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촛불집회의 대통령 하야 촉구

 

[한국일보 사설-20161114] 100만의 ‘하야’외침, 조속한 정국수습책 내놓으라

 

 지난 주말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광화문 촛불집회가 불상사 없이 평화롭게 끝났다.

 

 경찰은 26만 명 정도 모였다고 하지만 발 디딜 틈조차 없었던 집회 현장 주변의 지하철 승ㆍ하차 집계로 미뤄 볼 때 100만 명 이상 운집한 것으로 추산된다. 1987610 항쟁 이후 최대 집회로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국민 분노가 도도한 물결이 되었음을 일깨운다.

 

 아무런 권한이 없는 사인(私人)에게 국가정보를 넘겨주고 국사를 함께 한 박 대통령의 위법성, 미르ㆍK스포츠 재단 설립 과정의 청와대의 개입 정황, 박 대통령 비선 측근인 최순실씨의 정부 인사 개입 등이 검찰수사로 뚜렷해지고 있다. 그만큼 대통령의 국정운영 능력과 헌법적 권한 행사에 대한 민심의 거부감이 크다. 계층과 노소()를 가릴 것 없이 번져가고 있는 국민적 요구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런 민심 이반과 대통령의 국정운영 동력 상실 상황에서도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이 올바른 해법을 마련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점이다. 야권은 ‘2선 퇴진’을 요구하며 박 대통령이 제안한 총리 추천을 거부하고 있지만, 당과 정파, 대권주자마다 그 의미가 제 각각이다. 정국 수습의 책임 있는 주체로서 추진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여당은 당내 장악력은 물론 지도력을 잃은 친박계 당 대표가 여전히 정국 수습의 주체임을 고집, 당 내분만 부추기고 있다. 무엇보다 일방적 총리 후보자 지명 등 서툰 미봉책과 권한이양범위 등에 대한 박 대통령의 모호한 화법은 야당 반발과 민심만 자극할 뿐 국정공백 사태의 조속한 해소방안을 가로막고 있다.

 

* 박 대통령, 2선 퇴진’ 등 결단 서둘러야

 

 정치권이 올바른 해법 마련에 책임 있게 나서지 못하고, 민심 또한 분노와 불안 속에 거리로 나서는 혼란한 정국이 거듭되는, 최악의 상황이다. 미국의 정권 교체 등 급변하는 국제정치ㆍ경제 변화와 심화하는 국내경제 위기에 비추어 최소한 연내 정국 수습 전망이라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청와대는 촛불집회 다음날인 13일 “국민 여러분의 목소리를 무거운 마음으로 들었으며 현 상황의 엄중함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또 다른 민심 수습책을 고려하고 있다는 의미로 들린다. 박 대통령은 국가 안위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 헌법적 권한에 대한 미련에 안주할 게 아니라 보다 분명한 ‘2선 후퇴’ 의지를 밝혀 마땅하다. 국민적 요구인 대통령직 사임 등 중대 결심도 배제할 이유가 없다.

 

 비록 헌법상으로 형사소추를 면한다 해도 검찰 수사를 통해 최순실씨 국정 농단과 관련한 개입과 방조 등 대통령의 혐의가 분명해지는 순간 대통령직은 초라하고 무의미한 자리가 되고 만다. 최씨의 국정농단과 관련해 검찰이 금명간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조사에 나서는 마당이면 자신의 거취를 포함해, 해석 논란을 피할 분명한 어법으로 정국 수습 방안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

 

* 여야도 현실적 정국수습 방안 짜내라

 

 아울러 여야는 국가 권력의 공백이 장기화하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책임총리 추천과 대통령의 헌법상 고유권한 문제, 거국중립 내각 구성 등을 하루라도 빨리 협의해 나가야 한다. 어차피 대통령의 권한 이양을 포함한 거취 문제는 검찰 수사와 함께 수순이 정해져 있다. 여야가 이해타산에 매달려 그저 민심의 분출에 몸과 머리를 맡긴 채라면, 너무 무책임하다. 박 대통령의 분명한 다짐을 전제로, 새로 제기될 정국수습 방안에 즉각 머리를 맞댈 수 있어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61114] ‘박근혜 대통령 하야’는 국민의 명령이다

 

 

 지난 주말 저녁 100만개의 촛불이 서울 중심가를 밝혔다. 도심을 휩쓴 촛불의 물결은 민심의 현주소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국민이 바라는 건 단 하나, 바로 ‘박근혜 대통령 하야’였다.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이끌 자격과 신뢰를 상실했다는 일치된 판단이었다. 이 도도한 민심에 박 대통령은 답해야 한다. 더이상 외면하지 말고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직시해야 한다.

 

 201212월 국민 다수가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건 그의 진심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적 이익보다 국민과 국가를 먼저 생각할 것이라는 믿음, 이 믿음이 아버지의 후광 말고는 별다른 정치적 자산과 경험이 없는 그를 대통령으로 밀어올렸다. 그 믿음이 산산조각이 났다. 박 대통령은 국민과 공직자보다 최순실씨로 대표되는 소수 사적 집단을 더 믿고 그들의 이익을 보장하려 애써온 사실이 드러났다. 과거 독재정권에 비견될 정도로 기업들로부터 강제로 돈을 거둬 정경유착 그늘을 더욱 짙게 했다. 계층이동의 사다리라 믿었던 대학입시가 최순실씨 딸에게 농락당했다는 사실은 과연 한국 사회에 정의와 공정함이 살아 있는가 하는 깊은 절망감을 드리웠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이에 대한 지적과 비판을 ‘근거 없는 모략’이라며 외면했다. 오직 검찰 권력을 부여잡고 위기를 모면하려 애썼다. 전국을 수놓은 촛불은 국민이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거둬들였음을 상징한다. 박 대통령은 이런 국민의 요구를 회피해선 안 된다. 대통령직을 사퇴하고 국정 공백을 조기에 종식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게 박 대통령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애국이다.

 

 현직 대통령의 임기를 중단하는 건 정치적 혼란을 낳고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대통령제는 대통령 임기를 보장하고 임기 중엔 소신껏 국정 운영을 하라는 사회적 합의에 기초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바로 그 합의를 지탱하는 힘은 유권자인 국민과 대통령 사이의 신뢰다. 헌법에 외환 또는 내란의 죄를 제외하곤 대통령의 형사소추를 금지하고 국회의 대통령 탄핵 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해 임기를 보장했지만, 그걸 떠받치는 힘은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서 나온다. 대통령이 비록 일시적인 정책 실패나 측근 비리에 휘말리더라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애쓴다는 믿음, 바로 이 최소한의 신뢰가 대통령제를 지탱하고 대통령 임기를 보장케 하는 기본 조건이다. 지금 그 신뢰가 송두리째 무너져버렸다.

 

 

 우리 현대사에서 ‘헌정 중단’의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다. 대부분 권력자의 장기집권 욕구 또는 군부 쿠데타에 의한 것이었다. 그런 반동의 역사 속에서도 우리 국민은 좌절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다. 19604월혁명과 876월항쟁처럼 때론 피를 흘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권력자의 헌정 중단을 딛고 일어섰는데, 국민의 뜻으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게 퇴보일 수는 없다. 국민의 믿음을 저버린 대통령에게서 권력을 되찾아오는 건 헌정 중단이 아니다. 오히려 헌정 체제를 건강하게 지속하는 것이고, 민주주의를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진전시키는 길이다.

 

 이제 박 대통령이 결단을 내릴 때다. 그는 여러 차례 국민의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 끝까지 권력에 집착하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가 성역 없이 철저히 진행되는 걸 막으려 했다. 이런 행동이 박근혜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에 기대했던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태워버렸다. 박 대통령은 스스로 그 직을 내려놓음으로써 자신을 뽑아준 국민에게 마지막 예의를 보여야 한다. 국회는 당장 박 대통령 퇴임에 대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끝내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오길 거부한다면, 헌법에 따른 탄핵 절차에 착수할 준비를 해야 한다.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후임 정권이 안정적으로 출범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당리당략을 버리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여기에는 야당 의원은 물론이고 박 대통령의 하야에 동의하는 여당 의원도 참여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에 이어 정치권마저 국민의 뜻을 저버리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 된다.

 

 

[동아일보 사설-20161114] 대통령 탄핵 절차 밟으라

 

 박근혜 대통령은 12일 대규모 촛불집회의 밤에 무엇을 했을까. 청와대까지 쩡쩡 울려퍼진 “박근혜는 하야하라” 구호를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수많은 구호가 나왔지만 민심은 이렇게 요약된다. ‘당신은 더 이상 나의, 우리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다.

 

  ‘삼류 정치에 일류 시민의식’을 보여준 질서 있는 시위였다. 그래서 더 무섭고, 표출된 민의는 더욱 무겁다. 청와대 대변인은 어제 “대통령으로 책임을 다하고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아직도 ‘대통령으로서 국정 정상화’ 노력을 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인식은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 하야 후유증 감당할 수 있나

 

 분노했으되 질서 있는 민의의 외침은 하나, 대통령은 당장 하야하라는 것이다. 나라를 걱정하며 광장에 모인 시민은 나라를 걱정하는 그 마음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지금 당장 박 대통령이 퇴진하면 현행 헌법에 따라 60일 이내에 후임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우리 정치권이 그런 혼란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가. 박 대통령을 뽑을 때 제대로 된 검증 절차를 거치지 못해 오늘날 나라가 이 지경이 된 것 아닌가.

 

 

 지금은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던 4·19 때와 다르다. 박 대통령은 부정선거나 총칼로 정권을 탈취한 게 아니다. 정치적 자유가 억압되지도 않았다. 민중 궐기로 대통령을 하야시키는 것은 헌정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정치권이 민심에 편승해, 아니 앞장서 하야를 외치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다. 정치의 역할은 민심의 에너지를 헌정질서에 맞게 풀어내는 것이다.

 

 * 탄핵은 헌법에 따른 퇴진 절차

 

 그렇다면 헌법적 정당성을 잃은 대통령을 퇴진시킬 방법은 없는가. 아니다. 우리 헌법에 분명한 규정이 있다. 헌법은 ‘대통령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 탄핵 절차에 돌입하도록 명시했다. 박 대통령은 주권을 가진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최순실이란 일개 사인(私人)에게 건네 사유화하도록 했다. ‘대통령 권한의 양도’는 국민주권주의를 규정한 헌법 1조에 대한 심대한 위반이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당시 야당은 선거법 위반 같은 사유로 대통령을 탄핵 소추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지금 야당은 당시 목도한 탄핵 역풍이 무서워 헌법의 기본정신을 위배한 대통령의 탄핵 발의를 주저하고 있다. 검찰의 최순실 공소장에 박 대통령의 범죄 연루 사실이 포함될 때도 국회가 탄핵 절차에 돌입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다.

 

 대통령 탄핵소추는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200)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의결된다.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에서도 탄핵 주장이 나온 만큼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헌법에 따라 탄핵 절차를 밟으며 국민과 대통령, 여야 정치권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루빨리 국정 붕괴 상황을 종식하고 나라의 미래를 위하는 길인지, 차분하게 생각해볼 시간을 가져야 한다.

 

 물론 하야나 탄핵 같은 헌정사의 불행한 사태 전에 정치적 해법을 찾아 정국을 수습할 수 있으면 바람직할 것이다. 당초 야당이 제안했던 ‘거국중립내각’이나 대통령의 2선 후퇴는 이론적으론 가능할지 모르나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권한과 충돌한다.

 

 그래도 그것이 불행한 사태 없이 난국을 수습하는 해법이 될 수 있다면 헌법 운용의 묘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 헌법학자들의 견해다. 박 대통령은 오늘이라도 야당 지도부를 찾아가 한꺼번에 내려놓겠다고 말하고, 야당은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박 대통령이 임기 단축을 선언하고, 조기 대선을 실시하는 것은 또 다른 위헌 논란을 부를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2013225일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국민 앞에 선서했다. 불행하게도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하지도, 대통령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지도 않았다. 헌법상 선서를 지키지 않은 대통령, 헌법을 위반한 대통령이라도 퇴진 절차는 헌법에 따라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요, 법치주의다.

 

 

[중앙일보 사설-20161114] 100만 시민 평화적 촛불집회는 새 시대 향한 명예혁명

 

 대한민국 국민의 저력을 보여준 자랑스러운 날이었다. 지난 주말 ‘11·12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가한 100만 명(경찰 추산은 26만 명)은 모두가 승자였다. 신성한 헌법의 가치를 자기 손으로 부정한 최악의 대통령에 분노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성숙한 의식을 결집하며 시민 민주주의의 이정표를 세웠다. 유모차에 탄 어린아이와 중고생을 포함한 남녀노소가 한목소리로 ‘대통령 하야’를 외치며 청와대 턱 앞까지 행진했지만 이성적이고 질서정연했다. 세계적으로도 이렇게 많은 군중이 한마음으로 평화 행진을 한 것은 드문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도한 민주주의의 퇴행에 분노한 건강한 시민의식이 찬란한 빛을 발한 것이다.

 

 이번 행사는 19876월 항쟁과 2008년 광우병 집회를 뛰어넘는 사상 최대의 인파가 몰려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이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청와대 앞 율곡로까지 행진을 허용하고, 시민들은 놀라운 자제력을 보였다. 폭력 충돌을 우려한 시민들은 작은 일탈이라도 허용하지 않기 위해 너도나도 ‘평화’를 외쳤고 경찰도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그게 바로 국민의 힘이다. 헌법의 수호자라는 본분을 잊고 사인(私人)에 불과한 최순실 일당에게 국민의 주권을 넘긴 대통령을 향해 “이게 나라냐”며 분노를 표출하면서도 “이게 바로 국민이다”는 걸 직접 보여줬다. 스스로 길가에 나뒹구는 쓰레기를 줍고 바닥의 촛농까지 긁어내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언제 100만 집회가 있었냐는 듯 어제 광화문 일대는 평온했고 일상을 되찾았다.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은 헌법(21조 제1)에서 모든 국민의 표현·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 이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소중한 권리다. 국민은 어제 분노를 절제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시해 표현·집회·결사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음을 스스로 입증해냈다. 대통령의 시대착오적 역주행을 준엄하게 심판한 100만 시민의 평화적인 촛불 시위는 새 시대를 향한 역사적인 명예혁명의 첫걸음이었다. .

 

 

 

 

 

[중앙일보 사설-20161114] 대통령, 최악 상황 피하려면 즉각 2선 후퇴하라

 

 주말인 12일 저녁 100만 넘는 국민들이 도심을 뒤덮은 ‘박근혜 퇴진’ 시위는 전 세계 민주주의사에 하나의 금자탑으로 기록될 만한 위대한 명예혁명의 첫걸음이었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 비선 세력이 저지른 ‘내란급’ 국정 농단으로 추락해 가던 대한민국은 29년 전 6월 항쟁 이래 가장 많은 국민이 광장에 나와 한마음으로 밝힌 촛불로 다시금 부활의 희망을 발견했다. 박 대통령도 13일 밤 분노 속에서도 성숙하게 정치적 의사를 표시하는 민심을 똑똑히 보았을 것이다.

 

 이제 박근혜 정권은 일체의 존립기반을 상실했다. 정치적으로는 이미 국민들에 의해 권좌에서 끌려 나온 것이나 다름없다. 13일을 기점으로 새누리당에서조차 ‘대통령 탄핵’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아직 청와대에 머무를 수 있는 건 최소한의 체면이나마 지키며 명예롭게 퇴진할 길을 열어 주려는 국민의 너그러운 아량 때문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침묵 모드다. 청와대도 고장난 레코드처럼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13일 “여야 협의로 총리가 임명되고 중립내각이 출범하는 즉시 사퇴하겠다”고 밝힌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지금 모든 문제의 출발점은 박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깨끗하게 권력을 내려놓고 2선으로 후퇴해야 책임총리가 중립내각을 구성해 소신껏 일할 수 있다. ‘청와대 거수기’로만 일관하며 민심을 역주행해온 이 대표의 사퇴는 중립내각의 조건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다.

 

 이 대표가 정녕 중립내각 출범을 원한다면 박 대통령을 설득해 2선 후퇴 선언을 끌어내고, 본인도 사퇴하는 게 우선이다. 그동안 대통령 감싸기에 급급해온 이 대표가 돌연 이런 제안을 던진 것부터 수상하다. 국민의 열화 같은 ‘대통령 퇴진’ 요구를 물타기하려는 청와대·친박계의 꼼수 합작극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이런 의혹이 사실이라면 박 대통령이 아직도 헛된 권력에 집착하고 있다는 얘기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시간이 없다. 2~3일 안에 검찰이 현직 대통령을 수사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드러난 혐의만 봐도 대통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피의자 수준을 넘어 내란·외환의 죄를 저질렀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2선 후퇴와 탈당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이번 주말로 예정된 4차 촛불시위는 한층 더 강력해질 것이다. 그래서 박 대통령이 자발적 퇴진 기회마저 잃고 강제 하야→사법 처리라는 최악의 사태를 맞을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데도 박 대통령이 권력에 대한 미련을 갖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당장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검찰 수사에 전적으로 협조하겠다”고 선언하라. 검찰 수사가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반드시 2선 후퇴를 해야 한다. 여야가 진정한 거국내각을 출범시켜 위기를 관리하도록 협조하는 것만이 지지율 5%인 ‘식물 대통령’이 최악의 상황을 면하는 길이다.

 

 

[경향신문 사설-20161114] 100만 촛불은 대통령 퇴장을 명령했다

 

 20161112일은 시민혁명의 날이었다. 서울 도심을 밝힌 100만 평화 촛불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퇴진이 시민의 명령임을 분명히 보여줬다. “이게 나라냐”는 분노를 넘어 “이게 민심이다”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3차 주말 촛불집회는 규모로도, 내용으로도 역사에 남을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줬다.

 

 가족이나 연인, 중고생 등 참가자 범위가 넓어졌고 시위는 축제를 방불케 했다. 박 대통령의 출신 고교인 성심여고 학생들은 무대에 올라 “선배님 같은 후배가 되지 않겠다”고 했다. 시민들은 나뒹구는 쓰레기를 줍고 길바닥에 떨어진 촛농까지도 휴대전화 손전등을 비추며 긁어냈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재외 교포들도 같은 시간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많은 참가자들이 “집회에 처음 나왔다”고 했다. 국가의 기본을 무너뜨린 데 대해 남녀, 세대, 지역, 이념을 떠나 모든 시민이 분노했다. 박 대통령이 진정한 국민대통합을 이뤄냈다는 조롱은 웃을 수만은 없는 역설이다. 법원은 청와대 지근거리인 율곡로까지의 행진을 처음 허용하며 집회권을 보장했고, 경찰도 시민들과의 충돌을 피하며 안전관리에 힘썼다. 한국사회의 성숙함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100만 촛불에 담긴 분노를 보고도 여전히 미몽 상태에 빠져 있다.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어제 “대통령께서는 국민 여러분의 목소리를 무거운 마음으로 들었으며 현 상황의 엄중함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지금 대통령으로서 무슨 역할을 더 할 것이며, 고심을 하고 말고 할 게 무엇이 있는가. 대통령은 시민들의 저항 수위에 따라 한발 한발 뒤로 물러서며 찔끔 사과와 꼼수 수습책을 내놓았지만 민심은 더욱 차갑게 돌아섰다는 걸 시민의 촛불로 입증했다.

 

 

 100만 촛불에서 확인된 민심은 분명하고 단호하다. 단 하루, 한 시간도 박 대통령의 시민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나라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박 대통령은 당연히 물러나야 하며 그 길만이 사태 해결의 출발점이란 것이다. 13개월 남은 임기 동안 박 대통령에게 국정을 맡길 수 없는 것은 물론 2선에 머문다는 것 자체도 나라의 혼란을 더욱 부채질하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무엇을 한들 믿지 못하고, 그가 무슨 말을 해도 그 문장은 누가 써주었는지 의심하는 게 시민 정서다.

 

 국정 정상화 운운하는 대목에선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지난 4년간 시민들이 맡긴 권력을 개인에게 넘겨 연설문 작성부터 외교안보에 이르기까지 꼭두각시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이미 국정은 비정상이었고 대통령은 없었는데 도대체 무엇을 정상화시키겠다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집권당이라는 새누리당도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말로만 촛불 민심을 준엄하고 무겁게 받아들이겠다면서 자리 보전에만 급급하니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여당뿐 아니라 청와대, 정부, 검찰 내 최순실 부역자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박 대통령의 퇴진은 혼란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작이다. 헌법과 국가, 정의와 역사, 미래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다. 촛불 민심은 대통령 퇴진을 넘어 우리 사회 새로운 질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자는 열망을 담고 있다. 촛불은 대통령 퇴진 요구로 시작했지만 촛불의 종착지는 새로운 체제, 새로운 나라, 새로운 시대로 향할 것이다.

 

 4·19혁명부터 6월항쟁까지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되살려온 주인공들은 항상 시민이었다. 시민들이 있었기에 헌정을 유린한 어떤 독재 치하에서도 이 나라를 지탱해올 수 있었다. 시민들은 또다시 민주공화국을 복원시키고 헌법 제1조에 따라 국민이 주인인 시민권력 시대를 열 것이다.

 

이제 박 대통령은 나라를 ‘비선 놀이터’로 만들고 국정을 망가뜨린 벌을 스스로 청해야 한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서울신문 사설-20161114] 민주 시민 힘 보여준 100만 평화 촛불

 

* 국민이 나라 주인 촛불에 담아…박 대통령 스스로 결단 내려야

 

 

 ‘최순실 국정농단’의 책임을 물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연일 서울 도심에서 열리고 있다. 주말인 그제 집회에는 100만명(경찰 추산 26만명)의 시민이 모였다. 19876월 민주화 항쟁 이후 가장 많은 인원이 모인 집회이자 촛불집회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최씨의 국정농단을 바라보는 국민의 분노와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줬다. 민심 바로 그 자체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답해야 할 차례다.

 

 그제 100만 시민이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일시에 촛불을 밝히는 모습을 보고 감동과 함께 온몸으로 전율을 느꼈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 직접 현장에 가지 못한 수많은 국민들도 마음만은 그곳의 시민들과 함께였다. 무엇이 이토록 국민들을 한마음, 한뜻으로 한자리에 모이게 한 것인가. 바로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임을 부정하고 국가의 시스템을 일시에 무너뜨리며 국민들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은 세력들을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민만이 아니라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열차, 전세버스를 타고 속속 집회에 참석한 이유도 그래서다.

 

 집회에는 초·중·고·대학생들, 연인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 노인 등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전문 시위꾼도, 정부를 엎으려는 불순세력들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100만 촛불집회는 이념과 나이와 계층을 초월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는 자리였다. 민심은 폭발했지만 결코 폭력으로 표출되지 않았다. 성숙한 민주 시민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았다. 일부 물리적 충돌이 있긴 했지만 시종 질서정연하고 평화적인 분위기 속에서 마치 대화합의 축제의 장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집회가 끝나고는 광장의 쓰레기를 치우고, 바닥에 묻은 촛농을 제거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정치는 삼류, 시민은 일류’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외신들도 과거 폭력시위와 대조된다며 놀라움을 표시했을 정도다.

 

 하지만 청와대는 어제 이런 집회를 보고도 “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교과서적인 반응만 되풀이했다. 반면 야당에서는 “안정적 하야, 질서 있는 퇴진 요구를 위한 로드맵을 제시하라”고 박 대통령을 압박했다. 새누리당의 비주류도 새누리당이 수명을 다했다며 해체를 추진하기로 하고 “대통령은 모든 것을 내려놔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무성 의원은 탄핵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 얘기도 나온다. 검찰은 15~16일쯤 박 대통령의 대면조사 방침을 밝혔다. 이제 국민들은 대통령의 추가 담화도, 수사에도 별다른 감흥이 없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박 대통령이 스스로 결단을 해주길 바라는 것뿐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어떤 죄의식도 없이 최씨에게 건네 국정농단을 일삼게 한 제왕적 대통령과 이를 알고도 묵인하면서 권력을 누린 측근 인사들이 움직이는 나라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