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욕설은 공감해달라는 또다른 표현일 수 있어”

등록 : 2013.03.11 10:05수정 : 2013.03.11 10:05

인터뷰 l <나란 놈, 너란 녀석>쓴 교사들과 학생의 만남
고교 가면 친구 잘 사귀어라? 지레 긴장하지 마
나를 사랑해줘야 남과의 관계도 원만할 수 있어

어른들만 ‘관계맺기’에 대한 고민을 할까? ‘작은 사회’라 불리는 학교 안에서도 관계에 대한 갈등이 많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갈등만 있는 게 아니다. 평균 하루 10시간 이상 한 공간에서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는 친구와의 갈등으로 학교생활이 지옥 그 자체인 학생들도 많다.

얼마 전, 인천지역에서 근무하는 교사들로 이루어진 인천교육연구소(이하 ‘연구소’)의 교사 7명은 십대들의 ‘친구 관계’에 관한 22가지 멘토링을 담은 책 <나란 놈, 너란 녀석>을 썼다. 실제 학생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어떤 또래관계 고민으로 힘들어할까? 지난 2월25일 연구소 교사들(마곡초등학교 김국태 교사, 하정초등학교 이정숙 교사, 인천해양과학고등학교 임병구 국어교사)과 학생 독자(서울 충암고 황선권군, 곽재호군, 청주 서원고등학교 김희윤양)가 만났다.

김희윤(이하 ‘김양’) “책을 보면서 공감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약속하고 신뢰는 꼭 붙어 있는 두 개 문’이라는 주제가 인상 깊었어요. ‘약속 잘 안 지키는 애다’라는 말을 듣기 싫으면 약속과 신뢰라는 가치를 기억하라고 하셨잖아요. 제가 늦잠을 자서 친구를 두 시간 정도 기다리게 한 적이 있었어요. 석 달 동안 말을 안 해서 매일 카카오톡(이하 ‘카톡’)을 보내고, 미안하다고 했어요. 간신히 다시 친해졌죠. 책 읽다가 그때 제가 잘 해결한 건지도 궁금해졌어요.”

이정숙(이하 ‘이 교사’) “정답은 없어요. 카톡도 보내고 3개월 동안 용서를 빌었잖아요. 그 끈기와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신뢰가 한 번 사라지면 그걸 회복할 수 없어요. 근데 노력했잖아요. 한두 번 하다가 ‘너 너무 심하지 않냐?’ 소리가 나올 법도 한데 될 때까지 했다는 건 굉장히 성숙한 자세입니다.”

임병구(이하 ‘임 교사’) “저는 악마의 조언을 해볼게요.(웃음) 희윤양 성격도 좋고, 착해 보이는데 늦잠 한 번 잔 것 가지고 석 달을 말을 안 하다니 그 친구도 너무하네요. 관계에서 가장 높은 경지는 내가 실수를 해도 편할 수 있는 관계입니다. 그 친구한테 ‘내가 버티기 해줄게. 너도 늦어봐.’ 그렇게 말해주세요.(웃음)”

황선권(이하 ‘황군’) “욕으로 소통하는 아이들 이야기에 관심이 갔어요. 요즘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욕을 일상적으로 사용하잖아요. 이유가 뭘까요?”

김국태 교사(이하 ‘김 교사’) “자기계발서를 쓸 때 조심스러운 게 사회적인 문제를 개인의 책임 문제로 떠넘기게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욕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사회에서 학생들이 서 있는 위치가 불안하고, 계속해서 위기의식을 조장하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철저하게 서열화되어 있고, 학교와 학원 사이를 뺑뺑 돌며 사는데 욕이라도 없으면 뭘로 불안을 견디겠어요. 십대에게 욕은 서로 같은 의식을 소유한 공동체의 일원임을 느끼고 싶어서 하는 일종의 ‘공감’의 표현일 수도 있어요. 그게 ‘×라’ 등으로 표현되는 겁니다. 마음을 알아주려는 따뜻한 공감이 필요하다는 의미죠. 그럴수록 아무 말 안 하고 바라보기만 해도 뜻이 통하는 공감 상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양 “청소년 또래관계와 관련된 여러 주제가 나오잖아요. 이번 책은 어떤 계기로 쓰신 건가요?”

임 교사 “학교 내 수직체계가 강화되고 경쟁도 심해지다 보니 교사와 교사,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교사와 학부모 등 사람 사이 관계들이 무너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위로와 공감을 주자는 뜻에서 책을 썼어요. 주목한 부분이 학생과 학생 사이의 관계 문제였죠.”

황군 “부제가 ‘열일곱 살, 친구관계를 생각하다’입니다. 이 자리에 오기 전에 친구들한테도 친구관계에 대한 고민을 물어봤어요. 근데 입시, 성적에 대한 얘기를 하더라고요. 책 내용 중에 ‘경쟁’과 관련한 것도 나오잖아요. 사실 고교 생활을 하다 보면 공부에 시달려서 관계 자체를 맺기가 어렵습니다.”

임 교사 “사회가 학생들에게 주입한 강박이 있을 수 있어요. 흔히 고교 가면 잠을 줄이고, 친구도 덜 만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근데 학습을 효율적으로 하려면 휴식, 친구들이나 선후배 등 또래관계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나도 중요합니다. 요즘은 이른바 스펙 관리를 할 때도 성적만 있어선 안 됩니다. 너무 다양한 걸 요구한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어쨌든 동아리 활동 등 다양한 활동들이 현실적으로 필요해졌죠. 물론 동아리가 학습이나 입시를 위한 활동만은 아니죠. 기본적으로 관계를 만들어주는 곳입니다. 경험치도 쌓을 수 있고, 멘토를 만날 수도 있죠. 부모님께서 입시 그리고 동아리 활동이 너무 상반된 거라고 생각하지 않게 ‘나는 이 활동을 통해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떻게 성장하겠다’고 잘 설득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김양 “저는 곧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합니다. 두려움이 있어요. 중학교 때까지는 얼굴을 다 아는 친구들이 모여 있었지만 고등학교에 가면 다양한 곳에서 친구들이 오기 때문에 잘 사귈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이 교사 “오히려 좋은 걸 수도 있어요. 너무 친한 친구들이 그대로 함께 진학하게 되면 새로운 친구를 사귈 기회를 잃어버리죠. 내가 지금 아는 지식이 전부가 아니고, 내가 아는 사람관계만이 전부가 아니에요. 또다른 내 모습도 알고, 교감할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될 겁니다.”

(왼쪽부터) 임병구 교사, 곽재호군, 황선권군, 이정숙 교사, 김희윤양, 김국태 교사가 청소년의 또래관계에 얽힌 이야기를 나눴다.

임 교사 “고교 체계라는 게 학급별 조직도 있지만 동아리 활동도 옛날보다는 많습니다. 학급 친구들과 지내다가 관계가 잘 안 맺어질 것 같으면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친구를 사귈 수도 있어요. 고등학교를 너무 긴장된 시선으로 바라보지 마세요.”

김양 “요즘 학교폭력 등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잖아요. 학교폭력도 친구관계에서 비롯되는 작은 문제에서 시작하는 일이 많죠. 선생님들 학창시절에도 이런 문제들이 있었나요?”

임 교사 “옛날 학교폭력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는 것처럼 상상을 초월했죠.(웃음)”

김 교사 “폭력에 대해 낭만적인 시각이 있었죠. 물론 그 시각이 좋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낭만성이 결여된 게 사실입니다. 학교폭력이 일어나면 무조건 규칙으로 해결합니다. 규칙을 적용하기 전에 한 번은 ‘무슨 일이냐?’라고 물어봐줘야 하는데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된다며 선을 명확하게 그어버리죠. 아이들 이야기를 듣기 전에 순식간에 위원회가 만들어져서 공식적인 절차가 진행된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곽재호군 “책을 읽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김 교사 “관계 문제에서 제일 중요한 게 결국 자신이라는 겁니다. 자존감이죠. 내가 나를 얼마나 인정해주느냐가 친구관계에서 굉장히 중요해요. 자신을 충분히 인정해주고 내가 다른 사람한테 얼마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지 알아주면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교사 “학생들은 지적받는 데 익숙해지기 쉬워요. 나를 인정해주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을 통해서 괴롭히거나 반목하거나 갈등합니다. 그걸로 정체성을 찾아가려는 부정적인 자기 자신을 만들게 되는 거죠. 자신을 스스로 북돋워줘야 합니다. 저는 한때 월급을 받으면 ‘정숙아. 한 달 동안 너무 수고했다’며 저 자신에게 선물을 하나 사줬어요. 성적이 오르면 스스로 모아둔 돈으로 자신한테 선물을 해주세요. 나를 인정하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원만해질 수 있습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

수학·물리·화학 등도 ‘토론’ 대상 될 수 있어

등록 : 2013.03.11 10:14수정 : 2013.03.11 10:14

지난 2월25~26일 전남 벌교고등학교에서 열린 교과 디베이트 지도사 과정 연수 참가 교사들이 디베이트 ‘전략회의’를 하는 모습. 한국디베이트연구원 제공

이제는 교과 디베이트다
① 대한민국은 ‘새 교육 탐색 중’
② 교육혁명, ‘교과 디베이트’가 답이다.
③ 디베이트 코치, 이런 자질을 키워라.

교과서 자체가 밀도 깊고 삶에 도움 되는 텍스트
핵심 철학은 “생각을 서로 나누면서 해결책 찾기”

지난 2006년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서울대 사이에서 작은 논쟁이 있었다. 이어령 전 장관이 대입 논술 시험에 대해서 “평생 글을 써온 나도 이런 종류의 글쓰기에는 자신이 없다”며 대입 논술 시험이 과도하게 어렵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서울대 논술출제위원장을 맡고 있던 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현대 교육을 받지 못한 분에게 대입 논술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교수의 말은 통쾌하기 그지없었지만 설득력은 없었다. 이 전 장관은 <축소 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 등 100권이 훨씬 넘는 책을 저술했고 분야도 시·소설·수필·희곡·평론·논설문 등 다루지 않은 장르가 없었다. 한국을 대표할 지성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전 장관에게 어려운 논술이 학생들에게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학들은 “정상적인 고교 과정을 밟은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풀 수 있는 문제를 낸다”고 공언했지만 학생들은 대입 논술을 매우 어려워했다.

대학 쪽의 주장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다. 초중고교 교과서에는 많은 ‘탐구활동’ 및 ‘토론 활동’을 위한 예제, 그리고 요약하고 비판하는 ‘논술 문제’들이 실려 있어서 “이것들을 교실에서 충실히 다뤘다면 대입 논술을 위한 충분한 훈련이 됐을 것”이라는 말은 논리적으로는 맞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대입에서 논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육박했지만, 수능 성적이 뒷받침되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에 학생들로서는 수능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고, 정작 논술 시험을 앞두고는 준비 시간이 너무 없어 자신의 낮은 독해력, 문장력 등을 한탄하며 발만 동동 구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토의·토론 수업은 21세기 창의 교육을 위해서는 필수다. 교과 과정에도 들어 있는 토의·토론을 교실에서 다루지 않는 것은 교사들의 직무 유기다. 문제는 “현실의 교실에서 그게 가능한가”이다. 황연성, 유동걸, 김미향 교사 등 오랜 시간 토론식 수업을 해온 교사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학교 수업은, 예컨대 수학 문제 풀기, 물리·화학 실험 등도 모두 ‘토론’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토의·토론식 수업을 하면 참여도도 높고 만족도도 높다”고 이들은 덧붙인다.

단, 40명을 넘나드는 한 반 정원은 부담이 된다. 캐나다 공립학교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있는 경기도 성남시 금곡동의 ‘비아이에스(BIS)캐나다’는 정원이 25명이고 올해 문을 여는 ‘평촌 피아이에스캐나다’는 정원이 20명이다. 비아이에스캐나다의 한 학부모는 “우리 아이가 다니고 있는 학년의 학생 수가 26명으로 늘자 즉시 13명 2개반으로 쪼개졌고, 그러니까 훨씬 수업이 알차졌다”고 말했다. 출산율 저하로 청소년 수는 줄어들고 잠재적 교사 요원은 많은 현실에서, 외국 학교처럼 학생 수를 줄이는 ‘교실의 다운사이징’을 단행하고 수업에 ‘디베이트’를 접목하는 것이 장기적인 교육 방향이 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방과후 활동이나 동아리 활동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방과후 토론교실의 경우 인기가 높아서 금세 마감되는 경우가 많다. 정규 수업과 달리 이들 활동은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수업에 참여한다. 문제는 토론식 수업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교재와 커리큘럼, 그리고 교사다.

교재는 이미 교과서에 있는 토의·토론·논술 문제들을 활용하면 된다. 고교 과정의 경우, 국어·사회·도덕·법과 정치·윤리와 사상 등의 교과서에 단편적으로 나와 있는 텍스트나 탐구활동들을 주제별로 재배치해야 한다. 예컨대 사회과의 ‘자유와 자율’ 단원에 있는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를 비교 분석하고, ‘도덕’과 ‘선택’의 개념 등을 요약하는 논술·토의 훈련을 한 다음에 “초중고에서 체벌을 허용해야 한다”는 논제로 디베이트를 하는 식이다. “불법체류자인 외국인 노동자 자녀의 교육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논제의 디베이트는 ‘지식정보화 사회와 인권’, ‘다문화 사회’ 등의 단원과 연결된다. 이렇게 ‘논제’를 중심으로 연관 교과서 수업을 진행하면 아이들은 ‘디베이트’라는 게임을 즐기는 과정에서 교과서 텍스트가 갖는 의미를 확실히 체득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디베이트 수준도 향상된다. 사실 교과서 텍스트만큼 밀도 있고 삶에 도움이 될 만한 텍스트도 찾기 쉽지 않다.

디베이트 이전에 하는 토의·논술 훈련은 모둠 수업으로도 할 수 있다. 예컨대 20명 한 반이라면 6명, 7명, 7명으로 나누어 모둠을 결성한다. 다음에는 교과서 텍스트를 요약하는 문제를 3개 주고, 마음에 맞는 텍스트를 고르게 하여 텍스트별로 모인 ‘전문가 모둠’을 만든다. 학생들은 ‘전문가 모둠’에 속하여 텍스트를 심층 분석한 뒤, 자기 모둠에 돌아가 연구 결과를 설명해 준다. 자기 전문 분야가 아닌 텍스트는 그걸 담당한 다른 ‘전문가’에게서 배운다. 이런 식으로 학생들은 협력하여 연구하고, 연구한 내용을 서로 가르쳐주고 배운다. 토의·토론 수업의 핵심 철학은 “생각을 서로 나누면서 해결책 찾기”이다. 이런 틀에서 생각하면 ‘기법’은 얼마든지 생각해낼 수 있다. 시나 소설, 비문학 등의 텍스트를 다루는 국어는 물론 사회·물리·수학 등의 과목도 모두 이런 형식으로 진행할 수 있다.

교사는 토의·논술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그 결과가 토론의 논제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학생들이 스스로 묻도록 유도해야 한다. 디베이트가 끝나면 강평을 통해서 학생들을 격려하고 개선할 점을 조심스레 제시한다.

디베이트 이후에는 정규 교과와 연계된 독서활동, 일명 ‘교과 독서’를 활성화하도록 한다. 교과 디베이트 과정에서 주제와 관련하여 체득한 다양한 관점들로 책의 내용을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교과 독서의 장점이다. 거꾸로 교과 독서는 교과서 텍스트에 대해서 더 심층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조벽 동국대 교수는 교사의 네 가지 등급을 다음과 같이 나누었다. D: 교사가 묻고 교사가 답. C: 교사가 묻고 학생이 답. B: 학생이 묻고 교사가 답. A: 학생이 묻고 학생이 답. 토의와 토론, 디베이트, 교과 독서를 활용한 수업 방식은 조벽 교수가 구분한 네 단계 중 A급 교사의 수업 방식이 된다.

김왕근 한국디베이트연구원 이사 slbu@naver.com

제시문 분석 없이 무턱대고 도표부터 들여다보지 말라

등록 : 2013.03.11 10:32수정 : 2013.03.12 15:12

라파엘로가 그린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 학당’ 모습. 자료사진

수시논술 ‘숨은 해법’

■ 도표분석의 정석

도표는 하나의 사례로 간주해야

도표분석을 어려워하는 수험생이 많다. 당연하다. 도표나 그래프는 일반 제시문과 달리 언어로 구성되지 않고 숫자나 선으로만 이루어진 자료이기 때문이다. 논술의 출제원리나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시간을 허비하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우선 출제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출제자는 전체 논술 주제와 평가항목을 설정한 뒤 이에 걸맞은 제시문을 선정한다. 그 뒤 특정 제시문의 주장을 뒷받침하거나 반박할 수 있는 도표를 찾는다. 따라서 도표는 다른 제시문의 주장을 뒷받침하거나 반박하는 근거가 된다. 도표의 이러한 특성은 고등학교 교과서만 살펴봐도 이해할 수 있다. 사회탐구 교과서에는 수많은 도표와 자료가 담겨 있다. 이 자료들은 특정 주장을 증명하거나 구체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맥락에서 동원된다.

요컨대 도표는 특정한 주장을 지지하거나 반박하는 사례의 일종이다. 도표 자체를 뚫어져라 들여다봐도 날것의 숫자나 계량화된 막대, 그래프의 변동은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는다. 도표는 독립변수(x축)와 종속변수(y축)의 연관성 속에서만 그 의미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 그 의미는 또한 그 도표를 만들어낸 조사자나 연구자의 의도와 관련해서만 규정될 수 있다. 따라서 최초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어야 데이터 속에서 유의미한 정보를 바르게 이끌어낼 수 있다. 변수들의 내용과 그 관계가 선명해서 의미를 추출하기 쉬운 경우에도 문제 전체의 의도와 무관하게 의미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도표를 분석할 때는 무턱대고 도표부터 들여다볼 것이 아니라 역으로 평가나 비판의 대상이 되는 제시문의 주장을 먼저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 그런 다음 주장과 일치하거나 반대되는 유의미한 데이터를 도표 속에서 찾아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설사 논제에서 ‘도표를 분석한 후 이를 바탕으로 다른 제시문을 평가(비판)하라’고 하더라도 그 요구사항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논제를 부정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출제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불필요한 헛수고를 덜고 출제의도에 부합하는 답안을 작성할 수 있다.


■ 도표분석의 실전 2013 수시 기출문제(연세대 사회계열)-두 문항 중 문제 2번만 다룸

‘긍정적 환상’은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까?

문제 2>제시문 (라)를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시문 (가-1)을 평가하시오. (1000자 안팎)

(가)

가-1. 기원전 4세기경 그리스 철학자 데모스테네스는 “자기를 속이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은 없다. 우리는 바라는 것을 쉽게 믿어버리고 만다”고 말했다. 몇 가지 조사에 따르면 ‘자존감’뿐 아니라 ‘행복’도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관련이 없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현실 인식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바보의 낙원’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행복한 사람들은 자기가 우월하게 보일 비교 기준을 선택할 뿐 아니라, 자신에 대해 사실이 아닌 의견을 견지한다는 증거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와 자기의 미래를 ‘장밋빛 안경’을 통해 바라본다. 이러한 결론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자기에 대한 긍정적 편향을 갖는 것이 정확하고 유효한 자기 평가를 하는 것보다 실제로 정신 건강에 더 좋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현상을 ‘긍정적 환상’이라고 한다. 자기에 대한 지나친 긍정적 평가와 미래에 대한 과도한 낙관적 신념, 그리고 자기 자신이 주변을 통제할 수 있다는 지나친 자신감은 자신의 정신 건강에 더 유익하다고 한다. 긍정적 환상이 더 나은 육체적 건강, 그리고 역경에 대한 보다 나은 대응 방법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조사에 따르면 긍정적 환상을 더 자주 품는 학생들이 시험에서 더 좋은 성적을 받았다.

(라)

시험을 치른 학생들을 ‘낙관성’과 ‘자기 능력에 대한 인식의 현실성’을 기준으로 네 집단으로 나누어 시험성적을 분석하였다. 다음 도표는 집단별 시험성적의 평균값을 보여준다. 성적은 점수가 높을수록 우수한 것으로 해석한다.


■ 정석의 적용

출제의도와 관련된 중요 수치만 서술해야

제시문 (라)를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시문 (가-1)을 평가하시오.

논제에서는 (라)를 먼저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1)을 평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논제에 충실하라는 금언을 기억하는 학생들은 먼저 (라)를 의미화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물론 도표를 선입견 없이 객관적으로 해석하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출제과정을 이해한다면 (가-1)의 핵심 주장을 규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또한 논제에서 요구하는 ‘평가’라는 과정이 주장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과정임을 이해한다면, 평가의 대상이 되는 주장을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가-1)의 주장을 핵심어 위주로 정리해 보자. (가-1)에 따르면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보다는 긍정적 환상이 행복을 가져온다. 즉, 정확하고 유효한 자기 평가보다는 자기에 대한 긍정적 편향(긍정적 평가, 낙관적 신념, 자신감)이 정신건강에 더 좋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긍정적 환상을 자주 품는 학생들이 시험에서 더 좋은 성적을 받았다.’는 마지막 문장을 통해 구체화된다.

이를 토대로 (라)의 도표를 분석해 보자. 고려해야 할 독립변수가 두 가지이기 때문에 다소 복잡하다. 즉 낙관성과 현실정의 정도는 종속변수인 시험점수(y축)에 각각 영향을 미치면서도 서로 구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가-1)이 현실성과 낙관성을 대립적인 요소로 보면서 낙관성이 현실성보다 긍정적 결과를 도출하는 데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 것과는 다른 점이다. 이해의 편리를 위해 도식을 활용하면 다음과 같다.

(가-1)의 주장

낙관성〉현실성

낙관성→좋은 점수

(라)의 내용

낙관성+현실성→좋은 점수

이로써 (가-1)의 주장이 단면적이었다는 점을 비판하는 근거가 마련되었다. 이후에는 도표를 세심하게 분석하여 비판의 근거를 차근차근 추출해야 한다. 도표를 분석할 때는 모든 수치를 언급할 필요가 없다. 출제의도와 관련된 중요한 수치만을 서술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숫자들을 더하거나 빼거나 곱하거나 나누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라)의 도표에 따르면 현실성이 낙관성보다 시험점수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현실성이 높은 집단의 평균은 4.5이며 낮은 집단의 평균은 2.8이어서 그 격차가 큰 반면 낙관성의 정도가 높은 집단의 평균 3.5와 낮은 집단의 평균 3.8은 미미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낙관성과 시험점수는 오히려 반비례 관계를 보여주었다.
1947년 11월 팔레스타인 내 유대 독립국 설치 발표에 환호하는 텔아비브 시민들. 시오니즘도 미래에 대한 낙관을 기반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그런데 이 분석만으로는 심층적인 답안을 완성하기 어렵다. 분량을 채우기도 힘겹다. 그렇다면 다른 의미도 추출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특이값에 주목해야 한다. 도표를 출제하는 의도는 특이값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데 있다. 따라서 도표의 전체적인 경향성에 주목하되 특이값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이를 찾아내지 못하면 합격할 수 없다. 이 도표에서 특이값에 해당하는 항목은 ‘낙관성이 높고 현실성이 낮은 집단’이다. 이 집단은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그 이유를 심층적으로 분석해야 좋은 답안을 쓸 수 있다.

이제 분석 내용을 정리해 보자. 도표는 현실성이 낙관성보다 시험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낙관성의 영향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낙관성이 시험성적과 반비례 관계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성이 높은 집단의 경우에는 낙관성이 높을수록 더 좋은 결과를 거두었다. 요컨대 현실성과 낙관성 모두 시험성적에 영향을 미치며 둘 중에서 현실성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지금까지 논제의 요구사항과는 반대의 접근 과정을 거쳤다. 2013년 연세대 도표 분석 문제는 도표만으로도 의미를 추출할 수 있고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평이했지만 예년의 문제들은 변수들의 연관성이나 의미를 파악하기 매우 어려웠다. 그럴 경우 이처럼 비판이나 평가의 대상이 되는 제시문의 주장을 먼저 정리하고 그 내용을 근거로 도표를 분석해 나가는 방법을 시도하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답안을 작성할 때는 논제의 요구 순서대로 작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큰 불이익을 당할 수 있으므로 유념해야 한다. 분석 내용과 (가-1)에 대한 평가를 부드럽게 연결하는 일은 수험생의 몫이다.

■예시답안

(라)는 낙관성과 현실성이 동시에 시험성적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실성은 시험성적과 양의 상관관계에 있다. 낙관성이 낮은 집단과 높은 집단 모두에서 현실성이 높은 집단은 현실성이 낮은 집단보다 높은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낙관성이 높은 집단에서는 그 격차가 2.5배 차이를 보인다. 이는 낙관성보다 현실성이 시험성적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는 점을 방증한다.

현실성에 비해 낙관성의 정도 차이는 시험성적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낙관성의 정도가 높은 집단의 평균은 3.5인 데 비해 낮은 집단은 3.8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낙관성이라는 변수와 시험성적이 반비례 관계를 보이는 이유는 낙관성의 영향이 현실성이라는 변수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낙관성이 높다고 해도 현실성이 낮은 집단은 다른 세 집단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점수를 기록한 것이다. 한편 낙관성과 시험점수가 반비례 관계만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현실성이 높은 집단의 경우 낙관성이 더 높은 집단의 점수가 최고의 점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요컨대 낙관성과 현실성은 시험점수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이며, 두 변수 중 현실성이 시험점수와 더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이를 근거로 할 때 (가-1)의 주장은 현실 인식의 중요성을 간과한 단면적인 주장이다. (가-1)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보다 낙관적 신념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즉, 긍정적 환상이 좋은 성적과 정신적 건강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물론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희망을 잃지 않게 하며, 고단한 현실을 견디어 내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에 기반하지 않을 때 낙관은 근거 없는 희망에 머물 뿐 발전적 미래를 실현시키지 못한다. 이는 요행만 바라면서 나태를 합리화하는 태도로 이어져 결국 주체를 긍정적 ‘환상’에만 머물게 만든다. 하지만 (라)에서 보듯 현실성을 결여한 낙관은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다. (961자)


■ 주제의 심층이해

다음 제시문을 읽고 위의 문제에서 언급한 낙관성과 현실 인식의 관점을 활용하여 F라는 인물의 죽음을 평가해 보자.

언젠가 나는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과 위험한 자포자기가 서로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아주 극적인 사례를 보았다.

우리 구역의 고참 관리인인 F는 그 전에는 꽤 유명한 작곡가이자 작사가였다. 그가 어느 날 나에게 고백했다.

“의사 선생,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꿈에서 어떤 목소리가 소원을 말하라는 거예요. 내가 알고 싶은 것을 말하래요. 그러면 질문에 모두 대답을 해줄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무얼 물어보았는지 아십니까? 나를 위해서 이 전쟁이 언제 끝날 것이냐고 물어보았지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소, 의사 양반? 나를 위해서 말이요. 저는 언제 우리가, 우리 수용소가 해방될 것인지, 우리의 고통이 언제 끝날 것인지 알고 싶었어요.”

“언제 그런 꿈을 꾸었소?” 내가 물었다.

“1945년 2월에요.” 그가 대답했다. 그때는 3월이 막 시작되었을 때였다.

“그래 꿈속의 목소리가 뭐라고 대답합디까?”

그가 내 귀에다 나직하게 속삭였다. “3월30일이래요.”

F는 희망에 차 있었고 꿈속의 목소리가 하는 말이 맞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약속의 날이 임박했을 때 우리 수용소(유대인 포로 수용소)로 들어온 전쟁 뉴스를 들어 보면 그 약속한 날에 우리가 자유의 몸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였다. 3월29일, F는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고 열이 아주 높게 올랐다. 3월30일, 그의 예언자가 그에게 말해 주었던 것처럼 그에게서 전쟁과 고통이 떠나갔다. 헛소리를 하다가 그만 의식을 잃은 것이다. 3월31일에 그는 죽었다. 사망의 직접적 요인은 발진티푸스였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송남권 논술칼럼니스트
최규윤 강남비상에듀학원 인문논술강사
안덕훈 이원장 학습전략학원 논술강사
어수창 청솔교육연구정보원 인문논술강사

진화론은 인간을 완전하게 설명 못한다

등록 : 2013.03.11 10:41수정 : 2013.03.11 10:41

김수연의 책과 껴울리는 시간
열쇳말 - 생명

<인간, 우리는 누구인가?>
헤닝 엥겔른 지음, 이정모 옮김, 을유문화사

<왜 인간인가?>
마이클 가자니가 지음, 박인균 옮김, 추수밭

<인간, 우리는 누구인가?>는 인간의 기원, 특징, 현재와 미래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독일의 르포르타주 잡지 에서 과학 저널리스트로 일했던 헤닝 엥겔른이 썼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생물학 관련 저술을 해온 작가의 저력이 책 속에 살아 숨 쉰다.

저자는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의 인간 탐구는 인간을 완전하게 설명하지 못한다고 역설한다. 다만 하나의 입장일 뿐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신의 창조와 섭리를 믿는 이들과도 화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연과학적으로 규명하지 못하는 부분에 신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진화생물학에 대한 편견을 제쳐두고 책장을 넘기게 하는 동인(動因)이다.

‘인간이 어디서 와서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질문은 누구라도 해봄직하지만, 이에 대한 대답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는 일은 만만치 않다. 헤닝 엥겔른이 이에 도전한 데는 꽤 오래전 발아한 호기심이 자양분이 되었다. 저자는 어린 시절 <생명의 신비>(Die Wunder des Lebens, 1962)라는 책을 읽으며 받았던 충격을 책머리에 적었다. 책에서 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상상화가 뇌리에 박혔고, 그들 생의 비밀을 풀고 싶었던 소년의 열망이 결국은 이 책을 쓰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10만년 전 나타난 호모 사피엔스 또한 헤닝 엥겔른처럼 호기심으로 무장한 존재였다.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급속히 거주지를 넓혔는데, 저자는 이들의 특징을 ‘넘쳐나는 창의력, 거역할 수 없는 호기심, 그리고 죽음을 무릅쓴 모험심’으로 압축한다. 지금의 삶이 판에 박히고 무미건조하다고 느끼며 자유를 꿈꾸는 현대인에게도 분명 이런 조상의 유전자가 꿈틀거리고 있을 것이다.

<인간, 우리는 누구인가?>에서는 호모 사피엔스 이전 초기 호미니드로부터 현생 인류에 이르기까지 긴 여정을 개괄한 후 현생 인류의 특징을 열거한다. 먼저 인간의 뇌는 다른 종의 뇌와 확연히 다르다. 신체에서 차지하는 상대적 크기, 좌우 반구의 비대칭성, 특정 영역의 두드러진 발달 등이 그러하다.

한편 이성 간의 사랑, 악에 대한 관념, 폭력의 기제, 다양한 감정의 표출, 환경의 영향 등에서도 독특한 면모가 있다. 책에서는 이들 각각을 하나의 장으로 독립하여 설명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컴퓨터 과학자들은 조만간 인간의 수준에 다다른, 더 나아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기계가 등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계가 자의식을 갖고 감정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보는 인공지능 연구가들도 있다. 저자는 이 주장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인간의 존재 양상이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인간, 우리는 누구인가?>에서 인류의 기원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흐름을 따라 조망했다면, <왜 인간인가?>는 ‘질적으로 다른 인간의 뇌’에 집중하여 깊고 넓게 파헤친다. 인지신경과학 분야의 대가 마이클 가자니가의 폭넒은 지적 관심을 읽을 수 있다.

인간의 특이성은 지구상에서 인간과 가장 닮은 존재인 유인원과 비교를 통해 좀더 구체적으로 파악된다. 먼저 두 발로 서서 걷기,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는 후두개의 발달 등 신체 기능상 차이가 두드러진다.

김수연의 책과 껴울리는 시간
더불어 뇌 구조 및 기능의 다름에서 파생하는 다양한 차이가 있다. 인간은 관측 가능한 지점을 넘어서는 추상적 사고가 가능하며, 그에 따라 사회적 상호작용 양상은 유인원과 확연히 구별된다. 또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하는 능력이 있다. 추상적 상징과 그 상징을 조작하는 규칙으로 만들어지는 인간 언어 또한 뇌 구조 및 기능의 독특한 분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간의 사회적 관계에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은 ‘협력’이다. <왜 인간인가?>에서는 ‘협력’을 진화의 관점에서 설명한 여러 이론을 제시한다. 집단선택이론, 혈연선택이론, 상호이타주의 등이다. 지난 연재에서 소개한 <초협력자>와도 함께 읽으면 좋은 대목이다.

윤리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도 등장하는 전차 딜레마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적용하여 분석한 결과는 흥미롭다. 이 상황에서의 가치판단은 철학적 논리로도 설명될 수 있지만, 뇌에서 감정적 반응과 연관된 부위가 활성화되는 것을 통해 진화론의 논리를 적용할 수도 있다. 이처럼 하나의 현상을 여러 분야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대목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미래 인간의 생존 조건이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는 점에 대해 두 책의 저자는 같은 의견이다. 그런데 <왜 인간인가?>에서는 좀더 우려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마이클 가자니가는 생태계에 인위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야기된 재난을 상기하며 인간 유전자를 개량하려는 시도에 잠재된 위험성을 암시한다. 또 인공지능 및 똑똑한 기계에 관심을 보이고는 있지만, 의식 있는 기계의 출현에 대해서는 좀더 회의적이다. 인간은 기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생명체라는 것이다.

<인간, 우리는 누구인가?>와 <왜 인간인가?>는 분량도 많고 다루는 내용도 만만치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후 관심 있는 주제를 다룬 장을 다시 꼼꼼하게 읽거나, 가장 끌리는 주제를 골라 그것부터 천천히 읽어가는 방법도 써 볼 만하다. 마이클 가자니가의 인터뷰와 강연 동영상은 인터넷 검색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보고 들으며 읽는 입체적인 방법은 배우고 익히는 데 꽤 효과적이다. 관심 있는 학생에게 권한다.

※ 껴울리다는 공명(共鳴)하다는 뜻입니다.

한겨레교육 강사, <통합 논술 교과서>·<유형별 논술 교과서> 공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