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 100개
모임만세2 2008-01-23 오후 4:17:35 추천 0

可高可下(가고가하) - 높낮이를 가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인자(仁者)는 높은 지위에 있어도 교만하지 아니하고, 낮은 지위에 있어도 두려워하지 아니함.《國語》
家道和平(가도화평) - 집안의 법도가 온화하고 평안함.

家傳忠孝(가전충효) - 집안에 충성과 효도를 전한다. 家傳忠孝 世守仁敬.
家和泰祥(가화태상) - 집안이 화목하면 큰 상서로운 일이 있음.
竭力盡忠(갈력진충) - 힘을 다해 충성을 다함.
江深水靜(강심수정) - 강이 깊으면 물이 고요하다.
康和器務(강화기무) - 건강·화목·기량·노력.
居安思危(거안사위) - 편안히 살 때 위태로움을 생각함.《左氏傳》
擧案齊眉(거안제미) - '밥상을 눈썹 높이 든다'는 뜻으로, 아내가 예절을 다해 남편을 섬기는 것을 말함. 常荊釵布裙 每進食 擧案齊眉.《烈女傳》
健和誠最(건화성최) - 건강(한 가족), 화목(한 가정), 성실(한 생활), 최선(의 노력).
格物致知(격물치지) - 사물의 이치를 궁구(窮究)하여 온전한 앎에 이름.《大學》
見利思義(견리사의) - 이로움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함.《論語》
見月忘指(견월망지) - 달을 보기 위해서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보지 말고,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달을 보라.《잠언》
堅忍不拔(견인불발) - 굳게 참고 견디어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함.
堅忍不敗(견인불패) - 굳게 참고 견디어 지지 아니함.
敬事而信(경사이신) - 일을 공경하여 믿음 있게 한다.《論語》
敬愛和樂(경애화락) - 공경·사랑·화목·즐거움.
敬天乃孝(경천내효) - '하늘을 공경함이 곧 효'라는 말.
敬天愛人(경천애인) -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함. 敬天尊地愛人.
苦盡甘來(고진감래) -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뜻으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
恭謙克讓(공겸극양) - 공경·겸손·극기·양보.
過猶不及(과유불급) -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論語》
寬仁厚德(관인후덕) - 너그럽고 어질며 온후하고 덕스럽게.
光風霽月(광풍제월) - 비온 뒤의 맑은 바람과 밝은 달.
敎學相長(교학상장) -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함. 斅學相長(효학상장).《禮記》
口傳心授(구전심수) - 말로 전하고 마음으로 가르침.
君子九思(군자구사) - 군자는 아홉 번 또는 아홉 가지를 생각한다.《論語》에 '九思'라는 말이 나온다.
君子不器(군자불기) -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 군자는 그릇처럼 국한되지 않는다는 뜻.《論語》
捲土重來(권토중래) - '흙먼지를 일으키며 대단한 기세로 다시 온다'는 뜻으로 '한 번 실패한 사람이 힘을 가다듬어 다시 그 일에 착수한다'는 말. 杜牧(803~853)의 <題烏江亭> 詩句에서 유래.
克己復禮(극기복례) -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사욕(私慾)을 누르고 예의를 따름. 克己復禮 天下歸仁.《論語》
克己常進(극기상진) - 자기를 이기고 항상 나아간다.
勤儉和順(근검화순) - 근면·검소·화목·유순(柔順).
根深枝茂(근심지무) - 뿌리가 깊으면 가지가 무성하다. 根深枝榮. 根固枝榮.
勤者必成(근자필성) - 부지런한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
金玉滿堂(금옥만당) - 집안에 금옥이 가득함. 인재가 조정에 가득함.《道德經》
氣山心海(기산심해) - 기운은 산처럼, 마음은 바다처럼.

樂在人和(낙재인화) - 즐거움은 인심이 화합하는 데 있다. 樂在人和 福在養人. 月下 스님의 말.
樂天知命(낙천지명) - 하늘을 즐기고 명을 앎. 천명(天命)을 깨달아 즐김.《周易》
囊中之錐(낭중지추) - 원래 주머니 속에 든 송곳은 끝이 뾰쪽하여 곧 뚫고 나오는 것과 같이, 인재는 대중 속에 끼어 있어도 이내 그 재능이 드러난다는 말.《史記》
駑馬十駕(노마십가) - 둔한 말이 열흘 동안 수레를 끌고 다님. 재주 없는 사람도 노력하면 훌륭한 사람에 미칠 수 있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一駕'는 말이 수레를 달고 하루를 달리는 일. '十駕'는 10일 달리는 일.《荀子》
農者之心(농자지심) - 농사 짓는 사람의 마음.
訥言敏行(눌언민행) - 말은 어눌하게, 행동은 민첩하게. 欲訥於言而敏於行.《論語》
能忍自安(능인자안) - 능히 참았을 때 스스로 편안하다. 知足常樂, 能忍自安.

多情佛心(다정불심) - 정이 많은, 자비스러운 마음.
膽大心小(담대심소) - 담력은 크고, 마음은 섬세하게. 膽欲大而心欲小.《小學》
大器晩成(대기만성) - 큰 그릇은 늦게 됨. 크게 될 이는 오랜 공적을 쌓아 늦게 된다는 말.《道德經》
大道無門(대도무문) - 대도(大道)는 불법(佛法). 불법을 설하는 진리에는 특정한 형태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배우기 위한 특정한 방법[門]도 없음. 즉, 불법을 배우려는 뜻만 있으면 언제든, 어디서든, 어떤 방법에 의해서든 도(道)에 들어갈 수가 있다는 뜻.《正法眼藏》
大象無形(대상무형) - 큰 형상은 형태가 없다.《道德經》
大人君子(대인군자) - 도량이 넓고 덕있는 사람. 말과 행실이 바른 사람. 大人.
大人無己(대인무기) - 큰 사람은 자기가 없다. 道人不聞 至德不得 大人無己.《莊子》
大志遠望(대지원망) - 큰 뜻으로 멀리 바라보라.
大中至正(대중지정) - 크고, 치우치지 않고, 지극히 바름.
達人大觀(달인대관) - 달인은 크게 본다. 도에 통달한 사람은 사물의 전체를 관찰하여 공명정대하게 판단한다는 뜻.
德盛禮恭(덕성례공) - 덕이 많게, 예는 공손하게.
德在人先(덕재인선) - 덕이 있으면 사람을 선도한다.
德知體技(덕지체기) - 넓은 마음, 맑은 머리, 튼튼한 몸, 부지런한 손.
德必有隣(덕필유린) - 덕은 반드시 이웃이 있다. 德不孤 必有隣.《論語》
韜光養晦(도광양해) - 빛을 감추고 어둠을 기르다. 재덕(才德)을 드러내지 않고, 은거하여 덕을 기르다.
道法自然(도법자연) -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道德經》
道常無名(도상무명) - 도는 항상 이름이 없다.《道德經》

磨斧作針(마부작침)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무리 어려운 일도 계속 노력하면 해낼 수 있다는 말.《唐書》
萬古常靑(만고상청) - 영원히 변함없이 푸름. 늘 푸름.
萬事亨通(만사형통) - 모든 일이 뜻대로 잘됨.
梅經寒苦(매경한고) - 매화는 추위의 고통을 이겨낸다. 梅經寒苦發淸香.
每事盡善(매사진선) -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함.《論語》<八佾(팔일)>篇에 '盡善盡美(착함을 다하고 아름다움을 다함)'라는 말이 있음.
明鏡止水(명경지수) - 맑은 거울과 고요한 물. 맑고 고요한 마음.《莊子》
名實相符(명실상부) - 이름과 실상이 서로 부합함.
無愧我心(무괴아심) - 나의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라.
無愧於天(무괴어천) -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라. 仰不愧於天.
無念積善(무념적선) - 사심(私心)없이 선을 쌓음.
無信不立(무신불립) - 믿음이 없으면 일어설 수 없다.《論語》
務實力行(무실역행) - 참되고 실속 있도록 힘써 실행함.
無言實踐(무언실천) - 말없이 실제로 행함.
無忍不勝(무인불승) - 참지 못하면 이기지 못한다.
無慾淸淨(무욕청정) - 욕심이 없고 맑고 깨끗함. 노자의 사상.
無爲而和(무위이화) - 아무 것도 함이 없이 감화(感化)되게 함. 我無爲而民自化.《道德經》
無爲自然(무위자연) - 인위(人爲)를 가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 노자의 사상.
無意無技(무의무기) - 뜻이 없으면 기술도 없다.
無汗不得(무한부득) - 땀을 흘리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此事難知》
無汗不成(무한불성) - 땀을 흘리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
美悳傳家(미덕전가) - 아름다운 덕을 집안에 전한다. 德은 悳의 통자(通字).
敏事愼言(민사신언) - 일은 민첩하게, 말은 신중하게.《論語》


拍掌大笑(박장대소) - 손뼉을 치며 크게 웃음.
博學篤志(박학독지) - 널리 배우고 뜻을 도탑게 함.《論語》
反哺之孝(반포지효) - 까마귀 새끼가 자라서 어미새를 먹이는 효. 지극한 효의 상징.《本草綱目》
百世淸風(백세청풍) - 영원한 맑은 바람. 오랫동안 사표(師表)가 될 만한 사람을 일컬음.
百忍三思(백인삼사) - 백 번 참고 세 번 생각함.
報本之心(보본지심) - 근본에 보답하는 마음. 천지(天地)나 선조(先祖)의 은혜를 갚는 마음.
福緣善慶(복연선경) - 복은 선하고 경사로운 일에서 연유한다.《千字文》
本立道生(본립도생) - 근본이 확립되면 방법이 생긴다. 여기에서 道는 '방법'이라는 뜻.《論語》
俯仰無愧(부앙무괴) - 하늘을 우러러보나 땅을 굽어보나 한점 부끄러움이 없음.
父慈子孝(부자자효) - 어버이는 사랑하고 자식은 효도하라. 父慈子孝, 兄友弟恭.《菜根譚》
不狂不及(불광불급) -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不撓不屈(불요불굴) - 휘어지지 않고 굽히지도 않음.
鵬夢蟻生(붕몽의생) - 꿈은 붕새처럼 원대하게, 생활은 개미처럼 부지런하게.
非禮勿動(비례물동) -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 非禮勿言, 非禮勿動.《論語》

邪不犯正(사불범정) - 사악한 것은 바른 것을 범하지 못함.
射石飮羽(사석음우) - 돌을 범으로 오인하여 활을 쏘았더니, 활깃까지 박힘. 지극한 마음이면 무슨 일도 성취할 수 있음의 비유. 사석위호(射石爲虎).《史記》
思始觀終(사시관종) - 처음을 생각하며 끝을 바라봄.
事人如天(사인여천) -《천도교》한울님처럼 사람을 섬김.
思判行省(사판행성) -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고 반성하라.
事必歸正(사필귀정) -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이치로 돌아감.
山高水長(산고수장) - 산은 높고 물은 길다. 군자의 덕이 뛰어남을 비유한 말.《文章軌範》
殺身成仁(살신성인) - 목숨을 바쳐 인(仁)을 이룸.《論語》
三思一言(삼사일언) - 세 번 생각하여 한 번 말함.
三省吾身(삼성오신) - 세 가지로 내 몸을 살핌. 吾日三省吾身.《論語》* 三省 : '세 번 반성하다'로 풀이하는 이도 있음.
三忍九思(삼인구사) - 세 번 참고, 아홉 번 생각하라.
上敬下愛(상경하애) - 위로는 공경(恭敬)하고 아래로는 자애(慈愛)함.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하자'는 말.
塞翁之馬(새옹지마) - 인생의 길흉화복은 항상 바뀌어 미리 헤아릴 수가 없다는 뜻. 元나라의 승려 熙晦機의 시에 '人間萬事塞翁之馬'라는 말이 나옴.
瑞氣雲集(서기운집) - 상서로운 기운이 구름처럼 모이다.
瑞氣集門(서기집문) - 상서로운 기운이 모이는 문.
先公後私(선공후사) - 공사(公事)를 먼저 하고 사사(私事)를 뒤에 함.《十八史略》
先事後得(선사후득) - 일을 먼저 하고 얻는 것을 뒤로 함.《論語》
先手必勝(선수필승) - 남보다 앞서면 반드시 승리한다. '나카노리 효타다시'의 생활 신조.
善始善終(선시선종) - 처음이나 끝이나 한결같이 잘함.
先憂後樂(선우후락) - 먼저 근심하고, 나중에 즐거워함. 先義後利. 范仲淹(989-1052)의《岳陽樓記》에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천하의 근심보다 먼저 근심하고 천하의 즐김보다 나중에 즐긴다)'이라는 말이 나옴.
先正其心(선정기심) -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라. 欲修其身者, 先正其心.《大學》
先行後言(선행후언) - 먼저 행하고 뒤에 말하라.
誠勤是寶(성근시보) - 성실과 근면이 곧 보배다.
成實在勤(성실재근) - 성공의 열매는 부지런함에 있다.
誠心誠意(성심성의) - 참되고 정성스러운 뜻과 마음.
誠意正心(성의정심) - 뜻을 성실하게 하여 마음을 바르게 함.《大學》
少言多行(소언다행) - 말은 적게, 행동은 많이
少慾知足(소욕지족) -《불》적은 것과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알라.
首邱初心(수구초심) - 여우가 죽을 때에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두고 죽는다는 말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근본을 잊지 않는 마음을 비유한 것.《禮記》
修己治人(수기치인) - 자기를 수양하여 남을 다스림. 유학의 핵심 명제.
壽福康寧(수복강녕) - 장수하고 행복하며 건강하고 평안함.
壽山福海(수산복해) - 산처럼 오래 살고 바다처럼 복을 많이 받음.
修身齊家(수신제가) - 심신을 닦고 집안을 정제(整齊)함. 修身齊家治國平天下.《大學》
水滴石穿(수적선천) -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는 뜻으로, 작은 것들이 모여 결국 큰 일이 된다는 말.
水滴成川(수적성천) - 물방울이 쌓여 내를 이룸. 積小成大.
熟慮斷行(숙려단행) - 곰곰이 생각하여 과감히 실행함.
夙興夜寐(숙흥야매) - 일찍 일어나고 밤 늦게 잠.夙興夜寐 勿懶讀書.《四字小學》
崇德廣業(숭덕광업) - 덕을 높여 일을 넓힘.《周易》
崇祖愛族(숭조애족) - 조상을 높이고 겨레를 사랑함.
習勤忘勞(습근망로) - 근면함을 익히면 피로함을 잊는다.
始終如一(시종여일) -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음. 終始如一.
始終一貫(시종일관) -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함. 終始一貫. 首尾一貫.
信心直行(신심직행) - 마음에 옳다고 믿는 바대로 곧바로 행동함.
信愛忍和(신애인화) - 믿음·사랑·인내·화목.
實事求是(실사구시) - 사실에 입각하여 진리를 탐구함.《後漢書》
心安如海(심안여해) - 마음이여, 바다같이 평안하라.
身言書判(신언서판) - 몸·말씨·글씨·판단. 중국 당나라 때의 관리 등용 기준.
深思高擧(심사고거) - 깊은 생각, 고상한 행동. 何故深思高擧, 自見放. 屈原의 <漁父辭>.《楚辭》
深思敏行(심사민행) - 깊은 생각, 빠른 행동
心身健康(심신건강) - 몸 튼튼, 마음 튼튼
心淸高志(심청고지) - 마음은 맑게, 뜻은 높게
心淸事達(심청사달) - 마음이 맑으면 일이 잘됨.
心平氣和(심평기화) - 마음이 평온하여 기가 잘 통함. 심기를 평화롭게 함.

安分知足(안분지족) - 편안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을 앎.
安貧樂道(안빈낙도) -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평안한 마음으로 도(道)를 즐김.
愛之實踐(애지실천) - 사랑의 실천.
養德遠害(양덕원해) - 덕을 기르고 해를 멀리 함.
語愛顔慈(어애안자) - 사랑스런 말, 인자한 얼굴.
抑强扶弱(억강부약) - 강자는 누르고 약자는 도와줌.
言辭安定(언사안정) - 말을 안정되게 함. 容止若思 言辭安定.《千字文》
言行一致(언행일치) - 말과 행동이 똑같음. 말짓일치.
易地思之(역지사지) - 처지를 바꾸어 생각함.
吾唯知足(오유지족) -《불》나는 오직 만족할 줄을 앎.
溫故知新(온고지신) -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앎.《論語》<爲政>篇에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라고 했음.
外柔內剛(외유내강) - 겉은 부드러우나 속은 굳셈.
愚公移山(우공이산) - 원래 '어리석은 영감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쉬지 않고 꾸준하게 한 가지 일만 열심히 하면 결국 큰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말.《列子》
運數大通(운수대통) - 인간의 천운(天運)과 기수(氣數)가 크게 트임.
元亨利貞(원형이정) - 건(乾)의 사덕(四德). 크고 형통하고 이롭고 곧게.《周易》
有備無患(유비무환) - 준비하면 걱정할 것이 없음.《書經》
流水不腐(유수불부) -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呂氏春秋》
有始有終(유시유종) - 처음이 있고 끝도 있다. 시작한 일을 끝까지 마무리한다는 말.
唯我獨尊(유아독존) -《불》우주만물 중에서 내가 가장 존엄한 존재라는 뜻. 天上天下唯我獨尊.
悠悠自適(유유자적) - 느긋하게 마음대로 삶.
有志竟成(유지경성) - 뜻이 있으면 마침내 이루어진다. 有志者事竟成.《後漢書》
殷鑑不遠(은감불원) - 은나라의 거울은 먼 데 있지 않다는 뜻으로, 남의 실패를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는 말.《詩經》
陰德陽報(음덕양보) - 남 모르게 덕을 베풀면 남이 알게 복을 받는다. 有陰德者必有陽報.《淮南子》
里仁爲美(이인위미) - 어질게 사는 것을 아름다움으로 여김.《論語》
仁德智交(인덕지교) - 어질고, 덕스럽고, 슬기롭고, 더불어 살라.
仁愛恭儉(인애공검) - 어질고, 사랑하고, 공손하고, 검소하라.
仁義禮智(인의예지) - 어짊과 의로움과 예의와 지혜.《孟子》
人一己百(인일기백) - 남이 한 번 하면 나는 백 번 함.
仁者無敵(인자무적) - 어진 사람은 적이 없다.《孟子》
忍中有和(인중유화) - 인내 속에 화목이 있다. 百忍堂中有太和.
忍之爲德(인지위덕) - 참는 것이 덕이 된다.
一刻千金(일각천금) - 극히 짧은 시간도 천금의 값어치가 있다는 뜻. 蘇東坡의 <春夜行>
一諾千金(일난천금) - '한 번 승낙한 말은 값이 천금이 된다'는 뜻으로 '약속을 중히 여김'을 이르는 말.
一念通天(일념통천) - '한마음으로 노력하면 하늘도 감동'되어 성취할 수 있다는 말.
一忍百樂(일인백락) - 한 번 참으면 백 번 즐겁다.
一日三省(일일삼성) - 하루에 세 가지 또는 세 번을 반성함. 三省吾身.《論語》
一心同體(일심동체) - 한 마음 한 몸. 굳게 결합함.
一生懸命(일생현명) - 한 생애 목숨을 걺. 아주 열심히 함. 일본어 '잇쇼겐메이(いっしょうけんめい)'.
日善日創(일선일창) - 하루에 한 가지의 선행과 하루에 한 가지의 창의.
一水四見(일수사견) - 한 가지 물도 네 가지로 보임. 같은 물이라도 천상의 사람이 보면 유리로 장식된 보배로 보이고, 인간이 보면 마시는 물로 보이고, 물고기가 보면 사는 집으로 보이고, 아귀가 보면 피고름으로 보인다는 말.《法華經》
一心萬能(일심만능) - 한마음으로 하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음.
一心正念(일심정념) - 한마음 바른 생각. 무슨 일이든 한마음이 되어 하게 되면 안 될 일이 없음을 이르는 말.
一日一善(일일일선) - 하루에 한 가지 선행.
一以貫之(일이관지) -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것을 꿰뚫음.《論語》
日進月步(일진월보) - 날로 달로 끊임없이 나아감.
日就月將(일취월장) - 날로 달로 진보함.
一行三昧(일행삼매) - 법계(法界) 연을 묶고[繫緣] 있는 것. 반야바라밀에 의한 진여평등(眞如平等)과 칭명(稱名)에 의해 부처님을 보는 삼매를 가리킨다.《文殊說般若經》
立身揚名(입신양명) - 출세하여 이름을 들날림.

自彊不息(자강불식) - 스스로 굳세어 쉬지 않음.《周易》
自求多福(자구다복) - 많은 복은 스스로 구해야 한다.《詩經》
慈悲無敵(자비무적) - 자비로우면 적이 없다.
自勝者强(자승자강) - 자기를 이기는 것을 强이라 한다. 知人者智, 自知者明, 勝人者有力, 自勝者强.《道德經》
慈顔愛語(자안애어) - 자비로운 얼굴, 사랑스런 말.
自重自愛(자중자애) - 제 몸을 소중히 여기고 스스로 사랑함.
積德爲福(적덕위복) - 덕을 쌓으면 복이 된다.
積德種善(적덕종선) - 덕을 쌓고 선을 널리 행함.
積小成大(적소성대) - 작은 것을 모아 큰 것을 이룸. 티끌 모아 태산. 積塵成山.《荀子》
正道無憂(정도무우) - 바른 길로 가면 근심이 없다.
正道無敵(정도무적) - 바른 길이면 적이 없다.
正道正行(정도정행) - 바른 길, 바른 행동.
正善如流(정선여류) - 바르고 착함은 물이 흐르는 것과 같다.
正心大道(정심대도) - 바른 마음, 큰 길
正心修己(정심수기) -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음.
正心修德(정심수덕) - 마음을 바르게 하고 덕을 닦음.
正心正行(정심정행) - 바른 마음, 바른 행동.
正正堂堂(정정당당) - 태도나 수단이 바르고 떳떳함.
諸行無常(제행무상) -《불》우주 만물은 항상 변전(變轉)하여 잠시도 상주(常住)함이 없음.《俱舍論》
切磋琢磨(절차탁마) - 뼈를 자르고[切], 상아를 갈며[磋], 옥을 쪼고[琢], 돌을 갊[磨]. '학문과 덕행을 힘써 닦음'의 비유. 如切如磋如琢如磨.《詩經》
中正仁義(중정인의) - 중용(치우치지 않음)·바름·어짊·의로움.《近思錄》
志石心鏡(지석심경) - 뜻은 돌처럼 굳게, 마음은 거울처럼 맑게
至誠感天(지성감천) - 지극한 정성은 하늘을 감동하게 함.
至誠無息(지성무식) - 지극한 정성은 쉬는 일이 없다.《中庸》
止於至善(지어지선) - 지극한 선에 머물러 있음. 대학의 삼강령(三綱領 : 明明德, 親民, 止於至善) 중의 하나.《大學》
至仁無親(지인무친) - 지극한 어짊은 친소(親疏)의 구별이 없다.
知足不辱(지족불욕) -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다. 知足不辱, 知止不殆.《道德經》
知足常樂(지족상락) - 만족할 줄 알면 항상 즐겁다.《道德經》
知足者富(지족자부) -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부자다.《老子》
知行合一(지행합일) - 지식과 행위는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라는 뜻으로, 명나라 왕양명(王陽明)의 학설. 주자(朱子)의 ‘선지후행(先知後行)’설에 대한 반대 개념.
眞心盡力(진심진력) - 참마음으로 있는 힘을 다함.
眞心出死(진심출사) -《불》참마음은 생사를 초월함.

責任完遂(책임완수) - 맡아서 해야 할 일을 다함.
處變不驚(처변불경) - 변을 당해도 놀라지 아니함.
處染常淨(처염상정) - 더러운 곳에 처하여도 항상 깨끗함. 연꽃의 상징.
天道無親(천도무친) - 하늘의 도는 친소(親疏)의 구별이 없다. 天道無親 常與善人.《道德經》
川流不息(천류불식) - 냇물은 흘러 쉬지 않는다. 군자의 덕을 비유한 말. 川流不息 淵澄取映.《千字文》
天長地久(천장지구) - 하늘과 땅은 길고 오래다.《道德經》
天天想新(천천상신) - 날마다 새롭게 생각하라.
天下泰平(천하태평) - 걱정·근심없이 크게 평안함.
淸廉潔白(청렴결백) - 마음이 맑고 깨끗함.
淸心正行(청심정행) - 맑은 마음, 바른 행동.
淸香滿堂(청향만당) - 맑은 향기가 집안에 가득함.
初志一貫(초지일관) - 처음의 뜻을 끝까지 관철함.
寵辱不驚(총욕불경) - 총애(寵愛)나 치욕(恥辱)에도 놀라지 않음.《菜根譚》
春華秋實(춘화추실) - 봄의 꽃과 가을의 열매. 문사(文辭)와 덕행(德行)의 비유.《顔氏家訓》
忠信篤敬(충신독경) - (말은) 참되고 미덥게 하고, (행동)은 도탑고 공손히 하라. 言忠信行篤敬.《論語》
忠禮傳家(충예전가) - 충성과 예의를 가정에 전함.
忠孝敬睦(충효경목) - 충성·효도·공경·화목. 晉州鄭氏 宗訓.

他山之石(타산지석) - 다른 산에서 나는 거친 돌도 자기 옥(玉)을 가는 데 소용이 됨. 남의 하찮은 언행도 나의 지덕(知德)을 연마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 他山之石 可以攻玉.《詩經》
擇善固執(택선고집) - 선을 택하여 굳게 지킴. 誠之者, 擇善而固執之者也.《中庸》
擇言篤志(택언독지) - 말은 골라 하고, 뜻은 돈독하게 함. 擇言篤志, 所以居業也.《近思錄》

破邪顯正(파사현정) -《불》사도(邪道)를 깨뜨리고 정도(正道)를 나타냄.《三論玄義》
丁解牛(포정해우) - 솜씨가 뛰어난 포정(요리인)이 소의 뼈와 살을 발라낸다는 뜻으로, '기술이 아주 뛰어남'을 칭찬하는 말.《莊子》
被褐懷玉(피갈회옥) - 누더기를 입고 옥을 품고 있음. 재덕을 깊이 감추고 드러내지 않음의 비유. 知是以聖人被褐懷玉.《道德經》

學行一致(학행일치) - 배움과 행함이 꼭 맞음.
恒産恒心(항산항심) - 변치 않는 재산이 있으면 변치 않는 마음이 있다.《孟子》
香遠益淸(향원익청) - 향기는 멀리 갈수록 맑음을 더함.
向學立志(향학입지) - 학문을 향하여 뜻을 세움.
虛心平意(허심평의) - 마음을 비우고 뜻을 평안히 함. 애증호오(愛憎好惡)가 없는 공평무사한 태도를 이름.
虛心合道(허심합도) - 마음을 비워 도에 합치함. 虛心合道, 爾療病.《東醫寶鑑》
螢雪之功(형설지공) - 여름에는 반딧불, 겨울에는 눈빛에 비추어 글을 읽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말로, 애써 공부한 보람.《晉書》
虎視牛行(호시우행) - 범처럼 보고, 소처럼 행하다.
浩然之氣(호연지기) -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 있는 크고 굳센 원기(元氣). 곧 도의에 뿌리를 박고 공명정대하여 조금도 부끄러울 바 없는 도덕적 용기.《孟子》
弘益人間(홍익인간) - 널리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함. 단군(檀君)의 건국이념.《三國遺事》
和氣滿堂(화기만당) - 온화한 기운이 집에 가득함.
禍福無門(화복무문) - 화복이 오는 문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뜻으로, 각자가 행한 선악(善惡)에 따라 화와 복을 받는다는 말.
和信家樂(화신가락) - 화목하고 믿음이 있으면 집안이 즐겁다.
和義淸正(화의청정) - 화목·의리·맑음·바름.
和而不同(화이부동) - 화합하나 뇌동(雷同)하지 않음. 和而不流.《論語》
孝友文行(효우문행) - 효도·우애·학문(學文)·행동.
孝忍知愛(효인지애) - 효도·인내·지식·사랑.
孝悌忠信(효제충신) - 효도·우애·충성·신의. 仁義禮智 孝悌忠信.
斅學相長(효학상장) -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함. 敎學相長.《王陽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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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읽기 NO 6

장 지오노 나무를 심는 사람

한 인간이 참으로 보기 드믄 인격을 갖고 있는가를 발견해내기 위해서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만 한다. 그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한 잊을 수 없는 인격과 마주하는 셈이 된다.

약 40여 년 전이었다. 나는 여행자들에게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고원지대를 오래오래 걸어서 올라 다니곤 했다. 그 고지는 프로방스 지방으로 뻗은 알프스 산맥위의 아주 오랜 고장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지역은 동남쪽과 남쪽으로는 시스떼롱과 미라보 사이에 있는 뒤랑스 강의 중류를 경계로 하고, 북쪽으로는 드롬강의 원천으로부터 디에까지 이르는 강의 상류를 끝으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꽁따 브네쌩 평원과 방뚜산의 지맥이 그 끝이었다. 그곳은 바스(낮은) 알프스 지방의 북부 전부와 드롬강의 남쪽 및 보끌뤼즈 지방의 일부 작은 지역에 걸쳐 있었다.

어느 날 나는 고도 1200-1300미터의 인적 없고 단조로운 곳에서 긴 산책에 나섰는데, 이곳은 야생 라벤더 외에 자라고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였다. 나는 폭이 가장 넓은 곳으로 이 지역을 가로질러 걸었다. 사흘을 걸은 뒤 나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황폐한 지역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뼈대만 남은 버려진 마을 옆에서 야영했다. 폐허가 되어 있기는 하지만 낡은 말 벌통처럼 촘촘하게 붙어 있는 집들을 보니 옛날엔 이곳에 샘이나 우물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과연 샘이 있긴 했지만 바싹 말라붙어 있었다. 지붕이 없어져버리고 비바람에 사그러진 대 여섯 채의 집들, 종탑이 무너져버린 작은 교회는 마치 사람들이 사는 마을 속의 집이나 교회처럼 서 있었다. 그러나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그 날은 햇빛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유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이었다. 그러나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이 고지 위에, 따가운 햇살을 피할 곳 없는 땅 위에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난폭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뼈대만 남은 집들 속으로 불어 닥치는 바람 소리는 마치 식사를 방해받은 야수가 부르짖는 소리 같았다. 나는 캠프를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서부터 다섯 시간이나 더 걸어 보았어도 여전히 물을 찾을 수 없었고, 또 물을 찾으리라는 희망을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방이 똑같이 모두 메말라 있었고 거친 풀들만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저 멀리에서 검은 작은 그림자가 서 있는 모습이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실루엣을 홀로 서 있는 나무의 둥치로 착각했다. 어쨌든 나는 그것을 향해 걸어갔다. 그것은 한 양치기 목자였다. 그의 곁에, 불타는 듯한 뜨거운 땅 위에는 30여 마리의 양들이 누워 쉬고 있었다.

그는 물병을 꺼내 내게 물을 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고원의 우묵한 곳에 있는 양의 우리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는 간단한 도르래를 설치해 놓고 깊은 천연의 우물에서 아주 좋은 물을 긷고 있었다. 그 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고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이지만, 그러나 자신감이 있고 확신 속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모든 것을 빼앗겨버린 이런 곳에 그런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그는 오두막이 아니라 돌로 만든 제대로 된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 집은 그가 이곳에 왔을 때 발견한 폐가를 어떻게 혼자 힘으로 수리해 놓았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었다. 지붕은 튼튼했고 물새는 곳도 없었다. 바람이 지붕을 두드려 기와 위에서 내는 소리가 마치 바닷가의 파도소리 같았다.

살림살이는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릇은 깨끗하게 씻겨 있었고 마루는 잘 닦여 있었으며 총은 반질반질했다. 불 위에는 수프가 끓고 있었다. 그 때 나는 그 역시 산뜻하게 면도한 얼굴을 하고 있고, 옷에 단추가 단단히 달려 있으며, 기운 것이 눈에 보이지 않게 옷이 세심하게 수선돼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수프를 나누어 주었다. 식사 후 담배쌈지를 권하자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개 또한 주인처럼 조용했으며 거칠지 않고 상냥했다.

내가 여기서 그날 밤을 묵어야 한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가장 가까운 마을이라도 하루 하고 반 이상을 더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지역에는 마을들이 거의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곳 고지대의 기슭에는 서로 떨어진 너 댓 개의 촌락이 흩어져 있을 뿐이었는데, 그 마을들은 차가 다니는 길의 맨 끝에, 떡갈나무 숲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엔 숯을 만드는 나무꾼들이 살고 있었다.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곳이었다. 여름에도 겨울만큼이나 날씨가 혹독한 곳에 촘촘하게 모여 살면서 모든 가정들은 닫힌 세계 속에서의 이기심만을 키워 가고 있었다. 분별없는 야심은 이곳을 벗어나려는 끊임없는 욕망 속에서 정상을 벗어난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남자들은 트럭으로 시내에 숯을 운반하러 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아무리 굳센 품성을 지닌 사람일지라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실망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버리곤 했다. 여인들은 또한 가지가지 원한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놓고 경쟁했다. 숯을 파는 것을 놓고, 교회의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미덕들을 놓고, 악덕을 놓고, 그리고 선과 악이 뒤엉클어진 것들을 놓고 끊임없이 경쟁했다. 게다가 바람 또한 쉬지 않고 신경을 자극했다. 그래서 자살이, 그리고 거의 언제나 죽음으로 몰고 가는 정신병들이 전염병처럼 번졌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그 목자는 조그만 자루를 찾아 들고 와서 도토리 한 무더기를 테이블 위에 쏟아 놓았다. 그는 그 도토리 하나하나를 아주 주의 깊게 조사하기 시작하더니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따로 구별했다. 나는 파이프 담배를 피워 물었다. 도와주겠다고 했으나 그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가 이 일에 기울이는 정성을 보고 나는 더 고집할 수 없었다. 우리의 대화는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아주 굵은 도토리 한 무더기를 모으더니 그것들을 열 개씩 세어 묶음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작은 것이거나 조금이라도 금이 간 것들을 제쳐놓았다. 더 자세히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해서 완벽한 상태의 도토리가 백 개 모아졌을 때 그는 일을 멈추었고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평화가 있었다. 다음날 나는 그의 집에서 하루 종일 쉴 수 있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는 그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것도 그를 방해할 수 없다는 인상을 나는 받았다. 그 휴식이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호기심을 느꼈고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그는 양떼를 꺼내어 풀밭으로 데리고 갔다. 떠나기 전에 그는 세심하게 골라 개수를 세어 모은 도토리 자루를 물 양동이에 담갔다.

나는 그가 지팡이 대신 대략 길이가 1.5미터 정도 되고 엄지손가락만큼 굵은 쇠막대기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산책하며 쉬며 그가 간 길을 나란히 따라갔다. 양들의 목장은 작은 골짜기 아래에 있었다. 그는 작은 양떼를 개가 돌보도록 맡기고는 내가 서 있는 것을 향해 올라왔다. 나의 무례함을 꾸짖으러 오는 것 같아 두려웠으나 전혀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가는 길이었다. 그는 내게 달리 할 일이 없으면 자기를 따라 오라고 청했다. 그는 거기서 산등성이를 향해 200미터를 더 올라갔다.

그가 가려고 한 곳에 이르자 그는 땅에 쇠막대기를 박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구멍을 만들어 그 안에 도토리를 넣고 다시 구멍을 덮었다. 그는 떡갈나무를 심고 있었다. 그곳이 그의 땅인지 나는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그 땅이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는 것일까? 그는 모르고 있었다. 그저 그곳이 공유지이거나 아니면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겠느냐고 추측하고 있었다. 그는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알아볼 생각이 없었다. 그는 아주 정성스럽게 백 개의 도토리를 심었다.

그리고 점심 식사 후 그는 다시 도토리 고르는 일을 시작했다. 그는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 주었으므로 나는 그에게 여러 가지를 끈질기게 물어보았다고 생각한다. 3년 전부터 그는 이런 식으로 고독하게 나무를 심어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십만 그루의 도토리를 심었다. 십만 개의 씨에서 2만 그루의 싹이 나왔다. 그러나 산짐승들이 나무를 갉아먹거나 예측할 수 없는 신의 섭리에 속한 일들이 일어날 경우, 이 2만 그루 가운데 또 절반가량이 죽어버릴 것이라고 그는 예상했다. 그렇게 되면 예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이 땅에 1만 그루의 떡갈나무가 살아남아 자라게 될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그의 나이가 궁금했다. 그는 분명히 50세가 넘어 보였다. 55세라고 했다. 이름은 엘제아르 부피에였다. 지난 날 그는 평지에 농장 하나를 갖고 있었고 그곳에서 인생을 가꾸며 살았다.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었고 뒤이어 아내를 잃었다. 그 후 그는 고독 속에 물러 앉아 양들과 개와 더불어 한가롭게 살아가는 것을 기쁨으로 알게 되었다. 그는 나무가 없기 때문에 이 곳의 땅이 죽어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달리 중요한 일거리도 없었으므로 이런 상태를 개선해 보기로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그 때는 나 역시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독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고독한 사람들의 영혼에 섬세하게 접근할 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정확히 말해서 내 젊은 나이는 나 자신과 관련지어서만, 그리고 어떤 행복의 추구만을 염두에 두고 미래를 상상케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삼십년 후면 1만 그루의 떡갈나무가 아주 멋진 것이 될 것이라는 말을 하고 만 것이다. 그는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다. 만일 삼십년 후에도 하느님이 그에게 생명을 주신다면 그 동안에도 나무를 아주 많이 심을 것이기 때문에 이 1만 그루는 바다 속의 물방울 같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벌써부터 너도밤나무를 번식시키는 것을 연구해오고 있으며 그의 집 근처에 이 나무의 열매에서 길러낸 묘목원을 갖고 있었다. 울타리를 세워 양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잘 보호해 놓은 묘목들, 즉 그의 연구 재료들은 아주 아름다웠다. 그는 또한 지면에서 몇 미터 지하에 어느 정도 습기가 고여 있을 것 같은 땅에는 자작나무를 심으리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다음날 우리는 헤어졌다.

다음해 1914년에 전쟁이 일어나 나는 5년 동안 이 전쟁에 참가했다. 나는 한낱 보병 병사의 몸이었으므로 나무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할 수 없었다. 진실을 말한다면 그런 일 자체는 나에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나는 그것을 하나의 화제 거리라든가 우표수집 같은 것으로 여겼고 잊어버리고 있었다. 전쟁에서 벗어났을 때 나는 아주 적은 액수의 보너스를 받았으며, 신선한 공기를 조금이라도 마시고 싶은 강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았다. 인적 없는 그 황무지로 가는 길을 다시 찾아 들었을 때 나에게는 그런 바람 이외에는 다른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곳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폐허가 된 마을 너머 멀리에서 무슨 회색빛 안개 같은 것이 카페트처럼 산등성이를 덮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실 난 여기 오기 전날부터 나무를 심던 그 목자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1만 그루의 떡갈나무라면 꽤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거야.”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지난 5년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엘제아르 부피에 역시 죽었으리라고 쉽게 상상했다. 게다가 20대의 나이에는 50대의 인간들이란 죽는 것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는 늙은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어서 더욱 그러했다. 그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아주 활력이 넘쳐 보였다. 그는 생업도 바꾸었다. 양들을 네 마리만 남기고 대신 100여 개의 벌통을 갖고 있었다. 그는 어린 나무들을 위협하는 양들을 치워버린 것이다. 그동안 그는 전혀 전쟁 때문에 불안을 느끼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확인했다. 그는 태연하게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무를 계속 심었던 것이다.

1910년에 심은 떡갈나무들은 그때 10살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무들은 나보다, 그리고 엘제아르 부피에보다 더 높이 자라 있었다. 그것은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문자 그대로 말문이 막혔다. 엘제아르 부피에도 말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침묵 속에서 그가 키워놓은 숲을 산책하며 하루를 보냈다. 숲은 세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가장 폭이 큰 것은 11킬로미터나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오로지 아무런 기술적인 장비도 가지지 못한 한 인간이 손과 영혼에서 나온 것임을 기억할 때마다 나는 인간이란 파괴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는 하느님처럼 유능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그는 자기 생각을 꾸준히 실천해 가고 있었다. 내 어깨 높이에 와 닿는 너도밤나무들이 눈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광경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떡갈나무는 빽빽이 자라 있었고, 들짐승에게 갉아 먹혀 피해를 입는 나이를 넘어서 있었다. 신이 자기의 이 피조물을 파괴하려는 섭리를 갖고 있다면 앞으로는 태풍에게나 도움을 청해야 할 것이다.

그는 또 감탄할 만큼 잘 가꾼 자작나무 숲을 보여주었다. 5년 전, 그러니까 1915년 내가 베르덩 전투에서 싸우던 시기에 심은 나무들이었다. 밑에 습기가 있으리라고 정확하게 짐작했던 모든 땅에 그는 자작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자작나무들은 젊은이 같이 부드러웠고 아주 단호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창조란 연달아서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하지만 엘제아르 부피에는 그런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주 단순하게 자신의 일을 고집스럽게 추구할 뿐이었다. 마을로 다시 내려왔을 때 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늘 말라붙어 있던 시내에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주 오랜 옛날 어느 때는 이 말라붙었던 시내에 물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내가 이 이야기를 시작할 때 소개했던 쓸쓸한 마을들 가운데 몇몇은 옛 갈로 로망의 터전 위에 세워져 있었는데 아직도 그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한때 고고학자들이 와서 이 곳을 파헤쳤고, 그들은 여기에서 낚시 바늘을 찾아내곤 했다. 그러나 20세기에는 약간의 물을 얻기 위해서도 저수통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바람도 몇 가지 씨앗들을 흩어 놓았다. 그래서 물이 다시 나타나자 그와 함께 버드나무가, 골풀이, 풀밭이, 정원이, 꽃들이, 그리고 삶의 이유 같은 것들이 되살아났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는 아주 천천히 일어났기 때문에 습관처럼 익숙해져서 아무런 놀라움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산토끼나 멧돼지들을 잡으려고 외롭게 산을 타는 사냥꾼들은 작은 나무들이 많이 번식하고 있는 것을 분명히 확인했으나 그것은 그저 땅이 자연스럽게 부리는 변덕 탓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아무도 이 사람의 일에 간섭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에게 의심을 두었다면 그들은 그에게 반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는 의심을 느끼게 할 만한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훌륭하고 고귀한 그의 인격 속에 이처럼 끈질긴 고집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과 관리들 가운데 누가 상상인들 할 수 있었겠는가?

1920년 이래 나는 1년에 한 번씩은 엘제아르 부피에를 방문했다. 그동안 그가 좌절하거나 회의에 빠지는 것을 나는 전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하느님 자신은 그를 그런 어려움 속으로 종종 밀어 넣었던 것을 아실 것이다. 나는 그가 겪었을 곤란에 대해서는 헤아려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 같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역경과 싸워 이겨내야 했을 것이고, 그러한 열정이 확고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절망과 싸워야 했을 것이라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는 1년 동안에 1만 그루가 넘는 단풍나무를 심었는데 모두 죽어버린 일도 있었다. 그래서 그 다음 해가 되자 그는 단풍나무를 포기하고 너도밤나무를 다시 심었으며, 그리하여 떡갈나무들보다 더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런 보기 드믄 인격을 가진 사람을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우리는 그가 철저한 고독 속에서 일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너무나도 완전한 고독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생의 마지막 시기에는 말하는 습관을 잃어버리기까지 했다. 아니, 어쩌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1933년 엘제아르 부피에는 깜짝 놀란 산림관리인의 방문을 받았다. 이 관리는 <천연> 숲의 성장을 위태롭게 할까 두려우니 집밖에서 불을 피우지 말라는 명령을 이 목자에게 통고했다. 그 관리는 순진하게도 숲이 스스로 혼자 커가는 것은 생전 처음 본다고 말했다.

그 시기에 엘제아르 부피에는 집에서 1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너도밤나무를 심으로 가곤했다. 그때 그는 이미 75세였기 때문에 매일 오고 가는 수고를 덜기 위해 나무 심는 바로 그 장소에 오두막 돌집을 하나 지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다음 해에 그 집을 지었다.

1935년에는 정부의 진짜 대표단이 <천연의 숲>을 시찰하러 왔다. 산림수자원청의 고위관리와 국회의원, 전문가들도 함께 왔다. 그들은 쓸데없는 말들을 많이 했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하기로 결정했는데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단 한 가지 유익한 일을 제외하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즉 숲을 국가의 관리 아래 두고 사람들이 숯을 만들러 오는 일을 금지한 것이다. 그들 역시 건강이 넘치는 젊은 나무들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아름다운 숲은 국회의원에게까지도 유혹의 힘을 발휘한 것이다.

대표단의 산림관리관들 가운데 내 친구가 한 사람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이 숲의 비밀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 주 어느 날 우리 두 사람은 엘제아르 부피에를 찾아갔다. 우리는 대표단이 시찰한 지점에서 2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한참 일하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그 산림관리관은 쓸모없는 친구가 아니었다. 그는 가치 있는 것을 알아볼 줄 알았고 침묵할 줄도 알았다. 우리 셋은 함께 점심 식사를 했고 말없이 경치를 바라보면서 몇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지나온 언덕 길은 6-7미터 높이의 나무들로 뒤덮혀 있었다. 1913년에 보았던 이곳의 모습이 생각났다. 황무지가 떠올랐다...

평화롭고 규칙적인 일, 고산지대의 살아 있는 공기, 소박한 음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혼의 평화가 이 노인에게 거의 장엄하리만큼 훌륭한 건강을 주었다. 그는 하느님의 운동선수였다. 나는 그가 아직도 얼마나 많은 땅을 나무로 덮을 것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떠나기 전에 내 친구는 이곳의 토양에 알맞을 것 같은 몇몇 나무 종류에 관해 간단하고 짧게 제안했다. 그러나 그것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내 친구는 나중에 “그는 그런 것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다”고 나에게 말했다. 한 시간쯤 걸은 뒤에 생각이 떠오른 듯 친구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는 나무에 대해 그 어느 누구보다 훨씬 많이 알아. 그는 행복할 수 있는 멋진 방법을 발견한 사람이야.”라고. 이 산림관리관 덕분에 숲만이 아니라 엘제아르 부피에의 행복도 보호받을 수 있었다. 내 친구는 숲을 보호하기 위해 세 명의 산림관리인을 임명했고 이들에게 몹시 겁을 주어서 나무꾼들이 아무리 뇌물을 가져다 준다 하더라도 흔들림 없이 일할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엘제아르 부피에의 작품이 심각한 위험을 맞았던 것은 1939년에 일어난 2차세계대전 때였다. 그 당시에는 적지 않은 자동차들이 목탄 가스로 움직였기 때문에 가스연료를 만들어 내기 위해 나무들이 항상 모자랐다. 그래서 사람들은 1910년에 심은 떡갈나무부터 베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행이도 이 지역들은 모두 도로망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런 계획은 재정적으로 비경제적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포기했다. 그러나 그 목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는 그곳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평화롭게 자기 일만을 묵묵히 하고 있었다. 그는 1914년의 전쟁을 몰랐던 것처럼 1939년의 전쟁 역시 모르고 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엘제아르 부피에를 본 것은 1945년 6월이었다. 당시 그는 87세였다. 나는 황무지로 가는 길을 다시 찾아갔다. 그러나 전쟁이 이 나라를 황폐하게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제는 뒤랑스강의 계곡과 산 사이를 오고 가는 버스가 있었다. 나는 여기서 처음 산책했던 장소가 어디인지 더 이상 알아볼 수 없었는데, 그것은 비교적 빠르게 움직이는 교통수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 버스가 가는 길은 나를 처음 보는 곳으로 데려가는 것만 같았다. 내가 옛날의 그 황량했던 폐허의 땅에 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마을 이름을 떠올려야만 했다. 나는 베르공 마을에서 버스를 내렸다.

1913년에는 열 채내지 열두채의 집으로 이루어진 이 마을에 단 세 사람만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야만스러웠고 서로 미워했으며 덫으로 동물을 잡아서 먹고 살았다. 거의 선사시대 원시인의 육체적, 정신적 상태에 가까운 삶이었다. 쐐기풀이 버려진 집들의 주위를 덮고 있었다. 그들의 생활조건은 전혀 희망이 없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하물며 덕을 추구하며 살아갈 상태가 아니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공기까지도. 옛날에 나를 맞아주었던 건조하고 난폭한 바람 대신에 향긋한 냄새를 실은 부드러운 미풍이 불고 있었다. 물 흐르는 소리 같은 것이 저 높은 언덕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바람소리였다.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못 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진짜 물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나는 샘이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물은 풍부하게 넘쳐흘렀다. 그리고 나를 가장 감동시킨 것은 그 샘 곁에 이미 네 살의 나이를 먹었음직한 보리수 나무가 심어져 있는 것이었다. 이 나무는 벌써 무성하게 자라 있어 의문의 여지없이 부활의 한 상징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더욱이 베르공 마을에는 사람들이 노동을 한 흔적이 뚜렷했다. 사람은 희망을 가져야만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희망이 이곳에 다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허물어진 집들을 치우는 한편, 무너진 벽들을 모두 부수고 다섯 채의 집을 다시 지었다. 그 뒤 마을 사람들의 수는 28명이 되었는데 그 가운데는 네 쌍의 젊은 부부도 있었다. 산뜻하게 벽을 바른 새 집들 주위를 채소밭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 채소밭에는 이것저것 섞여 있었지만 가지런히 심은 야채, 꽃, 배추, 장미꽃나무, 부추, 금어초, 샐러리, 아네모네들이 자라고 있었다. 이곳은 사람들이 살고 싶은 마을이 되어 있었다.

그 곳에서부터 나는 길을 걸어서 갔다. 우리들이 이제 막 빠져 나온 전쟁은 아직 삶의 완전한 개화를 허락하지 않고 있었지만 라자로는 이미 무덤 밖에 나와 있었다. 나지막한 산기슭에는 보리와 호밀이 자라고 있었고 좁은 계곡 바닥에는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이 지역 전체가 건강과 번영으로 다시 빛나기 위해서는 그로부터 8년의 세월이 흐르는 것만으로 족했다. 내가 1913년에 보았던 폐허의 자리에 지금은 잘 단장된 아담하고 깨끗한 농장들이 들어서 있어서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말해주고 있었다. 옛날의 그 샘들은 숲이 머금고 있었던 비와 눈에서 물을 받아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샘물로 수로를 만들었다. 단풍나무 숲속에 있는 농장마다 샘물이 흘러들어 융단 같은 박하잎 위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마을은 조금씩 재건되었다. 땅값이 비싼 평야지대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와 젊음과 활력과 모험정신을 가져다 주었다. 건강한 남자와 여자들, 그리고 소리내어 웃을 줄 알며 시골에서 벌어지는 축제의 맛을 즐길 줄 아는 소년 소녀들을 길에서 만날 수 있었다. 기쁨 속에서 살아가게 된 뒤로는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모습이 변한 옛 주민들, 그리고 새로 이주해 온 사람들의 수가 1만 명이 넘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누리는 행복의 빚을 엘제아르 부피에에게 지고 있었다.

단순히 육체적 정신적 힘만을 갖춘 한 사람이 홀로 황무지에서 이런 가나안 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면 나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조건이란 참으로 경탄할 만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곤 한다. 그리고 그런 결과를 얻기 위해 가져야만 했던 위대한 영혼 속의 끈질김과 고결한 인격 속의 열정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신에게나 어울릴 이런 일을 훌륭하게 이루어낼 줄 알았던 그 소박한 늙은 농부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품게 된다.

엘제아르 부피에는 1947년 바농 요양원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소설읽기7

이청준

사내의 이야기는 다시 계속되었다.

그 날 주막에서 허 노인은 운에게 술잔을 따라 주고, 그 날 밤으로 운을 줄로 오르라고 했다.

― 줄 끝이 멀리 멀리 보여서는 더욱 안 되지만 가깝고 넓어 보여서도 안 되는 법이다. 그 줄이라는 것이 눈에서 아주 사라져 버리고, 줄에만 올라서면 거기만의 자유로운 세상이 있어야 하는 게야. 제일 위험한 것은 눈과 귀가 열리는 것이다. 줄에서는 눈이 없어야 하고 귀가 열리지 않아야 하고 생각이 땅에 머무르지 않아야 한단 말이다.

노인은 조용조용 당부를 했다. 그 한 마디 한 마디는 마치 노인의 일생을 몇 개로 잘라서 압축해 놓은 듯한 무게와 힘과, 그리고 알 수 없는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자기의 전 생애를 운에게 떠넘겨 주려는 듯한 안간힘이 거기에는 있는 것 같았다.

― 아버지, 이젠 줄을 그만두시고 좀 쉬십시오.

운이 말했으나 노인은 조용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 줄에서 내 발바닥의 기력이 다했다고 다른 곳을 밟고 살겠느냐? 같이 타자.

그 날 밤, 줄에는 두 사람이 함께 올라섰다. 운이 앞을 서고 허 노인이 뒤를 따랐다. 운이 줄을 다 건넜을 때는 객석이 뒤숭숭하니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뒤를 따르던 허 노인이 줄에서 떨어져 이미 운명을 하고 만 뒤였다.

여기까지 듣고 나니, 나는 사내에게 더 이야기를 시켜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허 노인이 운에게 마지막 당부를 할 때 그랬을 법한 컴컴하고 무거운 것이 이 사내에게서 쉴 사이 없이 흘러나왔다. 이 믿어지지 않는 집요한 이야기로써 사내가 나에게 떠맡기려는 것의 무게를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나는 다음날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다.

“아닙니다, 마저 끝냅시다. 곧 끝납니다.”

사내는 아직도 고집을 세우며 이야기를 이으려고 했다. 그러나 말보다 잦은 사내의 기침 소리를 더 듣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내 방을 나와 버렸다. 부엌 방에는 이제 불이 켜 있었으나 역시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 나는 곧장 어제의 여관으로 돌아와 자리로 들었다. 사내의 이야기는 문화부장이 기대한 것과는 성질이 다를지 몰라도 기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대체 노인의 운명 ― 그 논리 이상으로 정연한 질서는 허 노인이 죽은 지금 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허 노인은 줄을 지배하지 못하고 줄이 그를 지배했다. 그게 아름다움이라는 것인가. 또, 운은 노인의 무거운 운명을 떠맡아 지고 어떻게 자기 인생을 구축해 갈 수 있었는지. 장의사 사내의 이야기로는 운도 마찬가지로 줄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 운은 노인의 인생을 배신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그것은 또 운에게 무슨 의미를 줄 수 있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한참 하고 있는데 어젯밤의 여자가 불쑥 문을 들어섰다. 나는 여자가 좀 수상쩍었으나 이것저것 묻기가 귀찮아서 그냥 옆에 눕게 했다.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다. 나는 곧 피곤해져서 잠이 들어 버렸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역시 여자는 가고 없었고, 윗주머니의 돈이 꼭 삼백 원이 줄어 있었다. 시계가 열 두 시를 넘고 있었다. 나는 어제와 똑같이 여관을 나와 다릿목으로 해서(다릿목에서는 장의사의 사내가 의미 있는 웃음을 지으며, “아직 떠나지 않으셨군요.” 하고 아는 체를 했다.) 중국집을 들렀다가 어제처럼 입가심을 사들고는 다시 ‘사꾸라 공원’ 중턱의 사내에게로 갔다. 부엌방 문 앞에는 여자 고무신이 어제 그대로인 것처럼 가지런히 놓여 있고, 사내의 방에서는 역시 역한 냄새가 코도 거치지 않고 내장으로 스며들었다. 사내의 숨소리가 어제 처음 왔을 때보다 훨씬 거칠어져 있었다. 사내는 내가 쑥스러워질 만큼 새삼스럽게 반기고는 곧 이야기를 이었다.

“……그러니까 그 뒤로 운이 허 노인의 당부대로 줄을 탔는지는 알 수 없었지요. 하나 확실한 것은 그 역시 전에 허 노인이 당하던 단장의 꾸지람을 고스란히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꾸지람을 듣고 있을 때까지도 영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청히 서 있기만 하곤 했지요. 그런데 나중에는 단장도 그런 운을 늘 나무랄 수만은 없게 되었어요. 활동 사진이라는 것이 갑자기 성하지 않았습니까. 그 쪽에 손님을 다 빼앗기고 나니 우리는 거렁뱅이가 될 판이었습니다. 그런데 단장이 그래도 그 중 나았습니다. 생각생각하다가 짜낸 것이 결국 구경꾼의 흥을 더 돋구어 줘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당연한 이야기지요, 그래 그 방편으로 제일 적합한 것이 운이었습니다. 줄을 그전 때보다 두 배, 세 배로 높이 매달았습니다. 허 노인도 여느 광대보다 높이 줄을 탔기 때문에 가설 극장의 천정 포장을 걷어 내야 했지만 이번에는 거기 비교가 안 될 정도였지요, 우리는 그런 식으로 C읍까지 왔었습니다. 그 땐 가을이었지요.”

C읍에서 ― 어느 날 밤, 운이 줄에서 내려와 보니 그에게 꽃다발이 하나 와 있었다. 꽃다발이라야 그 즈음 산이나 들에 지천으로 피어난 들국화를 몇 송이 꺾어다 종이 리본으로 묶은 것이었지만, 워낙 처음 있는 일이라 부처님 같은 운도 약간 호기심이 들었다. 꽃다발을 가져온 것은 소녀끼를 갓 벗은 여자라고 했다.

― 잘 해 봐라 이 녀석. 총각 귀신은 제사도 없단다.

트럼펫의 사내가 웃으면서 그 꽃다발을 운에게 건네 주었다. 여자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같은 일을 하고 갔지만, 언제나 운이 줄을 올라간 뒤에 왔다가 줄에서 내려오기 전에 가 버리기 때문에 정작은 얼굴조차 볼 수가 없었다. 매일밤 꽃다발을 맡았다 운에게 전해 주던 트럼펫이 보다 못해 하룻밤은 일을 꾸몄다.

― 공원으로 가 봐라. 거기 여자가 기다리고 있을 게다.

운이 줄에서 내려오자 트럼펫은 운에게 일러 주었다.

“지금 이야기 중의 트럼펫이라는 운의 친구가 바로 노인이시겠지요?”

나는 갑자기 이 사내 자신에 대한 한 가지 의문이 떠올라 그렇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 때부터 나는 나팔을 불고 나면 조금씩 피를 뱉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입에서 나팔을 뗄 수는 없었습니다. 나팔을 불지 못하면 진짜로 죽을 것 같았으니까요.”

“노인께서 여길 떠나지 못하고 주저앉은 것도 폐 때문인 것 같은데 그 때 노인께서는 독신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독신이었는데, 갑자기 각혈이 심해져서…….”

사내는 말끝을 흐렸다.

정말로 그랬을까? 나는 여전히 의문이 사라지질 않았다. 그것은 오히려 누군가를 따라 떠났어야 할 이유도 되지 않는가. 그리고 그런 폐를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가 없지도 않은가. 그렇다면 ― 이 사내는 혹시 운을 찾아오는 여자에게 사랑을 느낀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러나 사내는 내가 입을 열기 전에 이야기를 서둘러 계속했다.

“하여튼 그렇게 해서 나는 운이 여자를 만나게 해 주었는데, 여자를 만나고 와서도 운은 별로 달라진 게 없더라는 말입니다. 그런 일이 한 주일쯤 계속되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운이 줄 위에서 재주를 피우기 시작했단 말이에요. 단장이나 구경꾼들은 무척들 좋아했지요. 하지만 나는 옛날 허 노인의 실수를 기억하고 있었던 만큼 그게 불안했습니다. 몇 번씩 그런 재주 같은 동작을 하고 줄을 내려온 운은 유독히 땀을 많이 흘리고 있었고, 단장의 칭찬에도 넋 나간 눈만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 나의 생각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있었어요. 운이 자꾸 귀와 눈을 때리면서 혼자 중얼중얼하는 것이었습니다. 못 견뎌 하는 얼굴이었어요. 허 노인이 운에게 당부했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함성들을 지르고 좋아들 했거든요. 불행한 일이었지만, 내 생각이 옳았다는 것은 곧 증명이 되었어요. 어느 날 밤, 줄을 타고 내려온 운은 또 공원으로 갔고, 우리는 나머지 순서와 곡예에 곁들인 연극까지 끝내고 났을 때예요…….”

구경꾼이 막 자리를 일어서려는 참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운이 사례 인사를 끝내고 섰는 무대 위의 단장 앞으로 나섰다.

“―오늘 밤 한 번 더 줄을 타겠습니다.”

“―아니, 왜?”

단장이 의아해서 운을 쳐다봤다. 그러나 단장은 다시 아무 말도 못하고 운에게서 눈을 피했다. 운의 눈에서는 무서운 불길이 일고 있었다. 그 눈은 단장을 보고 있지도 않은 것 같았다. 단장은 한 번 더 줄을 타겠다는 운의 말이 정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운은 이미 자기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운을 비켜섰다. 운은 그대로 천천히 걸어가서 그 높은 항목을 한 번 눈이 부신 듯이 쳐다보고는 이내 그것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단장은 잠시 고개를 갸웃이 기울이고 운의 거동을 살피고 있다가 갑자기 입술에 침을 바르고 마이크를 힘껏 거머쥐었다.

“―여러분, 앉으십시오. 오늘 밤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하기 위해서 우리 서커스 단의 프로 중의 백미를 다시 한 번 여러분께 보여 올리겠습니다. 그것은 즉 보시다시피 인간의 승천(昇天)입니다. 인간의 승천!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입니까! 우리 단(團)이 아니면 보실 수 없는 진귀한 구경거리입니다…….”

“그 날 밤, 운은 떨어져 죽었습니다.”

“한데, 그 날 밤 운은 왜 그렇게 이상한 행동을 했을까요?”

“네, 혹시 그 말씀에 해답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운이 만나던 그 여자의 이야기를 마저 해 드리겠습니다. 그 날 밤 나는 아무래도 공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으리라는 예감이 들었어요. 대강 일이 정리되었을 때 공원으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공원이래야 선생님도 보셨겠지만,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땐 벌써 고목이 다 된 벚나무 사이에 촉수 낮은 전등을 몇 개 매달아 놓고, 군데군데 녹색 페인트 칠을 한 걸상들이 놓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걸상 하나에 여자는 내가 올라갔을 때까지 아직 말도 못하고 벌벌 떨고 있었어요. 운이 여자의 목을 졸라 죽이려다 말고 공원을 내려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며칠을 통해 운이 여자에게 한 말을, 여자는 전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운의 말은 불과 다섯 마디도 되지 못했으니까요. 물론 사랑은 배워서 말로 하는 것만은 아니니까, 배우지 않고도 아는 방법으로만 그는 여자를 사랑했겠지요. 마지막 날 이야기가 이랬다고 합니다. 갑자기 운이 여자를 끌어안고서,

―난 이제 줄을 탈 수가 없다. 넌 나하고 같이 살아야 한다.

운은 마치 줄에서 내려왔을 때처럼 땀을 흘리고 있더랍니다. 그런데 여자는 운이 그렇게 가까이만 있으면 언제나 무서워 말도 할 수가 없었다고 해요,

― 전 당신을 사랑하고 있지 않아요.

―그럼? 그럼?

운은 미친 사람처럼 여자를 안은 팔에 바싹 힘을 주었습니다.

―줄을 타고 계실 때, 그 땐 그런 것 같았는데, 이렇게 옆에만 오시면…… 무서워요.

-아야, 이젠 난 줄을 탈 수가 없는데…….

그러고는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는데, 운의 손이 천천히 여자의 목으로 올라오더니 조금 있다가 그 손은 경련이 난 듯 여자의 가는 목을 조르기 시작하더랍니다. 여자는 별로 반항도 하지 않고 걸상에 쓰러졌는데, 운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또 갑자기 손을 놓아 버리고는 일어서더라는 것이었어요. 그리고는 혼자 중얼중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고 다시 줄을 탈 수 있었지만, 아아…… 나는…….

그러다가 운은 산을 내려가 버렸답니다.”

사내는 그것이 자기 자신에 관한 일이었던 것처럼 열심히, 그러고 상상으로는 미치지 못할 자세한 부분까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기침을 하지 않으려고 몸을 오그라뜨리고 힘을 주었다. 그러나 끝까지 이야기를 못하고 기어이 발작을 시작하고 말았다. 나는 사내가 발작을 멎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이으려고 하는 것을 보자, 갑자기 웃음이 터지려고 했다. 이제 사내에게 혼자는 더 말을 시킬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운은 처음부터 자기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두 번째 줄로 올라간 거로군요.”

“그렇습니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왜 운을 사랑할 수가 없었을까요?”

“글쎄 그게 이상합니다만…… 참 이걸 말씀드릴 걸 잊었군요. 그 여자는 한쪽다리를 절고 있었어요. 절름발이였단 말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난 자꾸 그 여자가 좋아한 것은 운이 아니라 운의 다리가 아니었나 해요. 여자는 줄 위의 운이 하늘을 날고 있는 학(鶴)으로 생각했더랍니다. 어떻든 그렇게 운이 죽고 나서 얼마가 지나니까, 이곳 사람들은 광대가 승천을 했다고들 말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그 단장의 말을 빌어서 한 비웃음이었겠지요. 그러나 오랜 시일이 지나다 보니 운은 정말로 승천을 했다고 믿어버리게 되었어요, 아닌게 아니라 나도 아직 운이 줄을 타는 그 곧고 유연한 모습이 잊혀지질 않는데…… 아마 그게 명인(名人)의 풍모가 아닌가 생각될 때가 있어요.”

“그럼 그 절름발이 여자는 어떻게 되었나요?”

“그 여자도 뒤에 죽고 말았습니다.”

사내의 눈동자는 처음 내가 찾아왔을 때처럼 나의 머리 위 허공으로 멀리 떠올라 가 버렸다.

소설 읽기8

황석영 아우를 위하여

뭔가 네게 유익하고 힘이 될 말을 써 보내고 싶다.

네가 입대해 떠나간 이제 와서 우울한 고향 실정이나 우리의 지난 잘잘못을 들어 여기에 열거해 놓자는 건 아니야.

아무 얘기도 못해 주고 묵묵히 너를 전송했던 형의 답답한 마음을 이해하여 주기 바란다. 나는 우리가 지금쯤은 의심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어떤 문제를 확실히 해두고, 또한 장래를 굳게 믿기 위하여 내 연애 이야기를 빌리기로 한다. 너는 십구 년 전에 내가 누구를 사랑한 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아마 놀랄 거다. 따져봐. 내 열한 살 때가 아니냐. 에이, 이건 오히려 형의 달착지근한 구라를 읽게 됐군, 하며 던져 버리지 말구 읽어주렴. 너 영등포의 먼지 나는 공장 뒷길들이 생각나니. 생각날 거야, 너두 그 학교를 다녔으니까. 아침마다 군복이나 물빠진 푸른 작업복 상의를 걸친 아저씨들이 한쪽 손에 반찬 국물의 얼룩이 밴 도시락 보자기를 들고 공장 담 아래를 줄이어 밀려가곤 했지. 우리 아버지두 그 틈에 있었을 거야. 참 그땔 생각하면 제일 먼저 까마중 열매가 떠오른다. 폭격에 부서져 철길 옆에 넘어진 기차 회통의 은밀한 구석에 잡초가 물풀처럼 총총히 얽혀서 자라구 있었잖아. 그 틈에서 우리는 곧잘 까마중을 찾아내곤 했었다. 먼지를 닥지닥지 쓰고 열린 까마중 열매가 제법 달콤한 맛으로 유혹해서는 한 시간씩이나 지각하게 만들었다.

먼지 나는 길, 공자의 담, 까마중 열매 다음에 생각나는 긴 땅에 반쯤 묻혀있던 노깡들이야. 사택 앞의 쓸쓸한 가로를 따라서 가죽나무가 서 있고, 나뭇가지에는 하늘소벌레가 살았고, 벽돌벽의 어지러운 선전문 자국들, 창고의 탄환 흔적, 그리고 인가 끝에 상두도가가 있었고, 실개천을 가로지르며 노깡들이 엇갈려 길게 누워 있었지. 노깡 속엔 우리가 그 무렵에 눈이 시뻘개서 찾아다니던 총알이 많이 나오곤 했었다. 총알을 찾으러 캄캄한 노깡 속에 들어갔다가 내가 기절했던 걸 어머니에게서 아마 들었을 거야. 애들이 그 속에서 사람이 많이 죽었다며 전혀 접근을 꺼려하길래 어느날 나 혼자 들어갔지. 안은 아주 비좁구 캄캄했는데 물이 질퍽하게 괴어 있더구나. 손으로 더듬으며 중간까지 가보니까 예상대로 기관포 탄환이 많이 있더랬어. 나는 아이들의 찬탄과 선망을 독차지할 일을 생각하고 온통 가슴이 떨렸어. 탄창 사슬에 끼인 게 한 줄이나 되더라. 나는 정신없이 파구 또 팠지. 한참 동안을 파는데 꺼림찍한 기분이 들구 뭔가 손가락에 걸려 나오는 거야. 나뭇조각인 줄 알았어. 돌보다는 가볍구 나무보단 좀 듬직하단 말이야. 그래 눈앞에 바짝 갖다 대구 들여다보니깐 뼈다귀야. 둥그런 관절두 달려 있는 진짜 뼈다귀 말이지. 이크······ 나는 그게 날 잡구 늘어지는 기분이더라. 양쪽 입구를 보니까 꼭 관솔 빠진 구멍만큼 보이는 거야. 소릴 지르다가 뻐드러졌어. 근처 실개천서 빨래하던 아줌마가 나를 끌어내줬단다. 어머니가 야단쳤어. “너 그런 데 들어가면 귀신이 잡아 먹는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어린애들이 그런 일루 호되게 놀라게 되면 잠잘 때 악몽을 꾸어서 식은땀을 흘리며 경기를 일으키는 거야. 내가 몸이 불편할 때 꿈을 꾸면 말이야, 언제나 그 노깡 속에 들어가 있는 거야. 어느 때는 그게 우리 영단 집의 시멘트 굴뚝 속이 되고, 피뢰침 달린 유리공장의 벽돌도가니 안이 되고, 시궁쥐가 많이 사는 공중목욕탕의 하수도 속이 되는 거야. 끝은 언제나 비슷하지. 양쪽 입구가 무너져, 해골바가지나 뼈다귀 손이 쑥 솟아올라서 내 머리털이나 발목을 말야 꽉 잡구 안 놓는 거야. 상두도가집 아이가 그 자리에 찾아가서 침을 세 번 뱉고 왼발로 세 번 구르면 된다기에 그대루 했는데두 여엉 무서운 기분이 가시질 않았어.

내가 일단 자기의 공포에 굴복하고 승복하게 되자, 노깡 속에서의 기억은 상상을 악화시켜서 나를 형편없는 겁쟁이루 만들고 말았다. 그런데 어떤 아름다운 분이 나타나 나를 훨씬 성숙한 아이로 키워줬지. 눈빛처럼 흰 여학생 칼라 뒤로 얌전히 빗어 묶은 머리를 길게 땋아 늘였고, 목소리가 노래하는 듯 고운 분이었어.

우리를 위압하고 공포로써 속박하는 어떤 대상이든지 면밀하게 관찰하고 그것의 본질을 알아챈 뒤, 훨씬 수준 높은 도전 방법을 취하면 반드시 이긴다.

그이를 사랑하게 되면서 나는 분명히 무언가를 배웠는데, 그 무렵엔 꼭 집어내서 지각할 수는 없었지. 이제 와 생각하니 그이는 진보(進步)의 의미와 사랑의 가치를 내게 가르쳐 주었던 거야.

나는 피난지 부산의 학교에서, 수복되고도 수 년이 지난 서울로 전학을 해왔던 첫날, 기분이 잡쳐버리고 말았다.

우리 학교에 미군부대가 들어와 있어서 학년별로 여러 곳에 뿔뿔이 흩어져 빈 창고나 들판에서 공부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흙바닥에 가마니를 깔았고 책상대신 화판을 받쳐 글씨를 썼다. 어둠침침한 창고 교실에서 백 명이 넘는 아이들이 우글거렸으니 언제나 먼지가 뿌옇게 일어나는 게 보였다. 교실이 엉망인 것뿐만 아니라 우리 학교 애들은 질이 나빴는데 전쟁통에 몇 년씩 학년을 묵은 큰 애들이 열 명쯤 되었다. 백여 명의 아이들을 키 순서대로 세워 놓으면 나 같은 건 겨우 앞줄에서 몇 번째가 될 만큼 작았다. 애들은 내게 아무런 관심도 돌리지 않았으나, 첫 번 일제고사에서 수석을 차지하고 나자 친구가 더러 생기게 됐던 거였다.

나는 담임선생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메뚜기라는 별명을 가졌는데, 머리 가운데가 쭉 벗어지고 양쪽 관자놀이 부근에만 곱슬털이 부성부성한 모습이었다. 그는 국민학교 선생님 노릇에 별로 흥미가 없는 것 같았다. 무슨 가게인지를 부업으로 벌여놓고 있었는지라 그는 툭하면 자습시간을 주고선 하루 온종일 밖으로 나돌아 다녔다. 각 학년의 교실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고, 교장 선생님도 일학년부터 육학년까지 모든 학급을 한 바퀴 돌아보려면 큰맘을 먹어야 했으니 메뚜기 씨께선 만판이었다. 메뚜기가 요행이 교실에 붙어 있게 되는 날도 오후에는 모두 야외로 끌고 나가서 몇 시간씩이나 풍경 사생을 그리게 해놓고는 공부 끝이라는 거였다. 내가 전학가기 전인 일학기까지도 석환이가 반장 노릇을 했으나, 나처럼 몸집이 작고 약골이었던 그애는 큰 아이들이 득실대는 교실의 기강을 잡을 도리가 없었다. 첫째 가다 장판석, 둘째 가다 임종하, 셋째 가다 박은수, 그 이하는 그애들에게 붙어서 알랑대던 떨거지 몇 명이 있었다. 모두 중학 이삼학년씩은 되었을 나이배기들이었다. 내가 입학할 무렵에 세력의 판도가 바뀌게 되었는데 이영래라는 새로운 가다가 신입해 왔던 것이다. 영래는 미군 부대 하우스 보이로 싸젠이 기른다는 아이였다. 술이 주렁주렁 달린 인디언식 가죽 저고리에 청바지를 입고 시계까지 차고 다녔다. 눈이 가늘게 찢어지고 어깨가 바라진 영래는 벌써 다리에 털이 돋은 열다섯 살바기였다. 미군 지프가 신입생과 선물을 싣고 제분 회사 창고 앞마당을 돌며 클랙슨을 뿡빵 울리니까 애들이 모두 환호성이었다. 배불뚝이의 맘 좋게 생긴 싸젠이 초콜릿과 도넛을 애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었다. 그날로 영래를 찬양하며 그애의 가방을 들어다 주는 아이가 생겼고, 얼마 안 가서 둘째 셋째 가다인 은수와 종하까지 그애 편으로 붙었다. 영래가 드디어 첫째 가다 장판석이를 빈 발전실로 유인해다가 몽둥이로 습격해서 항복을 받았다. 판석이는 아래 권위로 밀려나고 영래가 하루아침에 첫째가 되었는데도 아이들은 그런 일에 별로 아랑곳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큰 애들은 뒷전에서 저희끼리 킬킬대며 우리가 모르는 얘기만 지껄이며 따로 놀았으니까.

어느 토요일 아침, 메뚜기가 셔츠 바람으로 들어와 바께쓰에 물을 떠다 교실에서 세수를 했다. 그는 팔목시계를 연방 들여다 보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에 또······ 내가 급한 볼일이 생겨서 나갔다 올 테니까 자습하도록, 어이 급장.” 맨 앞줄에 앉았던 석환이가 엉거주춤 일어나려니까, 메뚜기는 그애를 힐끗 바라보고는 곧장 교실 뒷전만 두리번댔다. “장판석이, 판석이 어딨나?” 아이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보앗고 누군가 웃음을 참는 소리도 들렸다. 판석이는 괜히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애 바로 앞에 앉은 임종하가 들릴까말까한 소리로 “얘는 나한테두 져요.” 중얼거리자 아이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메뚜기가 그 소리를 놓쳤을 리 없었다. “에 또, 학기두 바뀌구 했으니까······ 오늘은 자습 후에 반장 선출을 해보는 것두 학습이 될 거다. 상급생이 됐으니까 그만한 자치 능력도 생겼을 줄 믿는다. 그런데 석환이 말고 누가 의장 노릇을 했으면 좋을까······ 누가 좋겠니?” 메뚜기가 묻자 앞에 꼬마들이 요란하게 떠들어댔다. “이영래요. 걔가 잘해요.” 메뚜기가 영래를 불러내어 “반장과 함께 조용히 자습을 시킨 뒤에, 자치 회의를 해라.” 이르고 훌짝 나가 버렸다. 선생님이 나간 뒤에, 머쓱하게 서 있던 영래가 교탁 앞에 비스듬히 걸터 앉았고 애들은 다음 행위에 잔뜩 기대를 가지면서 그애를 올려다 보았다. 영래가 말했다. “전부들 책을 집어넣어. 오늘 오전에는 씨름 대회를 연다.” 애들이 손뼉을 치며 와글와글 책보를 쌌고 영래는 교탁에 발을 올려놓고 의자를 흔들며 말타는 시늉을 했다. “헌병 대장 사령부, 짜가닥짜가닥 팡팡, 이 새끼들 조용히 해.” 영래가 은수에게 몽둥이를 주워 오라고 명령하니 그놈은 잽싸게 뛰어나가 각목 하나를 주워왔다. “종하 일루 나와.” 비실비실 웃으며 앞으로 나온 종하에게 영래가 말했다. “웃지 마 임마, 이걸 갖구 수틀리게 놀면 모두 조기는 거야. 알았지?” 종하는 가마니를 깔지 않은 흙바닥 통로를 각목을 들고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다. “오늘부터 너는 기율 부장이다.” “뭐야 그게······ 반장하군 다른가?” “임마 중학교 교문 앞에두 못 가봤어? 완장차구 서서 잘못한 애들 벌주는 거 말야.” 은수가 항의했다. “그럼 나는 뭐야, 넌 뭐구······.” “이새끼 나는 의장이잖아. 종하는 기율부장, 너는 말이지 총무다.” “반장보다 높은 거냐?” 아이들이 킥킥.

종하는 내 앞을 지나며 공연히 똑바로 앉으라면서 허리께를 각목으로 꾹 찔렀다. 나는 등에 힘을 주고 빳빳이 긴장해서 앉아있었다. 그때 석환이가 안으로 폭싹 기어들어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말야······ 씨름대회는 반대한다.” 아이들이 왁자지껄하며 석환이 쪽에다 불평을 제각기 터뜨렸다. “혼자 잘난 체하지 마라 짜식.” “누가 네 명령이나 듣겠다누.” “영래야 때려줘라.” 영래가 교탁을 쾅 때리며 말했다. “새끼들 조용하라니까.” 임종하가 각목을 땅에다 쿵쿵 찧으며 주위를 둘러보았고 아이들이 잠잠해졌다. 석환이는 가까스로 말할 기운이 났는지 아까보다 더욱 또렷하게, “선생님이 자습을 한 다음에 자치회를 하라구 그랬어. 또 혼자서 마음대로 학급 간부를 지명해서도 안 된다구 생각해.” 바보같은 놈들이 설쳐대는 꼴을 보니 나도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영래만한 통솔력도 없는 터에 모두들 나더러 공부 좀 한다구 으스댄다고 할 거였다. 그 전 학교에서처럼 발언권을 얻어 동의와 제청을 받고 의견이 받아들여지고 하는 재미있던 판국과는 전혀 딴판이어서, 까짓거 입다물고 구경이나 하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몇몇 줄반장 애들은 불만이 있어 보였으나 교실 뒤에 버티고 선 종하 쪽을 연방 돌아보기만 하는 거였다. 영래가 씨익 웃었다. “응 좋아, 애들한테 물어보자. 얘들아 씨름대회를 뒤로 미루고 자습할까?” 반 아이들이 웅성대며 항의하거나, 재삼 석환이를 욕하기 시작했다. “대신에 자치회를 먼저 하자. 너희들 석환이가 반장 노릇하는 걸 찬성하는 사람 손들어.” 한 사람의 손도 올라가지 않았고 뒤늦게 들었던 애들도 대부분 아이들의 드높은 불만의 분위기에 위축되어 슬금슬금 내려버렸다. “다음은 내가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 절반 이상이 손을 들었고 두 번 다 손을 안 든 애들도 많았다. “봤지? 자치회는 이걸루 끝났다.” “그래, 이영래가 오늘부터 우리 반 급장이다.” “반대하는 놈들은 우리 반이 아니야.” 영래는 만족에 가득차서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밖으로 집합. 야 종하야, 집합시켜서 오목내 다리 밑으루 내려가.” 나는 환성을 울리며 밀려나가는 애들의 뒤를 따라나갔고, 우리 뒤에서 종하가 “빨리빨리 움직여.” 어쩌구 하며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석환이와 몇몇 아이들이 꾸물거리는 걸 보고 영래가 뒷짐을 지고 서서 종하에게 말했다. “야 단체행동에서 빠지는 애는 잡아다 조겨.” 은수도 말했다. “그래 영래 말이 옳다. 개인적으루 놀면 혼을 내야 해. 우리 반 애들이라면 다 함께 해야 한다.”

바깥일에 분주한 메뚜기가 돌아왔을 때, 아이들은 영래의 지시에 의하여 자발적인 대청소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메뚜기는 학급에 기강이 서고 자치 능력이 향상된 데 대하여 만족했고, 아이들이 영래를 급장으로 선출한 것에도 별로 이의가 없어 보였다.

우리 부모는 내 상급학교의 진학문제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동네에서 어느 대학생이 개인교사를 한다며 애들을 모으고 있는 중이었으므로 나를 그리로 보냈었다. 거기서 치른 학력 테스트의 결과를 알고 어머니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대학생의 말에 의하면 이런 실력으로는 중간급인 사립 중학교에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거였다. 그때부터 밤늦게까지 입시공부에 시달리지 않으면 안되었고, 자습시간이 많았던 학급실정이 오히려 내게는 다행이었다. 따라서 나는 전입생으로서 서먹서먹하던 그 전보다 더욱 학급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영래가 반장이 되고 나서 나는 학교에 가는 일이 시큰둥해진 느낌이었다. 무관심했던 내게도 불편한 사태가 자주 벌어지게 되었는데, 영래가 너무 자기 마음대로만 하려고 그랬기 때문이었다. 은행지점장의 아들이나 공장장 아들, 극장, 양조장집 아들같은 너댓 명의 부잣집 애들은 특히 괴로움을 많이 받았었다. 그애들은 뭔가 좋은 것들, 이를테면 장난감, 극장표, 돈 같은 것들을 갖다 바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내일까지 가져와.” 한마디면 통하는 모양이었다. 대부분의 다른 애들은 평소부터 그애들에게 반감을 많이 갖고 있어서 영래나 종하나 은수의 명령이 이행되지 않았을 때에 그애들이 교실 뒤에서 엎드려 뻗쳐를 하고 궁둥이를 맞는 걸 통쾌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부잣집 애들도 나중에는 그리 불만스러워하는 것 같지 않았는데, 청소당번을 제외받았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애들은 자기가 싫어하는 애들을 혼내주도록 저 세 아이들 중 아무나에게 선물을 하면 되었던 거다.

있으나마나한 부반장으로 영락한 석환이도, 나도, 하여간에 좀 영리한 애들은 끼리끼리 소곤소곤 어린이 잡지나 돌려보면서 그애들의 노는 꼴에 전혀 상관하지 않으려 애썼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느 정도 기가 죽었으나 그래도 아직은 영래를 신뢰했는데 그는 아이들을 재미있게 하고 동시에 무서운 존경을 일으키게 하는 데 재주가 비상했던 것이다. 영래의 제의로 우리는 두어 차례의 모금을 했었다. 한번은 담임선생 메뚜기네 아기의 돌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서였고, 다음엔 청소도구를 마련한다는 구실이었다. 판단이 부족했던 우리가 어렴풋이 느끼기에도 금액이 좀 과했던 것 같았다. 제삼 분단장인 동열이의 머리가 터졌던 건 바로 그 일 때문이었다. 그애가 쑤군거린 얘기를 들어보면 거둔 돈의 절반을 그애들이 쓱싹해서는 학교 앞 찐빵가게에 맡겨놓고 까먹고 있다고 했다. 얘기를 들은 다섯 아이들 중 누군가의

소설읽기 NO 1

 

 

 주요한인력거꾼

 

밤 새로 두시에야 자리에 누웠던 아찡이 아직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졸음 오는 눈을 비비면서 일어났다. 잠자리라는 것이 되는 대로 얼거리 해놓은 막살이 속에 누더기와 짚을 섞어서 깔아 놓은 돼지우리 같은 자리였다. 그 속에서는 그야말로 돼지처럼 뚱뚱한 동거자가 아직도 흥흥거리며 자고 있는 것을 억지로 깨워 일으켜 가지고 아찡이는 코를 힝 하고 풀어서 문턱에 때려 뉘면서 찌그러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잠자던 거리가 깨기 시작하는 때이었다. 상해 시가의 이백만 백성이 하룻밤 동안 싸놓은 배설물을 실어 내가는 꺼먼 구루마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잔돌 깔아 우두럭투두럭한 길 위로 이리 달리고 저리 달리고 하는 것이 아찡이 눈앞에 나타났다. 동편으로 해가 떠오르려고 하는 때이다. 일찍 일어난 동리집 부인님네들이 벌써 나무통으로 된 대변통들을 부시느라고 길가에 쭉 나서서 어성버성한 참대 쑤시개로 일정한 리듬을 가진 소리를 내면서 분주스럽게 수선거렸다. 아찡이와 뚱뚱보는 한꺼번에 하품과 기지개를 길게 하고 바로 그 맞은편에 있는 떡집으로 갔다. 거리로 향한 왼편 구석에 널빤지 얼거리가 있고, 그 얼거리 위에 원시적 기분이 농후한 꺼먼 질그릇 속에 삐죽삐죽하게 콩기름에 지져 낸 유자꽤(조반죽 반찬 하는 떡)가 담뿍 꽂히어 있고, 그 옆에는 방금 구워 놓은 먹음직스런 쪼빙(떡)들이 불규칙하게 담겨 있는 위로는 벌써 잠코 밝은 파리 친구들이 날아와서 윙윙거리면서 이떡 저떡으로 돌아다니면서 먹고 싶은 대로 실컷 그 고소하고 짭짤한 맛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이 선반 바로 뒤에는 사람의 중키나 되리만큼 높이 쌓인 가마가 놓여 있고 그 가마 밑 네모진 아궁이에다 지금 떡 굽는 사람이 풀무를 갖다 대고 풀떡풀떡 해서 불을 피우고 있고 가마 위 나무뚜껑 아래에서는 길쭉길쭉하게 빚어서 한편에 깨알 몇 알씩을 뿌린 쪼빙들이 우구구 하면서 뜨거운 진흙 위에서 모래찜들을 하고 있었다. 그것들이 모래찜을 실컷 해서 엉덩이가 꺼무죽죽하게 되면, 그 손톱이 세 치씩이나 자란 떡장수의 손이 들어와서 한 놈씩 한 놈씩 잡아 내다가 앞에 놓인 선반 위 파리 무리의 잔치터 위에 던져 주는 것이었다. 바로 이 떡 가마 왼편에는 기다란 부뚜막을 가진 가마가 걸려 있고 그 위에서 지금 유자꽤들이 오그그 하면서 콩기름 속에서 부어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 행길 쪽으로 향한 이편 한 모퉁이에는 네모 반듯한 부뚜막 위에 보름달만큼씩이나 둥근 서양철 뚜껑을 덮은 깊다란 물솥들이 네다섯 개 줄리리 걸려 있고 부뚜막 바로 한복판에는 직경이 두 치나밖에 안 될 쇠통이 뚫려 있어서 가마지기가 이따금씩 그 조그맣고 뚱그런 뚜껑을 열고는 바로 그 부뚜막 안쪽에 쌓아 둔 물에 젖은 석탄가루를 한 부삽씩 쭈르르 쏟곤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면 그 구멍 속으로부터는 까만 연기와 붉은 불길이 힐끗힐끗 밖으로 내치미는 것을 서양철 뚜껑으로 덮어 막아 버리고는 놋으로 만든 물푸개를 바른손에 들고 왼손으로 이편 솥뚜껑을 열고는 부글부글 끓는 맹물을 퍼서는 저편 솥 속으로 쭈루루 붓고는 또다시 왼편 솥 속 물을 퍼다가 바른편 솥 속에 넣고, 이렇게 쭈룩쭈룩 소리를 내면서 분주스레 퍼 옮기고, 쏟아 옮기고 하다가는, 엽전 두어 푼이나, 나뭇조각 물표 서너 개씩을 가지고 와서 빙 둘러섰는 아가씨들과 할머니들의 서양철 물통(오리주둥이 같은 것이 달린 것), 혹은 세숫대야, 혹은 쇳주전자, 혹은 사기주전자 등에 엽전 두 푼에 물푸개 하나씩, 그 절절 끓는 물을 담아 주는 것이다.

아찡이와 쭐루(돼지)라는 별명을 가진 동거자 뚱뚱보는 어두컴컴한 부엌 속으로 들어가서 둥그런 탁자를 가운데 놓고 뒷받침 없는 걸상에 삥 둘러앉은 때묻는 옷 입은 친구들 틈에 끼여 앉아서 떡 두 개씩과 꺼룩한 미음을 한 사발씩 먹고는 쩔렁쩔렁하는 전대 속에서 동전을 여섯 푼씩 꺼내서 탁자 위에 메치고 코를 힝힝 아무 데나 풀어 붙이면서 거리로 나왔다.

둘이서는 잠잠히 걸었다. 조약돌을 깔아서 올통볼통한 좁은 골목을 지나 나와서 전찻길을 끼고 한참 올라가다가 다시 조그만 골목으로 조금 들어가서 인력거 세놓는 집 앞에 다다랐다. 벌써 수다한 인력거꾼들이 와서 널찍한 창고 속에 줄줄이 세워 둔 인력거를 한 채씩 끌고 나아갔다. 아찡도 거의 해져서 나들나들하는 종이로 돌돌 싸둔 대양(大洋) 오십 전을 인력거세 하루 선금으로 지불하고 어둑신한 창고로 들어가서 제 차례에 오는 인력거 한 채를 들들 끌고 거리로 나아왔다. 그는 잠깐 우두머니 서서 분주스럽게도 왔다갔다하는 군중을 바라다보다가 인력거 뒤채를 부득부득 밀면서 나아오는 뚱뚱보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어째 신수가 궁해. 어젯밤 꿈이 숭하더라니!”

뚱뚱보는 이 말 대답할 사이도 없이 벌써 맞은편 거리에서 오라고 손짓하는 서양 여자를 보고 설마 남에게 빼앗길세라 줄달음질을 쳐가서 인력거 앞채를 내려놓고 그 여자를 태웠다.

아찡이는 절반이나 잊어버려서 무엇이었는지 잘 생각도 안 나는 꿈을 되풀이해 생각해 보려고 애를 쓰면서 정거장 쪽으로 향해 갔다.

마침 남경서 떠난 막차가 새벽에 북정거장에 닿았다. 제섭원(齊燮元)이가 노영상(盧永祥)이를 들이친다는 풍설이 한창 돌 때인데 이번 차가 아마 마지막 차일는지도 모른다는 염려로 소주(蘇州)서, 곤산(昆山)서 쓸어 밀리는 피란민들이 넓은 정거장이 찌어져라 하고 밀려 나왔다. 정거장 정문이 있는 곳에는 벌써 그 동안 각처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의 잃어버린 짐짝으로 가득 채워 있어서 교통 단절이 되어 버렸고, 좌우 옆문으로 쏠려 나오는 군중이 문간에 수직하고 있는 군인들의 몸수색을 당하면서 이리 밀치우고 저리 밀치우고 흐늑흐늑하였다.

아찡은 이 기회를 안 놓치려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며 기회만 엿보고 서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저편 한구석으로 늙은 할머니 한 분, 젊은 색시 한 분, 또 돈푼이나 있어 보이는 젊은 사내 하나가 고리짝, 참대궤짝, 바구니 등 수십 개의 짐짝을 겨우 검사를 마친 후 시멘트 길바닥에 쌓아 놓고 어쩔 줄을 몰라 안달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이었다. 아찡은 곧 그곳으로 뛰어가려다가,

‘이놈아’ 하고 외치는 순사의 고함 소리에 눌려서 한편으로 물러서면서 아까운 듯이 그쪽만을 바라다보았다. 짐은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촌계 관청식으로 두리번두리번하기만 하던 사내가 마침내 짐짝들을 여인네더러 보라고 맡기고 인력거를 부르려고 정거장 구외로 나왔다. 아찡은 인력거를 내던지고 번개처럼 이 사내에게로 달려들었다. 벌써 네다섯 다른 인력거꾼들도 달려와서 이 젊은이를 에워쌌다.

“어디로 가오? 어디요? 여관으로요?”

젊은 사람은 어찌해야 좋을는지 모르겠다는 모양으로 한참이나 어릿어릿하다가 겨우 상해 말은 아닌 어떤 다른 지방 사투리로 사마로(四馬路)까지 얼마에 가겠느냐고 물었다.

“사마로까지 육십 전만 내슈.”

하고 한 인력거꾼이 즐거운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젊은이는 딱하다는 듯이 잠시 망설이더니,

“이십 전에 가면 가구 그렇잖으면 그만둬.”

하고 중얼거리었다. 인력거꾼 서넛이 펄쩍 뛰면서 한꺼번에 외쳤다.

“이십 전이라니, 어딜, 우리 그렇게 에누리 없어요.”

“그자 촌놈이다. 상해 말은 할 줄 모르는 모양이다.”

하고 인력거꾼 하나가 외쳤다. 그래서 그들은 이 시골뜨기를 잔뜩 곯려먹으려고 그냥 육십 전을 내어야 한다고 떠들었다. 얼마 동안 승강이 계속되다가 값은 마침내 매 인력거에 사십 전씩(보통때 값의 사 배)에 작정이 되었다. 아찡이도 새벽부터 이게 웬 떡이냐 하고 새벽부터의 운수를 웃고 떠들며 서로 축하하는 동무 인력거꾼들과 섞여서 정거장 구내로 들어가서 고리짝을 한 개 들어 내왔다. 아찡은 큰 고리짝 한 개와, 또 어제 먹다 남은 것인지 생선 대가리 같은 것을 주워 싼 조그만 보꾸러미 한 개를 인력거 위에 올리어 놓고 앞장을 서서 줄곧 달음질해 나아갔다.

사마로에 즐비한 여관들은 여관마다 피란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 그들은 이여관 저여관으로 한참이나 왔다갔다하다가 마지막에 겨우 어떤 좁고 더러운 여관으로 가서 그것도 남은 방이 없다고 해서 응접실에 그냥 있기로 하고, 겨우 짐을 풀어 놓았다. 인력거꾼들은 그 동안 미리 흥정한 장소까지 와가지고도 여기저기를 한참이나 끌려 다녔다는 것을 핑계로 해가지고 세상이 떠나갈 듯이 싸고 덤벼들어 떠들어 댄 결과로 마침내 매인 앞에 대양 일 원씩을 떼내었다. 아찡은 그의 손바닥에 놓인 번들번들 빛나는 은전 일 원짜리 한 푼을 눈이 부신 듯이 바라보면서, 저고리 앞자락으로 얼굴에 흐르는 땀을 훔치었다.

그가 인력거 채를 질질 끌면서 다시 큰거리로 나아올 때 혼자서,

“이게 웬 호박인구? 꿈자리가 사나우문 생시엔 되레 신수가 좋은 법인가?”

하면서 속으로는 좀 있다 밤에 방장이네게로 가서 한잔 할 기쁨을 예상하면서 그 번들번들하는 큰 돈을 허리춤 전대에 잘 간수하였다.

참말로 그날은 특히 운이 좋았던지 큰거리에 척 나서자 마침 가랑이 넓은 바지를 입고 팽갱이 같은 모자를 쓴 미국 해군 하나를 만나서 태우고 팔레스 호텔까지 가서 해군들 보통 버릇으로 그냥 막 집어 주는 돈을 받아서 헤어 보니 이십 전짜리 은전이 한 푼, 동전이 열두 푼이었다.

그는 너무나 좋아서 벙글벙글 웃으면서 전차 궤도를 건너 인력거 정류소로 들어가서 차를 내려놓고 그 살대 위에 편안히 걸터앉아서, 행상하는 어린애를 불러 동전을 여섯 푼 던져 주고 쪼빙(떡)을 두 개 사서 맛있게 먹었다.

해가 벌써 오정이나 되었으리라고 생각되는데 앞자리에 앉았던 인력거가 다 풀려 나가고 마침내 아찡이 차례에 이르렀다. 방금 팔레스 호텔 문지기인 인도인이 망치를 휘두르면서 ‘인력거꾼’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달려가려고 일어서다가 아찡은 그만 벌떡 나가자빠졌다. 아찡이 바로 뒷자리에서 참새 눈깔 같은 눈을 도록도록하며 앉아 있던 뾰죽이가 번개같이 아찡 옆으로 뛰어나가서 손님을 태우려고 달려갔다.

아찡이는 저도 모르게 ‘에쿠쿠’ 하고 신음하였다. 뒷자리에 차례로 앉았던 다른 인력거꾼들이 삥 둘러서면서 눈이 둥그래서 아찡이를 내려다보았다. 아찡이는 겨우 몸을 일으켜 인력거 채 위에 걸터앉으면서 ‘으륵’ 하고 아까 먹었던 쪼빙 두 개를 그대로 토해 버렸다. 머리가 휭하고 온몸이 노곤해 들어 왔다. 오 분, 십 분, 십오 분! 그는 다시 제 기운을 차려 보려고 노력했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의아스런 눈으로 바라다들 보고 있던 동료들 중에, 그중 나이 많이 먹은 곰보 영감이 마침내 가까이 와서 아찡이의 싸늘하게 식은 손을 주물러 주면서 말했다.

“여보게, 요 골목을 돌아 들어가서 사천로(四川路) 청년회로 가문, 돈 안 받구 병 보아 주는 의사 어른이 계시다네. 그리 가보게. 그저께 우리 장손녀석이 갑자기 아프대서 거기 가서 약 두 봉지 타먹구 나았다네. 어서 가보게.”

아찡이는 무의식하게 고개를 끄덕이었다. 아마도 이 곰보 영감 말대로 하는 것이 좋을까 보다 하고 흐릿하게 그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글쎄 어젯밤 꿈이 불길하더니…… 그는 마치 꿈속에서 길을 걷는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남경로(南京路)로 뛰어들어갔다.

 

2

그가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기억할 수가 없었다. 하여간 이사람 저사람에게 물어 보아 가며, 핀잔을 먹어 가면서 여기까지 찾아는 왔다. 방 안에는 자기 이외에도 서너 노동자들이 먼저부터 와서 아무 말도 없이들 서로 번번이 쳐다들만 보고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어디서 무엇에 치었는지 그냥 피가 뚝뚝 흐르는 팔을 추켜 들고 ‘호 호’ 하면서 부들부들 떨고 앉아 있었다. 아찡은 한참 동안이나 벽을 기대고 반쯤 누워 있다가 차차 정신이 드는 것을 깨달았다. 인제는 정신은 똑똑해졌는데 몸이 그저 사시나무 떨리듯 와들와들 떨리고 멎지를 않았다.

의사님은 어디를 갔나?

그곳 하인 비슷한 사람 하나가 비를 들고 들어왔다. 아찡은 거의 본능적으로,

“의사님 어디 가셨수?”

하고 물었다. 하인은 아무 대답이 없이 비로 방바닥을 두어 번 슬적거리고 나더니 기지개를 하면서,

“규칙이 의사님이 새루 두시가 돼야 오우! 갔다가 두시에들 오라구. 두시 전에는 의사님이 안 오시는 규칙이야.”

하고는 다시 방을 쓴다. 아찡은 비가 가는 곳마다 풀썩풀썩 일어나는 먼지를 흠뻑 맞으면서, 잇몸이 딱딱 마주 붙어서 떨리는 소리로 다시 물었다.

“지금 몇 시쯤 됐소?”

“열두시.”

하고 그 하인은 마치도 시간을 따로 외워 가지고 다니기나 하듯이 빨리 거침없이 대답했다.

두 시간! 그러나 여기서 기다릴밖에 없었다. 지금 아무 데도 갈 기력이 없었다. 왜 이다지도 몸은 자꾸만 떨릴까?

아찡이 한참이나 정신없이 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린 때에는 떨리는 증세는 모두 없어지고, 그저 머리를 무슨 몽둥이로 얻어맞은 듯이 띵할 뿐이었다. 팔 부러진 사람은 아직도 그냥 ‘호 호’ 하고 앉아 있고 다른 사람들은 일체 상관없다는 듯이 천장들만 쳐다보고 앉아 있었다.

흐리멍텅한 아찡의 귀로는 바깥 길 위로 뿡뿡 쓰르르 하며 오고 가는 자동차 소리들이 어디 멀리서 들려 오는 소리같이 들렸다. 그는 침묵이 무서워졌다. 그래서 그는 이 답답한 침묵을 깨뜨리는 것이 자기의 책임이나 되는 것처럼,

“지금 몇 시나 됐을까요?”

하고 공중을 향하여 물었다. 천장만 쳐다보던 사람들이 잠깐 얼굴을 돌려 표정 없는 흐리멍텅한 눈동자로 바라다볼 뿐이요, 누구 하나 말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아찡은 무서운 생각이 나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글쎄 어젯밤 꿈자리가 사납더라니!’

문이 열리면서 깨끗이 양복을 입고 금테 안경을 쓴 뚱뚱한 신사 한 분이 들어왔다. 아찡이는 직감으로 이 사람이 의사어른이려니 하고 벌떡 일어나면서,

“의사나리님, 제가 오늘 갑자기…….”

하고 말을 건넸더니, 그 신사는,

“아니오, 아니오, 의사는 아직 한 시간이나 더 있다가야 오십니다. 좀더 기다리시오.”

하고 대답하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조금 후에 그 신사는 다시 나타났다. 아픈 몸과 가슴을 가진 노동자들의 멀건 눈들이 이 젊은 신사의 일동일정을 멀거니 바라다보았다.

이 신사는 좀 뚱뚱하고 퍽 쾌활스런 사람이었다. 그는 조그마한 세 다리 교의에 펄썩 주저앉으면서 구둣발로 마룻바닥을 한 번 쿵 구르고 나서,

“당신들 의사 뵈러 왔소? 좀더 기다리시오. 아, 당신은 팔을 다쳤구려? 무슨 일 하오? 또 당신은?”

하면서 이사람 저사람 번갈아 보면서 대답은 쓸데없다는 듯이 남이 미처 대답할 사이도 없이 혼자 주절대었다.

그러나 그도 입을 다물고 한참 동안 다시 침묵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표정 없는 여러 눈들이 신사의 몸을 떠나서 다시 천장으로 향하려 하는 때에, 신사가 다시 버룩버룩하면서 말을 꺼냈다.

“세상은 고해이지요. 죄 때문이외다. 아담 이브가 한 번 죄를 진 이후로 그 죄악이 온 세상에 관영해서 세상이 이렇게 괴로움 많은 세상이 되었습네다.”

하고는 가장 동정이나 구하는 듯이 군중을 한번 쭉 둘러보았다. 군중의 얼굴은 일제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하는, 그러면서도 약간 호기심에 끌린 표정이 나타난 것을 그는 간파한 모양이었다.

“당신들은 기도를 해본 적이 있소?”

하고 신사는 일동에게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모두 신사의 얼굴만 열심으로 바라다볼 뿐이었다. 신사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가,

“기도함으로 죄 사함을 얻습니다. 요한복음 삼장 십육절에 말하기를 ‘하느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하느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짐을 지시고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서 그 피로 우리 죄를 속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세상에서는 이렇게 괴롭다가도 죽은 후에는 천당에 가서 금거문고를 뜯고 천군 천사와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생명수가의 생명과를 먹으면서 살아가게 된답니다.”

하면서 절반이나 설교체로 혼자 흥분해서 한참 내리엮고는 다시 한번 일동을 둘러보더니, 벌떡 일어나며 눈을 하늘을 향하여 올려뜨고,

“오! 사랑하시는 하느님이시여, 이 불쌍한 무리들을 굽어 살피사 당신의 거룩한 성신의 불로 그들의 죄를 태워 버리고,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사 하느님을 믿게 하시오며, 풍성하신 은혜를 베푸소서.”

하더니 다시 눈을 내리떠 군중을 둘러보면서,

“여러분, 오늘부터 예수 품안으로 들어오시오. 예수 말씀하시기를 ‘내 멍에는 가볍고 쉬우니라’ 하셨습니다. 이 세상 괴로움을 모두 잊어버리고 예수만 믿었다가 이 다음 죽은 후에 천당에 가서 무궁한 복락을 같이 누립시다.”

하고 끝내고는 그만 불쑥 나가 버렸다.

소 눈깔같이 우둔한 눈으로, 이 흥분한 신사의 머릿짓 손짓을 열심으로 바라다보던 눈들은 다시 일제히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면서 각기 입으로는 약속했던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찡이는 열심으로 그 신사의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모두 무슨 소리인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무슨 ‘죽은 후에는 무궁한 복락을 누린다’는 소리를 들을 때에는 ‘그렇게 되었으면 오죽이나 좋으랴’ 하고 속으로 부러워했다. 그러나 지금 세상이 무슨 아담과 이브의 죄 때문에 괴롭게 되었다는 소리는 미련한 생각에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자기 같은 인력거꾼들은, 모두 아담 이브의 죄의 형벌을 받는 중이라고 하려니와 그러면 어찌하여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양귀자들이나 또는 자기도 가끔 인력거에 태우는 비단옷을 입은 색시들은 아담 이브의 죄 형벌을 받지 않고 잘 사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신사가 나아간 후에도 아찡이는 한참이나 그 신사가 하던 말을 알아들은 대로 되풀이해 보았다. ‘세상에서는 괴롭게 지내다가 일후 죽은 후에 천당에 가서는 금거문고를 타고…….’ 죽은 후에 금거문고를 타려면 살아서는 왜 꼭 고생을 해야 되는가? 죽은 후에 천군 천사와 함께 노래 부르면서 잘 살려고 하면 왜 살아서는 매일 뚱뚱한 사람을 인력거 위에 태우고 땀을 흘려야 하며 발길에 채어야 하고 ‘홍도아째’ 순사 몽둥이에 얻어맞아야만 되는가? 죽은 다음에 생명과를 배부르게 먹으려면 살았을 적에는 어찌하여 남 다 먹는 아침 죽 한 그릇도 맘대로 못 먹고 쪼빙과 미음으로 요기를 하여야만 되는 것일까? 이것을 아찡이는 아무리 하여도 깨달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 신사가 말한 바 그 소위 천당이라는 데는 그러면 우리 같은 인력거꾼들만이 몰려가는 데일까? 그렇다면 양귀자들과 양복 입은 젊은 사람들과 순사들은 죽은 후에는 어떤 곳으로 가는가? 그들도 예수만 믿으면 천당으로 가는가? 만일 그들도 천당으로 간다면 그들은 이 세상에서도 고생이라곤 아니 했으니 그것은 불공평하지 않은가? 옳다. 만일 천당이라는 데가 있다면 거기서는 필시 우리 이 세상 인력거꾼들은 아까 그 사람이 말한 모양으로 금거문고나 타고 생명과를 배불리 먹고 놀고 이 세상에서 인력거를 타고 다니던 사람들은 모두 인력거꾼이 되어서 누더기를 입고 주리고 떨면서 인력거를 끌고 와서 우리를 태워 주게 되나 부다! 그렇다. 그리만 된다면 나도 한번 그들을 ‘에잇끼놈’ 하고 소리 지르면서 발길로 차고, 동전 서 푼 던져 주고, 예수 만나 보려 대문 안으로 들어가게 될 터이지. 정말 그럴까…… 하고 그는 혼자 흥분하여졌다. 그래 그 신사가 아직 있으면 천당에도 인력거꾼이 있느냐고 물어 보고 싶었다. 만일 그렇다고만 하면 그는 이제라도 어서 속히 죽을 것이었다. 그래서 그 좋은 천당으로 한시바삐 갈 것이다. 그는 호기심에 끌려서 미닫이 칸 막은 안방에서 무슨 책인지 웅얼웅얼하면서 읽고 있는 하인에게 말을 건넸다.

“여보, 영감님, 영감님두 예수 믿수?”

웅얼웅얼하던 소리가 뚝 끊기고 잠시 가만 있더니,

“네, 왜 그러우?”

한다.

“천당에두 인력거꾼이 있답디까?”

“인력거꾼? 흥, 천당에도 인력거꾼이 있으문 천당이 좋달 게 무얼꼬. 없어요.”

눈만 멀뚱멀뚱하고 앉아 있던 다른 사람들도 빙그레 웃었다. 피가 뚝뚝 듣는 부러진 팔을 들고 앉았는 사람만이 아무것도 모두 귀찮다는 듯이 그냥 물끄러미 팔만 들여다보고 앉아 있었다.

아찡이는 낙망했다. 천당에는 인력거꾼이 없다! 그러면 역시 고생하는 놈은 우리들뿐인 것이다. 돈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서나 천당에서나 늘 즐거운 것뿐이니!

그는 그런 천당에는 가기가 싫었다. 천당에 가서도 낮은뎃사람이 위로 가고, 위엣사람이 아래로 가지지 않는다고 할 것 같으면 그런 데까지 일부러 다리 아프게 찾아갈 필요는 조금도 없는 것이었다. 차라리 괴롭더라도 이 세상에서나 쪼빙이나마 잔뜩 먹고 몸이나 성해서 한 달에 한 번씩 이십 전짜리 갈보네 집에나 가서 자면 그것이 더 행복스러운 일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몸이 퍽 가뜬해진 것처럼 생각되어서 아찡이는 오지도 않는 의사를 기다리기가 싫어져서 그만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런데 그가 분주스런 거리로 이사람 저사람 피하면서 걸어나갈 때 홀로 큰 고독을 깨달았다. 아찡은 제가 갑자기 이 세상 밖에 난 것같이 생각이 되어서 슬퍼졌다. 지나가는 사람, 지나오는 사람 들이 모두 희미하게 멀리 딴세상에 사는 사람들 같고, 자기는 지구 밖 어떤 곳에 홀로 서서 이 사람떼를 바라다보는 것처럼 생각되어졌다. 그는 이것이 흉조라고 생각되어 몸을 떨었다.

그는 정신없이 다리가 움직여지는 대로 걸었다. 팔레스 호텔 앞에 버리고 온 인력거는 기억에 나오지도 않았다. 그 인력거를 잃어버리면 제 앞에 어떠한 비참한 일이 오리라는 것조차도 인식하지 못하였다. 저도 모르게 제 집 쪽으로 걸어오다가 건재 약국에 들어가서 감초 가루약을 동전 서 푼 어치 사들고 그냥 걸어갔다.

아찡이 얼마나 오래 걸었던지 제 집 동구 밖에까지 왔을 때 동구 밖에 울긋불긋한 기를 늘이운 책상 뒤에 앉아 있는 안경 쓴 점쟁이를 발견하였다. 아찡이는 저도 모르는 새 그리로 끌리어갔다.

전대에서 이십 전짜리 은전 한 푼을 꺼내 이 점쟁이 앞에 던져 주고 우두머니 서서 점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점쟁이는 누런 안경 속으로 그 큰 두 눈을 희번덕거리면서 아찡이의 아래위를 한번 훑어보더니 자그마한 상자 속에 손을 넣어 돌돌 말린 종이 한 장을 꺼내서 펼쳐 읽어 보고는, 책상 밑에서 커다란 장지책 한 권을 꺼내 들고 세 치나 자란 시커먼 엄지 손톱으로 장장 들쳐 가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몇 곳 읽어 보더니 책을 덮어놓고서 책상 위에 놓인 유리판에다가 먹붓으로 글자를 넉 자를 써서 아찡 앞에 쑥 내밀었다. 아찡이가 그 글자를 알아볼 리가 없었다. 점쟁이는 가장 점잔을 빼면서 관화가 조금 섞인 듯한 영파 방언으로 점의 해석을 길게 늘어놓았다. 이러쿵 저러쿵 중언부언한 해석을 다 모아 보면 대략 이러한 뜻이었다.

……아찡이가 지금은 전생의 죄값으로 고생을 하지만 인제 얼마 안 있으면 돈 많이 모으고 잘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3

아찡이는 정신없이 제 방 안으로 들어가서 꼬꾸라졌다. 그는 몸을 떨었다.

몸이 다시 으스스하고 구역이 나기 시작하였다. 아찡의 눈앞에는 그의 전 생애가 한번 죽 나타났다. 어려서 시골서 남의 집 심부름 하던 때로부터 상해로 굴러들어와서 공장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쫓겨 나서는 이내 인력거를 끌게 된 것…… 그것이 벌써 팔 년이라는 긴 동안이었다.

팔 년 동안 인력거를 끌던 신산한 기억이 다시금 생각났다. 애스톨 하우스 호텔에서 어떤 서양 신사를 태우고, 오 리도 더 되는 올림픽 극장까지 가서 동전 열 푼을 받아 들고 너무도 억울해서 동전 두 푼만 더 달라고 빌다가 발길에 채던 생각이 났다. 또 언젠가는 한번 밤이 새로 두시나 되어서, 대동여사에서 술이 잔뜩 취해 나오는 꺼우리(조선 사람) 신사 세 사람을 다른 동무들과 함께 한 사람씩 태우고 불란서 조계 보강리까지 십 리나 되는 길을 끌고 가서 셋이서 도합 십 전짜리 은전 한 푼을 받고 너무도 기가 막혀서 더 내라고 야단치다가 그 신사들에게 단장으로 얻어맞고 머리가 터져서 급한 김에 인력거도 내버리고 도망질쳐 달아나던 광경이 다시 생각났다. 그러고는 또다시 언젠가 한번 손님을 태우고 정안사로 가다가 소리도 없이 뒤로 달려온 자동차에게 떠밀리어서 인력거를 바수고 다리까지 삐인 위에 자동차 운전수의 발길에 채고 인도인 순사 몽둥이에 매맞던 일도 새삼스럽게 다시 생각이 났다.

길다면 길고 멀다면 먼, 또는 짧다면 또 짧은 팔 년 동안의 인력거꾼생활! 작은 일, 큰 일, 눈물난 일, 한숨 쉰 일들이 하나씩하나씩 다시 연상되어서 그는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목이 갈한 것을 느끼면서 몸을 일으키려 하다가 온몸에 쥐가 일어서는 것을 감각하여,

“끙.”

소리를 지르며 도로 엎으러지고서는 다시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4

종일 인력거를 끌다가 새벽녘에야 집으로 돌아와서 아찡의 시체를 발견하고 공보국에 보고한 뚱뚱보를 따라서 공보국에서 순사와 의사가 검시를 하러 이 더러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의사는 방 안에서 검시하고 영국인 순사 부장은 중국인 순사 통역을 세우고 뚱뚱보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서 조그만 수첩에 적어 넣었다.

“아찡이가 언제부터 인력거를 끌었지?”

“글쎄 똑똑히는 모릅니다. 이 집에 같이 있게 되기는 바루 삼 년 전부터이올시다. 그때 제가 인력거를 처음 끌기 시작하면서부터 함께 있게 되었사와요.”

“그래 똑똑히는 모른단 말야?”

“네, 네, 아찡이 제 말로는 이 노릇을 시작한 지가 금년까지 팔 년째라구 말을 합니다만, 나리!”

순사 부장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안에서 검시하고 나오는 의사를 향해 웃으면서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무얼요, 저 죽을 때가 다 돼서 죽었군요. 팔 년 동안이나 인력거를 끌었다니깐요. 남보다 한 일년 일찍 죽은 셈이지만, 지난번 공보국 조사에 보면 인력거 끌기 시작한 지 구 년 만에는 모두 죽는다구 하지 않았습니까?”

의사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흐흥! 팔 년으로 십 년, 그저 그 이내지요. 매일 과도한 달음질 때문으로…….”

5

공보국에서 온 일꾼들이 아찡이의 시체를 거적에 담아 실어 가지고 간 후, 뚱뚱보는 한참이나 멀거니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그날 오후 두시에 사람들은 그 뚱뚱보가 역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인력거에 손님을 태우고 기운차게 달리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는 아까 순사 부장과 의사와의 회화를 못 알아들은 것이 그에게는 다행이었다. 오 년이나 육 년 후에 그도 아찡이의 뒤를 따르게 될 것을 모르므로 뚱뚱보는 껑충껑충 아스팔트 매끈한 길 위를 기운차게 달리는 것이었다…… 마치도 한 백 년 더 살 것같이…….

 

 

 

 

 

 

 

 

 

 

소설읽기 NO 4

 

 

김연수 스케이트

 

눈 쌓인 추풍령을 지나오는 동안 차가운 공기를 머금은 북풍이 골목길로 접어들어 슬레이트 지붕에 매달린 날카로운 고드름 몇 개의 속내를 단단하게 만들면서 서너 차례 지나갔다. 밤 사이 털모자 끝에 달린 왕방울만한 눈이 또 내린 것이다. 평화동 80번지 골목마다 아침 일찍 일어난 가장들이 한쪽으로 치워놓은 눈무더기와 아이들이 만들어놓은 눈사람 등이 제멋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진주한 눈의 군대 앞에서 출근하는 사람들은 엉거주춤 걸어가는 자세와 미끄러진 자세의, 그 중간쯤 애매한 어딘가를 가리키는 동작을 하고는 기적소리가 울려퍼지는 골목을 지나갔다.

정인은 아직 키가 일 년에 5센티미터씩 자라는 국민학교 3학년짜리였다. 지난 늦가을부터 정인의 엄마가 굵은 색실로 짜준 빨간 스웨터를 입고 있었지만, 아마도 그 스웨터가 정인의 몸에 맞으려면 내년 겨울이나 되어야 할 것이다. 워낙에 강수량이 적은 고장이라 정인에게도 뜻하지 않은 눈의 연이은 습격은 아름다웠다. 비실비실한 겨울 햇살을 받아 낱낱의 눈송이들이 되비춰주는 빛들은 정인에게 음악 시간에 듣는 풍금소리를 연상시켰다. 건반을 누르고 발을 굴리면 아주 오랫동안 들리는 두터운 소리가 교실에 가득 차듯이 왠지 따뜻해 보이는 눈들이 80번지 저지대 마을을 감싼 것이다.

정인은 쪼그리고 앉아 벙어리장갑을 낀 손으로 대문 앞에 쌓인 눈을 만지작거렸다. 처음 내릴 때는 보드라웠지만, 간밤에 골목을 휩쓸고 지나간 바람에 단련되어 단단하게 굳어버린 눈 알갱이들이 갈치의 비늘처럼 날카롭게 반짝였다. 가끔씩 바람이라도 지나가면 담벼락 너머로 비어져나온 목련 가지에 쌓였던 눈이 정인 쪽으로 날아들었는데, 정인은 그 비늘 같은 눈송이들이 눈으로 들어갈까 겁이 나 손을 휘저었다. 겨울의 한가운데에 정인은 있는 것이다.

혼자서 신이 나 눈을 만지작거리는데 뒤에서 마른기침 소리와 함께 주인집 재성 남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욕쟁이 할아버지가 침을 막 뱉은 입에 청자 한 개비를 물고 집 앞에 쌓인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족히 10분은 너머 피울 담배였다. 지난 여름, 아랫장터에 있는 자신의 지물포에서 전지다발을 내리다 허리를 삐끗한 이후로는 숨조차 가빠 담배 피우는 속도가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얼른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릴 생각으로 정인은 두 손으로 무릎을 짚으며 일어섰다. 서자마자 익숙한 어지럼증이 정인을 휘감았다. 정인의 시야로 폭설이라도 내린 듯, 온통 하얀색만이 가득했다. 한 순간 정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정인은 아문센이나 갈 만한 북국(北國)의 어느 왕국에 간 것이다. 그 왕국은 만년설로 언제나 하얗기 그지없는 세상이다. 어서 오십시오. 이곳에서는 어느쪽으로 가나 남쪽입니다. 머리도, 눈썹도 하얀 집사가 그렇게 말하며 정인을 맞이한다. 여기는 어딘가요? 당연히 만년설 왕국이죠. 거기가 어딘지 모르고 온 사람은 정인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집사는 당황하여 눈썹을 만지면서 말한다. 눈썹에서 비늘처럼 하얀 것들이 떨어진다. 성(城)의 가장 깊은 곳에 가면 만 년 전의 눈에 휩싸인 왕자가 누워 있다. 거기까지 내려가면 갈수록 온도는 내려갑니다. 그래서… 집사가 말끝을 흐린다. 많은 사람들이 왕자를 구하러 내려가다가 얼어붙었답니다. 웬만큼 사랑이 뜨겁지 않다면… 집사는 다시 말끝을 흐린다. 정인은 순간 당황한다. 자신에게 만 년 전의 눈을 모두 녹아내리게 할 만한 사랑이 있을까? 집사의 간곡한 하얀 눈빛이 정인을 사로잡는다. 도망갈 수 있다면…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아도 온통 하얀 세상뿐. 그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의 목소리다. 정인은 목청껏 대답한다.

「먼산은 왜 그키 쳐다보나?」

엄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대문간에 서서 정인을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아이라.」

요즘 들어 부쩍 정인이 그렇게 멍하니 서 있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에 엄마로서는 어딘가 모자라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던 차였다. 엄마는 혀를 끌끌 차더니 말했다.

「아부지 술 깨면 잡수시게 뇌신 하나만 퍼뜩 사온나.」

정인의 엄마는 작은 구슬처럼 튀어나온 쇠붙이로 여닫는 지갑에서 동전을 건네주면서 말하곤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정인은 엄마가 건네준 동전을 보느라고 벙어리장갑을 눈앞에 펼쳤다. 벙어리장갑에 달라붙어 있던 눈송이들이 어느새 녹아내려 둥근 물방울들로 맺혀 있었다. 정인은 동전만 골라 주머니에 넣은 다음, 두 손을 엉덩이에 문질러 물방울을 털어냈다.

80번지는 역의 반대편에 있었다. 중심가인 평화동은 원래 경부선 철길을 따라 서쪽, 역 앞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시민들은 철길 저쪽에 있는 평화동 80번지만은 평화동으로 부르지 않고 그냥 80번지라는 호칭으로 불렀다. 그 철길이 건널 수 없는 강이라도 되는 양, 80번지 사람들은 시내에서도 이방인으로 통했다. 80번지 사람들은 더럽고 속임수를 잘 쓰고 싸움질이나 하는 족속들이라는 평판이 자자했다. 그러한 평판의 대부분은 중심가로서의 자부심을 가진 같은 평화동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급속도로 발전한 다른 도시에 비하자면, 중심가나 80번지나 낙후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의 도시만 개발되지 못했다는 이러한 불만은 인근 도시에서 군인 출신 대통령이 나오고 그 도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면서부터 더욱 커졌다. 그 대통령이 정인네가 살고 있는 도시를 지나면서 <어릴 적에는 이 시가 세상에서 제일 큰 도시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초라하기 그지없구만>이라고 말한 일은 두고두고 상공회의소 패거리들의 안줏감이 될 정도였다. 근대화의 열풍에서 밀려나 있는 낡은 도시. 그것이 바로 그 도시의 현재 이름이었다.

약국은 상주로 나가는 도로변에 있었다. 며칠 전에 처음 눈이 내렸을 때만 해도 시청 트럭이 시내를 오가면서 모래를 뿌려대어 그나마 버스가 다닐 수 있는 길은 만들어놓았었는데, 그날 아침에는 시청에서도 포기했는지 모래조차 보이지 않았다. 정인은 쇠사

슬로 친친 감아놓은 바퀴를 슬슬 굴리며 지나가는 트럭과 버스들처럼 엉거주춤 약국까지 갔다. 약국 앞길은 일찌감치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는데, 약사인 여주인의 깔끔한 성격을 그대로 보는 듯했다. 정인은

약국 문의 위창으로 비어나온 연통 끝에 매달린 깐포도통을 보면서 약국의 문을 열었다.

「아주무이? 아주무이?」

정인이 몇 번을 되풀이해서 부르자, 앞치마를 두른 약사가 안쪽 문을 열면서 밖으로 나왔다. 아침을 만들다가 정인의 목소리에 달려나온 듯, 아직 물기 가득한 손을 앞치마에 문질러 닦았다. 정인의 아버지는 절대로 이 약국에서 약을 사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인근에서 가장 가까운 약국이 여기밖에 없었기 때문에 정인은 매번 약을 살 때마다 이 약국을 들르곤 했다. 약사 역시 정인네에게 약을 팔지 않겠노라며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정인이 계속 약을 사러 왔기 때문에 그녀는 속으로 <참 잔망스러운 애구나>라고 생각했었다.

「뇌신 한 봉지만 주세요.」

 

불 위에 얹어놓고 온 국거리에 정신이 팔려 있던 약사는 무심한 눈초리로 정인과 그녀 사이에 놓여진 진열장의 문을 열고 약봉지를 찾았다.

「여기 있다.」

약사의 뒤쪽에 걸려 있는 졸업장을 보며 공상에 빠져 있던 정인은 그 말에 얼른 어머니가 준 동전을 꺼내어 셈을 치르고는 밖으로 나갔다. 약사는 정인이 남기고 간 시선을 따라 자신의 뒤쪽에 걸린 졸업장을 보았다. 콧대 높은 사립 여대생이 고향인 시골 도시, 그것도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분인 80번지에서 약국을 개업한 이유는 약사로서의 대단한 꿈이 있어서가 아니다. 반대로 아무런 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어떤 꿈이었는지는 그녀도 아주 오래 전 잊어버렸다. 약사는 졸업증에 씌어진 자신의 이름을 한 번 발음해보았다. 어색한 이름이라고 생각하는데, 문득 방금 아이가 사간 약 이름이 떠올랐다. <나혜선>과 <뇌선>. 그때, 안채에서 국물이 끓어넘치는 소리가 들렸다.

「돈이 왜 남나?」

정인 엄마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너 옳게 말해라. 이 약 어디 가서 샀나?」

엄마의 부릅뜬 눈초리에 정인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평화약국에서요.」

「이 가시나가. 아부지 알면 우짤라고 거서 사나?」

엄마의 호통에 잔뜩 주눅이 든 정인이 고개를 숙였다.

「암만 캐도 모르겠네. 그 약국 년이 식전이라 미칫는갑다. 이거 아부지 머리맡에 갖다 놔라.」

하지만 정인 엄마로서는 아직도 석연치 않은 뭔가가 남아 있었다. 두부를 부엌칼로 총총 자르고 펄펄 끓어대는 김치찌개에 넣고 나서 그녀는 방으로 들어가려는 정인을 불러 세웠다.

「너, 뇌신 좀 가 와봐라.」

도마 위에서 칼로 파를 뭉텅뭉텅 쓸 때처럼, 뚝뚝 끊기는 엄마의 목소리에 정인은 절로 움츠러들었다. 엄마는 벌레라도 집는 것처럼 뇌신 봉지를 자신의 눈 높이까지 들어올렸다가 다른 손으로 정인의 등을 툭 쳤다. 엄마가 짜준 스웨터의 부풀어오른 공간들 덕택에 별로 아프지는 않았지만, 매를 맞는 순간 왠지 모를 억울함이 정인의 몸을 감쌌다.

「가시나야, 뇌신 사오라 캉께네 왜 또 뇌선 사왔나? 약국 년이 이래 주디?」

엄마는 방 안의 아버지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춰 정인을 힐난했다. 정인은 그제야 사태를 알아차리고 겁에 질려 고개를 흔들었다.

「그라마, 니가 뇌선 달라 캤나?」

엄마는 정인의 고갯짓을 약국 여자가 일부러 한 짓은 아니라는 의미로 알아들었지만, 그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자신이 뇌신을 달라고 했는지, 뇌선을 달라고 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자신이 분명히 뇌신을 달라고 했다고 말한다면, 전에도 한 번 그런 기억이 없었다. 정인이 눈물을 흘리기 직전, 집 앞에 쌓인 눈을 다 치운 욕쟁이 할아버지와 재성이 들어왔다. 욕쟁이 할아버지는 얼굴이 빨갛게 된 정인과 화가 난 표정으로 뇌선을 들고 서 있는 엄마를 훑어보자마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차렸다.

「아가 또 뇌선 사왔구만. 뭐 어때서 그 카나? 약이 똑같지. 별나게 구는 인간이 개밥에 닭알이지.」

갑자기 욕쟁이 할아버지가 눈치 없이 큰소리를 지르자, 엄마는 화가 더 치밀어올랐다. 엄마는 욕쟁이 할아버지 쪽은 보지도 않고 정인의 팔을 툭 낚아채어 부엌 쪽으로 들어갔다.

「너는 왜 그키 모자라나?」

속이 탄 엄마의 혼자말이었지만, 정인으로서는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생각나지 않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한참 고심하던 엄마는 정인에게 주머니칼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정인은 정지 문을 열고 들어가 자신의 학용품이 있는 앉은뱅이 책상에서 까만 주머니칼을 가지고 나왔다. 엄마는 부엌 한쪽에 앉아서 뇌선 봉지를 놓고서는 그 주머니칼로 정성 들여 <선>자에 그려진 선 하나를 지워나갔다. 한참 칼을 쥐고 있던 엄마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정인에게 약봉지를 보여주었다.

「어떻나?」

「진짜 뇌신 같아여.」

엄마의 환한 표정에 자신도 모르게 다시 마음이 풀어진 정인이 방긋 웃으면서 말했지만, 이내 엄마는 정인의 머리를 한 번 쥐어박았다.

「너는 진짜 좀 모자란 모양이다.」

다시 된서리를 맞고 마당으로 나온 정인에게 아직 집에 들어가지 않았는지 재성이 다가왔다.

정인에게 말했다.

「그라지 말고, 너 우리하고 스케이트 타러 안 갈래?」

「난 스케이트도 없어여.」

「재순이 꺼 빌려주만 되지. 이따 갈 때 부를 텡께 나와라.」

정인은 한참 동안이나 재성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인에게 재성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정인도 벙어리장갑을 벗고 손가락을 내밀어 약속했다. 정인의 손가락에 땀이 잔뜩 배어 있었다.

정인의 아버지는 황금동 동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인근의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몇 년 간은 부산의 한 식품업체에 다녔지만, 입대한 이후로는 <이러다간 평생 공장밥 먹다가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통신수업으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상고에 다닐 때부터 글씨깨나 쓴다는 소리를 들었는 데다가 군대에서도 차트병으로 일한 탓에 <너, 면서기 하면 잘하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터였다. 그의 아버지는 트럭 운전사였는데, 어디 멀리 일이라도 나가면 사흘이고 나흘이고 안 들어오기 일쑤였는 데다가 집에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그놈의 술추렴으로 제정신이었던 날이 드물었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 역시 <남자는 펜대를 굴려야 하는 법>이라고 귀에 인이 박이도록 말해왔었다. 그래서 정인의 아버지가 몇 번의 응시 끝에 9급 공무원이나마 합격했을 때만 해도 사법고시에라도 붙은 것처럼 온 집안이 떠들썩했었다. 장손인 그는 온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빳빳하게 다려 입은 와이셔츠를 입고 첫 출근 했다.

그 빳빳하던 와이셔츠 칼라 세우고 정인의 아버지는 밑으로 줄줄이 징검다리처럼 있었던 동생들을 모두 학교 졸업시키느라 노총각으로 늙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간 손자도 못 보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갑자기 정인의 할머니에게 밀어닥친 것이 바로 정인의 아버지가 서른두 살 되던 해였다. 푸에블로호가 납북되고 김신조가 넘어오던 그 즈음이니 또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염려도 정인의 할머니에게는 있었다. 전쟁이 나면 아들녀석도 끌려갈 것이고 그 전에 어서 씨라도 받아놓아야지 핏줄이 이어질 터였다. 그래서 조카를 앞세워 여상 졸업하고 운전기사들을 상대로 음식 장사 하는 식당에서 집안일을 거들고 있던 지금의 정인 엄마를 맞아들였다. 한동안은 애가 안 서 굿을 하네, 한약을 달이네 하며 사람을 안달하게 만들더니 기껏 결혼하고도 이태를 더 기다려 나온 녀석은 고추가 아니라 조개였다.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고 여겼지만, 할머니의 속내는 아직도 세월은 많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인지 첫애 정인이 태어나고 나서도 한동안 소식이 뜸하다가 다시 2년쯤 더 지나서 정인 엄마는 임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들여온 며느리가 엉덩이도 손바닥만한 게 왠지 몸이 부실하다고 여기던 차에 그만 덜컥 유산되고 말았다. 원래 내색을 잘 하지 않는 성격이라 주위에 은근짜로 통했던 정인 아버지도 이번에는 얼굴에 화색까지 돌면서 여섯시만 되면 정확하게 동사무소에서 집으로 귀가하곤 했었는데, 유산이 되고 나서부터 은근짜는 털팔이로 바뀌어 술을 가까이하기 시작했다. 술은 운전대를 잡건, 펜대를 잡건 모든 인간을 동일하게 만들어버린다. 곤드레가 된 아들의 모습에서 죽은 남편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할머니는 어서 툭툭 털어버리고 다시 임신하는 수밖에 아들의 마음을 돌릴 길은 없다고 누누이 며느리에게 얘기했었다. 하지만 하늘을 봐야 별을 딸 것이 아닌가? 통금 직전에라도 들어오면 다행인 것이었지만,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술에 취해 잠자리는커녕 밤새 그놈의 술주정을 하는 꼴은 꼭 지 애비를 빼닮았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할머니 말대로 삼신 할매가 정인네를 불쌍하게 여겨서인지 어쩐지 정수가 턱 들어섰다. 이번에는 정인 엄마더러 새벽 물에 손도 담그지 못하도록 다그치고 조심시킨 결과, 부실한 몸이나마 드디어 아들을 보게 되었다. 아들을 봤다고 해서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멀리하겠냐마는 적어도 몸 속으로 들어간 알코올이 독으로 작용하지는 않는 듯, 정인 아버지가 술주정을 하는 일은 없었다. 아기를 얼르는 모습에서 할머니가 자전거를 이끌고 면사무소로 첫 출근 하던 아들의 늠름한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했다. 끊이지 않는 우환과 근심도 이제 끝나고 아들 말마따나 승진시험도 척 붙어서 동네 사람들 앞에서 고개 빳빳이 들고 살 날도 멀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뇌수막염에 걸린 정수는 그 이듬해 겨울, 엄마가 평화약국에서 감기약을 조제해 와서 이틀 간이나 집에 방치해두는 바람에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이제 정인의 아버지는 영원히 술과 함께 살아갈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정인 엄마가 앞으로는 애를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은 그로 하여금 술로써 모든 일을 잊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문으로 인도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조상들도 살아 생전 모두 그 문을 생명의 문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갔으니, 그도 결국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술자리로 죽음을 초대할 것이다.

어디선가 찬바람이 숭숭 밀려 들어온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정인 아버지는 실눈을 뜨고 그 기운이 어디서 들어오는지 살폈다. 손잡이가 있는 부분의 창호지에 엄지손가락만한 구멍이 나 있었다. 아마도 그가 지난밤, 술에 취해 들어오면서 뚫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억도 나지 않았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다. 몸을 한 번 뒤집어 모로 누웠다가 쉽게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아 그는 머리맡에 있는 자리끼를 들이켰다. 그리고는 부엌 쪽으로 난 정지 문을 밀어붙이며 고함을 버럭 지르려는데 비린내가 훅 끼쳤다.

「이 뭔 냄새고?」

「꽁치 구우요.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습니까?」

「아따, 냄새 지랄맞네. 치우고 뇌신 사왔나?」

풍로를 마당 쪽으로 내놓고 석쇠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던 정인 엄마는 그 말에 화들짝 놀라며 일어섰다.

「왜 그키 놀라나? 뭐, 잘못된 거 있나?」

「아이라여. 여 있습니다.」

정인 엄마는 찬장에 넣어두었던 약 한 봉지를 그에게 건넸다. 다행히 그는 뇌신인지 뇌선인지는 신경 쓰지도 않고 북 찢어 그 안에 든 가루약을 입 안에 털어넣고는 금색 주전자에 든 자리끼로 목을 축였다.

「오늘은 사무소 안 갈 낑께 누구 찾으만 아프다 캐라.」

「마이 아파여?」

「미친 지랄은 뒀다 니 딸년한테나 하고 치았뿌라. 아프만 어짤 낀데? 또 감기약 사줄 끼가?」

그러면서 그는 정지 문을 소리나게 닫아버렸다. 엄마로서는 풍로 불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평생 죄인처럼 살아가야만 한다는 생각에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한숨 한 번 쉬고 얼른 정인 엄마는 정인 아버지가 버린 뇌선 껍데기를 주워 풍로 불에 태워버리고 다시 꽁치를 뒤집기 시작했다.

겨울 햇살은 높이 올라갈수록 부풀어오르는 풍선처럼 그 열기를 더해갔다. 지붕에서 눈 녹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으니 제아무리 태산처럼 쌓인 눈이라고 하더라도 오늘 안에 모두 녹아버릴 기세였다. 햇살이 문지방을 비추다가 툇마루 쪽으로 나아갈 때까지도 아버지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주인남자는 이미 택시회사로 나갔고 욕쟁이 할아버지도 지물포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신을 부르러 온 재성 남매도 곧 따라가겠다는 정인의 말을 듣고 스케이트장으로 먼저 가버렸으니, 정인은 아직 깨어나지 않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병원에 갈 일이 있다며 외출하지만 않았어도 아버지의 밥상을 차려주기 위해 정인이 집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었다. 방학책 들춰보는 일마저도 지겨워지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아버지가 주무시고 있는 방 안의 갑갑함을 견디지 못한 정인은 조심스레 이불에서 몸을 일으켜 스웨터를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슬레이트 지붕 처마마다 매달린 고드름이 겨울 햇살을 받아 물방울들을 하나씩 떨어뜨리고 있었다. 성급한 안뜰의 바닥 중에는 벌써 녹아버려 물기로 질퍽한 곳도 생겨났다. 정인은 마치 비가 내리듯이 줄을 지어 떨어지는 고드름의 물방울에 손바닥을 대고 있다가 신발을 신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앞집 기와 지붕 위에 살짝 매달린 겨울 햇살은 주변의 공기를 따뜻하게 데우며 먼 길을 날아와 고드름으로, 안뜰로, 툇마루로, 정인의 이마로 튕겨졌다. 혹시나 해서 대문을 열고 골목으로 나가봤더니 햇살이 닿는 곳부터 쌓인 눈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제야 정인은 스케이트장에 생각이 미쳤다.

정인은 창호문을 열어 잠자는 아버지를 한 번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쉽게 깨어나지는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정인은 얼른 농고(農業高等學校) 앞, 논에 만들어진 스케이트장의 얼음이 아직도 무사한지 알아볼 생각으로 신발을 고쳐 매고 뛰어나갔다. 상주로 통하는 국도의 상황은 정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지 않았다. 아침나절에 약을 사러 갈 때만 해도 온통 하얀빛이더니 어느 틈에 그 빛들이 다 사라져 아스팔트의 거무튀튀한 색만 정인의 눈에는 보였던 것이다. 차를 타지 않고 농고 앞 스케이트장까지 가는 방법은 시내를 통과하지 않고 상주 쪽으로 조금 내려가 직지천(直旨川)을 따라 가는 길뿐이었다. 정인은 코끝이 빨개지도록 불어오는 겨울 바람을 양볼에 한껏 받으며 미끄러운 인도를 따라 뛰어갔다. 몇 번은 넘어질 뻔했고 몇 번은 실제로 넘어졌지만, 마음은 급하기만 했다.

정인은 직지사교에 이르러서 좌측으로 방향을 돌려 직지천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정인은 살얼음이 언 직지천의 물줄기를 따라 거슬러 올라갔다. 그 물줄기를 따라 화장한 동생 정수의 몸이 떠내려갔었다. 그 물을 따라 흘러갔다면 동생은 낙동강을 거쳐 태평양 어디쯤 존재할 것이다. 정수가 죽고 나서부터 정인의 엄마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인은 아직도 동생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아버지가 <우리 집의 왕자님>이라고 불렀듯이, 정인에게도 동생 정수는 왕자처럼 예뻤었다. 그렇게 손가락도 예쁘고 발가락도 예뻤던 아이의 몸이 어떻게 눈송이 같은 가루로 바뀔 수가 있었을까? 정인은 뛰어가면서 둑길에 쌓인 눈을 발로 한 번 차보았다. 서로 엉겨붙은 눈발들이 얼어붙은 땅 위로 흩날렸다. 아무리 정수의 몸이 작았다고 하더라도 그처럼 가벼울 수 있겠는가? 정수가 떠난 뒤, 정인의 몸 안에도 그처럼 큰 빈 공간이 남아 있는데 말이다. 정인은 자꾸만 떠오르는 정수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직지천에서 고개를 돌려 시내 쪽을 바라보며 뛰었다.

정인이 비로소 농고 앞 스케이트장에 도착했을 때, 새벽같이 스케이트장을 찾아왔던 아이들은 하나 둘 빠져나가고 있었다. 정인은 차가워지는 두 손으로 귓불을 비비며 차양이 둘러쳐진 스케이트장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고개를 삐죽이 내밀었다. 물방울처럼 오빠를 따라온 계집애들이 갸르르 웃는 소리가 스케이트장 위로 번지고 있었다. 정인은 한쪽에 각목과 비닐을 조립하여 만든 가건물 쪽으로 들어갔다. 그 가건물 안에서는 라면, 오뎅, 떡볶이 등의 분식을 팔거나 스케이트를 대여해주는 곳이 있었다.

「입장료 내놔!」

중공군처럼 볼까지 내려오는 털모자를 쓴 사내가 두툼한 장갑을 낀 손을 내밀며 말했다. 하지만 정인에게는 돈이 없었다.

「그냥 구경왔어여.」

「그냥 볼라 캐도 입장료는 내는 기라.」

「그라만 나가서 보께여.」

「나가만 안 보이여. 여서 봐야 한끼네 돈 내놔라.」

「안 보이도 볼 끼라요.」

「어째 아가 이키 맹랑하나? 안 보이는데 뭔 수로 볼 끼가?」

「야는 입장료가 없어서 그칸다.」

「진짜가?」

재성이 물었다.

「그냥 보는 데도 입장료 내라카잖아.」

재성은 정인과 사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재성은 조금 망설이더니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며 말했다.

「야 입장료는 내가 내께요. 들라보내요.」

정인이 고개를 들어 재성을 쳐다보았다.

「아야! 아무도 없나? 여 봐라.」

텅 빈 동굴 같은 방에 자신의 목소리만 되울려퍼졌다. 주인집 마루에서 욕쟁이 할아버지가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가 조그맣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베이지색 내복 차림의 정인 아버지는 상반신만 이불 밖으로 꺼내고는 머리맡의 자리끼를 들이켰다. 어젯밤 김 주사 때문에 과음하기는 했지만, 보통 때와 달리 머리가 빠개질 듯이 아팠던 것이다. 자리끼를 들이켠 그는 이불을 걷어치우고 일어나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아무도 없나? 여 봐라. 정인아.」

아무런 대답이 없자, 그는 담뱃불을 붙이고 창호문을 활짝 열어제쳤다. 차갑지만 신선한 바람이 방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는 한참 동안이나 숨을 들이켰다가 다시 내뿜으며 담배를 피웠다. 아내도, 정인도 근처에 없는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멍하니 마당에 쌓인 눈을 바라보고 있는데, 부엌 창을 가린 비닐이 바람에 부딪혀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파리한 떨림이 소리로 바뀌어 지근지근 아픈 그의 청기관을 울렸다.

「이 아아들이 다 어디 갔나, 참말로.」

그는 귓가로 들어오는 비닐 소리를 지우려는 듯, 큰 소리로 혼자말을 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것이 분명했다. 침묵을 지키고 담배만 빨고 있자니 그 비닐 소리가 귓바퀴로 흘러 들어왔다. 그 비닐 소리가 그의 내면 어딘가를 자꾸만 건드리는지 그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러면서 그의 머릿속에는 정수를 시내에 떠내려보내던 날, 차가운 겨울 바람 때문에 등에 맨 광목천이 자꾸만 펄럭이던 때가 생각났다. 오직 혼자서 차가운 시내에 발을 담그고 들어가 뼛가루를 뿌렸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자기가 말려서 다른 사람은 누구도 따라오지 않았던 터였지만, 무서움이 몸을 감쌌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죽었을 때도 그렇게까지 무섭지는 않았었다.

그는 비닐 소리를 그대로 참고 있을 수가 없어 정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비닐을 죄다 뜯어버렸다. 압정들이 후드득거리면서 마당으로 떨어졌다. 정인 아버지가 비닐을 뜯어내는 소리가 들리자 지물포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욕쟁이 할아버지가 마루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거, 뭔 짓 하나?」

「내 일인께네 상관 말아여.」

「그게 어째 니 일이라? 우리 집 뜯어내는데.」

「아따, 그 말 많네, 참말로.」

「저노무 자슥이 비싼 뇌선 처먹고 미쳐뿌릿나.」

그 말에 그가 뜯어놓은 비닐을 손에 잡고 욕쟁이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지금 뭐라 캤습니까?」

「뇌신이 아니라, 뇌선 처먹고 미쳤다 캤다. 국가 공무원이면 타인에게 모범을 보여야지, 어째 된 게 허구한 날 술이고? 그게 미친 것 아이고 뭐가?」

그러자 그가 소리를 빽 질렀다.

「내가 뇌선 처먹고 황달에 걸리든,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든 할배가 뭔 상관입니까? 국가 공무원은 술도 못 처먹습니까?」

「아따, 그노무 미친 지랄은 아래위도 없구만.」

욕쟁이 할아버지는 더 이상 상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문을 소리나게 닫아버렸다. 하지만 정인 아버지는 옳다구나 싶었다.

<이 씨팔놈의 여편네가 지 남편을 빙신으로 안다 이 말이지. 뇌신 사오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 또 값싸다고 뇌선 사왔다 이거지. 어디 두고 보자. 이 빙신 같은 년, 다리몽둥이를 뿌려뜨릴 기라.>

그는 비닐뭉텅이를 마당 한쪽에 휙 팽개치면서 침을 뱉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정인은 스케이트장에 앉아 어서 재순이 스케이트를 자기에게 빌려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인은 아버지 아침을 차려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이다. 그 즈음부터 얼음판의 가장자리가 녹기 시작해 아이들이 스케이트장에서 하나둘 빠져나오고 있었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 얼음이 녹아버리면 입장료만 날리고 돌아갈 판이었다. 그건 모아둔 돈으로 정인의 입장료를 내준 재성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그래서 재성은 타기 싫으면서도 정인에게 스케이트를 빌려주는 것이 싫어서 계속 얼음판 위에서 미적거리고 있는 재순에게 빨리 스케이트를 빌려주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재순은 쉽게 스케이트를 벗어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정인은 논둑에 쪼그리고 앉아서 얼음판 밑으로 보이는 추수하고 남은 벼뿌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 얼음판 밑으로도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정인에게는 만년설 왕국이 떠올랐다. 정인은 쪼그리고 앉아 있던 발을 펴서 일어섰다. 예의 그 어지럼증이 정인을 감쌌다. 저는 사실 좀 모자란 사람이에요. 만년설 왕국의 집사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무엇이 모자란단 말입니까? 피예요. 이모가 그랬거든요, 저는 피가 모자라다구요. 그래서 성의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갈 자신이 없어요. 집사는 다시 한 손으로 자신의 눈썹을 만지작거린다. 하지만 당신은 이 사람을 구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까? 집사는 저 아래 멀리 얼음판 밑으로 보이는 왕자의 언 얼굴을 정인에게 보여준다. 호기심에 가득 찬 정인이 고개를 내민다. 얼음판 밑으로는 얼어붙어 있는 정수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정인아!」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재성이 재순의 스케이트를 들고 서 있었다. 재순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얼굴로 논두렁에 앉아 있었다. 정인으로서는 좀 미안하기는 했지만, 스케이트를 타고 싶은 욕망이 더 강했다. 정인은 재성이 이끄는 대로 발을 스케이트에 밀어넣었다. 재순의 스케이트는 피겨용이어서 빨간색이 앙증맞을 정도로 작게 보였는데 공간이 좀 남았다. 재성은 쪼그리고 앉아 정인의 스케이트 끈을 묶어주었다.

나중에 지친 재성이 임시로 만들어진 분식점에 들어가 있을 때까지 정인은 스케이트를 타고 놀았다. 처음에는 스케이트를 빼앗겨 울먹거리던 재순도 곧 한쪽에 피워놓은 불길 옆에서 다른 애들과 노는 일이 재미있어 정인의 존재를 잊어먹고 있었고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과 치고 박는 장난을 하며 놀던 재성도 정인의 존재를 잊어버렸다. 심지어는 정인 자신마저도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렸다. 아버지 생각도, 엄마 생각도 다 잊어버리고 정인은 그저 이쪽에서 저쪽으로 엉거주춤 스케이트만 타고 있었다. 그 많던 아이들이 조금씩 스케이트장을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정인은 멍하니 스케이트만 타고 있었다. 한껏 따뜻해진 겨울 햇살이 녹기 쉬운 가장자리부터 얼음을 녹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풀린 물이 조금씩 얼음 위로 밀려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재성이 소리쳐 정인을 부를 때까지, 정인은 환상 속에 빠져 있었다. 빈혈 때문에 늘 빠지게 되는 그 환상이었다. 정말입니까? 가다가 죽을지도 모릅니다. 만년설 왕국의 집사가 다시 한 번 확인이라도 받듯이 되물었다. 정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죽고 정수가 살아난다면,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었다. 불쌍한 정수. 정수만 돌아온다면, 아버지도 술을 드시지 않을 것이고 엄마도 울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정수를 데리고 돌아와 정수는 죽지 않았어요라고 말한다면 부모님들은 모두 놀라실 것이다. 제가 갈게요. 정인이 다시 한 번 더 말했다. 집사는 피가 모자라는 정인이 짐짓 걱정되지만, 정인의 용기에 탄복하여 지하로 내려가는 문을 연다. 새하얀 심연 밑으로 끝없이 놓여진 계단이 보였다. 정인은 그 한 발을 내민다.

「내 손을 잡아.」

재성의 심각한 말을 듣고 나서야 정인은 자신이 얼음판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음을 깨달았다. 어느 틈에 가장자리가 모두 녹아버려 껑충 뛰지 않는 한, 논두렁으로 나갈 길이 없었던 것이다. 꼼짝없이 정인은 얼음판에 갇혀버린 셈이 되었다. 철길이 평화동과 80번지를 나눠놓은 것처럼, 죽음이 정인네와 정수를 나눠놓은 것처럼, 녹아버린 물은 얼음판과 논두렁을 나눠놓았다. 그 바람에 정인이 꾸던 모든 환상도 깨져버렸다. 정인은 정신을 차리고 다가갈 때마다 자신의 몸무게 때문에 얼음판으로 밀려 들어오는 얼음물을 바라보았다. 얼음이 섞인 물은 마치 젤리처럼 액체 반, 고체 반의 상태가 되었지만, 정인의 몸무게를 지탱할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재성이 아직 얼음이 남아 있는 다른 곳을 찾아보았지만, 녹지 않은 곳은 없었다. 아이들이 모여들어 그 광경을 구경할 때에야 정인은 무서움이 부쩍 늘었다.

재성이 그 중에서 얼음과 논두렁의 폭이 좀 좁은 곳을 찾아 손을 뻗쳤다. 하지만 도무지 건너갈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에 정인은 쉽사리 그 손을 잡을 수 없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재성의 다그치는 소리에 그 손을 잡으려고 작은 손을 내뻗다가 정인은 그만 얼음물에 빠져버렸다. 워낙 논이었던 곳이라 깊을 리 없었지만, 차가움이 뼛속 깊이 밀려들었다. 자기 혼자만 빠진 것이다. 정인은 얼굴을 찡그리며 얼음물을 헤쳐 앞으로 나아갔다. 정인의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누구도 얼어죽지 않고 성의 그 깊은 곳까지 내려가는 사람은 없다.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다만 너무 춥기 때문이다. 정인은 비로소 만년설 왕국의 달디단 환상에서 벗어나 몸의 차가움을 뼛속 깊이 느끼게 된 것이다.

불에 몇 번 젖은 옷을 말리기는 했지만, 채 마르지 않았는 데다가 황악산에서 내리치는 북풍을 맞아 정인의 몸은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리고 있었다. 재성 남매와 정인, 이 세 명은 직지천의 둑길을 따라 걸어갔다. 재성 남매는 뭐가 기분이 좋은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펄펄 눈이 옵니다.

하늘에서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 송이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정인의 눈앞으로 까치 한 마리 물가에 심어둔 버드나무 가지를 박차고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응달의 가지 위에 쌓였던 눈송이들이 떨어지는 찰나, 정인은 냅다 집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도저히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정인이 발을 굴릴 때마다 진흙탕이 된 길이 한 뼘씩 뒤로 밀려났다. 바람은 이제 북풍이 아니라 남풍이 되어 불어왔다. 정인은 아버지와 엄마에게 꾸중들을 일이 걱정되었다.

 

 

 소설읽기 NO 43

 

 

구리 료혜이 우동 한 그릇

 

 

해마다 섣달 그믐날이 되면 우동집으로서는 일년 중 가장 바쁠 때이다.

북해정도 이날만은 아침부터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보통 대는 밤 12시쯤이 되어도 거리가 번잡한데 이날만큼은 밤이 깊어질수록 집으로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10시가 넘자 북해정의 손님도 뜸해졌다.

사람은 좋지만 무뚝뚝한 주인보다 오히려 단골 손님으로부터 주인 아줌마라고 불리우고 있는 그의 아내는 분주했던 하루의 답례로 임시 종업원에게 특별 상여금 주머니와 선물로 국수를 들려서 막 돌려보낸 참이었다.

마지막 손님이 가게를 막 나갔을 때, 슬슬 문 앞의 옥호(屋號) 막을 거둘까 하고 있던 참에, 출입문이 드르륵, 하고 힘없이 열리더니 두명의 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6세와 10세 정도의 사내애들은 새로 준비한 듯한 트레이닝 차림이고, 여자는 계절이 지난 체크무늬 반코트를 입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

라고 맞이하는 여주인에게, 그 여자는 머뭇머뭇 말했다.

"저...... 우동...... 일인분만 주문해도 괜찮을까요?"

뒤에서는 두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네...... 네. 자, 이쪽으로."

난로 곁의 2 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여주인은 주방 안을 향해,

"우동, 1 인분 !"

하고 소리친다.

주문을 받은 주인은 잠깐 일행 세 사람에게 눈길을 보내면서,

"예 !"

하고 대답하고, 삶지 않은 1 인분의 우동 한 덩어리와 거기에 반 덩어리를 더 넣어 삶는다. 둥근 우동 한 덩어리가 일 인분의 양이다. 손님과 아내에게 눈치 채이지 않은 주인의 서비스로 수북한 분량의 우동이 삶아진다.

이윽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먹음직스러운 우동 그릇이 테이블에 나왔다. 우동 그릇을 가운데 두고, 이마를 맞대고 먹고 있는 세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카운터 있는 곳까지 희미하게 들린다.

"맛있네요."

라는 형의 목소리.

"엄마도 잡수세요."

하며 한 가닥의 국수를 집어 어머니의 입으로 가져가는 동생.

이윽고 다 먹자 150 엔의 값을 지불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라고 머리를 숙이고 나가는 세 모자에게,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

라고 주인 내외는 목청을 돋워 인사했다.

 

신년을 맞이했던 북해정은 변함없이 바쁜 나날 속에 서 한해를 보내고, 다시 12 월 31 일을 맞이했다.

지난해 이상으로 몹시 바쁜 하루를 끝내고, 10 시를 막 넘긴 참이어서 가게를 닫으려고 할 때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의 남자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여주인은 그 여자가 입고 있는 체크 무늬의 반코트를 보고, 일년 전 섣달 그믐날의 마지막 그 손님들임을 알아보았다.

"저..... 우동.....일 인분입니다만.....괜찮을까요 ?"

"물론입니다.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여주인은 작년과 같은 2 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우동 일 인분 !"

하고 커다랗게 소리친다.

"네엣 ! 우동 일 인분 !"

라고 주인은 대답하면서 막 꺼버린 화덕에 불을 붙인다.

"저 여보, 서비스로 3 인분 내줍시다."

조용히 귀엣말을 하는 여주인에게,

"안돼요. 그런 일을 하면 도리어 거북하게 여길 거요."

라고 말하면서 남편은 둥근 우동 하나 반을 삶는다.

"여보,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좋은 구석이 있구료."

미소를 머금는 아내에 대해, 변함없이 입을 다물고 삶아진 우동을 그릇에 담는 주인이다.

테이블 위의 한 그릇의 우동을 둘러싼 세 모자의 얘기 소리가 카운터 안과 바깥의 두 사람에게 들려온다.

"음...... 맛있어요........ "

"올해도 북해정의 우동을 먹게 되네요 ?"

"내년에도 먹을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

다 먹고 나서, 150 엔을 지불하고 나가는 세 사람의 뒷모습에 주인 내외는.

"고맙습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그날 수 십번 되풀이했던 인사말로 전송한다.

 

그 다음해의 섣달 그믐날 밤은 여느 해보다 더욱 장사가 번성하는 중에 맞게 되었다. 북해정의 주인과 여주인은 누가 먼저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9시 반이 지날 무렵부터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른다.

10 시를 넘긴 참이어서 종업원을 귀가시킨 주인은, 벽에 붙어 있는 메뉴 표를 차례차례 뒤집었다. 금년 여름에 값을 올려 '우동 200 엔'이라고 씌어져 있던 메뉴 표가 150엔으로 둔갑하고 있었다.

2 번 테이블 위에는 이미 30분전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이 놓여져 있다.

10 시 반이 되어, 가게안 손님의 발길이 끊어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기나 한 것처럼, 모자 세 사람이 들어왔다. 형은 중학생 교복, 동생은 작년에 형이 입고 있던 점퍼를 헐렁하게 입고 있었다.

두 사람 다 몰라볼 정도로 성장해 있었는데, 그 아이들의 엄마는 여전히 색이 바랜 체크 무늬 반코트 차림 그대로였다.

"어서 오세요 !"

라고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여주인에게, 엄마는 조심조심 말한다.

"저.... 우동.... 이 인분인데도... 괜찮겠죠 ?"

"네.... 어서요. 자 이쪽으로."

라며 2 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여주인은 거기 있던 <예약석>이란 팻말을 슬그머니 감추고 카운터를 향해서 소리친다.

"우동 이 인분 !"

그걸 받아,

"우동 이 인분 !"

이라고 답한 주인은 둥근 우동 세 덩어리를 뜨거운 국물 속에 집어넣었다.

두 그릇의 우동을 함께 먹는 세 모자의 밝은 목소리가 들리고, 이야기도 활기가 있음이 느껴졌다.

카운터 안에서, 무심코 눈과 눈을 마주치며 미소짓는 여주인과, 예의 무뚝뚝한 채로 응 응,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주인이다.

"형아야, 그리고 쥰아..... 오늘은 너희 둘에게 엄마가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구나."

"고맙다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실은, 돌아가신 아빠가 일으켰던 사고로, 여덟 명이나 되는 사람이 부상을 입었잖니. 보험으로도 지불할 수 없었던 만큼을, 매월 5만엔씩 계속 지급하고 있었단다."

"음.... 알고 있어요."

라고 형이 대답한다.

여주인과 주인은 몸도 꼼짝 않고 가만히 듣고 있다.

"지불 약속은 내년 3 월까지로 되어 있었지만, 실은 오늘 전부 지불을 끝낼 수 있었단다."

"넷 ! 정말이에요 ? 엄마 !"

"그래, 정말이지. 형아는 신문 배달을 열심히 해주었고, 쥰이 장보기와 저녁 준비를 매일 해준 덕분에, 엄마는 안심하고 일할 수 있었던 거란다. 그래서 정말 열심 히 일을 한 덕택에 화사로부터 특별 수당을 받았단다. 그것으로 지불을 모두 끝마칠 수 있었던 거야."

"엄마 ! 형 ! 잘됐어요 ! 하지만, 앞으로도 저녁 식사 준비는 내가 할 거예요."

"나도 신문 배달, 계속할래요. 쥰이하고 나, 엄마한테 숨기고 있는 것이 있어요. 그것은요...... 11월 첫쩨 일요일, 학교로부터 쥰이의 수업 참관을 하라는 편지가 왔었어요. 그때 쥰은 이미 선생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아 놓고 있었지만요. 쥰이 쓴 작문이 북해도의 대표로 뽑혀, 전국 콩쿠르에 출품하게 되어서 수업 참관일 에 이 작문을 쥰이 낭독하게 되었대요. 선생님이 주신 편지를 엄마에게 보여드리면...... 리를 해서라도 회사를 쉬실 걸 알기 때문에 쥰이 그걸 감췄어요. 그걸 쥰의 친구들한테 듣고..... 내가 참관일에 갔었어요."

"그래... 그랬었구나... 그래서 ?"

"선생님께서, 너는 장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라는 제목으로, 전원에게 작문을 쓰게 하셨는데, 쥰은 <우동 한그릇>이라는 제목으로 써서 냈대요. 지금부터 그 작문을 읽어 드릴께요.

<우동 한그릇>이라는 제목만 듣고, 북해정에서의 일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사실은 쥰 녀석 무슨 그런 부끄러운 얘기를 썼지 ! 하고 속으로 생각했었죠.

작문은..... 아빠가 교통 사고로 돌아가셔서 많은 빚을 남겼다는 것, 엄마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 내가 조간 석간 신문을 배달하고 있다는 것 등 .... 전부 씌어 있었어요.

그리고서 12월 31일 밤 셋이서 먹은 한 그릇의 우동이 그렇게 맛있었다는 것..... 셋이서 다만 한 그릇밖에 시키지 않았는데도 우동집 아저씨와 아줌마는, 고맙습니다 !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 라고 큰 소리로 말해 주신 일.

그 목소리는 .... 지지 말아라 ! 힘내 ! 살아갈 수 있어 ! 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요.

그래서 쥰은, 어른이 되면, 손님에게 '힘내라 !' '행복해라 !' 라는 속마음을 감추고, '고맙습니다 !' 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제일의 우동집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커다란 목소리로 읽었어요."

카운터 안쪽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을 주인과 여주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카운터 깊숙이에 웅크린 두 사람은, 한장의 수건 끝을 서로 잡아당길 듯이 붙잡고, 참을 수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작문 읽기를 끝마쳤을 때 선생님이, 쥰의 형이 어머니를 대신해서 와주었으니까, 여기에서 인사를 해달라고 해서....."

"그래서 형아는 어떻게 했지?"

"갑자기 요청 받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말이 안 나왔지만.... 여러분, 항상 쥰과 사이좋게 지내줘서 고맙습니다... 동생은 매일 저녁 여러분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금 동생이 <우동 한 그릇>이라고 읽기 시작했을 때 .... 나는 처음엔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슴을 펴고 커다란 목소리로 읽고 있는 동생을 보고있는 사이에, 한 그릇의 우동을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더 부끄러운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때..... 한 그릇의 우동을 시켜주신 어머니의 용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형제가 힘을 합쳐, 어머니를 보살펴 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쥰과 사이 좋게 지내 주세요, 라고 말했어요."

차분하게 서로 손을 잡기도 하고, 웃다가 넘어질듯 이 어깨를 두드리기도 하고, 작년까지와는 달라진 즐거운 그믐날 밤의 광경이었다.

우동을 다 먹고 300 엔을 내며 '잘 먹었습니다.'라고 깊이깊이 머리를 숙이며 나가는 세 사람을, 주인과 여 주인은 일년을 마무리하는 커다란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라며 전송했다.

다시 일년이 지났다.

북해정에서는, 밤 9 시가 지나서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을 2 번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그 세 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해에도, 또 다음 해에도, 2 번 테이블을 비우고 기다렸지만, 세 사람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북해정은 장사가 번성하여, 가게 내부 수리를 하게되자, 테이블이랑 의자도 새로 바꾸었지만 그 2 번 테이블만은 그대로 남겨 두었다.

새 테이블이 나란히 있는 가운데에서, 단 하나 낡은 테이블이 중앙에 놓여 있는 것이다.

'어째서, 이것이 여기에 ?' 하고 의아스러워 하는 손님에게, 주인과 여주인은 <우동 한 그릇>의 일을 이야기하고, 이 테이블을 보고서 자신들의 자극제로 하고 있다, 어느 날인가 그 세 사람의 손님이 와줄지도 모른다. 그 때 이 테이블로 맞이하고 싶다, 라고 설명하곤 했다.

그 이야기는, '행복의 테이블'로써, 이 손님에게서 저 손님에게로 전해졌다. 일부러 멀리에서 찾아와 우동을 먹고 가는 여학생이 있는가 하면, 그 테이블이 빌 때까지 기다렸다가 주문을 하는 젊은 커플도 있어 상당한 인기를 불러 일으켰다.

그러고 나서 또, 수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해 섣달 그믐의 일이다.

북해정에는, 같은 거리의 상점회 회원이며 가족처럼 사귀고 있는 이웃들이 각자의 가게를 닫고 모여들고 있었다.

북해정에서 섣달 그믐의 풍습인 해 넘기기 우동을 먹은 후,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동료들과 그 가족이 모여 가까운 신사(神社)에 그해의 첫 참배를 가는 것이 5, 6년 전부터의 관례가 되어 있었다.

그날 밤도 9 시 반이 지나 생선가게 부부가 생선회를 가득 담은 큰 접시를 양손에 들고 들어온 것이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평상시의 동료 30 여명이 술이랑 안주를 손에 들고 차례차례 모여들어 가게 안의 분위기는 들떠 있었다.

2 번 테이블의 유래를 그들도 알고 있다. 입으로 말은 안 해도 아마, 금년에도 빈 채로 신년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섣달 그믐날 10 시 예약석'은 비워둔 채 비좁은 자리에 전원이 조금씩 몸을 좁혀 앉아 늦게 오는 동료를 맞이했다.

우동을 먹는 사람, 술을 마시는 사람, 서로 가져 온 요리에 손을 뻗히는 사람, 카운터 안에 들어가 돕고 있는 사람, 멋대로 냉장고를 열고 뭔가 꺼내고 있는 사람 등등으로 떠들썩했다.

바겐세일 이야기, 해수욕장에서의 에피소드, 손자가 태어난 이야기 등, 번잡함이 절정에 달한 10 시 반이 지났을 때, 입구의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

몇 사람인가의 시선이 입구로 향하며 동시에 그들은 이야기를 멈추었다.

오버코트를 손에 든 정장 슈트 차림의 두 청년이 들어왔다. 다시 얘기가 이어지고 시끄러워졌다. 여주인이 죄송하다는 듯한 얼굴로 '공교롭게 만원이어서'라며 거절하려고 했을 때 화복(일본옷) 차림의 부인이 깊이 머리를 숙이며 들어와서, 두 청년 사이에 섰다.

가게 안에 있는 모두가 침을 삼키며 귀를 기울인다. 화복을 입은 부인이 조용히 말했다.

"저.... 우동.... 3 인분입니다만...... 괜찮겠죠 ?"

그 말을 들은 여주인의 얼굴이 변했다. 십수 년의 세월을 순식간에 밀어젖히고, 그 날의 젊은 엄마와 어린 두 아들의 모습이 눈앞의 세 사람과 겹쳐진다.

카운터 안에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고 있는 주인과, 방금 들어온 세 사람을 번갈아 가리키면서,

"저.... 저.... 여보 !"

하고 당황해 하고 있는 여주인에게 청년 중 하나가 말했다.

"우리는, 14 년 전 섣달 그믐날 밤, 모자 셋이서 일인분의 우동을 주문했던 사람입니다. 그때의 한 그릇의 우동에 용기를 얻어 세 삶이 손을 맞잡고 열심히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후, 우리는 외가가 있는 시가현으로 이사했읍니다. 저는 금년, 의사 국가 시험에 합격하여 교오또(京都)의 대학병원에서 소아과의 병아리 의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만, 내년 4월부터 삿뽀로의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병원에 인사도 하고 아버님 묘에도 들를 겸해서 왔습니다. 그리고 우동집 주인은 되지 않았습니다만 교오또의 은행에 다니는 동생과 상의해서, 지금까지 인생 가운데에서 최고의 사치스러운 것을 계획했습니다.....

그것은, 섣달 그믐날 어머님과 셋이서 삿뽀로의 북해정을 찾아와 3 인분의 우동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고 있던 여주인과 주인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넘쳐흘렀다.

입구에서 가까운 테이블에 진을 치고 있던 야채 가게 주인이, 우동을 입에 머금은 채 있다가 그대로 꿀꺽하고 삼키며 일어나,

"여봐요 여주인 아줌마 ! 뭐하고 있어요 ! 십년간 이 날을 위해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기다린, 섣달 그믐날 10 시 예약석이잖아요, 어서 안내해요. 안내를 !"

야채 가게 주인의 말에 번뜩 정신을 차린 여주인은,

"잘 오셨어요.... 자 어서요..... 여보 ! 2 번 테이블 우동 3 인분 !"

예기치 않은 환성과 박수가 터지는 가게 밖에서는 조금 전까지 흩날리던 눈발도 그치고, 갓 내린 눈에 반사되어 창문의 빛에 비친 <북해정>이라고 쓰인 옥호막이 한발 앞서 불어제치는 정월의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소설읽기 NO 4

 

 

권정생 강아지똥

 

 

돌이네 흰둥이가 누고 간 똥입니다.    흰둥이는 아직 어린 강아지였기 때문에 강아지똥이 되겠습니다.    골목길 담 밑 구석자리였습니다. 바로 앞으로 소달구지 바퀴 자국이 나 있습니다.    추운 겨울, 서리가 하얗게 내린 아침이어서 모락모락 오르던 김이 금방 식어 버렸습니다. 강아지똥은 오들오들 추워집니다. 참새 한 마리가 포로롱 날아와 강아지똥 곁에 앉더니 콕! 쪼아 보고, 퉤퉤 침을 뱉고는,   "똥 똥 똥……. 에그 더러워!"   쫑알거리며 멀리 날아가 버립니다.   강아지똥은 어리둥절했습니다.   "똥이라니? 그리고 더럽다니?"   무척 속상합니다. 참새가 날아간 쪽을 보고 눈을 힘껏 흘겨 줍니다. 밉고 밉고 또 밉습니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이런 창피가 어디 있겠어요.    강아지똥이 그렇게 잔뜩 화가 나서 있는데, 소달구지 바퀴 자국 한가운데 뒹굴고 있던 흙덩이가 바라보고 빙긋 웃습니다.   "뭣땜에 웃니, 넌?"    강아지똥이 골난 목소리로 대듭니다.   "똥을 똥이라 않고, 그럼 뭐라고 부르니?" 흙덩이는 능글맞게 히죽 웃으며 되묻습니다.   강아지똥은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목 안에 가득 치미는 분통을 억지로 참습니다. 그러다가,   "똥이면 어떻니? 어떻니!"   발악이라도 하듯 소리지릅니다. 눈물이 글썽해집니다. 흙덩이는 여전히 빙글거리며,   "똥 중에서도 제일 더러운 개똥이야." 하고는 용용 죽겠지 하듯이 쳐다봅니다.    강아지똥은 기어이 울음보를 터뜨립니다. 울면서 쫑알거렸습니다.   "그럼, 너는 뭐야? 울퉁불퉁하고, 시커멓고, 마치 도둑놈같이……."   이번에는 흙덩이가 말문이 막혔습니다.   멀뚱해진 채 강아지똥이 쫑알거리며 우는 것을 보고만 있었습니다. 강아지똥은 실컷 울다가 골목길 담벽에 노랗게 햇빛이 비칠 때야 겨우 울음을 그쳤습니다. 코를 흘찌락 씻고는 뾰루퉁 딴 데를 보고 있었습니다. 보고 있던 흙덩이가 나직이,   "강아지똥아."  하고 부릅니다. 무척 부드럽고 정답습니다. 하지만 강아지똥은 못들은 체 대답을 않습니다. 대답은커녕 더욱 얄밉다 싶습니다.    "내가 잘못했어. 정말 도둑놈만큼 나빴어."    흙덩이는 정색을 하고 용서를 빕니다.    강아지똥은 그래도 입을 꼭 다물고 눈도 깜짝 않습니다.   "내가 괜히 그래 봤지 뭐야. 정말은 나도 너처럼 못생기고, 더럽고, 버림받은 몸이란다. 오히려 마음 속은 너보다 더 흉측할지도 모를 거야."   흙덩이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어, 제 신세 타령을 들려 주었습니다.    "내가 본래 살던 곳은 저쪽 산 밑 따뜻한 양지였어. 거기서 난 아기 감자를 기르기도 하고, 기장과 조도 가꿨어. 여름에는 자줏빛과 하얀 감자꽃을 곱게 피우며 정말 즐거웠어.  하느님께서 내게 시키신 일을 그렇게 부지런히 했단다."   강아지똥은 이야기에 끌려 어느 틈에 귀를 쫑긋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던 것을 어제, 밭 임자가 소달구지를 끌고 와서 흙을 파 실었어. 집 짓는 데 쓴다지 않니. 나는 무척 기뻤어. 밭에서 곡식을 키우는 것도 좋지만, 집을 짓는 것도 얼마나 보람있는 일이니. 집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재워 주고 짐승들을 키우는 곳이거든. 그래서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딴 애들과 함께 달구지에 실려 여기까지 왔어. 그런데……"   갑자기 이야기를 멈춘 흙덩이가 술픈 얼굴을 지었습니다.   강아지똥이 놀라 쳐다봤습니다.   "그래서 어쨌니?" 하고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잔뜩 뿔었던 화는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다가 나 혼자 달구지에서 떨어져 버렸단다."   "어머나!"    "난 이제 그만이야. 조금 있으면 달구지가 이리로 또 지나갈 거야. 그러면 바퀴에 콱 치이고 말지. 산산이 부서져서 가루가 된단다."   "산산이 부서져서 가루가 된다니? 그럼 그 다음엔 어떻게 되니?"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그걸로 끝이야."    둘은 잠시 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흙덩이가 다시,   "누구라도 죽는 일은 정말 슬퍼. 더욱이 나쁜 짓을 많이 한 사람들은 괴롬이 더 하단다." 하고는 또 한 번 한숨을 들이켭니다.    강아지똥이 쳐다보고,   "그럼, 너도 나쁜 짓을 했니? 그래서 괴로우니?"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 나도 나쁜 짓을 했어. 그래서 정말 괴롭구나. 어느 여름이야, 햇볕이 쨍쨍 쬐고 비는 오지 않고 해서 목이 무척 탔어. 그런데 내가 가꾸던 아기 고추나무가 견디다 못해 말라 죽고 말았단다. 그게 나쁘지 않고 뭐야. 왜 불쌍한 아기 고추나무를 살려 주지 못했는지 지금도 가슴이 아프고 괴롭단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지 않니? 햇볕이 그토록 따갑게 쪼이고 비는 오지 않고 해서 말라 죽은 것 아냐?"   강아지똥은 흙덩이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아기 고추나무는 내 몸뚱이에다 온통 뿌리를 박고 나만 의지하고 있었단다."   흙덩이는 어디까지나 제 잘못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처럼 길바닥에 버려지게 된 것을 그 죄 값이라 생각했습니다.   정말 아기 고추나무가 못 살게 제 몸뚱이의 물기를 빨아버리는 것이 얼마나 미웠는지 모릅니다. 마음으로는 그만 죽어버려라 하고 못된 소리까지 했습니다. 그게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아 흙덩이는 괴로운 것입니다.    만약 지금 다시 밭으로 갈 수만 있다면 이제부터는 열심히 곡식을 가꾸리라 싶습니다. 그러나, 그건 헛된 꿈입니다. 언제 달구지 바퀴에 치여 죽어 버릴지 모르는 운명인 것입니다. 흙덩이의 눈에 핑 눈물이 젖어듭니다.    그때, 과연 저쪽에서 요란한 소달구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 나는 이제 그만이다.'

 

    흙덩이는 저도 모르게 흐느끼고 말았습니다.    "강아지똥아, 난 그만 죽는다. 부디 너는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하게 살아라."    "나 같은 더러운 게 어떻게 착하게 살 수 있니?"    "아니야, 하느님은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 너도 꼭 무엇엔가 귀하게 쓰일 거야."    소달구지가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흙덩이는 눈을 꼭 감았습니다. 강아지똥은 그만 자기도  한 몫에 치여 죽고 싶어졌습니다.   으르릉 쾅!……   그런데 갑자기 굴러오던 소달구지가 뚝 멈추었습니다.    "이건 우리 밭 흙이 아냐? 어제 이리로 가다가 떨어뜨린 게로군."    소달구지를 몰고 오던 아저씨가 한 말입니다. 그리고는 흙덩이를 조심스레 주워 듭니다.   "우리 밭에 도루 갖다 놔야겠어. 아주 좋은 흙이거든."    흙덩이는 무어가 무언지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달구지 한 켠에 얌전히 올라앉자, 방긋방긋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밭으로 도로 돌아가게 된 것을 그제야 깨달은 것입니다.   소달구지가 멀리 가 버린 다음, 아직도 그쪽으로 눈길을 준 채 빙그레 웃던 강아지똥이 혼자서 쓸쓸해졌습니다.   '그 애가 죽지 않고 도로 살던 곳에 가게 된 것이 참말 다행이야. 그럼 난 혼자서 이제부터 어떻게 하나?'   강아지똥은 고개를 갸우뚱 생각을 합니다.   "아니야, 하느님은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 너도 꼭 무엇엔가 귀하게 쓰일 거야."    조금 전에 흙덩이가 일러 준 말을 되뇌어 봅니다.   '정말 나도 하느님께서 만드셨다면 무엇에 귀하게 쓰일까?'   해가 저물도록 웅크리고 앉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어디선가 검은 구름떼가 몰려와 하늘 가득히 덮었습니다.    이내 사뿐사뿐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솜이불처럼 강아지똥을 따뜻하게 덮어 줍니다.    눈 속에 묻혀, 강아지똥은 쌕쌕 잠이 들었습니다.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자고, 긴긴 겨울을 지냈습니다.    따뜻한 햇빛이 깔리고 골목길에 눈이 녹았습니다. 봄노래가 어디에나 흥겹게 들렸습니다. 꽁꽁 얼었던 강아지똥도 몸뚱이가 축 늘어지고 노곤해 졌습니다. 껌벅껌벅 졸리는 눈을 억지로 뜨고 사방을 둘러봤습니다. 겨울에 보던 것보다 모두가 다릅니다.    예쁜 새가 날아갑니다. 꽃고무신을 신고 애들이 골목길을 뛰어갑니다.   "꼴꼴꼴……"   "삐악 삐악 삐악……"   힐끗 돌아보니 병아리떼를 데린 엄마 닭이 분주히 걸어옵니다.   '저건 걸어다니는 새들이구나.'   강아지똥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엄마 닭이 강아지똥 곁에까지 와서 기웃이 들여다 봅니다.   "왜 그렇게 보셔요? 걸어다니는 새님."   강아지똥은 조금 겁이 났기 때문에 무척 공손히 말했습니다.   "뭐라고? 나보고 걸어다니는 새님이라고! 기막혀라. 이래뵈도 난 여덟 마리의 아들과 다섯 마리의 딸을 데린 어엿한 병아리 어머니야."   엄마 닭은 조금 화가 난 듯, 그러나 점잖게 신분을 밝혔습니다.   강아지똥은 코가 빨갛게 되어,   "병아리 어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하셔요."  하고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옳지, 아이들은 역시 잘못했을 때는 곧장 용서를 받는 것이 좋아."    이렇게 엄마 닭은 지나치게 위엄을 보이고는 이어서,   "널 들여다 본 것은 행여나 우리 아기들의 점심 요기라도 될까 싶어서 본 거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강아지똥은 어쩌면 소름이 쫙 끼칠 만큼 무서운 말이었지만, 이내 마음을 단단히 가다듬고   "점심으로 나를 먹어 주시겠다는 거죠? 좋아요, 모두 맛나게 먹어 주어요." 하고는 샛노란 열세 마리의 병아리를 둘러보았습니다.   이런 귀여운 아기들의 점심밥이 되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다면 기꺼이 제 몸을 내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엄마 닭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야, 너는 우리에게 아무 필요도 없어. 모두 찌꺼기뿐인 걸."    그러고는 병아리를 데리고 저쪽으로 가 버립니다.   "꼴꼴꼴……"   "삐악 삐악 삐악……"   강아지똥은 또 풀이 죽었습니다.   '나는 역시 아무데도 쓸 수 없는 찌꺼기인가 봐.'   저절로 한숨이 나왔습니다. 다음에는 이어서 눈물이 나오고……   강아지똥은 그만 하느님이 원망스러워집니다. 하필이면 더럽고 쓸데없는 찌꺼기 똥까지 만들 필요는 없지 않아 해서입니다.   봄날의 하루 해가 무척 지루합니다.   느리게 그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밤이 되자,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나왔습니다. 반짝반짝 고운 불빛은 언제나 꺼지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다음날이면 역시 드높은 하늘에서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습니다.    강아지똥은 눈부시게 쳐다보다가 어느 틈에 그 별들을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아름다운 불빛."    이것만 가질 수 있다면 더러운 똥이라도 조금도 슬프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강아지똥은 자꾸만 울었습니다. 울면서 가슴 한 곳에다 그리운 별의 씨앗을 하나 심었습니다.   

      비가 내렸습니다.   봄을 치장하는 단비가 촉촉이 골목길을 적셨습니다. 강아지똥 바로 앞에 파란 민들레  싹이 하나 내밀었습니다.   "너는 뭐니?"    강아지똥이 내려다보고 물었습니다.   "난 예쁜 꽃이 피는 민들레란다."   "예쁜 꽃이라니! 하늘에 별만큼 고우니?"    "그럼!"   "반짝반짝 빛이 나니?"    "응, 샛노랗게 빛나."    강아지똥은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어쩌면 며칠 전에 제 가슴 속에 심은 별의 씨앗이 싹터 나온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네가 어떻게 그런 꽃을 피울 수 있니?"   물어 놓고 얼른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그건 하느님께서 비를 내리시고 따뜻한 햇빛을 비추시기 때문이야."    민들레는 예사로 그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역시 그럴 거야. 나하고는 무슨 상관이 있을라고…….'   금방 강아지똥의 얼굴이 또 슬프게 일그러졌습니다.   그러자 민들레 싹이,   "그리고 또 한 가지 꼭 필요한 게 있어." 하고는 강아지똥을 쳐다보며 눈을 반짝였습니다.   "……?"    "네가 거름이 되어 줘야 한단다."    강아지똥은 화들짝 놀랐습니다.   "내가 거름이 되다니?"    "너의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 속으로 들어와야 해. 그래서 예쁜 꽃을 피게 하는  것은 바로 네가 하는 거야."    강아지똥은 가슴이 울렁거려 끝까지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 과연 나는 별이 될 수 있구나!'   그러고는 벅차오르는 기쁨에 그만 민들레 싹을 꼬옥 껴안아 버렸습니다.   "내가 거름이 되어 별처럼 고운 꽃이 피어난다면, 온 몸을 녹여 네 살이 될게."   비는 사흘 동안 계속 내렸습니다.   강아지똥은 온 몸이 비에 맞아 자디잘게 부서졌습니다. 땅 속으로 모두 스며들어가 민들레의 뿌리로 모여들었습니다. 줄기를 타고 올라와 꽃봉오리를 맺었습니다.    봄이 한창인 어느 날, 민들레는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웠습니다. 샛노랗게 햇빛을 받고 별처럼 반짝이었습니다. 향긋한 내음이 바람을 타고 퍼져 나갔습니다.   방긋방긋 웃는 꽃송이엔 귀여운 강아지똥의 눈물겨운 사랑이 가득 어려 있었습니다.

 

 

 

 

 

 

 

 

 

 

 

 

 

 

 

 

 

 

 

 

 

소설읽기NO 5

 

 

에드가 앨런 포 검은 고양이

 

 

지금부터 내가 써 나가려는, 전혀 거짓이라고는 없는 이 기괴한 이야기를 나는 누군가가 믿어 주기를 바라지도, 또한 바라고 싶지도 않다. 사실 나 자신의 오감으로도 믿지 못하고 있는 일을 믿어달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겐 미치광이의 잠꼬대로나 여겨질 것이다.

지금 나는 미친 것도,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내일이면 나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이 가기 전에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다. 아무튼 나는 지금부터 내 가정 안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있는 그대로 아무 설명도 덧붙이지 않고 세상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려 한다.

그 사건의 결과는 나를 공포에 빠뜨리고, 번민을 안겨다 주었으며 끝내는 나를 파멸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에 대해 시시콜콜 설명하지는 않겠다. 내게는 오직 공포감만 주었을 뿐인 사건이었지만, 세상의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저 터무니없는 괴담으로만 여겨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내 악몽조차도 흔히 있는 시시한 일로 넘겨 버리는 지성의 소유자가 나타날 것이 틀림없다. 그리하여 나 같은 사람보다는 냉정하고 논리적이고 훨씬 침착한 그 지성의 소유자는 내가 지금 두려움에 떨며 얽혀 있는 이 사건 속에서도 아주 당연하게 여겨지는 하나의 연속된 인과 관계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온순하고 동정심 많은 아이로 알려져 있었다. 마음이 너무도 여려서 친구들의 놀림을 받을 정도였다. 특히 동물을 좋아했던 내게 부모님은 여러 애완동물을 내가 바라는 대로 사 주셨다. 나는 날마다 그 동물들과 함께 지냈고, 그들에게 먹이를 주고 쓰다듬어 줄 때 가장 큰 즐거움을 느꼈다.

이 독특한 성격은 나이를 먹어가며 한층 더해져 어른이 되었을 때에는 오로지 동물을 사랑하는 것만이 유일한 즐거움이 되었다. 충실하고 영리한 개에게 애정을 품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하여 얻어지는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 구구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인간들의 천박한 우정과 경박한 신의를 여러 번 겪어 본 사람이라면 동물의 이기심 없는 헌신적인 애정 속에서 가슴 뭉클한 무언가를 느낄 것이다.

나는 일찍 아내를 맞았는데, 다행히 그녀의 성품도 나와 비슷했다. 내가 동물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아내는 여러 귀여운 애완동물을 구해 왔다. 그리하여 우리 집에는 작은 새, 금붕어, 영리한 개, 토끼, 조그만 원숭이, 그리고 한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중 고양이는 몸집이 무척 큰 멋진 녀석으로 온몸이 새까맣고 놀랄 만큼 영리했다. 이 고양이의 영리함이 화제에 오를 때면 적잖이 미신을 믿는 아내는 검은 고양이는 모두 마녀의 화신이라고 예부터 전해 오는 말을 곧잘 입에 올리곤 했다. 그러나 아내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니며―나 또한 지금 그 말이 우연히 떠올라서 쓰고 있는데 지나지 않는다.

플루토(지옥의 왕)―이것이 고양이 이름이었다―는 내가 귀여워하는 놀이동무였다. 늘 내가 먹이를 주었으며, 집안 어디에든지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외출할 때도 쫓아나오려고 해서 그것을 막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우리의 우정은 여러 해 동안 이어졌는데, 그 동안 내 기질과 성격은 폭음 때문에―털어놓기 부끄러운 일이지만―전날의 자취는 찾아볼 수도 없을 만큼 달라져 가고 있었다. 나는 나날이 변덕이 심해져 화를 잘내고 다른 사람의 기분 같은 것은 염두에도 두지 않게 되었다. 아내에게도 욕설을 퍼붓고 마침내는 폭력을 휘두르기에 이르렀다.

물론 귀여워하는 동물들도 내 성품의 변화를 느끼게 되었다. 나는 동물들을 돌보는 일을 게을리했을 뿐 아니라 그들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플루토에게만은 아직 그 손길을 뻗치지 않고 있었다. 토끼, 원숭이, 개들이 우연히 또는 반가워하며 내 곁에 다가오면 사정없이 그들을 못살게 굴었다.

그러나 내 병은―아, 음주보다 더한 병벽이 또 어디 있으랴!―점점 악화되어 마침내 플루토까지, 이제는 늙어서 얼마쯤 까다로워진 플루토까지 나의 병벽을 빠짐없이 맛보게 되었다.

어느 날 밤, 늘 다니던 선술집에서 만취가 되어 집에 돌아온 나는 플루토가 나를 피하는 기색을 느꼈다. 나는 고양이를 붙잡았다. 그러자 그 놈은 나의 난폭한 태도에 놀란 듯 내 손목에 달려들어 가벼운 상처를 내고 말았다. 순간 나는 악귀와도 같은 분노의 포로가 되어 나 자신을 잊어버렸다. 나의 순수한 영혼은 단숨에 내 몸으로부터 사라지고 술에 절어 구겨진 사악한 증오가 온몸에 떨게 했다. 나는 조끼 주머니에서 조그만 칼을 꺼내 고양이의 목을 움켜잡고 한쪽 눈을 태연히 도려냈다. 이 무섭고 잔인한 행위를 써내려 가노라니 얼굴이 붉어지고 화끈대며 몸이 떨려온다.

그 다음날 아침 어느 정도 취기가 진정되어 이성을 되찾은 나는 내가 저지른 죄에 대해 공포와 회한이 뒤섞인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은 미약하고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내 마음의 뿌리를 뒤흔들 만한 것은 못되었다. 나는 여전히 폭음으로 세월을 보내며 그 행동에 대한 모든 기억을 완전히 술 속에 파묻어 버렸다.

한편 고양이는 조금씩 상처가 나아갔다. 도려내어진 눈의 뻥 뚫린 구멍은 분명 무서운 형상이었지만 더 이상 아픔을 느끼지 않게 된 듯했다. 전과 다름없이 집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내가 가까이 가면 몹시 두려워하며 달아나 숨었다. 고양이의 달라진 태도가 처음에는 조금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감정도 곧 분노로 바뀌어, 마침내 끝내 구원받을 수 없는 파멸의 구렁텅이에까지 나를 몰아넣으려는 듯 짓궂은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다. 이러한 인간의 근성에 대해서 철학은 아직까지 아무 설명도 없다. 그러나 이런 근성이야말로 인간 마음에 내재해 있는 원초적 충동의 하나이며, 인간 성격을 형성하는 근원적 기능 또는 감정의 하나이다. 나는 그것을 내 영혼이 실제로 존재하듯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때문에 오히려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어리석은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뛰어난 분별력을 지니고도 법률이기 때문에 그것을 어기고 싶은 욕구가 늘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이 짓궂은 감정이 나를 파멸로 끌어들였다. 죄도 없는 동물을 계속 학대해서 결국은 파멸로까지 이르게 한 것은, 자신을 나무라며 자신의 본성을 학대하고 악업 때문에 악업을 낳는 이 헤아리기 어려운 영혼의 욕구였다.

어느 날 아침 나는 태연히 고양이의 목에 밧줄을 걸어 나뭇가지에 매달았다. 볼에 눈물이 흐르고, 비통한 회한에 가슴아파하며 나는 고양이의 목을 매단 것이다.

내가 가슴 아파한 것은 그 고양이가 나를 사랑하고 있으며 나에게 분노를 일으키게 할 만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으므로 이렇게 하는 것이 죄를 짓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으며, 결국 내 불멸의 영혼을―만일 그런 게 있다면―신의 무한한 자비심으로도 구해 낼 수 없는 깊은 구렁텅이 속에 빠뜨리게 되리라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참혹한 짓을 한 날 밤, 잠들어 있던 나는 '불이야!' 하는 소리에 눈을 떴다. 침대와 커튼이 불길에 휩싸이고 집안은 온통 불바다였다. 아내와 하녀와 나는 가까스로 빠져나왔지만 집은 몽땅 타 버렸다. 내 재산은 모조리 재가 되었으며 그 뒤로 나는 절망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나는 이 재해와 나의 잔인한 행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일련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이 마당에 어느 한 가지 일이라도 소홀히 남기고 싶지는 않다.

다음날, 나는 불탄 자리로 가 보았다. 담은 한쪽만 남은 채 모두 허물어져 있었다. 그런데 내 침대 머리판이 놓여 있던 칸막이 벽은 타지 않고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이 얼마 전에 석회를 발라 새로 칠한 것이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 벽 언저리에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벽의 어느 한 부분을 아주 세밀하게 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신기한데!"

"이상한 일도 다 있군!"

이런 소리에 이끌려 벽 가까이 가 보니 흰벽에 얕게 새긴 듯한 거대한 고양이의 모습이 나타나 있었다. 그것은 실로 놀라울 만큼 정확했으며, 고양이 목에는 밧줄이 감겨져 있었다.

이 요괴―라고밖에 여길 수 없었다―를 흘끗 본 나의 놀라움과 공포는 끔찍했다. 그러나 가까스로 냉정을 되찾았다. 그 고양이를 목매단 곳은 뜰이었음이 생각난 것이다. '불이야!' 하는 소리에 사람들이 순식간에 뜰로 잔뜩 모여들었다는데―그 가운데 한 사람이 잠든 나를 깨울 작정으로 고양이 시체를 열린 창문으로 내 방 안에 던져넣은 게 틀림없다. 그런데 다른 쪽 벽들이 무너지는 바람에 고양이 시체는 새로 바른 벽으로 밀어붙여져 벽의 석회가 화염과 시체에서 뿜어져 나온 암모니아의 작용에 의해 이 같은 화상을 만들어 내었을 것이다.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양심이야 어떻든 나의 이성에는 납득할 만한 설명이 되었으나, 아무튼 그 사실은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여러 날 동안 나는 고양이의 환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내 마음에는―회한과는 달랐지만―회한 비슷한 모호한 기분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 고양이를 잃어버린 것이 섭섭하게 여겨져, 뻔질나게 드나들던 사구려 술집 같은 데를 기웃거리며 대신 기를 만한 털빛이 비슷한 고양이는 없나 하고 찾아보게 되었다.

어느 날 밤, 술집에서 머리 꼭대기까지 술이 취하여 멍하게 앉아 있던 나는 문득 그 방 안의 유일한 가구라고 할 만한 진이며 럼 술통 위에 무언가 검은 게 웅크리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술통 위라면 아까부터 줄곧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검은 그것을 깨달은게 참으로 이상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손을 대어 보았다. 검은 고양이였다. 바로 플루토와 비슷한 몸집을 한 녀석으로 한 군데만 빼놓고는 플루토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플루토는 온몸이 새까맸으나 이 고양이는 가슴 언저리 부분 전체가 윤곽이 흐릿한 커다란 흰 얼룩점으로 덮여 있었다.

내가 손을 대자 고양이는 얼른 일어나 목을 쭉 빼고 내 손에 몸을 비비면서 아양을 떨었다.

이 녀석이야말로 내가 찾고 있던 고양이였다. 나는 곧 가게 주인에게 그 고양이를 내게 달라고 말해 보았다. 그러나 가게 주인은 자기 것이 아니며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전혀 본 적도 없는 고양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잠시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다가 이윽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일어섰다. 그러자 고양이도 함께 따라가고 싶은 눈치를 보였다. 나는 따라오도록 내버려두었다. 걸어가며 나는 이따금 허리를 굽혀 가볍게 고양이의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집에 오자 고양이는 곧 길들여졌고 아내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고양이에 대한 혐오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싹터오는 것을 느꼈다. 고양이가 분명 나를 따른다고 여기자 그것만으로도 성가시고 마음이 초조하여 견딜 수 없었다. 그리하여 혐오와 곤혹스러움이 점점 더해 가 마침내는 극도의 증오로 바뀌게 되었다.

나는 고양이를 피했다. 일종의 치욕감과 전에 저지른 잔혹한 행위의 기억 때문인지 고양이를 못살게 굴지는 않았다. 여러 주일 동안은 때리거나 거친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서히―아주 서서히 나는 고양이에 대해 이루 말할 수 없는 증오를 느끼게 되었고 마치 전염병 환자의 숨결을 피하듯 그 불길한 모습을 슬슬 피하게 되었다.

게다가 집으로 데려온 다음날 아침 그 고양이도 플루토처럼 한 눈이 멀어 있음을 알게 된 것도 내 증오를 부추겼다. 그러나 한 눈이 없다는 것 때문에 아내는 한층 더 측은히 여기는 것 같았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이전에는 나의 뛰어난 성품이었으며 온갖 단순 소박한 기쁨의 근원이었던 이러한 인정스러움을 아내는 많이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미워하면 할수록 고양이는 나를 더욱 사랑하는 것 같았다. 어떤 집요함을 가지고 내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는데, 내가 어디에 가든지 으레 쫓아와 의자 아래 웅크리고 앉거나 무릎 위로 뛰어올라 핥거나 또는 그 불길한 몸을 비벼대는 것이었다. 또, 일어나 걸어가려고 하면 두 다리 사이로 기어들어와 하마터면 곤두박질할 뻔하게 하고, 길고 뾰족한 발톱으로 옷에 매달려 가슴언저리까지 기어오르곤 했다.

그럴 때면 단번에 내리쳐 죽이고 싶은 충동이 들지만, 무한한 인내력을 발휘하여 참곤 했다.―전에 저지른 흉포한 행위의 기억이 아직 생생한 것도 한 까닭이었으나, 실은 그보다도―뚜렷이 말해 두지만―고양이가 무서워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공포감은 꼭 육체적 위해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그러나 달리 부를 수도 없다. 고백하기도 부끄러운 일이지만―그렇다, 이 중죄수 감방에 있는 지금도 여전히 고백하기 부끄러운 기분이지만―그 고양이가 나에게 안겨 준 공포와 전율은 실로 어리석기 그지없는 망상에 의해 부채질된 것이었다.

전에 내가 죽인 고양이와 지금의 이 얄미운 고양이 사이에 단 하나 다른 점인 흰 얼룩점에 대해 아내는 여러 번 내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 얼룩점은 크지만 아주 희미한 것이었다. 그런데 서서히,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서서히―내 이성은 오랫동안 그것을 부정해 왔지만―윤곽이 뚜렷해졌다.

그것은 입에 올리기에도 몸서리쳐지는 형태를 나타내고 있었다―그 때문에 무엇보다도 그 고양이가 미웠고 무서웠으며 할 수만 있다면 그 괴물을 죽여 버리고 싶었다. 지금 그 얼룩점은 보기에도 소름기치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교수대―무섭고도 불길한 공포와 죄과의 고민과 죽음의 형구인 교수대 모양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나의 비참함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비참함을 훨씬 넘어선 것이었다. 더욱이 겨우 한 마리의 짐승이―내가 그 동류를 진심으로 경멸하며 죽여 버린 짐승이―하느님의 모습과 똑같이 창조된 인간인 나에게 이렇게도 헤어날 길 없는 괴로움을 주다니! 아! 이미 나는 밤에도 낮에도 안식의 기쁨을 찾지 못했다. 낮 동안에는 잠시도 그 고양이가 내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밤은 밤대로 이루 말할 수 없이 무서운 꿈에 시달려 거의 한 시간마다 잠에서 깨어나야만 했다. 깨어 보면 그 불길한 짐승의 뜨거운 입김이 내 얼굴에 덮쳐왔으며, 묵직한 무게가―나로서는 뿌리칠 힘없는 악마의 화신이―내 가슴 위에 떡하니 얹혀 있는 것을 느꼈다.

이러한 고통에 짓눌려 내 마음속에 남아 있던 아주 작은 선심조차 무너져 버렸다. 사악한 생각―몹시 시꺼멓고 흉악한 생각―이 내 유일한 마음의 반려가 되었다. 여느때의 까다로운 성격은 점점 심해져 모든 것, 모든 사람들을 향한 증오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맹목적으로 몸을 내맡기게 된 듯한 나의 돌발적이고 잦은, 억누를 수 없는 격노의 발작에 누구보다도 괴로워하고 누구보다도 참을성 있게 견디어 준 피해자는―아,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 나의 아내였다.

어느 날, 가난으로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던 낡은 집의 지하실까지 볼일이 있어 아내는 나를 따라 내려왔다. 고양이도 나를 따라 가파른 층계를 내려왔는데 그 때문에 하마터면 거꾸로 나뒹굴 뻔했던 나는 갑자기 몹시 흥분하게 되었다. 저도 모르게 손도끼를 접어든 나는 너무나 격분한 나머지 그때까지 나를 억누르고 있던 어린애 같은 공포도 잊고 고양이를 향해 대번에 찍어 내리려 했다. 만일 생각대로 내려쳤다면 고양이는 물론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져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일격은 아내의 말리는 손길에 멈춰졌다.

이 간섭으로 말미암아 악마도 당하지 못할 만큼 격노에 휩싸인 나는 아내의 손을 뿌리치고 대신 아내의 머리 한복판에 도끼를 박아 넣었다. 아내는 비명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푹 쓰러졌다.

이 무서운 살인이 끝나자 나는 곧 신중하게 이 시체를 감출 방법에 골몰했다. 하지만 낮이건 밤이건 이웃 사람 눈에 띄지 않게 시체를 집에서 밖으로 내가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여러 가지 방법이 머리에 떠올랐다. 시체를 잘게 썰어 불에 태워 버리려고도 생각했다. 또한 지하실 바닥을 파고 그곳에 파묻어 버릴까도 생각했다. 아니면 뜰의 우물에 던져 버릴까―상품처럼 보이도록 상자에 담아 그럴 듯하게 포장하여 인부를 시켜 집에서 지고 나가게 하는 일도 궁리해 보았다.

그리하여 결국 그 어느 것보다도 훨씬 훌륭한 방법이 머리에 떠올랐다. 시체를 지하실 벽 속에 넣어 발라 버리기로 결심한 것이다―중세의 사제들이 희생자를 벽 속에 넣고 발라 버렸다는 기록이 있듯이.

이러한 목적에는 안성맞춤인 지하실이었다. 벽을 아무렇게나 쌓아올린 채 최근에 회칠을 슬쩍 한 번 했을 뿐인데 그것이 습기 찬 공기 때문에 아직 굳지 않고 있었다. 더욱이 벽 한쪽은 장식용 연통과 난로였던 곳을 메워 다른 부분과 똑같이 보이게 한 돌출부가 있었다. 그곳의 벽돌을 들어내고 시체를 집어넣은 다음 누가 보아도 의심스럽지 않도록 벽을 완전히 바르는 것은 쉬운 일임이 틀림없었다.

과연 내 예상대로였다. 쇠지렛대로 아주 쉽게 벽돌을 떼어내고 시체를 조심스럽게 안쪽 벽에 세워 그대로 버티어 놓은 다음, 그리 힘들이지 않고 본디대로 벽돌을 쌓아올렸다. 그리고 몰타르와 모래와 머리칼을 되도록 조심스레 손에 넣어 전과 조금도 다름없는 회를 반죽한 다음 새로 쌓아올린 벽돌 위에 골고루 발랐다. 일이 다 끝났을 때 나는 이제 다 되었다는 만족감을 느꼈다. 벽은 조금도 손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진 티끌 하나도 낱낱이 주웠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혼잣말을 했다.

"자, 적어도 헛수고는 아니었어."

다음에 할 일은 이 참극의 원인이 된 고양이를 찾는 것이었다. 그 고양이를 죽여 버리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만일 그때 내 눈에 띄기만 했다면 고양이의 운명은 끝나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 교활한 동물은 지난번의 내 격렬한 분노에 겁을 먹었는지 이러한 기분으로 있는 내 앞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 불길한 고양이가 없어져 얼마나 홀가분하고 통쾌한 안도감을 느꼈는지는 도저히 글로 표현하거나 상상도 할 수 없다. 고양이는 그날 밤새도록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덕분에 고양이를 집으로 데리고 온 뒤 처음으로 하룻밤 내내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 그렇다, 분명 살인을 했다는 중압감이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데도 편안히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고 나를 괴롭히던 고양이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금 자유로운 몸이 되어 숨쉴 수 있었다. 두려움을 주던 괴물은 영원히 이 집에서 달아난 것이다. 이제 두 번 다시 그 고양이를 보게 될 리 없다고 생각하자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 느껴졌다.

내가 저지른 죄의 두려움에 양심이 아픈 것도 그리 없었다. 두세 차례 심문을 받았지만 문제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집도 수색되었지만 아무 것도 발견될 리 없었다. 이로써 앞날의 행복은 확보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내를 죽인 지 나흘째 되는 날, 뜻밖에도 한 무리의 경관이 몰려와 다시 엄중히 가택 수색을 시작했다. 그러나 시체를 감춘 곳은 제아무리 찾아본다 해도 찾을 리 없다고 확신한 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경관의 명령으로 나도 함께 수색하게 되었다. 집 안 구석구석까지 샅샅이 조사했다. 그리하여 드디어 세 번인가 네 번째로 지하실에 내려갔다. 나는 얼굴빛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내 심장은 마치 천진난만하게 잠든 아이처럼 조용히 뛰고 있었다. 가슴 위로 팔짱을 끼고 유유히 돌아다녔다.

경관들은 완전히 의심이 풀려 집을 떠나려 했다. 나는 기쁨을 억누를 수 없었다. 나는 승리의 표적으로 한마디라도 하여 내 무죄를 그들에게 한층 더 확신시켜 주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참다 못한 나는 층계를 올라가는 경관들에게 마침내 말을 건넸다.

"여러분, 의심이 풀려 무엇보다도 기쁩니다. 여러분의 건강을 빌며 그와 더불어 앞으로는 좀 예의있게 행동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떻습니까―이 집은 그 구조가 썩 잘 되어 있답니다."

아무 이야기나 마구 지껄여대고 싶은 격렬한 욕망에 싸여 나는 뭘 말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참으로 잘 지어진 집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무엇보다도 벽 말인데―아니, 여러분들 그만 돌아가시렵니까?―어떻습니까, 이 벽의 견고함은......"

이렇게 말한 나는 완전히 흥분하여 미치광이처럼 들고 있던 막대기로 아내의 시체가 들어 있는 바로 그 부분을 힘껏 내리쳤다.

그러자 아, 하느님, 악마의 독니로부터 나를 구해 주소서! 내리친 소리의 메아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무덤 속에서 대답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 왔다!―처음에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처럼 짓눌린 채 간간이 끊어지는 소리였는데, 곧이어 사람 소리라고는 도저히 여길 수 없는 길고 높으며 끊어짐이 없는 아주 괴상한 비명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지옥에 떨어진 죽은 이와 그 파멸에 기뻐 날뛰는 악마의 목구멍에서 동시에 흘러나오는, 지옥에서만 들을 수 있는 공포와 승리가 반반씩 섞인 울부짖음이었다. 순간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며 반대쪽 벽으로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한동안은 층계 위의 경관들도 공포와 놀라움으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다음 순간, 대여섯 명의 억센 팔이 달려들어 벽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벽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미 거의 썩고 핏덩어리가 말라붙은 시체가 모두들의 눈앞에 우뚝 나타났다. 그리고 그 머리 위에는 시뻘건 입을 크게 벌리고 불같은 외눈을 커다랗게 뜬 그 무서운 고양이가―나로 하여금 살인을 하도록 감쪽같이 꾀어 들이고, 지금은 그 비명 소리로 나를 교수대로 이끈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나는 이 괴물을 무덤 구멍 속에 시체와 함께 넣고는 그대로 발라 버렸던 것이다!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공동묘지. 1937년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된 고려인의 최초 거주지로, 이주 첫해 겨울 수만 명이 얼어 죽은 슬픈 디아스포라의 현장이다.
-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 따라
- 화물열차에 실린채 6000㎞ 지나 도착
- 추위·배고픔에 첫 해 3만명 사망 불구
- 벼농사 북방한계선 바꾸는 혁명 이뤄

- 최대 도시인 알마티의 한국어교육원
- 한학기에 교민 등 800명에 한글 강의
- "비록 고향을 떠나 이곳에 밀려왔지만
- 그들에게 모국어란 어머니 젖 배인 말"

국제신문과 부산문화연구회(대표 김성배 시인)는 문학기행 10년을 기념해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8일까지 7박 9일 일정으로 '최석 시인과 함께하는 카자흐스탄 문학기행'을 마련했다. 이번 문학기행은 조국을 떠나 황량한 대륙을 떠돌아야 했던 이주역사 속에서도 우리 말과 문화를 지키려던 고려인의 노력과 사막 한복판에서 농장을 일군 한민족의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 특히 올해는 고려인 강제이주 75주년에다 한국과 카자흐스탄이 수교한 지 20주년 되는 해이다. 부산과 서울 지역 독자 15명이 참가했다.

■통한의 땅 우슈토베

   
한국-카자흐스탄 문학교류회 참가자들이 행사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2일 낮 1시께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바스쮸베 고려인 최초 거주지. 조수만(1905~1951년) 묘, 유민 김 씨(1877~1954년) 지묘 같은 수백 기의 공동묘지와 기념비가 문학기행팀을 쓸쓸히 맞았다. 차에서 내리자 숨이 막혔다. 수은주가 영상 40도를 오르내렸다. 풀조차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버려진 사막의 땅이다. 한겨울에는 영하 30~40도까지 내려간다고 한다.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이자 문학기행팀 숙소가 있는 알마티에서 330㎞ 떨어진 우슈토베는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1937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강제이주 화물열차를 타고 온 고려인들이 처음 내렸던 곳이다. 강제 이주된 고려인이 1937년 10월 9일부터 1938년 4월 10일까지 토굴을 파고 살았던 초기 정착지다. 6000㎞의 긴 여정에다 추위와 굶주림으로 고려인 1만5000여 명이 이동 중에 사망했고, 이주 첫해 10만 명 가운데 3만 명이 숨졌다는 기록이 있다.

10월이면 우슈토베는 겨울 날씨를 보인다. 고려인은 숟가락 하나로 토굴을 파고 부둥켜안은 채 체온을 나누며 추위와 배고픔을 견뎠다. 들판의 승냥이 울음소리에 밤마다 고려인의 통곡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1996년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한 최석 시인은 "추위와 굶주림에 죽어나가면 토굴 밖 눈 속으로 시신을 밀어냈다가 눈이 녹는 봄에 땅에 묻었다"며 "1937, 38년 이곳은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가 함께 공유하는 곳이 됐다"고 설명했다.

고려인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카레이스키 콜호스(한인 집단농장)'를 조직하고 억척스럽게 황무지를 일궈 벼농사의 북방한계선을 바꿔놓는 농업혁명을 이룩했다. 덕택에 불모지 우슈토베는 수많은 수로와 논, 양파밭으로 변했다. 현재 중앙아시아 곳곳에 흩어져 사는 고려인이 50만 명에 달한다. 우슈토베에 사는 고려인이 벼와 양파 농사를 짓고 있다.

우슈토베의 슬픈 역사를 기억하는 문학 작품이 많다.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한 최석 시인과 윤종관 카자흐스탄 알마티 교민신문 '카자흐뉴스' 발행인은 '봉분의 역사'와 '우슈토베의 한'이라는 시를 썼다.

'저건 아직 녹지 못한 눈밭이 아니다./(…)/그러니까 저건/무덤이다/그냥 무덤들이다/죽어서도 이름을 찾지 못한/이 세르게이/윤 뾰드르의 무덤들이다/어스름 겨울 저녁/물 한잔 얻어 먹지 못한/귀신들이다. 그것들이 우는/바람 소리다'. (최석 '봉분의 역사' 중)

'일구 삼칠년/돼지처럼 끌려 차량에 갇힌 채…/밤낮없이 달리던 기차바퀴…/(…)/버려진 땅/내팽개쳐진 삶의 허접한 거적들/옮기는 걸음마저 얼어 붙는/동토의 벌판/시린 손에 흐르는 피/얼어 붙은 돌 위에 뿌리며/토굴을 파 두더지가 된다//(…)긴긴 밤 서러운 눈물이/싸늘한 토굴보다 더 슬픈 절망을 녹인다.(…)' (윤종관 '우슈토베의 한' 중)

■한국-카자흐스탄 문학 교류

   
반 김일성 선언 후 망명한 김종훈, 정추, 최국인 씨(오른쪽부터).
3일 오후 알마티 한국어교육원에서 '한국-카자흐스탄 문학 교류회'가 열렸다. 부산문화연구회는 문학기행 10년을 맞아 일본과 몽골에 이어 카자흐스탄 고려인 문학과 삶으로 해외문학 교류의 외연을 넓혔다. 이경호 알마티 한국어교육원장은 "교민과 현지인에게 한국어 보급을 목적으로 하는 한국어교육원은 세계 37개 도시에 있으며 알마티에는 한 학기에 800여 명이 한국어를 수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북한 출신으로 모스크바에서 유학 중 김일성 독재에 맞서 망명한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 출신의 천재 작곡가 정추(90), 연출가 겸 영화촬영감독 김종훈(86), 카자흐스탄 국가 공인 연출가 최국인(86) 선생이 참석했다. 이들은 1958년 '반(反) 김일성 선언'을 하고 망명한 '10인회' 회원 중 생존자 세 명이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를 거쳐 북한 공산주의 체제 아래의 처참했던 경험과 강제 이주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말과 고려인 문학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세세하게 밝혔다. 김종훈 선생은 자신의 비극적 삶을 "운명"이라고 말해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붉게 했다. "한 평생 나라 잃은 설움으로 일본 공민권, 북조선 공민권, 무국적, 소련 공민권, 카자흐스탄 공민권을 지녔습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내 삶이 빠져나갈 수 없었습니다. 운명이었습니다. 내 조국 한반도와 고향이 그립습니다."

정추 선생은 지난해 8월 12월 EBS에서 방영된 '미행(未行)-망명자 정추'에 소개됐다. 지난 3월 구해우 중앙대 북한개발협력학과 겸임교수 등 2인은 '북한이 버린 천재 음악가 정추'(시대정신)라는 책을 냈다.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한 김병관 시인은 '고려인 문학 약사'를 강의하면서 10인회 회원인 한진 선생의 말을 인용해 "(강제 이주된 고려인에게) 모국어란 어머니의 젖과 함께 몸과 넋이 배인 말"이라고 강조했다.

부산문화연구회와 문학기행팀은 알마티 한국어교육원과 함께 전날 고려인 학생이 주로 다니는 우슈토베 제르진스키 공립학교에 한글 책과 학용품을 전달했다. 문학 교류회는 최석 시인 자택으로 자리를 옮겨 삼겹살과 보드카, 포도주가 곁들여진 파티로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 우리말·우리가락으로 공연 고려극장

- 절망 빠졌던 한인 이주민에게 위안 선사

카자흐스탄 알마티에도 우리 말과 우리 가락으로 공연하는 고려극장이 있다.

고려극장은 객석 250석을 갖춘 카자흐스탄의 국립 문화공간이다. 문학기행팀이 지난 7일 오후 고려극장을 찾았을 때 무용단은 아리랑 반주에 맞춰 부채춤을 추고 있었고, 연극단은 '카라고스' 대본을 우리 말로 연습하고 있었다.

이국만리에서 듣고 본 아리랑과 부채춤은 이곳이 한국인지 카자흐스탄인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1932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 원동변강조선극장으로 창설된 고려극장은 8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해외극단인 셈이다.

초기에 블라디보스토크에 거점을 두고 고려인이 거주하는 지역을 순회하는 이동극장 형태를 유지했다. 고려인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후 고려극장은 고려인이 있는 우슈토베, 알마티로 옮겼다.

고려극장은 절망에 빠진 고려인에게 희망의 씨앗을 선사하고, 핍박받는 삶을 어루만지는 구원의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9년에는 한국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고려극장은 고려인 4, 5세 등 젊은 단원으로 세대교체를 하면서 모국어 구사능력 확보가 숙제로 남았다. 모국어 상실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다.


▶주최=롯데백화점·부산문화연구회

▶특별후원=국제신문

▶참가문의=http://문학기행.kr (051)441-0485

우슈토베·알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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