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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손에 쥔 지팡이에 의지해 걷고 있었습니다. 앞은 오직 깜깜한 어둠, 지팡이 끝이 그의 눈이나 마찬가지였죠. 빠르게 ‘쌩쌩’ 달리는 차들의 소리가 노인의 왼쪽 귓가에 맴돌았고요, 그가 서 있는 인도에는 온갖 장애물이 가득했습니다. 갑자기 꺾어진 길, 불쑥 튀어나온 건물. 노인은 두 눈으로 결코 볼 수 없는 여러 형상(形象)을 머릿속에 그리며 불안한 걸음을 한 발자국씩 내디뎠습니다.
그를 지켜보는 한 시선이 있었습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전국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23일 글을 올린 네티즌 A씨입니다. A씨는 이날 경북 포항에서 이 노인을 봤다고 했습니다.
노인은 앞이 보이지 않는 탓에 걷는 것을 매우 어려워 했다고 합니다. A씨는 노인 곁을 지나던 많은 사람이 그를 외면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초등생 2명이 나타났습니다.
이 아이들도 처음에는 머뭇거렸습니다. “할아버지 도와드려야 하는데”라고 말은 하면서도, 차마 나서지 못하고 노인을 지나친 거죠. 그러나 잠시 뒤 아이들은 노인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두 명이서 “도와주자”라고 말하는 것을 A씨가 들었다고 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했던 노인은 목적지를 말했습니다. 초등생 2명은 노인의 팔짱을 끼고 보폭을 맞춰 걷기 시작했죠. A씨는 “아이들이 오기 전까지 많은 어른이 지나갔지만 다들 모른 척 했다”며 “이 아이들을 칭찬한다”고 글에 적었습니다.
최근 흉악범죄 소식이 뉴스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요즘은 낯선 사람과 눈도 마주치면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오더군요. 아이들의 선한 마음이 느껴지는 이 일화를 읽을 때도 걱정이 앞섰습니다. 스릴러 영화에서 봤을 법한 온갖 이야기가 떠올랐고요.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야기.’ 이 코너를 설명하는 문구입니다. 저처럼 미담을 읽어도 불안함이 고개를 슬며시 들 때 이 코너를 찾아주세요. 아직은 세상이 살만하다고 외치는 ‘아살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이 아이들처럼 따스함 넘치는 사람들이 아직은 믿어도 된다고, 아직은 베풀어도 된다고 다독여줄 겁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