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삶을 고민하라
한겨레
[관련기사]
박용성교사의 실전강좌

3. 논제 따라 구상하기

[논술 구상] 깊이 있게 생각하자

[서론] 문제 상황과 앞으로 논의할 문제를 제시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점차 현대 사회는 ‘생산이 소비에 의존한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 사실 팔릴 것이 보장되지 않는 물건을 만든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이러한 사회에서 생산자는 더 이상 소비자의 필수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하는 물건을 생산한다는 거야. 생산이 소비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게 됨에 따라 대중 매체는 소비자의 욕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광고를 통한 기호의 창출에 나서지. 결과적으로 이제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기호 그 자체가 되었어. 이처럼 구성원들이 기호를 욕망하고 기호를 소비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사회가 바로 ‘소비 사회’야.




[본론1] 제시문 (가)를 분석하여 현대 소비 사회의 특성을 정리한다.

제시문 (가)에 따르면, 소비의 시대인 오늘날에는 상품의 논리가 일반화되어 노동 과정이나 물질적 생산품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 전체를 지배한다는 거야(1문단). 그런데 이러한 소비 과정은 기호를 흡수하고 기호에 의해 흡수되는 과정으로, 모든 것이 이러한 기호의 질서 속에 재편되어 버렸어(2문단). 그리하여 육체마저도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사회적 지위를 표시하는 여러 기호 중의 하나로 조작되고 있지(3문단). 현대 소비 사회의 특성은 한마디로 기호의 발신과 수신만이 있을 뿐이라는 거야.

이를 보드리야르는 이렇게 설명하지. 상품은 사용 가치에 의해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무슨 상표인지 얼마짜리인지가 실제로 상품을 선택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문제가 되었어. 그는 구매한 물건을 통해 자신이 남과 어떻게 다른지, 혹은 자신이 어떤 집단의 사람들과 같은지를 드러낸다는 거야. 이는 단지 몇몇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가 자극되고 소비가 흘러 넘치는 현대 사회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모두에게 해당되지. 그리하여 상품은 이제 사용 가치가 아니라 의미를 낳는 기호 가치에 의해 규정되고 말았어. 이러한 상품의 기호화는 오늘날 서구에서 광범위하게 관찰되는 현대 사회의 주요한 특성이야.

[본론2] 제시문 (나)와 (다)의 삶의 방식이 (가)의 소비 사회와 갈등을 빚는 이유와 양상을 서술한다.

인도의 시라고 일컬어지는 <싯다르타>에서 헤세는 근원적 실재인 자연의 존재를 보여 주면서, 인간이 성찰을 통해 ‘자연의 질서’를 깨달을 수 있음을 설파하고 있어. 우리는 이러한 자연의 질서를 통하여 “강물이 들려주는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으며, 결국 “더 많은 비밀, 나아가 모든 비밀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는 거야. 그런데 이러한 삶의 방식은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는 장소였던 거울은 사라지고, 대신 쇼 윈도만이 존재”하는 소비 사회와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어. 한마디로 말해 ‘자연의 질서’는 ‘기호의 질서’와 대립할 수밖에 없지.

같은 맥락에서 다산 정약용도 <목민심서>에서 “마음이 담담하여 만족할 줄 알면 세상 재물을 구해서 어디에 쓰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성찰하면 세상 맛에서 초탈하게 될 것”이라며 ‘무욕(無慾)의 논리’를 펼치고 있어. 하지만 “초월성도 궁극성도 목적성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현대 소비 사회는 이미 “‘반성’의 부재, 자신에 대한 시각의 부재”인 허위 욕망의 실현태인지라, 갈등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지.

그러나 모든 유토피아가 그렇듯이 헤세의 유토피아나 정약용의 유토피아는, 그런 생활 양식이 과연 그리 쉽사리 일반화될 수 있을까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켜. 오늘날 생산이 지배하던 사회에서 소비가 지배하는 사회로 변화되면서, 상품의 소비 또한 사용 가치에서 기호 가치로 전환되었고, 인간은 자연에 대해 더욱 공격적인 힘을 행사하게 되었어. 현대 소비 사회에서 상품의 무한한 생산과 함께 새롭게 창출되는 의미 연관들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한 측면도 있지만, 사물의 풍성함과 소비의 일반화는 결국 기호의 질서로 표현되는 관념적 허구의 세계로 인간을 밀어 넣고 말았지. 따라서, 현대의 소비 사회에서 인간은 자연과 공생적 균형의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어.

[본론3] 현대 소비 사회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논술한다.

이러한 현대 소비 사회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보드리야르가 제시하는 대안은 ‘상징적 교환’이라는 개념으로, 이는 ‘기존의’ 자본주의 사회의 논리와 대립되는 소비 원리야. 이는 이윤 발생 없이도 물건을 자발적으로 교환 소비하는 것을 말하는데, 어떤 물건이 사용 가치나 교환 가치로 환원될 수 없는 상징적 가치를 갖고 있으면 가능하다는 거야. ‘선물 교환’은 이러한 성격을 갖는 소비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어. 선물을 하는 행위는 일종의 희생이나 심지어 낭비로 볼 수 있지만, 이 행위에 어떠한 의미가 주어지면 ‘선물’을 주고도 만족해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거야.

결국 보드리야르는 원시 사회를 모델로 하는 상징적 교환의 사회를 혁명적 대안으로 제시하여 자본주의 사회에 대립시키지. 자본주의 사회가 무한한 소유와 무한한 축적이 추구되는 사회라면, 상징적 교환의 사회는 생산물이 축적되지 않고 교환되는 사회야. 선물 교환, 축제, 종교적 제의 등의 상징적 교환에 의해 조직된 이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생산 논리와 유용성, 도구적 합리성의 전복을 꾀하게 되지. 어떤 의미에서, 제시문 (나)와 (다)에서 헤르만 헤세나 정약용이 이상화한 사회 모델과 상통한다고 할 수 있어.

하지만 이러한 혁명적 발상은 ‘현실적이기에는 너무나 이상적인’ 나머지 쉽사리 우리 삶의 양식으로 채택할 수 없어. 당장 편리한 소비 사회에서 벗어나 원시적 삶으로 회귀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야. 따라서, 우리는 자연과 인간의 공생적 균형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동시에 인간에게 안락한 삶을 제공해 주는 새로운 관계 설정을 모색해야 해. 만약,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소비 사회가 더욱 자연 파괴적 양상으로 치닫는다면, 자연은 인간에게 더 이상 관용을 베풀지 않게 될 거야. 따라서, 우리에게 남은 문제는 자연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가 하는 문제라기보다는, 그 자연 속에서 인간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가 하는 바로 그 문제라는 점을 명심하고, 실천 가능한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할 거야.

[결론] 이제까지 논의를 요약하면서 제언이나 전망을 한다.

현대 사회에서 상품의 무한한 생산을 위해 창출되는 기호들은, 지배와 정복의 대상으로 간주되는 자연을 심하게 파괴하여, 그 자연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살아가는 인간의 삶마저도 결국 파괴하고 말았어. 이러한 상황인데도 조작된 이미지나 왜곡된 기호의 본질적 의미를 간파하지 못한 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에 손에 이끌려 관념적 허구의 세계로 끌려 들어간다면 인류의 미래는 아무도 기약해 주지 않을지도 몰라. 필요한 만큼 생산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하는 생태적인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어.

박용성/ 여수여고 교사, <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뛰어넘기> 저자

6월 12일 글쓰기 교실
한겨레
[관련기사]
남자도 봉숭아물 들이고 싶다고요

박동구/충남 양화중학교 3학년

귀가 찢어질 듯한 매미의 울음소리와 따가운 여름 햇살이 내 뒤통수까지 따갑게 했던 어느 여름 날. 사촌 누나네 집에 놀러 갔다가 앞 마당에서 봉숭아물을 들이는 누나를 보게 되었다. 손가락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여 물들이는 누나를 본 나는 갑자기 호기심이 생겨, “나도 물 들여줘, 누나”라고 말을 꺼냈다. ‘별 이상한 아이도 있구나’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누나는 퉁명스런 목소리로 “알았어”라며 내 손가락에도 물을 들여 주기 시작했다.

수 없이 물들여 본 듯한 누나의 솜씨로 드디어 붉게 짓이겨진 봉숭아 잎 한 덩어리가 내 손톱 위에 올라왔다. 정성스럽게 손톱 위에 올린 봉숭아 이파리 위에 얇은 비닐이 덧씌워지고 마지막 작업으로 실을 꽁꽁 묶어주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내 손톱 위에 어느새 자연을 닮은 예쁜 색깔이 모습을 담아내는 게 아닌가? 붉은 오렌지색이라고 해야 할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색깔이었다.

해가 넘어갈 쯤 누나네 마당을 나와 집으로 가는 도중에 동네 할머니를 만났다. 그런데 동네 할머니 말씀이, “이놈아, 사내 녀석이 봉숭아 물 들이냐? 고추 떨어지겄다.” 하시는 것이었다. 물들인 것을 어떻게 아셨는지는 모르지만 괜히 마음이 상해 빠른 걸음으로 고개를 넘고 논길을 건너 집으로 왔다.

동네 할머니는 왜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지금 생각해 보니 그 할머니는 빨갛게 물들어 있던 내 손톱을 보시고 ‘여자가 하는 짓을 왜 남자가 하느냐’라고 비유적으로 말하신 것이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 세대에는 그렇게 말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세상은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는 그런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에서 ‘여자가 하는 일과 남자가 하는 일이 따로 없다’고 말만 하지 생각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아직도 많다. 남자와 여자가 분명히 차이가 있는 것은 인정한다. 생물학적인 면이 특히 그렇고 일을 할 때도 적합한 분야가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자는 안 돼’라는 말은 박물관에 들어가야 할 말인 것 같다. 지금은 과거에 10년 동안 변할 것들이 며칠만에 바뀌고 있는 21세기다. 남성보다도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이 남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성 국무총리가 처음으로 뽑히지 않았는가? (중략)

남자는 이래야 한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처음부터 둘로 나누려고 해서는 안 된다.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살다보면 비슷한 점도 많고 닮아가는 점도 있다. 여성과 남성, 소년과 소녀, 엄마와 아빠의 차이는 분명히 있지만 그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다. 치마 입은 남자, 양복 입은 여자가 많이 나오는 그런 세상이면 어떤가?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고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성적인 차별은 부정하고 차이만을 인정하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남녀 평등세상" 슬기롭게 짚어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차별은 끊임없는 사회 불안과 저항, 낭비를 만들어 냅니다. 아름다운 사회는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차별은 없는 세상입니다. 이 글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남녀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서로의 역할을 이해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갈 지혜가 필요함을 슬기롭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임두빈/충남국어교사모임 회원, 양화중학교 교사 idb72@chol.com

승자와 패자
압승· 참패로 끝난 지방선거
가려움 긁어주는 정책 세워
윈윈 게임 이끄는 지혜 쌓길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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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로 잡는 논술

점과 점 사이를 잇는 최단 거리 점들의 집합을 직선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정밀한 자와 펜을 가지고 선을 그린다 할지라도 정의한 직선을 그릴 수는 없다. 현미경으로 직선을 보면, 그 직선은 너무나 많은 점들의 집합으로 보인다. 과연 어떤 점과 어떤 점을 이은 것이 정의한 직선이 될 수 있을까? 직선은 관념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개념일 뿐이다.

사과 1개 더하기 사과 1개는 사과 2개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1+1=2’라는 수학의 의미를 설명한다. 그러나 이 등식이 성립하려면 이 세상에는 수분과 밀도와 당분과 질량과 색깔, 그리고 맛이 똑같은 사과가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사과 1개 더하기 사과 1개는 사과 2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의 세계에서는 똑같은 것은 사과 뿐만이 아니고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다양한 사물과 현상을 추상화 한 개념으로 이 세상을 설명하고 이해한다. 개념은 다양한 세상의 사물을 정리하고 구분하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고 결과물이다. 이 개념들을 갖고 인간은 정보를 교환하고 지식을 확장시킨다. 지식 확장을 포함한 인간 모든 활동은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그런 삶의 과정 중 하나가 바로 선거이다. 선거는 자신의 입장을 대신할 대표자를 뽑는 유권자 국민의 선택행위이다.

유권자 51.3%의 투표율. 광역단체장 16곳 가운데 한나라당 12곳, 열린우리당 1곳, 민주당 2곳.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싹쓸이 할 정도로 한정당의 지자제 의원을 선택한 국민. 국민은 투표로 당선자와 낙선자,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며 민의를 나타내었다. 선거결과로 따진다면 여당은 패자고 야당은 승자다.

승리와 패배를 결정하는 요소는 조직이나 정당에 내외적으로 종합적으로 존재한다. 그 어떤 투표라 할지라도 사회 구성원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은 있을 수 없다. 최대한의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보고, 최소한의 사람들이 손해를 감수하는 정책이 좋은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이런 이유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100%의 찬성과 반대는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절대적 승자와 절대적 패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 태극기의 태극 모양을 보면 양과 음이 있고 그 양과 음은 서로를 침범하고 있다. 정확하게 음과 양이 구분되어 있지 않다. 음 속에 양이 있고, 양 속에 음이 있다. 생명 속에는 모순되는 생과 사가 있다. 이 모순되는 생과 사가 끊임없이 싸우고 다투면서 생성변화하는 것이 생명활동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생과 사의 끊임없는 교체로 운동과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말한다. 그 변화의 과정 중에서 승자와 패자의 명확한 구분은 필요하다. 하지만 잘 살아야 한다는 삶의 목적에서는 그 구분의 의미가 작아진다. 흔한 말로 생 속에 사가 있고 사 속에 생이 있듯이 승리 속에 패배의 가능성이 있으며 패배 속에 승리의 기운이 있는 법이다.




승자와 패자는 세상을 해석하고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고 방편이다. 이 개념을 통해서 인간은 보다 편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세상을 구분하며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설명의 궁극적 목적은 보다 잘 살기 위해서다. 승자와 패자라는 구분을 통해서 그들 각각은 대내외적인 승리와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고 보완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다음의 선거에서는 자신을 택하지 않은 국민들을 위해서 국민들의 가려움을 긁어 줄 수 있는 정책과 전략을 세우면 승자와 패자 모두는 윈윈(Win Win)의 게임을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수석/인천 동산고 교사, <교과서를 만든 철학자들> 저자

핵심 꿰뚫는 질문 기법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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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로 키우는 논술내공

“회장이 되는 데 가장 필요한 소질은 무엇일까요?”

“회장이라면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은 무엇인가요?”

학급 임원을 뽑을 때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흔히 던지곤 하는 물음들이다. 심리학의 연구에 따르면, 선거 결과는 질문을 어떻게 던지느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앞에서 소개한 첫 번째 질문을 받았을 때, 학생들은 출마자들의 장점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반면,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자기도 모르게 누구에게 어떤 단점이 있는지를 떠올리고 있기 십상이다.

장점 위주로 비교할 때와 단점 중심으로 평가할 때의 결과가 같을 리 없다. 던져진 질문 따라 유권자들의 관심의 방향이 바뀌기 때문이다. 이처럼 질문은 생각의 방향을 결정짓는 방향타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질문을 제대로 던지는 기술은 주장을 잘 펼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나아가, 질문은 생각을 여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쓰레기통은 일상에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생활소품’이다. 당연한 것에 대해 특별히 고민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누군가 “이 많은 쓰레기는 어디로 갈까?”라고 질문을 던졌다면 어떨까? 새삼스레 의문이 찾아 들 터다. 인간에게는 “왜?”에 대하여 이유를 찾으려는 ‘논리본능’이 있는 탓이다. 마찬가지로 “왜 시각 장애인을 위한 안내 보도블록은 노란색일까?”라는 물음은 평소에 무심코 지나쳤던 사실에 대해 호기심을 일깨운다. 이처럼 물음은 문제를 문제로 받아드리고 해결책을 찾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그렇다고 모든 물음이 호기심을 깨우고 해결방안을 찾게 하지는 않는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우정이란 무엇인가?” 등은 삶의 가치관을 다잡게 하는 대단히 중요한 물음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이런 부류의 물음은 너무나 거대하고 추상적이어서 황당하게 여겨지기 쉽다. 그래서 대답도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끝나기 쉽다.




하지만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넌 그 아이가 친구라고 생각해?”라는 물음은 어떨까? 친구의 배신으로 아파하는 사람에게 이 질문은 절실하고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이 질문은 “우정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다르지 않다. 어떻게 답을 하느냐에 따라 우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좋은 질문이란 이렇듯 구체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본질과 핵심을 꿰뚫는다. 일본의 질문 전문가 사이토 다카시(齊藤孝)는 이를 ‘구체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이라고 부른다. 다카시는 어느 통신회사의 설문조사를 예로 보여준다. 회사는 고객 만족도를 알아보기 위해, “통화 품질에 만족하십니까?”라는 물음을 던졌다고 한다. 그러나 회사는 원하는 바를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고객들 하나하나의 취향이 다르니 대답이 객관적일 수 없었을 뿐더러, 길게 설명하기 귀찮아 전화를 끊어버리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회사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을 만들어 냈다. 이번에는 고객들에게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라고 물었단다. 회사는 이 질문으로 비로소 원하는 바를 알아낼 수 있었다. 사무실, 운동장, 상가 등등의 대답에 따라 사람들이 어디서 전화를 많이 쓰는지를 알 수 있었을 뿐더러, 연결된 전화 상태에 따라 장소에 따른 통화품질도 가늠할 수 있었다. 이처럼 구체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은 대답하기 쉬우면서도 원하는 핵심을 꼭 짚어낼 수 있게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구체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먼저 내가 묻고자 하는 바의 핵심부터 정리하자. 학급회장을 뽑는 선거에서라면, 내가 반의 지도자에게 바라는 게 무엇인지부터 분명히 하라는 뜻이다. 성실성, 리더십, 배려심, 희생정신 등등. 그리고 각각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는 사례를 떠올리고 이에 대한 물음을 만들어 보자. “청소가 끝나고 20분이 지났는데도 담임선생님이 오지 않으시면 그냥 가도 되는가?”라는 물음을 통해서는 출마한 학생들의 성실성과 리더십을 가늠할 수 있을 터다.

질문은 ‘성실함과 성실하지 않음’, ‘배려심 있음과 없음’과 같이, 알고자 하는 항목의 결과를 명확하게 가릴 수 있을수록 좋다. “청소 당번이 모두 도망가고 혼자 남았을 때는 어떻게 할까?”같은 질문이 그 답을 줄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혹시 내가 던지는 질문이 상대에게 꼭 물어야 할 것보다 나 자신의 관심사에 더 쏠려 있지는 않은지 자문(自問)해 보는 과정도 꼭 필요하다. 매슬로(A.Maslow)는 “망치를 잘 다루는 사람은 모든 것을 못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라는 경고를 남겼다. 나의 편견으로 상대를 올바르지 못하게 재단하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 볼 일이다.

뇌를 깨우는 논리 체조

제대로 된 학생회장을 뽑기 위해서는 출마자들의 품성과 능력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어떤 질문을 던져야 출마한 학생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까요? 에이치알(H. R.) 시간 등을 이용하여, 지도자를 뽑을 때 물어야 할 ‘구체적이고도 본질적인 질문’들을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 봅시다.

체조 방법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정직과 성실, 일관성, 설득력, 리더십, 희생정신 등등. 먼저 학생회장에게는 어떤 점들이 갖춰져 있어야 하는지 생각나는 대로 적어봅시다. 그리고 여러 덕목 중에서 우선해야 할 것과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을 나누어 정리하고 순서를 매겨보세요. 자신은 어떻게 덕목들의 순서를 정했는지를 친구들에게 설명해 봅시다.

순위가 정해졌다면, 각각의 덕목을 갖추고 있는지가 드러날 수 있는 구체적인 상황을 떠올려 보세요. 될 수 있는 데로 모두가 알만한 이슈와 상황을 사례로 삼아야 질문 던지는 의도를 친구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답니다.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