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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사정관제 `맞춤형 사교육' 성행

  • 연합뉴스

입력 : 2009.08.02 11:49

모의면접ㆍ토론, 전문가 상담에 월 150만원
진학전담지도교사제 등 일선고교 대책 시급

“내신성적 최하위권인 고3생이었는데 각종 경시대회에 참가하고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하도록 했다. 면접 준비를 위해 현직 CEO와 매달 만나도록 주선했다.”

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S유학원 김모 원장이 밝힌 입학사정관 전형 컨설팅 사례다.

이 학원 같은 ‘입시 컨설팅’ 업체들은 한 달에 150만원 정도를 받고 각종 경시대회 정보를 제공하거나 모의 면접을 하는 등 학생이 지망하는 대학의 입학사정관 전형에 대비한 ‘맞춤형 서비스’를 한다.

김씨는 “요즘은 하루 10명가량의 학부모가 상담하러 찾아온다.”며 “지난 5년간 특례입학 전형 및 해외유학 컨설팅을 통해 수많은 경험을 축적해 왔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중심의 기존 학원과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일선 고교는 절대 우리를 따라올 수 없다”고 단언했다.

입학사정관제가 대폭 확대됨에 따라 이와 같은 맞춤형 사교육을 제공하는 업체들이 학원가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대우증권 교육업체 담당 유정현 애널리스트는 “수능 강의 등 ‘일대 다’의 서비스에 익숙한 기존 학원들이 입학사정관 전형에 맞는 ‘일대 일’의 서비스로 전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특례입학이나 해외유학을 담당하던 업체들이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존 입시제도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한 특정 전형요소의 비중을 축소해도 그에 따른 시장이 줄어들지 않는 것이 사교육 시장의 특징이다. 수능시험이 없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입학사정관제가 확대되므로 학부모들은 이중의 부담을 지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새 입시 트렌드에 맞춰 또 하나의 사교육 시장이 형성됨으로써 사교육을 줄인다는 목적으로 도입된 입학사정관제가 되레 학부모들의 짐을 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고생 자녀를 둔 이모(51.서울 송파구)씨도 “학생들이 수능에 대비하는 것은 물론 ‘경력’도 관리해야 하는 상황 아니냐”며 “학교가 입학사정관제에 맞는 진학 지도를 해주지 못한다면 학부모는 학원에 의존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일선 고교의 입학사정관제 준비는 아직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장기간에 걸쳐 학생의 적성을 파악하고 잠재력을 평가해야 하는데 이를 담당할 교사가 없고 제도에 대한 교사들의 이해도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입학사정관 전형을 준비하려 K어학원에 다니는 이모(19.서울 강남구)양은 “어학원에서 매일 논술을 첨삭지도해주고 모의 면접ㆍ토론 등을 실시해 장단점을 분석해 준다. 학교는 이런 부분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이용해 학교를 상대로 돈벌이에 나서는 업체도 나오고 있다.

S유학원 김 원장은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우리의 풍부한 진학지도 경험을 전수하는 ‘스쿨 컨설팅’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내 H고와 K고가 관심을 보였으나 연간 2억원이라는 금액이 부담됐는지 불발됐다”고 말했다.

교육계 관계자들은 입학사정관제가 올바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수업을 맡지 않고 대입 관련 업무만 전담하는 진학지도교사제를 도입하는 등 고교 시스템에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교육업체 이투스 입시정보실장 유성룡 씨는 “대학별로 천차만별인 입학사정관 전형에 대해 정통한 전문 교사가 없다면 학부모들은 입시 기관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울 C고 구모 교사는 “입학사정관 전형에는 추천서, 포트폴리오 등 많은 서류가 필요한데 이를 담임교사 혼자 준비하기는 불가능하고 학생을 맡은 지 몇 달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생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도 어렵다. 고교 3년 동안 학생을 꾸준히 지켜보며 입시 전략을 세워 줄 진학전담 지도교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입학사정관제 부작용 최소화할 방법 찾아야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는 상당수 대학들이 고교에 지나친 스쿨 프로파일(학교 소개자료)을 요구해 자칫 고교서열화로 악용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입학사정관제 도입은 성적 위주의 획일적인 평가에서 벗어나 다양한 평가요소를 가지고 뛰어난 잠재 능력을 가진 학생을 발굴할 수 있는 전형 방법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대학들이 고교에 일정 부문 입학사정관 제도에 의해 지원하려는 수험생들의 신상과 봉사활동이나 수상 분야 등은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정보공시제가 시행되고 있는 만큼 그 자료로 파악이 됨에도 일부 대학측에서 의대, 치대, 한의대, 약학대, 수도권 대학, 지방국립대, 경찰대, 사관학교 등 세분화된 자료까지 요구하는 것은 자칫 정부가 금지하고 있는 고교등급제를 적용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을 살 수 있다. 입학사정관제 도입 취지가 수험생들의 성적보다는 그들이 지닌 자질과 특성 그리고 앞으로의 가능성과 잠재성 등에 비중을 두어야 함에도 결국 고교의 실체가 완전히 드러나는 스쿨 프로파일에 집착한다는 것은 자기들만 성적우수자를 뽑겠다는 것이 아닌가.

성적 지상주의 풍토를 개선하고 공교육을 되살리려는 의도가 자칫 대학이 입맛에 맞는 학생을 뽑기 위한 도구로 전략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스쿨 프로파일에 대학별 진학률, 교내 시상인원, 자율학습 참여비율 등까지 제출해 달라는 것은 이 제도의 순수 취지에 따른다기보다는 정부의 도입대학에 대한 지원금에 눈이 어두워 그런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따라서 교육 당국에서는 과도하고 세밀한 고교의 소개자료를 요구하거나 특히 성적 위주에 집착하는 대학에 대해서는 시정명령을 내리거나 사정관제 도입을 반려하는 등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우정렬 · 부산 중구]]


기사 게재 일자 2009-07-29
포스텍 신입생 전원 입학사정관제로 뽑아
KAIST도 20% 선발
김병채기자 haasskim@munhwa.com
이명박 대통령은 27일 라디오 대담에서 대입 전형의 ‘전범’으로 밝힌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포스텍(포항공대)식 입학사정관제는 어떻게 어떤 규모로 이뤄질까.

과학 이공계의 명문으로 꼽히는 두 대학은 2010학년도 입시부터 입학 정원의 전체 혹은 일정 비율을 100% 입학사정관을 통해 학생을 선발한다. 이 대통령은 이 두 곳의 앞서가는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다른 대학에 입학사정관 전형의 양적 확대뿐 아니라 질적 전환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포스텍은 2010학년도에 입학 정원 300명 전원을 입학사정관 전형을 통해 뽑겠다고 밝혔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최저 등급 기준도 없앴다. 포스텍은 잠재력이 있는 농어촌 지역 학생을 미리 발굴, 양성하기 위해 올 여름방학부터 도시 저소득층 및 농어촌 지역 고교 2학년생을 대상으로 한 ‘잠재력 개발과정’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키로 했다. 백성기 포스텍 총장은 이같은 조치에 대해 “미래 성장 가능성에 중점을 둔 학생 선발을 위해”라고 말했다.

KAIST는 내년부터 입학 정원의 20%인 150명을 일반고 출신 학생 중 무시험 전형으로 뽑겠다는 계획이다. 신입생 중 90% 정도가 과학고 등 특목고 출신인 KAIST가 일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별도 정원을 배정하고 학교장 추천과 면접으로만 학생을 선발한다는 것은 교육계에서는 큰 실험으로 인식하고 있다. 서남표 KAIST 총장은 당시 “사교육을 잘 받은 학생, 경시대회 성적이 좋은 학생보다 창의성과 잠재력이 있는 학생을 발굴해 20년 후 국가를 이끌 인재로 키우는 것이 KAIST의 임무”라고 밝혔다.

김병채기자 haasskim@munhwa.com
초·중학생도 ‘스펙 쌓기’ 열풍
“입학사정관제 준비, 고등학생 되면 늦다”
강버들기자 oiseau@munhwa.com
학사정관제 확대 움직임이 일면서 학생들 사이에 경력 및 이력을 관리하는 ‘스펙’ 열풍이 불고 있다. 대학 입시 관련 인터넷 카페는 스펙을 공개하고 평가하는 학생들의 글로 떠들썩할 뿐 아니라 전문적으로 스펙 컨설팅을 해 주는 업체도 늘고 있다. 심지어 대입을 코앞에 둔 고등학생은 스펙 쌓기가 쉽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스펙 열풍은 중학생과 초등학생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지난 2일 한 인터넷 카페에 “봉사활동 120시간, 반장 2번·부반장 1번, 토론동아리 활동, 전국고교생토론대회 시 예선대회 은상, 양성평등글짓기상 등 교내에서 받은 상 다수. A대학 신문방송학과에 입학사정관 전형 가능하겠느냐”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는 ‘내가 만약 입학사정관이라면 뽑겠음’ ‘신방과 관련한 스펙은 거의 없네요. 성적은 좋지만 전공 관련성이 그다지…’라는 댓글이 달렸다. 이 카페에는 스펙 평가를 부탁하는 글이 하루 10여건 정도 올라온다.

스펙을 평가받고자 하는 학생들이 늘어나자 스펙 전문 컨설팅 업체도 생겨났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K시험정보원’을 운영하는 한 원장은 “자신의 스펙으로 어느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지 묻는 상담 전화가 하루 20~30통 정도 온다”며 “학생들의 스펙을 들으면 지망 대학에 합격할 수 있는지 없는지 답이 나온다”고 말했다.

‘입학사정관제의 안내자’를 자처하는 ‘G컨설팅’ 관계자는 “취업준비생들이 취업에 유리한 스펙을 만드는 것처럼 학생들이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며 “빠르게 진화하는 학원가에 스펙 컨설팅 업체가 많이 생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컨설팅 업체는 ‘스펙을 평가하고 조언할 뿐’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봉사활동을 주선하거나 각종 경시대회 준비를 돕는 등 아예 스펙 형성을 돕는 업체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펙 열풍이 초등학생에게까지 번지는 와중에 한 스피치센터 관계자는 “큰아이를 진학시켜 본 학부모들이 입시에서 이런 부분이 중요하다고 느끼면서 초등학생, 중학생 아이를 보내기 위해 상담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장선거반’ ‘회장선거반’을 운영하는 한 웅변학원 원장도 “임원 경력이 진학에 플러스 요인이 된다는 생각이 일반화되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임원 선거 경쟁률이 보통 6~7대 1까지 높아졌다”고 전했다.

강버들기자 oiseau@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9-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