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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재미있는 그림읽기 16호>
◆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사랑
'아니카 선생님의 작품세계’

Annika Theron / Black marker on paper
● 여백 그리기
지난 7월3일 삼척문화예술회관에서 특이한 그림이 전시 되었는데요. 삼척원덕중에 근무하시는 아니카 선생님의 작품이었습니다. 아니카님의 그리기 방식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보통의 그리기 방식과는 완전 반대였습니다. 보통의 경우, 어떤 대상을 표현할 때,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먼저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죠. 그런데 아니카 선생님의 작품을 보면 나무, 달, 사슴이 우리 눈에 분명 보이지만, 그러나 정작 선생님의 그리기 작업은 나무, 달, 사슴을 아예 묘사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그림 작업은 대상의 주인공들이 아니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여백과 공간에 정성을 쏟고 있었습니다. 별을 위해서 별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별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과 공간의 관찰에 집중하고 이것을 묘사함으로써 비로소 별은 반짝거립니다. 선생님의 이런 허공과 여백 그리기의 열정은, 아마도 반짝이는 별보다 별이 이렇게 반짝이도록 한 우주 공간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착이 아닌가 합니다.
● 까만 여백에 담긴 이야기
우리는 미술시간에 무채색 검정색을 밤, 죽음, 슬픔, 침묵의 색으로 배웠고 또 그런 방식으로 표현해 왔습니다. 하지만 아니카님은 이런 상식적인 습관을 완전히 깨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여백그리기는 단지 대상과 주인공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또 달과 별을 더욱 밝게 하는 단순한 까만 밤도 아니며, 대상을 돋보이기 위해 무작정 새까맣게 칠해버린 바탕도 아닙니다.
아니카님의 허공과 여백은 대상과 사물 자신이 갖는 감성보다 훨씬 풍부하고 다양한 향기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과 귀에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나무와 별, 하늘과 바람, 나뭇잎과 풀, 산과 새들과 나눈 소통과 느낌을 이렇게 우리에게 보여주고, 또 소리 내어 듣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마치 피터팬처럼 허공을 마음껏 날기도 하고, 서로 손잡고 강강수월래를 돌다가 저 멀리 나뭇잎과 함께 사라지기도 합니다.

아니카님의 허공과 여백의 이미지는 우리의 시각뿐 만 아니라, 청각과 후각 등 우리의 모든 감각을 깨웁니다. 허공과 여백은 텅 빈 엑스트라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이어주고 함께 어울리는 신나는 놀이터이고 진짜 우리의 주인입니다.
● 모든 것에 대한 사랑
자, 그렇다면 아니카님의 표현주제는 과연 무엇일까요? 작품에 등장하는 대상을 다시 한번 살펴보죠. 화면에 바로 코끼리가 보이는가 싶더니 풀과 나무 잎사귀들이 그의 몸에 온통 수를 놓았고, 하늘의 은하들이 나뭇잎과 어울려 반짝이고 하나가 됩니다. 숲속의 넝쿨은 넘실넘실 춤을 추고 달도 별도 신이 났습니다. 사슴의 배경이 숲인가요? 숲의 배경이 사슴인가요? 누가 주연이고 누가 조연인가요? 이런 의문의 헷갈림도 잠시, 주렁주렁 하늘로 뻗은 사슴뿔에 잎들이 열렸고, 어느새 하늘의 별들도 가지를 붙들고 손을 흔듭니다. 아니카선생님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우선 순위를 매겨 차별하지 않습니다. 아니카님은 나무 풀 지푸라기 사슴 새 하늘 별 바람과 티끌까지도, 그리고 그들의 속삭임, 냄새, 손짓 그 모든 것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을 표현하였습니다.

아니카님의 메시지는 어쩌면, 세상 만물을 무수히 많은 입자로 띄워놓고, 우리가 무엇이든 마음껏 이어 각자의 이상을 원하는대로 그려보기를 청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늘의 별자리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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