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에 대한 성취도는 세계 최고, 흥미도는 세계 최저. 바로 대한민국이다. 한국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수학을 포기한 자, 즉 ‘수포자’라는 말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흔하게 쓰이고 있다. 교육부의 자료에 의하면 전국 160만 명의 중학생 중 18%인 28만 명에 이르는 학생들이 수포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많은 학생들을 수포자로 만든 것일까?
어느 수포자의 고백
"중학교 때 수학 성적은 꽤 좋은 편이었다. 수업으로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마지막 시험을 끝내고 학원에서 고등학교 수학 선행학습을 시작하며 난이도가 확 올라간 걸 느꼈다. 고등학교 첫 수학시험 결과에 충격을 받았고, 그 여파 때문인지 성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확실히 고등학교 수학은 중학교의 그것과는 달랐다. 난이도는 확 올라갔는데, 정규 수업 진도는 중학교에 비해 빨랐고 따로 학습지를 나눠줘 보충하게 했다. 진도를 빨리 빼서 남는 시간에 보충한다는 개념인데, 나처럼 진도를 못 따라가는 낙오자가 생기는 것이다.
특정 개념을 완전히 이해해야만 관련 문제를 풀 수 있는 나로선 수업이 많이 힘들었다. 개념을 설명하고 관련 문제 하나를 풀고 진도를 나가는 식이라 어느새 개념 5개쯤은 지나가 있는 게 다반사였다. 개념을 하나라도 완전히 이해하고 싶었지만 학교도, 학원도 충족시켜주진 못했다. 문제풀이 위주인 학원에선 선생님이 풀어준 문제풀이를 내가 푼 것처럼 착각하곤 넘겨버린 적이 많다.
학원을 끊고, 2학년 땐 수학 방과후수업과 야간자율학습으로 공부했다. 야자 시간엔 개념정리용과 문제풀이용 두 권으로 공부했고, 인터넷강의는 정말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만 들었다. 하지만 혼자 공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해설지를 통해서도 해결이 안 되는 문제가 있으면 무조건 막혔다. 친구나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도 이해가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수학 학습량이 방대하다 보니 다른 학생들을 따라잡는 것도 힘들었다. 친구들이 선행학습을 통해 멀찌감치 진도를 나가는 데 대한 불안감도 있었다. 1학년 수학을 놓은 나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고, 결국 수포자가 됐다."
수포자를 바라보는 수학 선생님의 이야기
다른 학생들의 의견도 조사한 결과, 수학을 놓게 된 원인으론 ‘어려워서’가 단연 많았다. 수학이 어려우니 따라잡기 힘들고, 자기주도학습 역시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수학 선생님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박성창 충암고 수학 교사, 수학학원 A 강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왜 많은 학생들이 수학을 어려워하고 잘 못하는 것일까.
(박성창 교사) “어려워하는 것이 당연하다. 다른 과목과 달리 수학은 개념 자체가 어려워 고도의 사고 과정이 필요하다. 내용이 어렵고, 또 많기도 하고, 배운 개념이 머릿속에 누적되어 있다는 전제하에 수학 공부를 해야 하는 걸로도 모자라 문제를 풀 때 배운 것들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공사를 할 때 처음에는 기본적인 삽, 호미, 낫과 같은 도구들만 사용하면 되지만 나중엔 지게차, 크레인, 굴삭기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도구를 전부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학생들이 수학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가 과거에 비해 달라졌나.
(A 강사) “요즘 학생들의 계산력은 과거 학생들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렇지만 문제를 파악하는 언어 능력과 사고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걸 느낀다. 아마도 스마트폰과 뭐든지 빨리빨리 진행되는 생활에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가는 게 아닐까.”
-한국의 올림피아드 성적이 뛰어난데. 올림피아드를 향한 수학 교육 등이 한국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A 강사)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든 주입식 교육이 학습 초반에는 효과가 있지만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학습에는 한계가 있다. 수학공부에 있어 원리를 깨우치기 보다는 암기식의 학습을 하다 보니 수학과정의 연계성을 이해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학생 대부분이 떠먹여주는 주입식 교육에 익숙하다 보니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내려 하거나 궁금증을 가지지 않는 것 같다.”
-교육 당국에서는 수학 학습량을 20% 가량 줄여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하는데.
(박 교사) “적극 반대하는 입장이다. 모든 국민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고등학교 1학년까지는 상관 없다. 하지만 이 과정을 넘어서서 배우는 고등학교 2·3학년 과정은 내용을 삭제하고 더 쉽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부 그만한 이유가 있고 쓸모가 있기 때문에 가르치는 것이라서다. 어려운 부분은 없애고, 쉬운 것만 가르치면 오히려 학생들이 공부할 기회를 박탈할 수도 있다. 대학 교육 과정과 이어지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대학입시만을 바라보고 교육과정을 변경하면 분명 더 큰 짐을 학생들에게 안겨줄 것이다. 어렵다고 없애고 줄이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많은 학생들이 흥미를 잃지 않고 공부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A 강사) “입시로 인한 수포자는 줄겠지만 수학교육을 통해 얻어지는 사고력, 논리력은 그만큼 떨어질 것 같다.”
-한국 수학 교육이 갖고 있는 문제점과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있다면.
(A 강사) “학생들은 ‘수학=입시’라는 틀에 박힌 교육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시험이라는 잣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저학년 학부모일수록 시험 점수에 더 연연해 더더욱 입시를 위한 공부를 시키려 든다. 그로 인해 탐구하고 사고하는 수학의 학습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입시를 다양화하거나, 개개인의 다양한 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수학을 잘 하려면.
(박 교사) “독하게 공부해야 한다. 시험에 나오지 않더라도 궁금한 부분이 생겼을 때는 증명하고, 분류하고, 찾아 보라. 남들이 쓸 데 없다고 하는 그 과정이 결국은 수학적 사고력을 만든다. 또한,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수학을 공부하다 보면 많은 공식들을 마주하는데, 마치 게임을 할 때 아이템을 하나씩 꺼내 쓰듯 상황에 공식을 대입하는 연습을 하라는 뜻이다.”
글=양재원·정유선(무학여고 2)·이상호·백지환·이근희·유현보·한재서(충암고 2) TONG청소년기자, 청소년사회문제연구소 행당지부·충암고지부
도움=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사진=중앙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