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플렉스 탈출, ‘왜’가 출발점
한겨레
[관련기사]
논리로 키우는 논술 내공 /

몸 크기가 2㎜에 불과한 벼룩은 20㎝까지 점프를 할 수 있단다. 자기 몸에 100배 가까이 뛰어오르는 셈이다. 하지만 벼룩을 납작한 컵 안에 며칠간 가두어 놓았다가 컵을 치우면 어떻게 될까? 컵이 사라졌어도 벼룩은 컵의 높이 이상으로 뛰어오르지 못한다고 한다.

얼마 전, 수십년 간 현대판 노비로 살아 왔던 ‘노예 할아버지’ 이야기로 사회가 떠들썩했던 적이 있다.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직업과 살 곳 선택이 자유로운 현대 사회에, 어떻게 어른 남자가 그토록 학대받으면서도 도망가거나 신고할 생각을 못했을까?

이유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학대와 실패를 반복해 겪은 사람은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능력을 잃기 쉽다. 어린 시절부터 괴롭힘을 당했던 친구에게 쉽사리 대들지 못하는 까닭 역시 여기서 찾을 수 있겠다.

논리학에서는 이를 ‘세뇌 논증(Brainwash Argument)’라고 한다. ‘세뇌(洗腦)’란 ‘뇌를 씻는다’는 뜻이다. 세뇌 논증이란 말 그대로 생각을 하얗게 지워서 판단을 마비시키는 논증을 말한다. 그리고 아무 비판 없이 무조건 주어진 상황과 주장을 따르게끔 만든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세뇌 논증의 원리는 독재 국가들을 보면 금방 깨달을 수 있다. 독재하는 나라들은 예외 없이 ‘구호 천국’이다. 거리는 독재를 찬양하는 문구들로 넘쳐나고 독재자의 사진도 어디에나 걸려 있을 뿐더러, 뉴스 프로그램도 항상 독재자의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반복하고 반복하라. 사람들의 판단력을 없애고 통치의 부당함을 잊게 하는 데는 반복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세뇌 논증이란 집요한 반복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자신이 바라는 쪽으로 틀어가는 기법이다.

불법 다단계 판매에서의 설득 원리 또한 세뇌 논증에 다름아니다. 불법 다단계 업체들의 ‘설득 노하우’는 ‘집중과 반복’이란다. 이들에게 합숙은 기본이다. 몇날 며칠 공동생활을 통해 똑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처음에 의심했던 마음은 어느덧 믿고 싶은 기대로 바뀌기 쉽다. 급기야 포섭된 사람들은 “성공할 수 있다”. 강한 확신을 갖고 업소의 문을 나서게 될 터다.




세뇌논증은 일상에서도 널리 쓰이는 설득 기법이다. 광고 역시 세뇌 논증을 이용한 기법이라고 볼 수 있겠다. 광고에서는 얼마나 자주 사람들에게 ‘노출’되는지가 얼마나 호소력이 있는지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지곤 한다. 환경 파괴가 심한 제품도 ‘자연의 힘’, ‘자연의 목소리’ 등의 문구와 결합된 선전을 반복하여 접하다 보면, 해로움을 잊게 되기 쉽다.

세뇌 논증이라고 해서 무식하게 반복만 거듭하지는 않는다. 세뇌에는 항상 그럴 듯한 ‘무대장치’가 따라붙기 마련이다. 사이비 종교일수록 현란하고 장엄한 분위기에 집착하고, 뒤가 구린 지도자일수록 온갖 화려하고 멋있는 꾸밈말들이 넘쳐나기 쉽다. 의심스러운 집회일수록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모이는지에 조바심을 내는 법이다. 고급차를 몰고 점잖은 외모에 지적인 말투를 쓰는 사람의 논리는 더벅머리에 꾀죄죄한 복장, 촌스러운 어투로 말하는 이들의 주장보다 더 그럴싸하게 들린다. 이른바 분위기로 점수를 따고 들어가는 효과, 즉 ‘후광효과(halo effect)’란 이를 가리키는 용어다.

그렇다면 세뇌 논증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뇌의 원리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된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논리본능이 있다. 무엇에 대해서건 “왜 그렇지?”하고 물으며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으려는 습관 말이다. 이를 마비시키려고 하는 시도가 세뇌 논증이다.

항상 당연한 듯한 주장에도 “왜 그렇지?”, “왜 내가 그 주장을 받아들여야 하지?” 하고 때때로 되묻는 습관을 지니도록 하자. 일상생활은 가장 중독성이 강한 ‘세뇌’이기 쉽다. 오랜 세월 되물음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기 때문이다. ‘콤플렉스’ 역시 나 스스로 자신에게 반복한 세뇌 논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실패와 망신에 대한 경험이 스스로를 옭죄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콤플렉스에 대해 물음을 던져 보자. 왜 두려운지, 왜 남들이 ‘그것’을 지적하기만 하면 화부터 나는지를 차분히 짚어 보자. “왜 그렇지?”라는 물음은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혹시 주변에서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이나 사건이 있는가? 그렇다면 “왜 내가 저 친구에게 상처를 받아야 하지?”, “왜 나는 이 사실을 선생님에게 알리면 안 되지?” 하고 되물어 보자. 세뇌 논증의 위력은 당하는 자의 침묵 속에서 발휘된다. 입을 열고 “왜 그렇지요?”하고 묻는 순간, 세뇌 논증은 힘을 잃기 시작한다.

» 안광복/중동고 철학 교사
물론 세뇌 논증과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데는 세뇌 논증만큼이나 긴 세월과 꾸준한 논리훈련이 필요하다. 하지만 극복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천릿길도 한걸음부터다. 두렵더라도 “왜 그렇지?” 하고 물으며 답을 찾도록 하라. 그럴수록 나의 정신은 두려움과 오해를 몰아낼 만큼 점점 더 강해질 테니까.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 뇌를 깨우는 논리체조 ■

자신을 짓누르는 일상의 믿음들을 예로 들어봅시다. 그리고 “왜 그래야 할까?”라고 묻고 여기에 대한 답을 찾아보도록 합시다.

예) 남자는 절대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
선배에 대한 반항은 ‘죽음’이다.

<체조방법>

오랜 세월 반복되어 주입된 ‘편견’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특히, 광신적인 믿음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왜?”라고 물었다고 해서 세뇌를 통해 주입된 믿음이 쉽사리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믿음에 대해 이유를 찾고, 과연 제대로 된 것인지를 물어봅시다. 문제의 극복은 제대로 된 진단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왜?”라는 물음을 오랜 마음의 병을 벗는 출발점입니다. 꾸준히 포기하지 말고 오랜 편견에 도전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