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누가 가장 나이를 많이 먹었을까요? '삼인문년도(三人問年圖)'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


삼인문년도, 장승업, 19세기, 비단에 채색, 152 cm × 69 cm,
간송미술관 소장

삼인문년(三人問年)이란, 세 사람이 나이를 묻는다는 뜻입니다. 그림 가운데 세 사람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서 있고, 한 사람은 앉아 있는데, 글쎄 누가 나이를 더 먹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모두 대머리에 하얀 수염을 달고 있으니 말입니다. 누가 가장 나이를 많이 먹었을까요?
겉으로 보아서는 알 수 없으니 직접 들어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허허, 그렇담 내가 먼저 말하지!”

소나무 곁의 바위에 앉아 있던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내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도 못해.”

대뜸 쏟아 놓은 이 말에 나머지 두 노인은 미소만 지었습니다. ‘이런, 자기 나이를 모르다니, 바보가 따로 없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이야, 내 나이를 모르긴 하지만,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어.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반고(盤古)와 친하게 지냈단 말씀이야!”

노인은 심각한 표정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두 노인은 눈을 크게 떴습니다. 반고라면, 천지를 창조한 신(神)입니다.
이 세계가 알 속과 같이 캄캄한 어둠이었을 때, 반고는 무려 1만 8000 년이나 되는 긴 잠을 깨고 일어나 도끼로 혼돈을 내리쳤습니다.
가벼운 기운은 위로 가서 하늘이 되고,
무거운 기운은 아래로 가라앉아 땅이 되었습니다. 반고가 죽자 머리는 산이 되고, 두 눈은 해와 달이 되었습니다. 몸 속의 기름은 강과 바다가 되고, 머리털은 풀과 나무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은 반고로부터 비로소 온전해진 것입니다.


“하하, 반고(盤古) 친구! 이보게나.
그 정도 가지고 무슨 나이 자랑이야!”

곁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노인이 가소롭다는 듯이 말을 이었습니다.


“자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 들어 봤나?”

반고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했으니, 세상이 참 몰라보게 달라졌다 이 말이지.”

노인이 이렇게 말하며 가리킨 곳에는 정말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푸른 바다가 보였습니다.
그곳이 예전에 뽕나무 밭이었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 뽕나무 밭이 바다로 변하고, 또 바다가 뽕나무 밭으로 변할 때마다 산 가지 하나씩을 올려놓았지.
그 동안 내가 쌓아 놓은 산 가지가 열 칸 집을 가득 채웠다네.”

반고 친구는 기가 죽었습니다. 깎아지른 낭떠러지 아래 지은 집들 속에 사람은 없고,
방마다 나뭇가지로 가득 찬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습니다.

묵묵히 뒤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노인이 여유 있게 말했습니다.

“자네들 이야기는 내 모두 잘 들었네. 그렇다면 저 복숭아를 보게.”

노인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탐스러운 복숭아가 몇 개 열려 있었습니다.

“저 복숭아로 말할 것 같으면, 3000 년 만에 한 번 열매를 맺지. 자네들이 운이 좋아 마침 저 열매를 볼 수 있다네.
그 동안 나는 곤륜산에서 복숭아를 먹고 씨앗을 산 아래로 뱉곤 했지. 그런데 내가 뱉은 씨앗 무덤이 곤륜산만큼
높아져 복숭아 씨앗산이 되었지 뭔가.”

곤륜산이라면 신선들이 사는 전설 속의 산입니다.
이곳에는 마시면 영원히 죽지 않는 샘물이 흐르고, 선녀인 서왕모가 살고 있지요.

“저것 보게. 복숭아를 60 번이나 훔쳐 먹은 동방삭이도 보이지 않는가.”

과연 복숭아나무 아래 푸른 옷을 입은 동방삭이 엎드려 있는 것도 보였습니다.

“어떤가? 자네들은 나에 비하면 하루살이에 불과하지.”

두 사람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 그림은 조선 시대의 뛰어난 화가인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 1843년~1897년)이 그렸습니다.
중국이 옛 이야기를 상상하여 그린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속의 인물이나
그 인물들이 빚어 내는 전설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 그림을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라고 합니다.

장승업의 그림은 선이 자유롭고 색은 금방 그린 듯이 선명합니다.
옛 이야기이지만 마치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처럼 생생합니다. 이 그림 속의 신선들에 비하면,
우리 인간들은 정말 하루살이만큼 짧은 세월을 살지요. 짧은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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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미술책도 이렇게 만들면 정말 재미있게 공부할텐데…”

위 이미지는 '김치샐러드'님의 네이버 블로그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에 올라온 게시물의 일부입니다. '의기양양 조선고양이 - 김득신의 '야묘도추'로 알아보는 풍속화'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게시물은 조선후기의 풍속화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이어 붙이고, 이를 현대적 감각으로 알기 쉽게 설명한 것입니다.

특히 그림을 해설하면서 영화 '매트릭스'의 배경화면과 주인공들을 합성해 넣어 네티즌들이 재미있어 하고 있습니다. “학교 미술책도 이렇게 만들면 정말 재미있게 공부할텐데…”라는 댓글도 보입니다.

아래는 '김치샐러드'님이 설명하고 있는 그림의 원형인 김득신(金得臣, 1754~1822)의 야묘도추(野猫盜雛)입니다.



▲김득신의 야묘도추▲


정보 : 이 그림은 종이에 그린 담채화로 세로 22.5cm, 가로 27.2cm 크기이며, 서울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는 김득신의 야묘도추에 대해 '어느 한적한 농가의 앞뜰에서 일어난 한 순간의 정경을 담은 그림으로 병아리를 물고 달아나는 고양이와 당황하여 날개치는 어미닭,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는 병아리, 그리고 병아리를 안 빼앗기려 하는 주인 부부의 본능적인 모습 등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아래는 '김치샐러드'님이 올린 '의기양양 고양이'에 대한 해설입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병아리를 입에 물고 있는 위의 그림으로 시작하는데요. 야묘도추 그림에서 고양이가 그려진 부분만 잘라서 올린 것입니다.



두 개의 손가락이 가상의 화자가 되어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감상을 이야기하는 방식입니다.



특징은 그림 전체를 올려놓고 감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위와 같이 그림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그 부분이 어떤 상황을 묘사한 것인지를 마치 이 그림의 소재가 된 사건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림 전체를 감상할 때 놓치기 쉬운 등장인물과 동물의 표정 등을 '야묘도추' 원본에서 한 부분만 잘라내어 보기쉽게 만들어 놓고, 재치있는 설명을 달아 놓았습니다.



네티즌들이 가장 재미있어 하는 부분은 병아리를 물고 달아나는 고양이를 향해 몸을 날리는 남녀의 모습을 영화 '매트릭스'의 등장인물 '네오(키아누 리브스)'와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의 모습에 비유한 부분 입니다.

위 이미지를 보면 남자가 있어야 할 부분에 총을 손에 쥐고 앞으로 뛰어드는 '네오'가 합성되어 들어가 있고, 여자가 있어야 할 부분에 '매트릭스'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인 '트리니티'가 두 팔을 벌리고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이 합성되어 들어가 있습니다. 또한 검은 고양이의 머리에는 웃고 있는 '스미스 요원'의 얼굴을 합성해 넣었습니다.



의기양양 고양이 이어서 보기

이런 요소들 때문에 '의기양양 고양이'는 각종 블로그·카페와 게시판에 옮겨졌고, 댓글이 150개가 넘게 달리는 등 많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게시물 뒷부분은 조선시대 풍속화 전반에 대한 내용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에 댓글 중에는 "풍속화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 "풍속화의 새로운 면을 알게되었다"는 댓글이 많았습니다.

▼풍속화엔 인물이 많아서 자세히 표정 하나 하나 살펴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보니까 재밌어요.

▼저 그림은 자주 봤어도 고양이 표정이 저렇게 귀여웠는지는 오늘에야 알았네요.

▼추천 버튼 없나? 조선 풍속화를 이렇게 재미있게…

▼미술 교과서는 이렇게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를 만든 '김치샐러드'님은 "지금까지 서양화만을 주제로 게시물을 만들었는데, 개인적으로 동양화에도 관심이 많아 이번에 '의기양양 고양이'를 만들게 되었다"며 "우리가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그림보다는 서양화에 관심이 많은 것이 안타까웠다"고 전했습니다.

풍속화를 주제로 게시물을 만든 이유에 대해서는 "조선 시대에 명작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로 산수화와 같은 그림보다는 서민들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린 풍속화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에 '의기양양 고양이'를 만들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그는 "풍속화가 이렇게 반응이 좋을 것이라고 예상을 못했다"며 "앞으로는 김홍도신윤복의 그림에 도전해 볼 것"이라고 계획을 전했습니다.

'김치샐러드'님 블로그 : http://blog.naver.com/2x5/140015904004

도깨비뉴스 리포터 아사달 youngkang21@dkbnews.com

▷관련기사 - '오필리어'의 머리, 꽃의 코드는?
III. 다다익선(多多益善)

규모의 측면에서 <다다익선>은 1980년대를 통해 이어진 백남준의 대규모 비디오 설치작업의 백미(白眉)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많을수록 좋다’는 뜻의 사자성어 ‘다다익선(多多益善)’은 양적 확대를 통하여 차별 없는 민주성을 성취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장을 열고자 하는 백남준의 비디오 철학을 엿보게 한다. 물론 그 직접적인 함의는 1,003대에 달하는 TV 수상기의 상식을 뛰어넘는 수량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 양(量)의 미학은 단지 발신(發信) - 즉 TV수상기 - 의 측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신(受信)의 측면까지 고려한 것으로, 같은 의미에서 현대의 매스미디어의 작용방식에 대한 비평이기도 하다. 백남준 자신은 이와 관련하여 일본방송계 원로의 경험담을 인용한 적이 있다. “방송이라는 것은 물고기의 알 같은 것이다.

물고기의 알은 수백만 개씩 대량으로 생산되지만 그 가운데 대부분이 낭비되고 수정(受精)되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 그야말로 다다익선이다.”11) 즉, 이 비디오 메시지가 발신된 후 수신되어 수정(受精)되는 과정에서 지켜지는 원칙이 바로 ‘다다익선’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작품명명에 있어 동음이의어의 말장난(pun)에 능했던 백남준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다다(多多)’라는 단어와 20세기초엽 ‘다다(DADA)’운동과의 연상 역시 염두에 두었을 것이라는 것도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실제로 ‘다다’는 백남준이 평생을 유지한 ‘플럭서스’의 예술이념과 결코 뗄 수 없는 관련이 있다.

어쨌든, 현재까지 엄청난 수의 관객들이 이 탑에서 메시지를 ‘수신’하여 갔다는 점에서 발신에 대한 그의 고안은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얼마나 ‘수정’이 되었는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겠지만.

1. 역사적 모형

현재 <다다익선>의 최초 디자인에 대한 백남준의 스케치가 남아있지 않아 그 아이디어의 전개과정을 명확히 추적해 볼 수 없는 것이 아쉽지만, 완성된 구조물의 최종적인 형태는 분명히 ‘탑’을 지향하고 있었다.

<다다익선>의 형태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것은, 개막식을 기념하여 제작된 포스터에 백남준 자신이 이 탑의 원형으로 고려했던 여러 모티브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도판9) 한국의 전통적인 삼층석탑을 비롯하여 파르테논 신전, 스톤헨지, 바벨탑, 브랑쿠지의 <끝없는 원주> 그리고 V. 타틀린의 <제3인터내셔널을 위한 기념비> 등이 그것이다.

존 G. 핸하르트가 다다익선의 형태에서 “거대한 지구라트”가 연상된다고 했을 때는 아마도 바벨탑과 같은 서구적 기원을 떠 올렸을 것이다.12) 또한 타틀린의 <기념비>는 실제로 백남준의 최초의 구상이기도 했다. 그는 400미터 높이로 설계된 이 거대한 아이디어를 비디오 형식으로 번안하는 것을 한 때 구상하였으며 <타틀린에게 보내는 찬가>라는 이름으로 구상하였다고 한다.13)

아마도 그 기념비적인 특성이나 조형과 실제공간을 융합시키고자 했던 이 러시아 작가의 조형이념에 대한 공감의 표현이었겠으나, 결과적으로는 <다다익선>이라는 제목으로 낙찰되었다.

TV수상기를 마치 벽돌처럼 쌓아올려 지은 수직적인 조형물이라는 설치형식은 1982년 휘트니 미술관에서의 회고전에서 선보인 <비라미드 V-yramid>(도판10)나 1984년 카스파 쾨닉(Kaspar Konig)이 기획한 <여기에서부터 Von Hier Aus>에 출품한 (도판11,12), 그리고 1985년 퐁피두의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 출품한 (도판13) 등을 거치면서 구체화되어가고 있었다.

휘트니 회고전 당시의 한 방송 인터뷰에서 백남준의 <비라미드>가 매우 즉흥적인 착상으로 이루어진 설치라고 밝히고 있다.14) 즉, 이 작품이 설치된 전시 도입부의 갤러리는 원래 칠흑같이 어두운 방으로 조성하고자 하였으나 휘트니 미술관 측에서 전체 미술관의 자연광을 모두 가려야 한다는데 난색을 표하자, 그럴 바에야 모니터들을 한 곳에 모두 모으자는 식으로 형태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막상 수직적으로 쌓아올린 모니터들은 서로 다른 색채의 영상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보여주게 되었고 그 각 영상들간의 긴장감은 예기치 않은 효과를 가져왔다.

또한, 당시 이 작품의 대중적인 인기 역시 백남준이 이 형식에 주목하게 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1982년의 휘트니 미술관 개인전은 이후 백남준이 본격적으로 비디오설치에 몰입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대부분의 대규모 설치작업들이 이 전시 후에 이루어진다.

형태적인 측면에서 <다다익선>의 가장 직접적인 전범(典範)은 1984년 뒤셀도르프의 메세게란데 홀(Messegelande Halle)의 넓은 공간에 설치되었던 를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깔때기를 거꾸로 매단 형태로 점점 적어지는 5개의 동심원과 99대의 TV수상기로 구성되어 관람자들은 마치 허공 속에 유영하는 듯한 비디오들의 이미지를 밑에서부터 올려 보도록 설계되었다.

모니터 화면 위에 펼쳐지는 이미지들의 극적인 흐름과 격렬한 속도감이 나선형 틀과 어울리면서, 관람자가 서 있는 위치가 변화됨에 따라 무한히 다양한 형태를 창조한다. 실로 이 작품은 속이 빈 <다다익선>이라고 할 정도로 그 스케일과 아이디어의 흐름이 서로 닮아있는데, 심지어 5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점까지 흡사하다. 아마도 백남준은 <다다익선>을 실제로 구상했을 때, 를 설치하면서 피부로 느꼈던 효과를 십분 고려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백남준이 처음 <다다익선>을 구상했을 때, 건물공간과의 조화를 위해 뉴욕 휘트니미술관에 소장된 <비라미드>와 퐁피두에 전시되었던 <삼색비디오>의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작품, 즉 올려 보아도 좋고 내려 보아도 좋은 작품으로 구상했다고 한다.15) 램프코어의 나선형 통로를 따라 올라가며 시점에 따라 변화하는 <다다익선>을 감상하노라면 그의 의도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도 또한 ‘다다익선’의 원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최대한 많은 것들을, 이질적인 것들을 한 데 버무려 놓음으로써 제 삼의 효과를 창출하는 것. 서로 다른 것들을 구분하고 분리하기보다는 은근슬쩍 한 데 모음으로써 “전환”을 꾀하는 것. ‘무당’ 백남준의 굿거리는 <다다익선>의 번뜩거리는 화면들을 통하여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스크랩] 뚱뚱한 모나리자
원본: ~ 아름다운 만남 ^*^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1932, 4, 19~)
<모나리자>Monalisa1977

Oleo sobre lienzo

소파에 누운 여인

창문 옆의 여자 Woman in front of a Window,
1990, Oil on Canvas, Oleo sobre lienzo

페르난도 보테르는 1932년 4월 19일 콜롬비아 메델린(Mellin)에서 빈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뚱뚱하고 우스깡스런 그림을 그리게 된 유래를 빈곤에 대한 반 작용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그의 그림은 어렵거나 난해하지 않을뿐 아니라 그의 모든 그림에서 뚱뚱한 인물이나 정물이
등장한다.그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곧 유쾌해 지거나 해학적인 패러디 그림을 보면서 안도하는

독특한 편안함이 있다.

보테르는 화가가 되려고 했다기보다 가난에서 벗어나기위해 투우사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시계바늘은 보테르가 16세 되던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연히 그룹전에그림을 출품하면서 자신이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는 화가가 되기위해 피렌체 아카데미와 보고타 미술대학을 다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Dancers, 1982

조각Caballo 말

보테르는 60-70년대에 특히 이태리 르네상스 화가들의 그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레스코화의 기법과 예술사를 공부한다.

그는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독특한 직관력으로 과장되고 뚱뚱하게 패러디 함으로서 그의 그림이

가는곳마다 그 독특한 유쾌함으로 화제가 되곤했다.

1970년대 부터조각작품을 제작 하게 되었는데인기있는 뚱뚱한 그림의 여파로 조각은 그림만큼

많이 알려지지 않지만 보테르의 말 조각을 보면 회화 처럼 뚱뚱한 백마가 우뚝 서 있다.

1985년 그는 "창조적 행위의 철학"이라는 저서를 남기기도 했으며 당대 라틴 아메리카 문화를

대표하는 화가로 알려져있다.

특히 그의 작품은 고도의 산업화된 현대사회 에서 소통의 순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최근의 그는 파리, 뉴욕, 몬테카를로 등지에 아뜨리에가 있어 작품을 제작 중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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