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1년 쓴 할아버지 "응석받이 만든다는 편견 깨고 싶었다"

[중앙일보]입력 2013.06.01 00:30 / 수정 2013.06.01 00:30

조부모 육아 가구 250만 시대

맞벌이 가구 500만 시대.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아동보육 실태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가정의 영·유아 두 명 중 한 명은 할머니·할아버지 손에 자란다. 지난해 한 대형 인터넷 서점에서 60대 독자가 가장 많이 구입한 베스트셀러 1, 2위도 조부모 육아 관련 서적이었다. 하지만 조부모 육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애 봐준 공은 없다더라’ ‘황혼 육아에 등골이 휜다’ ‘집에 손자가 오면 반갑고 갈 땐 더 반갑다’는 자조 섞인 말도 들린다. 아이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게 가장 좋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 하지만 조부모의 손길이 불가피하다면 3대가 모두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현명할 터다.

돌잔치 때 할아버지 육아일기 선물

손녀 김이소양을 돌보며 꼼꼼히 적어둔 일상을 300쪽에 달하는 육아일기로 펴낸 홍기자·이동권씨 부부(사진 위). 김현준·안신영씨 부부가 손주들과 나란히 앉아 포즈를 취했다(아래 왼쪽 사진). 김영옥씨가 7년간 기른 쌍둥이 손주의 어릴 적 사진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황정옥 기자]

 디자이너 이정혜(41)씨는 3년 전 딸 이소(4) 돌잔치 때 하객 답례품으로 외할아버지 이동권(72)씨가 쓴 육아일기를 내놨다. 정혜씨는 2009년 진통이 한 달 일찍 찾아오는 바람에 출산 준비도 제대로 못했고, 결국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육아는 정혜씨와 외할머니 홍기자(68)씨가 나눠 맡았고, 외할아버지는 곁에서 이소의 일상을 꼼꼼히 적었다. 100일부터 돌까지의 기록은 300쪽이 넘는 책이 됐다. 『김이소 육아일기』엔 매일 몇 시에 일어나고, 젖은 몇 mL를 먹고, 낮잠은 얼마나 잤는지 등이 깨알같이 적혀 있다. 부록으론 그림까지 곁들인 ‘영아 응급처치법’이 첨부돼 있다.

 -어떻게 육아일기를 쓰게 됐나요.

 할아버지=집사람과 연애편지 주고받을 때나 글을 써봤을까. 그런데 손주가 자라는 걸 보니까 뭔가 남겨주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위아래가 단절된 채 자라는 요즘 아이들에게 핏줄의 정도 알려주고 싶었고. 할머니·할아버지 손에 자라면 응석받이가 된다, 말이 늦는다는 우려도 많은데 열심히 육아일기를 쓰면서 그런 걱정을 떨쳐낼 수 있었죠. 글씨도 엉망인데 나 몰래 답례품으로 내놔 얼마나 놀랐나 몰라.

 옆에 있던 정혜씨가 “육아일기를 읽고 감동한 남편이 ‘혼자 읽기 아깝다’며 몰래 책으로 엮었다”고 거들었다.

 -어린 손녀와 대중교통을 애용했다면서요.

 할머니=이소가 말문이 트이기 전부터 둘이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서울 곳곳을 놀러다녔어요.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새우튀김을 먹고 압구정동에서 아이스크림 사먹는 게 단골 데이트 코스였죠. 빨간색 광역버스도 종종 탔는데, 만화 ‘꼬마버스 타요’에 나오는 ‘가니’ 탄다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이젠 이소가 ‘할머니, 우리 가니 타고 새우튀김 먹으러 가자’고 조를 정도죠.

 조부모가 육아에 참여하면 입체적인 가족관계가 형성된다는 게 특징이다. 정혜씨는 “저는 엄마이면서 딸, 이소는 딸이면서 손녀, 엄마·아빠는 할머니·할아버지가 되는 관계”라고 정의했다. 육아를 통해 이런 21세기형 3대 관계가 형성되면서 가족의 새로운 면도 볼 수 있게 된다. 정혜씨는 “함께 아이를 키우다 보니 전엔 몰랐던 아빠의 색다른 모습을 보게 되더라”고 했다. 아빠와 딸이 최신 육아정보를 공유하는 등 대화 내용이 풍부해진다는 장점도 덤으로 얻는다. ‘이소’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밋밋했던 가족관계가 다채로워지고 화목해진다는 얘기다.

 -아이에겐 어떤 영향이 있던가요.

 엄마=화목한 가정 분위기에서 자라는 데다 가족 내에서 여러 관계를 경험할 수 있으니 좋지요. 사랑을 두루 받으니까 성격도 밝고 원만해지는 것 같고요. 다만 뭐든 ‘오냐, 오냐’ 하시니까 아이 버릇이 나빠질까 다소 고민도 됩니다(웃음).”

고생하는 장인·장모 위해주는 사위

 초등학교 교사인 김수홍(37·여)씨는 친정 부모님과 5분 거리에 살며 육아 도움을 받고 있다. 수홍씨는 딸 나영(10)양과 아들 민석(6)군을 뒀다. 김현준(65)씨와 안신영(65)씨 내외는 손녀의 학교 생활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아이는 조부모를 친구처럼 여긴다. 집에 오면 그날의 일상을 종알종알 떠든다. 비밀과 가슴에 품은 꿈도 털어놓는다.

 -가끔 회초리를 드나요.

 할아버지=매는 드는 순간 감정이 실려요. 교직생활을 해보니 나는 잊었는데 제자는 수십 년 전 회초리 맞았던 걸 기억하더라고요.

 엄마=제가 어릴 땐 아빠가 손바닥과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리셨는데 지금은 절대 때리지 말라고 하세요. 꽃으로도 때리지 말래요(웃음). 저는 사실 매가 필요할 때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힘이 달리지는 않나요.

 할머니=솔직히 체력적으로 힘들 때도 있어요. 그래도 아이들 자라는 것 보는 보람이 크죠. 사위도 우리 고생한다고 항상 위해 주니 고맙고요.

 사위와 장인·장모 관계가 돈독해질 수 있다는 점도 조부모 육아의 장점 중 하나다. 수홍씨는 “남편도 장인·장모에게 늘 잘하려고 노력하고 서로 배려하려고 애쓰니 집안 분위기가 밝아졌다. 아이의 정서적 안정에도 큰 도움이 된다”며 반겼다. “직장생활에 힘든 저와 달리 할머니·할아버지는 아이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항상 ‘네가 최고야’라고 해주죠. 아이들의 믿는 구석이랄까요. 나영이의 활달한 성격도 할머니·할아버지가 하도 기를 살려줘서 그런 것 같아요(웃음). 부모 참관 수업 때 혼자 ‘저요, 저요’ 손들고 네 번씩 발표해 제가 민망할 정도였죠.”

 전북 전주시에 사는 김영옥(78)씨는 둘째딸의 쌍둥이 남매인 윤소명(19)양과 소민군이 태어난 직후 데려와 일곱 살 때까지 길렀다. 지금도 손주들과 e메일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중앙부처 공무원인 엄마와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아빠를 대신해 아이들의 엄마이자 아빠가 돼줬다. 덕분에 남매의 엄마는 지금도 직장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남매는 올해 서울 명문 사립대에 나란히 합격했다. 할머니는 남매를 기르며 적어둔 메모를 엮어 『별난 할머니와 별난 쌍둥이』라는 책도 냈다.

 남매와의 전화 인터뷰를 했더니 “할머니는 내가 뭘 하든 믿어주고, 사랑해 주고, 뭐든 해낼 거라고 말씀해 주시는데 그게 큰 힘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아이는 먹이기만 하면 되는 짐승이 아니에요. 어린 아이라도 사랑하고 존중한다는 믿음을 심어줘야죠. 나무라더라도 감정이 상하지 않게 이해를 시키려고 노력했어요”라고 말했다.

 -남매가 장난치다 사고도 많이 냈다던데요.

 “장난쳐도 매 한 번 안 들었어요. 애들이 로봇도 아니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애가 아니죠. 위험하지만 않다면 호기심 닿는 거라면 마음껏 뛰놀고 장난치도록 허락해 줬어요. 어릴 때도 안 되는 일, 위험한 일은 왜 안 되는 것인지 이치를 알려주려 했고요.”

 -최근 조부모 육아가 늘고 있는데.

 “아이에겐 엄마·아빠가 최고죠. ‘한 다리가 천리’란 옛말도 있잖아요. 시대가 그러면 어쩔 수 없는 것인데, 할머니가 육아에 참여하려면 교육을 잘 받아야 해요. 저도 유치원에서 하는 부모 교육에 한 번도 안 빠지고 참석했어요. 자기 방식이 맞다고 고집만 하면 안 된다고 봐요. 아이를 정말 위한다면 새로운 것도 배워야죠.”

아이 자라면서 갈등 커질 수도

 조부모 육아에 밝은 면만 있는 건 아니다. 은행원 송윤주(33·서울 반포동)씨는 6살·4살 남매를 시부모의 도움을 받아 길러 왔다. 송씨 부부는 분당에 마련했던 신혼집을 처분하고 시부모님 댁 근처에 전셋집을 얻어 이사했다. 하지만 송씨는 지난 연말 입주 베이비시터를 고용했다. 시부모와의 육아 갈등이 해가 갈수록 심해져서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젖병 소독이나 분유 타는 법, 이유식 먹이는 습관 등 사소한 문제를 놓고 의견이 갈렸다. 송씨는 소아과 의사나 최신 육아서적이 권하는 육아법을 따르고 싶어 했지만 시어머니는 그만의 방식을 고집했다. 송씨가 “어머니, 아직 이유식에 소금 간하시면 안 돼요”라고 하면 시어머니는 “적당히 간이 돼야 넘어가지. 내가 셋을 이렇게 길렀지만 누구 하나 아픈 아이 없었다”고 맞서는 식이었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갈등도 커졌다. 급기야 아이들 보는 앞에서 송씨와 시어머니가 언성을 높여 말다툼하는 일이 잦아졌다. “아이를 돌봐주시는 데 대한 고마움도 있지만 얼굴만 마주치면 싸우니 집에 들어가는 게 싫어질 정도였어요. 차라리 남이 낫겠다 싶어 베이비시터를 구하게 됐죠.”

  이소네나 나영이네는 갈등을 겪지 않았을까. 이소 할아버지는 갈등의 순간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못 먹고 자란 세대라 애가 울면 우유를 더 먹이자고 했죠. 그런데 어미는 의사 말을 듣고 와 ‘수유량과 간격을 지켜야 한다, 운다고 다 배고픈 게 아니다’고 우겨 애가 탔어요. 화가 나서 그 의사한테 몇 번 따지러 뛰어가려고 했을 정도였죠.”

 딸 정혜씨는 육아 갈등 해소법으로 ‘대화’를 첫손에 꼽았다. “애 울음소리 하나를 놓고도 부모님과 제가 ‘뭘 원하는 거다’며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아 늘 의견이 엇갈렸죠. 아이를 과잉 보호하는 게 아닌가 싶어 다툰 적도 많고요. 하지만 꾸준히 대화를 나누고 중요한 부분은 부모님과 의논해 결정하다 보니 부딪칠 일이 점점 줄더라고요.”

 서울대 곽금주(심리학) 교수는 “나이 든 조부모가 종일 육아를 담당하는 건 육체적·정신적으로 적잖은 스트레스”라며 “조부모가 있더라도 보육기관 이용도 병행하며 부담을 덜 수 있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곽 교수는 “조부모는 이미 육아를 경험한 만큼 부모보다 조바심내지 않고 참을성 있게 대하며 아이가 잘될 거란 믿음을 갖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조부모의 마음가짐이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스더 기자

부모가 자존감이 높으면 아이의 행동에 민감하지 않아요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이 말하는 ‘부모도 행복해지는 육아’

부모들은 묻는다. ‘아이를 잘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서천석의 대답은 두 가지다. 첫째는 부모가 좋은 사람이어야 하고 둘째는 아이가 부모를 좋아해야 한다는 것. 좋은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부모가 성숙해야 하고 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다고 하지만, 당연한 이치는 있다. 부모가 행복하면 아이도 행복하다는 것. 부모의 자존감이 높으면 아이의 자존감도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 MBC 라디오 <서천석의 마음연구소>를 진행하며 최근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를 펴낸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은 “부모들이 육아에 대한 압박감을 심하게 느끼면서 좀처럼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왜 부모들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기준에 아이들이 부합하기만을 바랄까. 부모가 행복해지는 육아,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의 모습은 없을까. 서천석은 답했다. “아이 키우는 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에요. 아이라는 존재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죠. 공감육아를 시작해보면 해답이 보일 겁니다.”

서천석은 정신과 전문의로 일하던 중 어른들이 앓는 마음의 병의 근원이 어린 시절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아이들의 마음을 돌보는 의사가 됐다. 서울신경정신과 원장이자 행복한아이연구소 소장인 서천석은 2010년 말부터 트위터(@suhcs)에 육아에 대한 짧은 단상을 올리기 시작했고, 많은 트위터리안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는 트위터의 글들과 새로 쓴 에세이를 묶은 책이다.




부모들의 착각, 가면부터 버려라

“그래도 상담을 받으러 오는 부모와 아이들은 행복한 거죠. 고치려는 의지가 있는 거니까요. 병원에 오는 부모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어요. 엄마가 보는 아이와 진짜 아이는 실제로 차이가 있다는 점이죠. 부모가 자기 마음속의 아이를 보고 자신이 기대하는 아이상에 빠져 있으면, 진짜 아이를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도 마찬가지에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부모한테 다가가지 않아요. 점점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거죠. 부모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다른 모습으로 아이에게 다가가니, 아이도 이해하기 어렵고요. 서로 가면을 쓰고 서로를 속이고 강요하며 사는 게 우리들의 모습이에요.”

부모가 자녀에게 갖고 있는 가장 큰 착각은 스스로가 아이에 대한 욕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1970년대에 성장한 지금의 부모들은 대학 졸업 후 취업이 지금처럼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들은 늘 자신이 성장한 때와 비교하며 ‘왜 이 정도도 못할까’라고 생각한다. 요즘 20대가 겪는 문제를 부모조차도 공감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과도하게 요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자녀들은 실제로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어요. 부모들은 말해요. 단지 바라는 건, 평범하게 자라서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교에 들어가서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하는 것, 그것뿐이라고. 그런데 요즘 세상에서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아이도 인정해주면 마음을 열어요

MBC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 가?>가 인기다. 부모들은 TV 속 아빠들을 보며 좋은 아빠의 모습이 무엇인지 탐색한다. 아이랑 어떻게 잘 놀아주나, 대화하는 기술들을 엿보며 배우고자 한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의 저자 서천석은 <아빠! 어디 가?>를 다른 시각으로 본다. 아빠들의 육아 방식을 기술이 아닌 ‘태도’로 본다.

“<아빠! 어디 가?>는 사람이 어떤 사람과 장시간을 보내게 됐을 때, 얼마나 상대를 신경 쓰게 되느냐를 보여줘서 좋아요. 원래 아이들한테 크게 관심이 없었던 아빠들이 아이들과 1박2일 여행을 떠나면서 점점 변하게 되잖아요. 그게 꼭 TV 프로그램이라서 만은 아닌 것 같아요. 누군가와 깊게 관계를 맺으면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내 의견을 물어봐 주는 아빠의 모습이 고마워서, 아이들은 아빠를 편하게 생각하고 또 아빠를 이해하려고 하죠. 7살 어린 아이들도 자신이 이해 받았다고 생각하면 부모를 이해할 줄 알아요. 부모가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부모를 배려하게 되는 거죠.”

아이를 잘 보살피기 위해서는 기술을 배우려 하기보다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면서 꾸준히 좋은 관계를 맺어가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사람이 관계를 맺을 때 시간이 필요하듯, 결국 육아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천석 저자는 다른 인간관계에서 좋은 관계를 맺어가려는 태도를 아이에게 보이면 된다고 말한다. 결국 내가 투자한 시간이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아이하고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아이가 부모를 기분 나쁘게 했을 때 부모가 거기에 마음이 상해서 반응하지 않는 거예요. 좋지 않은 행동을 보이면 천천히 바꿔주면 된다고 생각하면 돼요. 간혹 아이가 갑자기 안 좋은 말을 쓰면 부모들은 대부분 ‘얘가 어떻게 나한테 이런 말을? 얘가 어떻게 나한테 대들 수가 있지?’하며 화를 내요. 아이가 커서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닌지, 부모로서의 내 권위가 손상됐다며 과하게 걱정하고 흥분하고 불안해해요. 아이에게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면 효과가 없어요. 부모의 불안이 없다면 화를 참는 게 어려운 일만은 아니에요.”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기를 좋아하듯 아이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생각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부모가 아이를 인정해주면 아이는 긴장이 풀리면서 마음을 연다. 그리고 마음을 열면 부모의 마음을 받아주려고 한다. 아직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자신감이 없는 아이는 부모의 돌봄이 싫은 것이 아니다. 다만, 부모가 자신의 인생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자존감을 만들면 육아가 풀린다

“부모들이 가장 약해질 때가 아이가 반항할 때에요. 부모들은 이럴 때 너무 쉽게 흔들려요. 자존심이 상하는 거죠. 하지만 이건 자존감이 낮기 때문에 드는 감정이에요. 자존감이 강하면 과도하게 반응하거나 걱정하지 않아요. 자존감이 있으면 ‘난 이 문제를 잘 해결해나갈 자신감이 있다’고 생각하죠. 자녀들을 가장 잘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겠어요. 부모밖에 없어요. 부모 스스로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다’는 걸 믿어야 해요.”

자존감의 기초는 내가 괜찮은 사람이어야 높은 게 아니라, 내가 괜찮은 사람으로 향해 가는 모습이 있을 때 생긴다. 자존감이 강한 부모는 아이의 낯선 행동에도 당황하지 않고 시간을 두고 변화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와 자식은 인간관계 중에 가장 특별한 관계에요. 다른 사람들은 마음에 안 들면 관계를 끊을 수 있지만 부모와 자식은 아니잖아요. 다른 인간관계처럼 힘들다고 그만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는 데 집중하다 보면, 부모도 자신이 조금씩 성장하는 걸 느껴요. 힘들지 않으려면 성장할 수밖에 없는 거고요.”

워킹맘의 경우, 바쁜 일상 때문에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어 미안해하고 죄책감을 갖는다. 더욱 문제는 고민하고 걱정하는 시간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다. 걱정을 하는데 에너지를 많이 쓰다 보니, 정작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줄어든다.

“부모들이 객관적으로 힘든 순간들이 참 많아요. 애가 아프거나 부모가 컨디션이 안 좋을 때, 물리적인 답이 나오기 힘들죠. 하지만 일상의 전체를 보면 그런 순간들이 계속되진 않거든요. 한 달로 따져보면 5일 정도 되겠죠. 그렇다면 나머지 25일을 어떻게 보내느냐, 이게 중요해요. 죄책감을 갖고 부담을 느끼느라 에너지를 소모하면 부모도 아이와 놀아줄 힘이 없어요. 할 수 있는 만큼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보내는 게 현명하죠. 아이 때문에 괴롭다는 부모한테 ‘아이랑 요즘 무엇을 했냐’고 물으면, 다들 아이를 걱정하는 일에만 시간을 썼대요. 부담감, 걱정을 느낄 시간에 즉각적으로 아이랑 함께 무엇을 하는 게 중요해요. 그러다가 정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그 상황에 맞춰 대응하면 되는 거죠.”

간혹 아빠, 엄마의 교육관이 달라 아이들이 혼란스럽지 않을까, 고민을 하는 부모들이 있다. 서로의 의견이 타당하다며 극단적으로 싸움을 만드는 경우도 많다. 서천석 저자는 “최소한의 타협선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최소한의 일관성을 가지고 그 안에서 다양성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아빠와 엄마 스타일이 꼭 같아야만 하는 건 아니에요. 실제로도 불가능하고요. 부모의 의견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고 실제로도 정답은 없어요. 맞벌이 부모의 경우, 반드시 아빠, 엄마, 아이가 꼭 함께 뭔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버리시는 게 좋아요. 엄마가 바쁠 때는 아빠가 놀아주고, 아빠가 바쁠 때면 엄마가 놀아주면 돼요. 그게 꼭 나쁘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셋이 꼭 함께한다는 로망은 빨리 버리고, 상황에 맞게 조절하는 게 필요합니다.”


서천석 멘토가 제안하는 5가지 육아 상식

훈육은 일관되게

부모가 아이에게 어떤 행동을 싫어하는지를 확실히 인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매를 들거나 벌을 주는 게 아니라, 일관된 태도로 반응하는 것이 좋다. 아이도 좋은 사람이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에 부모가 싫어하는 행동을 굳이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다만 부모의 기준이 너무 엄격할 때면 스스로 점검해봐야 한다. 아이가 스마트폰에 집착하는 모습을 싫어하면서 부모가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는 건 옳지 않다. 부모가 하는 행위는 아이에게도 허용해주는 것이 옳다.

육아서는 1분 정독하고 5분 생각하기

육아를 책으로 공부하는 부모들이 있다. 육아서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 아이를 이해하고 부모와 아이와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지에 가장 집중해야 한다. 내 아이에 맞는 육아 방법은 부모가 가장 잘 안다. 아이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 게 좋다. 육아서를 1분 읽고 5분 정도 생각해보자. 육아서의 방침을 그대로 지키려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맞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아보는 게 중요하다.

부모부터 성숙하자

많은 아이들은 부모의 말이 아닌 태도와 행동, 자신에 대한 반응, 정서와 표정에서 영향을 받는다. 아무리 말로 그럴듯하게 훈계해도 정작 부모의 태도가 훈계의 내용과 다르면 아이는 내용이 아닌 태도만을 배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는다며 부모가 아이에게 짜증을 낼 경우, 아이가 배우는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아닌 짜증이다. 자기도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저절로 부모의 모습을 닮아 가는 것이 아이의 인격 형성 과정인데, 부모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는 일부러 부모의 반대편을 향해 눈길을 돌리고 몸을 움직인다. 반대로 아이가 부모를 좋아하는 경우, 특별히 부모가 노력하지 않더라도 아이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조금씩 배우고 바뀌어 간다.

사랑을 표현해라

예전의 부모들은 아이에게 감정을 표현하면 아이의 버릇이 나빠진다고 생각했지만 감정을 표현한다고 버릇이 나빠지는 건 아니다. 부모가 감정적이기에 버릇이 나빠지는 것이다. 원칙이 없고 감정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게 행동할 때 아이의 버릇은 나빠진다. 아이들은 모두 부모의 사랑을 잘 믿지 못한다. 아이들은 자기 존재의 가치를 믿을 만한 근거가 얼마 없기 때문에 많이 불안해하고 언젠가 부모가 자신에 대한 사랑을 그만둘까 싶어 두려워한다. 부모가 사랑을 표현하지 않으면 아이는 조르고 떼를 쓰고 엉뚱한 행동으로 부모를 지치게 한다. 동생과의 터울이 적어서 힘들어하는 아이, 타고난 약점 때문에 자신감이 없는 아이, 불안이 많은 아이라면 부모는 사랑의 표현을 더 늘려야 한다. 아이도 어른과 마찬가지로 사랑 받고 인정 받고 싶어하는 존재다.

부모와 아이의 경계를 인정하라

아이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들이 싸우고 있는 것은 자신의 두려움과 좌절감이다. 아이의 성공을 위해 노력한다고 하지만 그 뒤에는 자신의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을 모성애, 부모의 한없는 사랑으로 묘사하지만 그 깊은 내면에는 아이와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부모의 모습이 있다. 아이와 자신의 경계를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 부모가 아이에게 개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지나칠 경우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부모가 부모 자신을 알고 내가 바라는 것과 현실의 아이를 나눠서 볼 수 있어야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깊게 인색해야만 비로소 아이와 부모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얻게 된다.

"꾸준히 자기 관리하는 엄마로… 아이 '롤모델' 되세요"

조선일보 | 최민지 맛있는공부 기자 |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2013.05.26 16:28

'수퍼 워킹맘' 4인을 만나다
초·중학생 46.8% "일하는 엄마 좋아"
부족한 시간, 물질로 보상해선 안 돼
'6초 포옹하기'등 질적 양육 집중해야

신사임당(1504~1551)은 요샛말로 '수퍼 워킹맘'이었다.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유학자 이이(1536~1584)를 낳고 길렀을 뿐 아니라 그 자신도 시와 그림에 능한 예술가였기 때문. 맛있는공부는 기업 중역을 맡으며 자녀까지 잘 키워낸 '현대판 신사임당' 4인을 만났다. 이들은 지난 8일 서울특별시여성능력개발원이 발표한 '일하는 엄마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에 상당히 고무돼 있었다.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내 초·중학생 2012명 중 '일하는 엄마가 좋다'는 응답자는 46.8%(943명)였다.

원칙1|미안하면 끌려간다, 당당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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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부터)이미재 삼성전자 한국총괄 모바일영업팀 부장과 차재연 KT 자금담당·가치경영실 상무. /김승완 기자·백이현 객원기자
"친구들이 그러는데 엄마는 일 안 해도 되는 거래." 이미재(45) 삼성전자 한국총괄 모바일영업팀 부장은 10여년 전 당시 유치원생이던 딸이 한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는 올해 중 3 딸과 고 2 아들을 둔 워킹맘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아이는 '일하는 엄마'를 당연하게 여겼어요. 하지만 유치원에 들어간 후 엄마와 늘 붙어 다니는 또래를 접하며 직장 일이 엄마의 '의무'가 아니란 사실을 깨달은 거죠. 그간 섭섭했던 마음이 폭발한 거예요."

중 1 딸과 초등 6년생 아들을 둔 차재연(47) KT 자금담당·가치경영실 상무의 기상 시각은 오전 5시 30분이다. 6시면 아이들을 깨워 1시간가량 함께 영어 책을 읽거나 수학 문제를 푼다. 늘 최선을 다하는 그도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차 상무에 따르면 '시간 부족'을 '물질적 보상'으로 때우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대신 양육의 질(質)을 높여보세요. '아이와 포옹할 땐 반드시 6초 이상 투자하기' '틈날 때마다 자녀 교육서 정독하기' 같은 원칙을 정하는 것도 좋아요."

가족이나 사회에 당당히 지원을 요청하는 것도 중요하다. 차재연 상무는 "우리나라 여성이 결혼 후 직장 생활을 계속하려면 반드시 다른 여성의 희생이 따른다"고 말했다. "전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 도우미 아주머니 안 가리고 수시로 도움을 받았어요.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경제적 부담을 떠안기도 했죠. 하지만 그건 자신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투자예요. 자녀의 성장기와 자신의 커리어 계발 시기는 겹치게 마련이니까요."

원칙2|힘든 건 한때… 포기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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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LG CNS 전략 IT 사업팀 부장과 김미경 한국베링거인겔하임 BD부 전무.

이승희(48) LG CNS 전략IT사업팀 부장에겐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신입생 아들과 서울시립대 10학번 딸이 있다. 남매를 키우며 이씨는 두 차례 육아 휴직을 신청했다. "주변 워킹맘을 보면 아이 봐줄 사람이 마땅찮을 때나 자녀 생활에 문제가 있을 때 십중팔구 사표를 내더군요. 자녀가 상급 학교에 진학하는 시기도 마찬가지고요. 제 첫 번째 육아휴직 기간 역시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이었어요. 처음엔 사표를 냈는데 당시 상사가 만류하며 휴직을 권하셨죠. 돌이켜 생각하면 그때 일을 그만두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이미재 부장은 "육아 문제로 힘든 건 아이가 초등 저학년일 때까지"라고 말했다. "딸이 초등 4학년이 됐을 때 '엄마 일 관둘까?' 물어본 적이 있어요. 딸의 대답은 단호한 '노(No)'였죠. 실제로 그즈음부터 아이가 절 자랑스러워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김미경(52) 한국베링거인겔하임 사업개발부(BD) 전무는 각각 연세대 대학원과 서울시립대에 재학 중인 두 아들을 뒀다. 그에 따르면 워킹맘은 '자기 관리' 측면에서 자녀에게 더없는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오래전부터 오전 5시면 일어나 수영·테니스 등 새벽 운동을 꾸준히 해 왔어요. 종종 아이들도 대동했죠. 자녀에게 '자기 관리 잘해야 한다'고 잔소리하기 전 직접 롤모델이 돼주는 건 어떨까요?"

원칙3|학부모 인맥도 '노력하기 나름'

'학부모 모임'으로 대표되는 네트워크 문제에선 네 사람의 의견이 엇갈렸다. 이미재 부장과 차재연 상무는 직장 동료나 학교 동창에게서 자녀 교육 정보를 주로 취했다. 반면, 이승희 부장은 적극적으로 학부모 모임에 뛰어든 경우다. "아들이 중 3 때 전교 회장에 당선되며 울며 겨자 먹기로 학부모회장이 됐어요. '기왕 하는 것 열심히 하자'는 생각에 없는 시간도 쪼개어가며 이리저리 뛰었죠. 학부모 모임은 워킹맘도 퇴근 후 참석할 수 있도록 평일 오후 9시 이후 혹은 주말에 잡았고, 저와 비슷한 처지의 워킹맘에겐 수시로 연락해 '자주 못 올 것 같으면 (한 번 올 때) 밥이라도 사라'며 참여를 유도했습니다

부모의 잘못된 훈육이 욱하는 아이를 만든다

2013년 5월호
  • ㆍ화내는 아이에게 화내지 않는 육아 코칭법
불시에 욱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울며불며 바닥을 뒹구는 아이를 보고 있자면 엄마의 마음은 마치 전쟁터에 있는 것처럼 참혹해진다. 수없이 봤던 육아교육서도, 선배 맘들에게 들었던 조언도 소용없어지는 그때, 엄마들은 묻고 싶다. 화내는 우리 아이, 어떡해야 하나요?

아이의 화에 대처하는 다양한 모습
방긋방긋 웃을 때는 천사 같은 내 아이지만 화를 낼 때면 영화 속 ‘킹콩’이 따로 없다. 붉어진 얼굴로 씩씩거리거나 괜히 아무한테나 심통을 부리고 소리를 지르며 물건을 던진다. 심하면 분에 못 이겨 스스로를 때리기도 하고 부모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을 공격하기도 한다.

화내는 아이의 모습 못지않게 그에 반응하는 부모의 모습 역시 다양하다. 버릇이 나빠질까 봐 엄하게 훈육하거나, 아이에게 대화를 시도하기도 하고, 일단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무조건 맞춰주는 등 부모 성격과 육아 스타일에 따라 각각 다르다. 하지만 아무리 확고한 교육관이 있다 해도 부모는 부모이기 전에 감정에 휩쓸리는 사람이다. 어느 순간 버럭 화를 내거나 자신도 모르게 매를 들어 아이의 분노 표출을 억지로 중단시켜버린다. 그렇게 상황이 종료되면 부모는 안도감이나 만족감보단 죄책감을 느낀다. 구석에서 기죽어 있는 아이를 보며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고 자신의 교육관을 점검한다. 이 과정이 몇 번 반복되다 보면 부모는 아이가 화를 내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무엇이 문제인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지금 부모들은 구세대의 교육관과 새로운 세대의 교육관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세대다. 권위적인 부모의 엄격한 규율 속에서 자랐으나 자신은 권위적이지 않으며 사랑의 매보단 대화로 갈등을 풀어나가는 민주적인 육아를 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적절한 역할 모델이 없어 우왕좌왕하게 되며 스스로도 큰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한 기사에서는 우리 사회를 ‘불만이 제대로 표출되지 못한 억압적인 사회’라고 정의하며 최근 증가하고 있는 아동·청소년 범죄를 근거로 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분노 표출을 억압당하며 살아온 아이들은 언젠가 그 쌓아둔 분노를 한꺼번에 터트린다고 한다. 흔하게는 사춘기 시절 반항으로 나타나지만 심각하게는 범죄를 저지르는 등 억압된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터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화내는 아이를 제대로 다루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면서 그에 대해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큰 의문을 던져준다.

너는 누굴 닮아서 자주 화를 내니?
자주 화를 내는 아이에게는 선천적인 원인과 후천적인 원인이 있다. 선천적인 원인으로는 이른바 까다로운 성격을 들 수 있다. 주로 자기 조절 능력이 부족하거나 충동적인 면이 많다. 과잉 행동을 보이거나 반대로 움직임이 거의 없기도 하고 늘 경직돼 적응력이 많이 부족하다. 또 보통의 또래에 비해 부정적인 감정을 심각하게 느끼며 단호한 성격이 특징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욱하는 부모 밑에서 욱하는 아이가 자랄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까다롭고 욱하는 성격을 유전적으로 물려받기 때문이다. 결국 까다로운 성격으로 태어나 어른이 되면 욱하는 부모가 돼 욱하는 아이를 낳는 것이다. 또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랄 경우 감정 조절의 건강한 모델을 찾지 못하고 그대로 부모 성격을 답습하게 된다. 유전과 학습에 의해 ‘화’는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되는 셈이다.

후천적인 원인으로는 잘못된 육아법과 감정 소통의 부재를 들 수 있다. 감정 표현을 막는 집안 분위기나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랄 경우 아이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무의식에 쌓아둔다. 아이는 실수하지 않기 위해 매사 조심하고 부모의 눈치를 살피며 점차 까다로운 성격으로 변하게 된다. 만약 신체적인 체벌까지 있다면 아이의 마음 깊은 곳에서 부모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자라게 된다. 또 다른 경우는 아이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다가오는 아이를 거부하는 부모의 태도에 원인이 있다. 만약 부모와 아이가 오랫동안 감정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아이는 부모에 대한 신뢰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결국 ‘아무리 말해도 우리 엄마는 내 마음을 몰라’라는 심리 상태가 형성돼 작은 일에도 좌절감을 느끼고 해소되지 못한 분노가 남게 된다.

후천적인 원인이 강한 경우 부모가 바뀌면 아이도 바뀐다. 무관심한 부모는 기본적인 모성애와 부성애를 점검하고, 부모 역할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부모가 아이를 혼내기 전 두 사람 사이에는 한 가지 기본 전제가 있어야 한다. 아이가 ‘엄마는 나를 사랑한다’라는 애정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믿음이 존재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엄격한 부모는 혼내는 데만 집중하기 쉽다. 혹시 아이와의 감정 소통을 일방적으로 차단하고 힘과 권위로 누르고 있지는 않은지, 아이의 마음속에 화가 내재돼 있지는 않은지 반드시 확인해봐야 한다.

온도조절계 vs 온도계, 당신은 어느 쪽?
‘온도조절계’와 ‘온도계’는 미국의 한 아동심리 전문가가 아이의 화에 대처하는 부모를 두 유형으로 나누며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다. 길거리를 가다 보면 울고불고 짜증내는 아이와 옆에서 같이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부모를 보게 된다. 아이의 화를 조절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부모의 감정 온도까지 올라가 결국 부모의 분노가 폭발하는 온도계 유형이다. 반면 화내는 아이를 유연하게 달래주는 부모도 있다. 왜 화가 났는지 들어주고, 공감하며 아이가 스스로 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부모가 온도조절계 유형이다.

종종 아이들의 화는 저절로 풀린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감정 조절이 성숙한 어른도 화를 냈다가 갑자기 기분이 좋아질 수 없다. 하물며 어른보다 감정 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가 어떻게 갑자기 화를 풀 수 있겠는가. 화는 저절로 풀리는 게 아니라 아이의 정서 IQ에 따라 스스로 견디고 해소하는 것이다. 만 3세 이전에 부모가 아이의 감정에 충분히 공감해주고 위로를 했다면 3세 이후부터 아이 스스로 조금씩 화를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엄마가 내 마음을 알아줄 거야’라는 강한 신뢰감이 있다면 그 아이는 더 빨리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게 된다. 또 감정 해소 속도도 다른 아이에 비해 빨라 금세 화를 가라앉힌다. 결국 부모가 어떻게 해주냐에 따라 분노 폭발의 단계로 가는지, 분노 해소의 단계로 가는지 결정된다.

아이와의 공감과 신뢰는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신생아 때부터 사소한 것 하나도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며 이야기를 나눈 부모만 가능하다. 예를 들어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기저귀 갈아주니까 좋지? 시원하지?” 혹은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면서 “우유 먹으니깐 기분이 좋지?” 등 아이의 감정을 부모가 직접 말로 표현해주는 것이다. 언어가 의사소통에 가장 큰 역할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표정, 목소리 톤 등으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과 ‘보디랭귀지’로 대화가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아직 말 못하는 갓난아이의 보디랭귀지를 엄마가 읽어주고, 다시 그런 엄마의 보디랭귀지를 아이가 알아가며 서로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공감을 잘하는 부모 역시 어릴 적 그의 부모로부터 충분한 공감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만약 그렇지 못했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 적절한 트레이닝으로 공감하는 법을 충분히 배울 수 있다. 그 첫 시작은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왜 그러는지 끊임없이 관찰하는 것이다. 표정, 눈빛, 얼굴색 등 비언어적인 신호에 집중하며 아이의 감정 변화를 살펴봐야 한다. 그러고 나서 아이가 보내는 신호에 맞춰 그에 맞는 반응을 보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제대로 화내는 법
살다 보면 기쁨, 즐거움 등 긍정적인 감정도 필요하지만 화, 슬픔 등 부정적인 감정도 필요하다. 실컷 울고 나면 기분이 한층 나아지고 속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것도 같은 이치다.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화를 전혀 내지 않는 것보단 적절히 화를 표출하는 것이 심리적인 건강에 좋다. 단 부모의 적절한 훈육이 이루어져야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아이가 건강하게 화를 표출하기 위해선 부모의 3단계 감정 조절 코칭이 필요하다. 1단계에서는 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공감해줘야 한다. 만약 아이가 왜 화를 내는지 모른다면 아는 척을 하는 것보단 솔직하게 물어보는 게 공감을 나누는 데 큰 도움이 된다. 2단계는 아이가 화를 가라앉힐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다. 아이와 부모의 감정 해결 속도는 다르다. 부모가 보기에 이만하면 아이의 화가 가라앉았을 것 같다고 느껴져도 아이 입장에선 아직 때가 아닐 수도 있다. 만약 여전히 아이가 화난 상태라면 더 이상 개입을 중단하고 한 발짝 물러서서 아이를 관찰하는 게 낫다. 대신 아이의 감정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면서 아이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 3단계는 화가 날 때 아이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는 대안을 찾아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형을 갖고 놀 때, 간식을 먹을 때 등 아이 스스로 기분을 풀기 위해 하는 행동을 엄마가 다시 한번 되짚어주는 것이다. “아, 인형을 갖고 노니깐 기분이 좋아졌구나”라고 말해주면 아이는 인형 놀이가 화를 풀어주는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 부모는 “기분이 안 좋으면 인형 놀이를 해볼까?”라며 유도할 수 있게 된다. 부모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지 본능적으로 아이는 극심한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행동을 한다. 따라서 우리 아이의 대안은 무엇인지 미리 알아두고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 가지 더 기억할 점은 아이의 감정에 따라 적절한 코칭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아이는 2단계를 건너뛸 수도 있고, 또 다른 아이는 1단계에 유난히 길게 머물 수도 있다. 아이의 성격,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매뉴얼대로 아이를 이끌려고 하지 말고, 아이의 감정 상태에 따라 코칭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아동심리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몇몇 어른들은 ‘어린 게 뭘 알겠어’라며 아이들의 감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아이가 화를 낼 땐 분명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다. 따라서 어른의 시선으로 아이의 감정을 바라보지 말고 아이와 같은 눈높이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화내는 아이를 이해하는 첫 단추는 공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화’와 착각하기 쉬운 반항성 아동의 행동들
1
어른의 요구나 규칙을 무시하거나 자주 따르지 않는다.
2 “난 안 해”, “싫어” 등의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3 일부러 다른 사람을 귀찮게 한다.
4 자신의 실수를 남의 탓으로 돌린다.
5 다른 사람 때문에 쉽게 기분이 상하거나 짜증을 부린다.
6 부모가 엄하게 화내야만 수그러든다.
7 성미가 급하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발버둥치거나 화내며 운다.
8 학교의 규칙이나 선생님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는다.
9 다른 사람을 쉽게 미워하고 분노에 차 있다.
10 부모나 형제들과 자주 말씨름을 한다.
11 고집이 세고 시무룩해지거나 성질을 부린다.

엄마들의 육아 SOS!
사례별로 알아보는 화내는 아이의 숨은 마음 읽기


사례 1 기분이 좋아 흥분한 딸아이가 동요를 엉터리로 불렀어요. 제가 틀린 부분을 지적하며 가르쳐주었더니 아이는 자기가 맞다고 우기다가 화를 못 참고 저를 발로 뻥 찼어요. 순간 놀랐어요.

숨은 마음
아이가 뭔가 신나는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는 들뜨고 흥분한 마음에 동요 가사를 일부러 엉터리로 부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엄마의 판단 실수다. 굳이 아이와 실랑이를 하지 않아도 될 상황을 엄마가 만들어 아이의 화만 돋운 셈이다. 아이에게 공감하는 것은 엄마가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가능하다. 이럴 때는 그냥 “우리 ○○가 참 기분이 좋구나”라고 현재 기분을 공감해주며 아이가 즐겁게 놀도록 놔두는 게 좋다.

사례 2 지난 설날, 누나보다 세뱃돈을 적게 받았다며 일곱 살 아들이 할아버지께 대들며 씩씩거리는 거예요. 더 크면 더 주겠다고 아이를 달래던 할아버지가 그 자리에서 일어나시자 아이는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는지 할아버지를 쫓아다니며 종아리에 멍이 들 정도로 발길질을 하고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아이에게 왜 그러느냐고 나무랐더니 “화가 나는데 어쩌란 말이야!”라며 되레 소리를 지르더군요. 어떡하면 좋을까요?

숨은 마음
아이가 세뱃돈에 대한 기대치가 있었던 것 같은데 누나보다 적게 받으니 자기 생각엔 공평하지 못하다고 느낀 것 같다. 이럴 땐 부모가 속상한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주며 “더 크면 더 줄게”가 아니라 “언제 얼마를 더 줄게”라고 정확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날만 이렇게 화를 낸 것인지, 아님 평소에도 화를 잘 냈는지 아이의 감정 조절 능력을 점검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이가 할아버지를 만만하게 보는지, 싫어하는지 평소 할아버지에 대한 아이의 태도도 점검해봐야 할 사항이다.

사례 3 유치원에서는 둘도 없이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입니다. 문제는 집에 있을 때 게임을 그만하라고 하거나 밥을 먹으라고 하면 아이가 돌변합니다. 물건을 던지고, 종이를 찢어버리거나 지칠 때까지 소리를 지릅니다. 유독 지난 겨울방학 때 더 심해진 느낌이에요. 유치원 선생님과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우리 아이의 이런 모습, 왜 그러는 걸까요?

숨은 마음
간혹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면 밖에서 내내 극도로 긴장된 상태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된다. 아이는 그런 감정을 집에 오는 순간 표출하는데, 대부분 엄마를 향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아이의 적응을 돕고 적절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찾아주는 게 좋다. 그것이 아니라면 엄마와 아이의 신뢰감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아이가 엄마를 약한 사람으로 만만하게 생각하는지, 자신의 마음도 몰라줘서 엄마를 불신하고 있는지 아이의 정확한 마음을 알아야 한다.

사례 4 저희 아들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활화산 같아요. 잘 놀다가도 사과가 자신을 때렸다고 하거나 장난감이 자신을 괴롭혔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화를 내요. 한번 화가 났다 하면 아이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로 심각합니다. 주변 사람들을 때리는 것은 물론이고 심하면 스스로를 때리거나 머리를 일부러 부딪칩니다.

숨은 마음
바로 전 상황을 파악하는 게 중요한데 엄마는 현재에만 집중을 하고 있다. 사과가 자신을 때렸다고 말하는 것은 좌절감을 감추기 위한 핑계일 가능성이 높다. 앞선 상황에서 아이는 좌절감을 느꼈고, 사과를 화풀이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이럴 경우 직접적으로 아이의 좌절감을 언급하기보다는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게 좋다. 부모의 적절한 개입과 공감만 있다면 금세 행동을 교정하고 심리적인 만족감을 높이는 등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사례 5 남편은 한번 화를 내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심하게 내는 성격입니다. 아이들 앞에서도 종종 화를 심하게 내는데요. 문제는 올해 다섯 살이 된 둘째 아이가 남편 성격을 그대로 빼다박았다는 점입니다. 심하게 화를 내는 성격까지도요. 또래 아이들과 잘 놀다가도 화를 내고 어떨 때는 아이가 왜 화를 내는지 모를 정도로 갑자기 화를 냅니다. 성격은 유전이라는 말이 있던데 저는 아이의 성격을 바꿔주고 싶어요.

숨은 마음
아이는 어른의 행동을 보고 배운다. 먼저 남편이 욱하는 성격을 고치도록 해 아이에게 새로운 부모상을 확립해줘야 한다. 아이에게는 두 가지를 알려줘야 한다. 첫 번째,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표현방식은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줘야 한다. 두 번째, 일단 화내고 보자는 식의 고정된 감정 습관 대신 다양한 감정 표현을 알려주는 게 좋다. 그리고 화가 아닌 다른 감정을 아이가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해 감정 표현의 스펙트럼을 넓혀주어야 한다.

사례 6 남편과 저는 엄격한 부모입니다. 아이가 말을 잘 듣고 착한 편이지만 때때로 짜증을 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남편이 엄하게 혼냅니다. 이제는 아이가 예의바르고 어른들 말도 잘 듣는데요. 언제부터인가 화가 날 때면 입을 꾹 닫아버리더라고요. 스스로 화를 참고 조절하는 건지, 부모 눈치를 살피느라 억지로 참는 건지 헷갈려요.

숨은 마음
몇몇 필요한 때를 제외하곤 엄격한 양육법은 아이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모가 공경의 대상이 되는 것과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다르다. 지금 같은 경우는 아이가 무서운 나머지 분노를 참아버리는 것이다. 만약 오랫동안 분노를 참게 되면 어느 순간 폭발하게 되는데 빠르게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늦게는 성인이 돼서 표출하게 된다. 늦게 표출될수록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다. 지금부터라도 엄격한 훈육이 아닌 다른 훈육법으로 개선해야 한다.

사례 7 제 딸은 화가 나면 일단 울고 봅니다. 유치원도 싫다, 밥도 싫다, 잠도 싫다 등 뭔가 마음에 안 들면 울음부터 터뜨리는데요. 한번 울기 시작하면 탈진할 정도로 우니 결국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줍니다. 몇 번 독한 맘을 먹고 우는 아이를 모른 척했는데 아이가 지지 않고 계속 울더라고요. 가끔은 아이가 모든 감정 소통을 울음으로 표현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숨은 마음
아이와 엄마 간의 공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느낌이다. 우는 아이를 모르는 척하는 게 최선은 아니다. 내 속으로 낳았지만 아이도 결국 내가 아닌 타인이다. 따라서 엄마 기준이 아니라 아이에게 시선을 맞춰 왜 유치원이 싫은지, 왜 밥 먹기 싫은지 이유를 묻고 공감해줘야 한다. 또 엄마가 다른 감정에 비해 아이의 울음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해서 아이가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울음을 방법으로 선택한 건 아닌가 싶다. 아이에게 우는 것으론 감정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시키고 울음이 아닌 다른 감정으로 표현하도록 유도한다.

사례 8 여섯 살 된 아들의 승부욕이 무척 강합니다. 문제는 지거나 이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화를 내면서 운다는 겁니다. 가끔 저와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지면 심하게 화내는 아이를 보면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남자아이가 승부욕이 있는 것은 좋은 것이니 그대로 두라고 하세요. 정말 놔둬도 될까요?

숨은 마음
부모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승부욕이다. 사실 승부욕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드러난다. 진짜 승부욕이 강한 아이들은 실패를 경험하고 좌절을 견디면서 스스로 정한 목표에 도달하며 자존감을 키워나간다. 반면 위 사례와 같이 결과에 집착하는 아이들은 사실 좌절에 대한 인내력이 약하다. 이럴 때 부모는 아이의 속상한 마음에 충분히 공감해준 뒤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좋다.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을 견뎌야 좌절에 대한 인내력과 자존감이 높아진다.

Mini Interview
원광아동청소년상담센터 유재령 소장
화내는 아이의 이상적인 모습이 있다면 말해달라. 만 3세에서 6세는 자기 조절 능력이 자리 잡는 시기다. 부모의 따뜻한 훈육 속에서 자란 아이는 막무가내로 떼를 쓰거나 화를 내는 횟수가 적다. 만약 화를 내게 되더라도 걷잡을 수 없이 심한 분노를 표출하기보단 스스로 조절하는 모습을 보인다.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정확히 알며 부모가 아이의 감정에 공감해주고 위로를 하면 화가 많이 풀린다. 또 부모로부터 충분히 애정을 받았기 때문에 자아 존중감도 높다.

반대로 올바르지 못하게 화를 내는 아이의 모습은 어떤 건가? 지금 당장 원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심한 좌절감을 느끼거나 조용하던 아이가 갑자기 분노를 폭발하듯 표출하는 경우다. 부모가 지나치게 권위적이거나 엄격한 경우, 혹은 과잉보호를 하는 등 대부분 잘못된 훈육에 의해 나타난다. 이런 아이들은 내면에 억울함과 해소되지 않는 분노가 있어 감정 조절 능력을 키워나가기 힘들다. 또 내면의 규범화가 이루어지지 못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히려 유아기 때보다 더 심하게 떼를 쓰거나 화를 내는 횟수도 늘어난다.

엄한 훈육이 필요한 때가 있다면 언제인지 궁금하다. 아이들이 화를 못 이기다 보면 폭력성을 드러낼 때가 있다. 자기 몸을 벽에 부딪치거나, 스스로 때리는 자해 행위와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 특히 부모를 때린다면 반드시 엄한 훈육이 필요하다. 지나치게 권위적인 부모도 문제지만 아예 권위가 없어서도 안 된다. 아이에게 권위를 잃게 되면 그때부터 어떤 훈육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가 일관된 태도로 아이를 훈육하되 일반 상식을 넘어서는 행동을 하면 반드시 바로잡아줘야 한다.

아이의 화가 증상으로 나타나는 병이 있다면? 대표적으로 반항성 장애를 꼽을 수 있다. 보통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많이 나타난다고 알려졌지만 6, 7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반항성 장애는 단순 감정 표출과는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선생님께서 반 아이들에게 이제 그만 놀고 장난감을 정리하자고 했다고 치자. 그러면 더 놀고 싶어서 짜증내거나 심통 부리는 아이가 있을 수 있지만 반항성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는 더 격렬하게 반응한다. 실제로 여섯 살짜리 아이가 자신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유리창을 깨버린 적이 있다. 이런 반항성 장애를 앓고 있다면 전문가를 찾아 상담을 받아봐야 한다.

아이가 아무 이유 없이 화를 내면 경우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인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앓게 되면 주의력이 떨어지고 충동적인 행동이 특징이다. 그래서 감정보다는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검사와 치료를 진행한다. 하지만 부수적인 증상으로 감정 조절이 안 돼 화를 심하게 내는 모습도 나타날 수 있다. 만약 아이가 아무 이유 없이 화를 내거나 감정 조절을 잘 못한다면 전문의를 찾아 정확한 검사를 받아야 한다. 아동기 우울증 역시 아무 이유 없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보인다. 만약 전문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인터넷에 올라온 증상만을 보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아동기 우울증이라 자가 진단을 내려버리면 진짜 병을 찾는 데 큰 혼란을 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이의 화에 대해 바로잡고 싶은 편견이 있다면 말해달라. ‘아이의 화는 저절로 풀린다’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3~6세에 부모로부터 적절한 훈육을 받고 자란 아이라면 감정 조절 능력으로 화를 가라앉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아이가 화를 가라앉힐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아직 감정 조절 능력이 부족한 아이를 그렇게 방치해두면 오히려 마음속에 분노와 반항심이 커질 수 있다. 어른들도 화가 저절로 풀리는 경우가 거의 없듯 아이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