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해(海)에' 빠진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
[서평] 블로거 '김치샐러드' 명화감상기, 책으로 출간
최항기(flyturtle) 기자
ⓒ 학고재
그림을 읽는다는 것은 화랑에 전시된 그림과 이를 보는 이들의 모습에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적과 흑>의 작가 스탕달은 그림을 보다가 너무나 그에 매혹되어 탈진해 쓰러졌는데 이를 두고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 그림을 읽는 다는 것은 좀 더 깊은 심리적 교감을 교류를 의미하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서술하니 뭔가 고상한 것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이건 '예술작품을 접할 때 맛이 가버리는 현상'이라고 네티즌의 가벼운 덧글로도 설명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화랑에서 조용히 감상하는 미술작품과 네티즌의 만남은 어떤 것일까? 그 둘의 간격을 우울해(海)에 빠진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과 '불 꺼진 아귀'가 전해준다.

인터넷에서의 폭발적인 반응, 그것은 단순한 수다?

책의 띠지에서 전해주듯이 '300만 블로거의 마음을 훔친'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은 인터넷으로 유명세를 떨친 '김치샐러드' 윤명진씨의 개인 블로그에 올려진 명화감상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네티즌들이 쓴 덧글도 흘려볼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책에는 각 장의 말미에 네티즌들의 덧글도 싣고 있다.

이에 대해 문의해 보자 저자 윤명진씨는 이메일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인터넷의 느낌을 살리려 애를 써서 블로그와 디시인사이드에 달렸던 덧글들을 책에 넣었습니다. 그림을 보는 또 다른 시각들을 덧글로 많이 느꼈기에 책에 꼭 넣어보고 싶었습니다. 지난 1년간 쌓인 수 천 개의 덧글들을 프린트해서 상황과 분위기에 맞는 덧글을 골라 그림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삽입을 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 넣고 싶었지만 페이지의 사정 때문에 모두 못 넣은 게 아쉽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저자의 입맛에만 맞는 덧글을 고른 건 아닐까. 저자의 의도에 반하거나 매우 부정적인 덧글도 가감 없이 실려 있다. '명화를 너무 작위적으로 해석한다', '비유 가득한 말장난이다', '심지어는 '미쳤다'는 덧글까지 있다.

하지만 덧글문화는 이를 뒤엎는 반론에 매력이 있는 법이다. 작위적이라는 비판에는 '테마를 전제하는 것 자체가 작위적 감상평을 전제한다'는 덧글이, 말장난이라는 비판에는 '다시 생각해 보라'는 말과 함께 보충 설명이 붙는다.

저자는 인터넷의 이런 생생한 느낌을 책으로도 담아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셈이다.

우울함, 그것의 깊은 아름다움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에 소개된 그림들은 하나의 느슨한 공통점이 있다. '우울해(海)에 빠진 손가락과 불 꺼진 아귀의 그림 이야기'라는 소개 그대로 그림들은 다른 모습으로 우울한 기분을 자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윤명진씨는 이 점에 대해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가만히 보면 그림이라는 것은 모두 어느 정도씩은 우울한 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화가 개인의 문제뿐 아니라 혼자 캔버스와 대면하며 작업을 해나가는 고독한 과정 때문인 이유도 있겠지요. 저는 그림 속 우울한 요소를 잡아내서 즐기는 데 큰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바라보면 위안을 받아서 좋아요. 다른 분들도 그런 재미에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을 찾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이는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을 통해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3장으로 구성된 '미친년 코드로 본 오필리어'를 보고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책에서 말하듯이 꽃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하고 웃음을 좋아하는 미친년은 나와 같다."

사실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이 일깨워주는 우울함의 이면에는 깊은 자기모습의 투영이 감춰져 있는 지도 모른다.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의 못 다한 이야기

▲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의 인터넷판 일부. 책과는 조금 다르다.
ⓒ 김치샐러드
사실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은 전체 14부작으로 완결 구성을 하려고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책은 전 12부작으로 되어 있으며 마지막의 암전은 알 수 없는 여운을 남기고 있다. 저자는 앞으로 남은 이야기에 대한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는 암시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책으로 옮겨지면서 각 장에는 화가에 대한 설명도 담았다. 각 말미에는 소개된 화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사이트를 소개해 놓기도 했다(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마그리트의 작품을 이 책의 사이트 소개로 인해 변형되지 않은 색조로 감상할 수 있었다).

원래 인터넷으로는 마우스 휠을 굴리는 수직적인 구성을 가지고 있던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이 책으로 옮겨지며 달라진 점도 눈에 띄고 있다. 이미 인터넷으로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을 접한 이들이라면 살짝 달라진 면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를 줄 듯 하다.

더운 여름,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과 불 꺼진 아귀가 차분히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우울해(海)'에 풍덩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19:03
ⓒ 2006 OhmyNews
현대미술 보는 5가지 문 열어드립니다”
탈색한 머리·현란한 명함·필명…너무 ‘튀어’ 예술가처럼 보이지만
본업은 미술평론가에 저술가 따끈따끈한 작품 골라 상냥한 소개
인터뷰/‘새빨간 미술의 고백’ 써낸 반이정씨

누가 보더라도 미술평론가 반이정(36)씨를 보면 ‘튄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얼굴을 반씩 가리고 양쪽을 번갈아 보면 다른 사람을 보는 것같다. 왼쪽은 머리 한움큼을 샛노랗게 탈색해 길게 늘여뜨렸고, 그 반대쪽은 이른바 ‘바가지 머리’같아 끝이 일직선을 이룬다. 이런 머리모양을 유지하려면 제법 수고로움과 비용이 들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아서 집 근처 서울대 구내이발소에서 무척 싼 값에 쉽게 해결하고 있다고 한다. 옷차림도 물론 평범하지 않으리란 것은 이미 짐작하셨으리라. 반씨의 명함은, 기자가 사회생활 시작한 이래 받은 명함 가운데 가장 현란하고 개성적인 것이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다.(그의 홈페이지 www.dogstylist.com 시작화면 그림에 색을 입혀 명함으로 만들었다)

반이정이란 이름 역시 본명은 아니다. 소중한 친구 세 사람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다. 이름 때문에 여자일 것으로, 외모 때문에 평론가가 아닌 작가일 것으로 오해를 종종 산다고 한다. 이런 여러모로 볼 때 어려운 말 많이 쓰면서 점잔빼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미술평론계에서 그를 보는 눈길이 두 가지일 것은 당연해 보인다. 자기 블로그 표지에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아있는 사진(어떤 작가가 찍은 작품이다)을 올려놓는 평론가라면 좋아하거나 아니면 싫어하거나 둘 중 하나일 수밖에.

2000년대 초반 활발히 글을 쓰며 등장한 이 평론가는 미술비평판에서도 당연히 튀고 있다. 반씨의 글쓰기는 두 가지. 1번은 본업인 미술평론. 2번은 대중들을 상대로 미술을 들려주는 에세이다. 얼핏 1번 비평글은 차분하고 학술적일 것 같고, 2번 대중용 글들은 역시 반이정스럽게 튈 것 같다. 그런데 그 반대다. 반씨는 ‘좋은 게 좋은’ 주례사식 비평을 거부하며 실명으로 비판하기도 하고, “작가 아무개의 작품 세계는…” 투의 평론 공식을 벗어나 전혀 다른 형식의 평론을 쓰기도 한다.

거꾸로 대중용 글은 무척이나 ‘부드럽다’. <한겨레21>에 연재하는 칼럼 ‘사물 보기’처럼 일반 대상 글은 경어체로, 그리고 조근조근 속삭이듯 말한다. 그의 대중 에세이만 본 사람들은 그를 직접 보면 튀는 외모와 실제로는 속사포처럼 뿜어대는 말투에 놀랄지도 모르겠다.

반씨가 최근 쓴 첫 대중미술책 <새빨간 미술의 고백>은 2번 모드로 쓴 글이어서 코믹하지만 무척 상냥하다. 다루는 작품들은 모두 따끈따끈한 국내외 최신 미술들이다. 우리가 으레 미술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그러나 실제 현재 미술판의 흐름과는 엄청나게 동떨어진 교과서 속 미술과는 다른 ‘진짜’ 현대 작품들만 등장한다. 그리고 반이정식으로 친절하게 요즘 미술 보는 법을 가르쳐준다.

반씨가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일반인을 위한 미술 길잡이 글들이 동시대 미술보다는 미술관속 옛날 미술만 중복적으로 다루고 있어 정작 대중에게 자기 시대 미술을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술책들이 불친절한 것도 불만이었다. 아니면 너무 친절하거나. 현대미술을 다루는 일부 책들이 대중들의 미술공포감을 줄이려고 “현대미술은 쉽다”고 잘라말하는 것도 문제로 보였다. “현대미술은 틀림 없이 어려운데 그걸 쉽다고 호도해선 안됩니다.”




반씨는 “일반관객과 독자들이 막연하게 품고 있는 예술(가)에 대한 환상은 대개 미디어가 유포한 과장 보도와 광고에 반복 노출된 결과의 산물”이라고 본다. 그러니 독자도 이제 그런 간교에서 벗어나 주눅들지 말고 ‘사물로서의 작품’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면 그 어려운 현대미술을 어떻게 보라고? “현대미술로 들어가는 길목을 짚어 그 문을 보여주면 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문을 가르쳐드리고자 합니다.” ‘패러디’, ‘사회비판적 예술’ ‘경량화된 예술’ ‘옥외예술’ ‘장르간 교차와 미디어 친화적 예술의 탄생’이 바로 그 5개의 문이다. 이 다섯가지 답안만 잘 알아도 미술관에서 마주칠 현대미술에 어느 정도 맞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문을 열어볼 차례다. 무엇이 보이는지.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짜깁고, 베끼고, 중복 게재…대학가 ‘논문 부조리’
입력: 2006년 07월 28일 18:12:24
대학가의 논문 부조리가 심각하다. 베끼기와 짜깁기, 중복 게재 등이 ‘관행’의 이름으로 묵인되면서 학문적·도덕적 몰이해가 대학가에 만연돼 있다. 동일한 내용과 결론의 ‘자기복제’ 논문이 다른 학술지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자기논문 표절과 중복 게재 논란도 ‘빙산의 일각’이 드러난 것이다.

이러다보니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진다. 한국학술진흥재단 홈페이지에서 통합연구자 정보를 검색해보면 3년 동안 300편의 논문을 발표한 사람도 있다. 한해에 100편을 쓴 것이다. 기네스북에 오를 만하다.

하지만 이 논문들엔 대부분 ‘공저(共著)’로 적혀 있다. 새로운 연구 결과가 담긴 논문이 몇 편이나 되는지는 교수 자신이 잘 알 것이다. 대학교수들의 논문 표절과 연구실적 부풀리기는 ‘관행’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범죄’다.

대학사회는 이미 자정기능을 잃었다. 서로의 표절을 눈감아주면서 실적 올리기에 바쁘다. 소수의 양심 있는 학자들의 목소리는 묻혀가고 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것은 각 대학들이 교수 연구실적을 국내외 학술지 게재 논문수 등 주로 ‘양’으로 측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학측의 기준 또한 매년 높아지는 추세다.

한양대의 경우 1995년 교수업적 평가제 도입 이후 6차례 재임용 기준 등을 손질했고, 서강대는 올 3월에 승진최소종합평점을 상향조정했다.

논문 표절은 양적기준에 치중한 평가와 교수들의 도덕적 해이가 합작해 빚어낸 것이다.

논문 표절은 대학뿐 아니라 국가의 비극이다. 수준 높은 논문보다는 고만고만한 논문이 양산되면서 학문의 국가경쟁력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과학기술부가 과학논문인용 색인(SCI)급 저널 6,300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과학논문 수는 2000년 1만2천4백71건, 2004년 1만9천2백79건(세계 14위)으로 크게 늘었지만 논문 1편당 피인용 횟수는 2.8회(33위)로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논문 표절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아직 미흡하다. 올 3월 교육부는 학술진흥재단에 논문표절과 가짜학위를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중앙대 정치학과 최영진 교수는 “학술지 등재를 위한 논문 1차 심사과정에서 동료교수들이 ‘잘못된 동료의식’으로 검증에 소홀했던 게 사실”이라며 “심사 규정을 강화하고 국가예산으로 검증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이영준의 그림밖의 그림 <1> 지역 미술작가로 살아가기
화가는 직업이 아니라 생활고 버티기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경남 의령의 한 폐교를 개조한 돌조각가 조정우씨의 작업장 전경.
기획자로서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할 때는 늘 가슴이 설렌다. 현장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 보거나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더없이 즐겁다. 그러나 때로는 작가의 열악한 창작 현실을 확인하는 가슴 아픈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런 작가 중 한 사람이 울산시 울주군 웅촌면 초전리 내기마을에서 작업장을 전세 내 8년 째 홀로 버티고 있는 오순환(42) 씨다.

그는 얼마 전 경제적 압박을 견디다 못해 마을 앞 가스충전소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1988년 경성대 예술대 회화과를 나온 후 전업작가로 작품 제작에만 매달려 왔지만 경제 사정은 여전히 빠듯하다. 그 동안 작가로서 지명도가 점차 알려져 활동의 폭은 확장됐지만 경제적 여건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1994년 6월 지금은 없어진 갤러리 누보에서 아내가 내준 곗돈 300만 원으로 첫번째 개인전을 치를 때만 해도 화가의 길이 이렇게 험난할 줄 몰랐다며 흉금을 털어 놓은 적이 있다. 지금도 생활비 조달은 아내 몫이다. 그림이 조금씩 팔리기는 하지만 그 돈은 작품 제작비 대기에도 모자란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1주일에 한번 정도 울주 작업장을 떠나 부산 집에 갈 정도로 악착같이 작품 제작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오 씨는 "화가가 직업이 아니라 버티기가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그래도 화가의 길을 포기할 수 없으니 아마 천형인가 보다 하면서 마음을 독하게 먹는다"고 토로했다.

지난 5월초 부산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 비워진 농가에 '대안공간 오픈 스페이스 배'를 차린 네 명의 30대 미술가들 역시 열악한 지역 작가들의 창작 여건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이 작업장은 기장체육관에서 울산쪽으로 14번 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왼편으로 나오는 월명사 밑에 있다. 현재 입주한 작가는 서상호(39) 박은생(38) 안재국(37) 정만영(37) 씨로 허름한 농가와 악취나는 돼지우리를 개조해 작업장으로 만들기 위해 밤 새우기를 밥 먹듯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전업작가로 뛰어 들면서 목수 미장 타일 붙이기 등 거친 육체노동으로 작업비용을 마련하는 게 몸에 뱄다.

경남 의령에서 한 폐교를 빌려 작업하고 있는 조정우 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다인 활동을 하다가 석조각을 시작했다. 얼마 전 6번째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는 그를 방문했다. 폐교 작업장에는 그의 작품이 가득해 그가 전업작가 임을 대변하고 있었지만 다가오는 개인전에 대한 걱정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미술계의 평가가 어떨지, 작품 판매는 될지, 사람들은 많이 올지 걱정된다"는 그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기가 어려웠다.

어떤 작가든 한결같은 꿈은 '작업에만 전념'이다. 하지만 현실은 아이들 교육과 가정 생활에 대한 압박 때문에 창작 활동을 중도 포기하거나 가산을 조금씩 탕진해 나가며 힘겨운 버티기를 감행해야한다. 작가 지원을 해주는 기관은 그나마 미술관 정도인데 그것도 그리 기회가 많지 않다. 지금도 지역의 젊은 작가들은 지하실 한구석에서 라면으로 배를 채우며 세상에 내놓을 자신의 작업과 거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예술행위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공공적 의미도 의외로 크다. 삶 자체가 심미화 되어가고 있는 요즘, 그 사회적 의미는 더욱 부각되고 있다. 문화의 세기라 하지만 문화 생산자에 대한 복지와 사회적 인식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제는 힘든 작업 환경에서 몸무림 치는 작가들의 아픔을 사회 공동의 책임으로 생각해 봐야 할 때 아닌가.

김해 문화의전당 전시교육팀장



▲ 필자는 조현화랑, 갤러리 칸지 등의 큐레이터를 거쳐 2002 부산비엔날레

현대미술전 현장감독을 맡았고 현재 부산대 박사과정(미학)을 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