'는 '날아가는 새'로 해석하기도 하고 '갈던 밭'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잉 무든' 이끼 묻은 쟁기에서는 속세에 대한 화자의 미련을 읽을 수 있다.

또 5연의 '돌'은 방향도 목표도 없이 던져진 맹목적인 돌로서 인간의 운명적 고난을 상징한다.

7연에서 사슴이 장대 위에서 해금을 연주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것은 결국 기적 없이는 살 수 없다는 화자의 절박한 심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마지막 8연의 '강술'은 화자의 비애를 잊게 해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노래는 5연과 6연을 바꾸어 보면 1 ~ 4연과 5 ~ 8연이 대칭적 구조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징적인 표현으로 유랑인의 비애를 잘 드러낸 고려가요로, 가장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황석영이 뽑은 한국 명단편](6) 이태준 ‘달밤’ - 上
ㆍ미친년과 바보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을까?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부분

전쟁과 남북 분단은 우리 문학사를 두 동강이로 잘라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문인들의 인생과 문학을 ‘실종’시켰다.

남북 양측의 독재체제에서 내쫓겼던 그들의 문학과 삶은 다행이도 남한의 민주화 과정이 진전되면서 복원할 수 있었고, 이는 북측에 대한 직·간접적인 압력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 예로서 분단의 극복이란 ‘좌빨 타령’이나 ‘북에 가서 살라’는 폭언과 편향된 생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한의 올바른 민주주의의 실현에 의해서 획득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태준에 대하여 쓰면서 백석의 마지막 시를 인용한 것은, 이 시가 어쩌면 월북한 이태준의 말년을 빛바랜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춰주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해방되던 무렵에 신의주에 홀로 살던 백석의 흔적이 나중에 알려진 이 시로 남아 있다. 시 쓰기를 집어치우고 생계를 위하여 측량기사가 되었던 백석의 이 시에는, 시를 쓰지 않는 기간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냉혹한 현실이 드러나 있다. 이후 월북이 아니라 재북하고 있던 초기에 그가 행사시나 선동시 몇 편을 남겼다고 하여, 백석이 시인으로 되돌아갔다고 나는 인정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것이 그의 마지막 간절한 시인의 노래였던 셈이다. 해방 이후 소설가 이태준의 급진적인 변화와 월북한 뒤의 처절한 몰락은 ‘인생파’로서의 그의 소설보다 더욱 소설적인 것이었다.

이태준은 1904년 철원에서 태어나 개화당이던 부친이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여 부모가 차례로 사망하자 고아가 되어 친척 집을 전전하며 성장한다. 철원에서 소학교를 나오고 원산에서 객줏집 사환도 하다가 휘문고보에 입학했다. 상급반에 정지용 김영랑 박종화 등이 있었으며 가람 이병기가 스승이었다. 동맹휴교 주모자로 퇴학당하고 일본에서 신문·우유 배달을 하며 상지대학을 다녔고 나도향과 교유했는데 이때 단편 ‘오몽녀’를 ‘조선문단’에 투고하며 등단했다. 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하여 ‘개벽’지의 기자로 취직했으며 1930년 그의 나이 27세 때에 이화여전 음악과를 졸업한 이순옥과 결혼한다.

그는 중앙일보 학예부 기자로 일하면서 이상의 시 ‘오감도’를 신문에 발표하여 등단시켰다. 박태원 김기림 정지용 이상 등과 9인회를 구성했는데 이는 프로문학의 퇴조에 따른 것이었다. 카프의 검거 해산 뒤에 이들의 모임은 자연스레 순문학 또는 모더니즘 계열로 문단의 주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태준을 제외한 대부분의 회원들이 일제 말기로 가면서 거의 절필한 것으로 미루어 문학의 독자적 자율성이나 예술주의가 현실에 대응할 만한 방법론으로는 무력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태준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좀 덜했을지는 몰라도 일제에 협력한 흔적을 남기고 있는데, 황군위문작가단과 조선문인보국회에 이름을 올렸으며 몇 편의 친일적인 글줄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해방이 될 때까지 고향인 철원 안협에 돌아가 은거했다.

이태준이 해방이 되자마자 ‘관념적인 사회주의자’로 급진화했던 것은 아마도 무기력했던 일제말의 자신에 대한 반동 때문이었을 것이다. 1946년 3월에 발표한 ‘해방 전후’는 ‘한 작가의 수기’라는 부제가 첨부되어 있었는데, 그의 자전적이고 사소설적인 계열의 작품으로 친일에 대한 자아비판과 치열한 사상적 전환에 대한 심경이 그려져 있다.

프로문학과 모더니즘문학 운동은 출발점이 달랐지만 식민지 조선의 근대화 프로젝트였으며, 결국 모더니즘 계열의 많은 문인들이 사회주의를 선택하고 월북하게 된다. 이태준은 근대주의자이면서도 왜곡되고 타락한 식민지근대를 비판하고 그로부터 도피하면서 처사로서 보신을 했던 것인데, 이후 근대의 주요한 동력인 사회주의로 기울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행동이기도 했다. 다만 그 전환이 ‘인민’과의 생활적 실천 속에서 벌어진 것이 아니라 해방의 감격과 반성 속에서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이어서 ‘관념적’인 한계를 이미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태준은 해방공간에서 조선문학건설본부 중앙위원장이 되었고 예술동맹과 합쳐진 조선문학가동맹에서 위원장 홍명희, 부위원장 이기영·한설야 등과 함께 공동 부위원장이 되었다.

1946년 7월에 이태준은 정리할 것이 있어 삼팔선 이북이었던 고향 안협에 다녀온다며 잠적했다가 모스크바 통신에 의하여 북조선 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소련을 방문했고 연이어 평양에 체류하고 있음이 알려졌다. 그해 말에 이태준의 평양에서 보낸 소련 방문 메시지가 남한 신문에 실린다.

내가 1989년 방북했을 때 이기영 박태원 홍명희 등의 가족과 면담한 적이 있다고 썼는데, 그 외에도 월북문인들의 후일담에 대해서 내가 알고자 했던 것은 남측 문인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도 당연한 궁금증이었다. 나는 초대소에 묵었으며 지도원이 교대로 배치되었고 평양작가실에서 나온 최승칠 소설가가 동반자 겸 중간 조정자로 나와 있었다. 최승칠은 나보다 열 살쯤 연상이었고 함흥 사람으로 김일성대를 나와 노동신문 기자를 거쳐 소설가가 된 사람이었다. 내가 단언하건대 사상과 원칙의 유무를 불문하고 문인은 동업자에게 동정적이었다. 처음에는 서로 조심하였지만 기간이 오래되면서 친해지고 속내를 털어놓게 되어서 나는 제법 많은 사정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시인 이용악이 평안도 수로공사에 대한 행사시를 쓰고 별반 활동을 하지 않았던 것과 그의 아들이 화가로서 인민예술가가 되었다는 것, 백석이 아동물을 몇 편 쓴 일, 소설가 한설야가 집안에 외제 카펫을 깔고 보드카를 마시며 소련 사람들과 주말마다 파티를 했다는 둥 하는 소문이 숙청 이후에 알려졌다거나, 무용가 최승희가 남편 안막이 처형되고 벽지로 유배된 몇 해 뒤에 김일성이 보내준 쌀가마를 붙들고 통곡했다거나, 연안파 김두봉이 농장원으로 하방된 지 일년 만에 고된 노역을 못 견디고 작고하거나, 그가 박산운 시인에게서 들었다는데 정지용 시인이 경기도 북쪽 지역에서 미군기에 폭사했다는 이야기, 이태준의 말년에 대해서도 들었다. 그는 이태준이 1964년에 가까스로 복권되어 당 중앙 문화부 창작실에 배치된 이후에 만난 적이 있는데 몇 년 뒤 다시 지방으로 ‘소환’되었다는 것이다. 최승칠 소설가의 설명에 의하면 ‘소설가나 시인이 국가로부터 집과 급료를 받는데 몇 해 동안 작품을 내지 못하면 당에서 주의를 주고, 그래도 생산을 하지 못하면 전업 배치를 하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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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중·고 ‘서술형 시험’ 준비 이렇게

    올해부터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고교 학생들이 치르는 시험의 주관식 문항이 점차 서술·논술형으로 바뀌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서술·논술형 문제 단계적 확대 방안에 따른 변화다. 서울의 경우 서술형 문항 반영 비율은 올해 30%에서 2011년 40%, 2012년 50%로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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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과목 서술형 문제의 예.

    이렇게 전환하려면 수업과 평가 방식 등이 먼저 전반적으로 변해야 하지만, 현장에서는 시험 문항부터 변화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이 때문에 몇 차례 서술형 문항을 출제한 시험이 반복됐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여전히 생소하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두산동아는 ‘발문·각인 학습법’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동아백점수학교실 최상열 팀장은 21일 “발문·각인 학습법은 대화를 하면서 다양한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방식”이라면서 “서술형 문제처럼 학생들의 생각을 반영하는 답안을 요구하는 문제를 접했을 때 당황하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에 스스로 묻는 ‘발문 학습법’과 알고 있는 것을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각인 학습법’을 익히는 게 효과적이다.”라고 설명했다.

    ●평소에 서술형 대비 생각 많이 해야

    물론 과목에 따라 이 학습법을 적용하는 방식은 달라진다.

    국어와 사회 과목을 공부할 때 스스로 발문 학습법을 적용하려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서울시교육청이 배포한 서술·논술형 문항 자료집에서는 제시된 지문이나 개념을 응용해 학생들이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생각의 논리적 흐름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묻는 경우가 많다.

    국어의 경우 지문 속 지은이의 심정을 묻거나 인물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묻는 문항이 많이 출제된다. ‘시에 나오는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쓰시오.’, ‘등장 인물이 밑줄 친 내용처럼 말하고 행동한 까닭을 쓰시오.’ 등의 유형이 대표적이다.

    사회에서는 그림·표·지문 형태의 자료를 주고 이에 대한 학생 의견과 생각을 답안에 함께 작성하는 문제가 출제된다.

    예컨대 지리적 입지에 대한 지문을 보여준 뒤 ‘자연 환경의 특징과 관련해 제시된 지역에서 열릴 수 있는 행사와 이유를 쓰시오.’라고 묻는다. 평소에 “내가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살면 지금과 어떻게 다를까.”처럼 상상력을 발휘해 ‘능동적인 읽기’를 해 두면 답안을 쓸 때 당혹감을 덜 수 있다. 수학과 과학 역시 서술형 문항으로 출제양식이 바뀌면서 수학·과학적인 개념과 일상생활을 연결짓는 문항이 출제되는 빈도가 늘어났다. 직각(90도)의 개념을 묻는 문제가 예전에는 ‘직각은 숫자로 몇 도를 말하나요.’라고 출제됐다면, 이제 ‘직각이 있는 물건을 한 가지만 써 보시오.’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응용할 수 있는 범위는 거의 무한정하다.

    피자를 먹을 때 조각의 개수를 보고 ‘분수’를 떠올릴 수 있고, 사과를 칼로 쪼개면서 ‘등비수열’을 익힐 수도 있다.

    과학에서도 ‘우리 주위에서 철과 플라스틱으로 이뤄진 가위처럼 두 가지 이상의 물질로 이루어진 물체를 3가지 찾고 물체를 이룬 물질을 쓰시오.’라거나 ‘갓 태어난 강아지의 특징을 눈·이빨과 관련지어 원인과 결과로 구분하여 쓰시오.’ 등의 문제가 발굴되고 있다. 과학의 경우 여름·겨울철 실내온도 유지처럼 사회나 규범적인 문제들과 연결되는 ‘사회적인 문항’도 출제될 여지가 크다.

    ●기말 시험 전날까지 수업 집중

    서술·논술형 주관식 문항은 결국 창의적인 사고를 측정하는 쪽으로 흐르게 된다. 정해진 답이 한 개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답을 낼 수 있는 ‘열린 문항’이 출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문항들의 비중은 적은 편이다.

    한 달 남짓 남은 기말고사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출제된 문항에 대비한 학습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비상에듀의 온라인교육사이트 수박씨닷컴에서는 ▲주요 과목에 대해 간략한 핵심 노트를 만들 것 ▲기타 과목은 성격에 따라 학습법을 달리할 것 ▲시험 전날까지 학교 수업 집중력을 높일 것 등을 주문했다.

    이 가운데 과목 성격에 따라 학습법을 달리할 때에는 과목별로 지필고사와 실기시험 비율에 따라 적절하게 공부할 양을 배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필평가 점수 비중이 60~70점인 도덕의 경우 음악·미술·체육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얘기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201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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