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이여 ‘마음의 양식’ 쌓자
한겨레
[관련기사]
‘함께하는 교육’ 필진들이 권하는 이 책!

<함께하는 교육>을 통해 매주 재미있는 철학 강의를 해주시는 선생님들이 여름방학을 맞은 고교생들을 위해 좋은 책을 한 권씩 권해주셨습니다. 선생님들이 ‘철학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영향을 미친, 경험과 추억이 묻어있는 책들입니다. 읽고 쓰는 힘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한 요즘 고교생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

시대의 개혁을 주도했던 ‘그들’의 열정과 고뇌

‘삶 사유 논술’ 권희정 선생님

이 책은 한 바보의 인생 에세이이자 시대 비평서이다. 책의 원래 제목은 ‘간서치전(看書痴傳)’. 쉽게 말해 ‘책만 보는 바보가 전하는 글’쯤 되겠다.




스스로를 바보라 칭하는 이 사람은 누굴까. 주인공은 바로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다. 그가 책만 보게 된 사연은 서얼이라는 신분 때문이다. 가난과 차별만이 허락된 서얼 출신으로서, 절망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이 그에게는 책이었다.

책은 그 자체로 마음의 벗이며 현실의 친구를 불러온다.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시대를 아파했던 간절한 영혼들은 서로를 끌어당겼나 보다. 우리에게도 낯익은 이 쟁쟁한 이름들은 신기하게도 모두 가까운 이웃들이다. 개혁 군주였던 정조 또한 그들을 만나 중용했으니 인연의 줄기는 힘을 더한다.

» 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이덕무를 키운 힘은 팔할이 벗들이다. 그들은 함께 모여 책을 읽고 시대를 토론하면서 젊은 날을 보냈다. 같은 서얼 출신인 박제가와 유득공도 이 시절의 교류가 정신의 자산이 되어 훗날 <북학의>와 <발해고>를 남겼다. 실학의 큰 산맥인 박지원과 홍대용은 ‘바로 지금’, ‘여기 이 땅’에 맞는 학문을 강조한 정신적 스승들이다. 시대의 개혁을 주도했던 그들의 열정과 고뇌가 이덕무의 솔직한 통찰력과 편역자의 문장력 덕분에 생생한 현실처럼 느껴진다.

이 책에서 이덕무는 책에서 벗으로, 벗에서 시대로 나아가는 과정을 몸소 보여준다. 우리도 우선 ‘바보 이덕무’를 통해 박제가의 <북학의>부터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좋은 친구 통해 훌륭한 정신을 소개받을 수 있으니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상명대 부속여고 철학 교사

윗세대들의 ‘깊은 성찰과 질긴 희망’ 흔적들

‘고전으로 철학하기’ 김용석 선생님

오늘의 청소년들에게 권할 책을 위해, 나는 소년 시절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요즘 같이 비가 주룩주룩 오는 장마철에 뭔가 보호된 듯 안온한 기분으로 다락방에 칩거(?)하며 읽었던 우리나라 단편소설들이 떠올랐다.

옳거니, 한국단편문학전집을 읽어보라고 권해야겠다. 그 안에는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20세기 전반의 우리 단편소설들이라도 오늘의 젊은이들에게는 ‘옛날 이야기’ 같을지 모른다. 그래서 재미가 더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가운데는 매우 ‘진한’ 이야기들도 많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의 슬픈 이야기는 지금도 나를 안타깝게 한다.

그 ‘짧은 이야기’들이 ‘긴 생각’을 하게 했던 것 같다. 밤새 여러 꼭지의 단편을 읽다보면 생각의 갈래도 다양해지기 마련이다. 굳이 문학이니 철학이니 하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이야기가 자연스레 사유를 유발한다.

» 김용석/영산대 교수
내가 사춘기 때 읽었던 우리 단편소설들은 대개 1900년대 초부터 1960년대까지의 작품들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시기를 더 연장해서 20세기 말의 작품들까지 읽을 수 있다. 그럼으로써, 부모 세대뿐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의 삶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얻을 수 있다. 특히 20세기 전반의 우리 문학은 이른바 ‘근대화’의 문제와 밀접하다. 그러므로 짧은 이야기들에 담긴 윗세대들의 깊은 상처와 질긴 희망의 흔적들을 실감나게 접할 수 있다. 그 이야기들 속에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훨씬 뛰어넘는, ‘한 겨레’의 진솔한 역사가 담겨 있다.

끝으로 이런 작품들에는 ‘문장’이 있다. 아주 쉬운 말들로 쓰여진 감동적인 문장 말이다. “소녀의 곁을 스쳐 그냥 달린다. 메뚜기가 따끔따끔 얼굴에 와 부딪친다. 쪽빛으로 한껏 개인 가을하늘이 소년의 눈앞에서 맴을 돈다. 어지럽다. 저놈의 독수리, 저놈의 독수리, 저놈의 독수리가 맴을 돌고 있기 때문이다.” 지리한 장마철 다락방에서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으며, ‘소녀를 만나는 가을’이 어서 왔음 좋겠다는 마음이 절로 들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영산대 교수

광활한 우주,그 속의 인간을 보다

‘문학속 철학산책’ 김용규 선생님 - 칼 세이건 <코스모스>

여름이 오면 밤하늘이 보고 싶다. 가능하다면 한적한 바닷가에서 보고 싶다. 달군 쇳덩이 같던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잠기고 나면, 하늘은 이윽고 한 자락 검푸른 비단을 펼칠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별들이 떠오르고 은하가 흐를 것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광대한 공간, 가장 먼 과거들이 한꺼번에 와락 다가올 것이다.

약 150억 년 전에 태어난 우주에는 1천억 개의 은하들이 떠있다. 또 각각의 은하는 평균 1천억 개의 별들이 흩어져 있다. 이 광대무변한 시공 가운데 우리는 태양이라는 별이 가진 지구라는 행성에서 찰나를 산다. 그러니 우리의 존재는 진정 무의미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티끌 같은 존재가 우주에 대해 생각할 줄 알게 됐다. 별에서 만들어진 물질이 별에 대해 숙고할 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의식을 지닌 이 생물을 통해 우주는 드디어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을 갖게 된 것이다. 인간을 통해 우주가 자기의식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인간은 우주 가운데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그리고 내가 그 중 하나이다.

» 김용규/자유저술가, 저자
밤하늘은 우주와 인간의 삶에 대한 이런 귀한 생각들을 선물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철학을, 문학을, 그리고 삶의 태도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언제나 그렇지만 특히 여름이 오면, 나는 밤하늘이 보고 싶다. 하지만 일상에 쫓기는 도시사람으로서 이런 호사를 누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대신 우주에 관한 책을 읽는다.

특별히 권하고 싶은 책이 세이건의 <코스모스>다. 천문학, 생물학, 화학과 같은 자연과학뿐 아니라 동서양의 철학과 역사, 사회학, 정치심리학까지를 아우르는 이 책은 우주에 있어 인간의 소중한 위치를 알려주는 고전이다. 읽고 흥미가 생기면,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나 그린의 <우주의 구조>도 읽으면 좋다. 자유 저술가

‘정보사회’ 비판…20년전앤 반공서적

‘논리로 키우는 논술 내공’ 안광복 선생님

‘책 읽는 방학’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자신의 ‘독서 체급’에 맞는 서적을 골라야 한다. 어떤 책이 내 수준에 맞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비결은 간단하다. 호기심이 끌리면서도 읽고 나면 내 영혼이 살찔 것 같은 책을 골라보자. 사랑을 선택할 때는 머리보다 감정이 더 절실하지 않은가? 책과 나의 궁합도 그렇다.

오늘 소개할 <1984년>은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이 움돋기 시작하는 청소년들이 혹할 만한 소설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중학교 1학년 때 ‘권장도서’로 읽었다. 20여년이 흐른 지금도 <1984년>은 여전히 여느 권장도서 목록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책에 대한 해석은 완전히 달라졌다. 20년 전 이 책은 ‘반공서적’으로 분류되었지만, 지금 중학생들에게 <1984년>은 ‘정보화 사회 비판’으로 읽히곤 한다.

» 안광복/중동고 철학 교사
<1984년>에는 모든 시민의 생활 구석구석을 일일이 감시하는 빅브라더(big brother)가 등장한다. 빅브라더는 옛 소련이나 동독 같은 곳에서 활동했던 비밀경찰들에 대한 풍자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빅브라더는 곳곳에서 설치된 CCTV와 전산 장비로 다가온다. 물론, 이런 장비는 ‘시민의 안전과 보호’를 위한 것들이다. 하지만 최악의 독재는 항상 ‘안전과 보호’라는 명분 속에서 탄생한다. 읽다보면 민주주의란 ‘안전’과 ‘자유’ 사이에서 얼마나 불안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제도인지가 새삼스러워 질 터다. 지적인 학생들이라면 이 책과 더불어 미셀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읽으면 더욱 좋겠다. 중동고 철학 교사



콤플렉스 탈출, ‘왜’가 출발점
한겨레
[관련기사]
논리로 키우는 논술 내공 /

몸 크기가 2㎜에 불과한 벼룩은 20㎝까지 점프를 할 수 있단다. 자기 몸에 100배 가까이 뛰어오르는 셈이다. 하지만 벼룩을 납작한 컵 안에 며칠간 가두어 놓았다가 컵을 치우면 어떻게 될까? 컵이 사라졌어도 벼룩은 컵의 높이 이상으로 뛰어오르지 못한다고 한다.

얼마 전, 수십년 간 현대판 노비로 살아 왔던 ‘노예 할아버지’ 이야기로 사회가 떠들썩했던 적이 있다.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직업과 살 곳 선택이 자유로운 현대 사회에, 어떻게 어른 남자가 그토록 학대받으면서도 도망가거나 신고할 생각을 못했을까?

이유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학대와 실패를 반복해 겪은 사람은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능력을 잃기 쉽다. 어린 시절부터 괴롭힘을 당했던 친구에게 쉽사리 대들지 못하는 까닭 역시 여기서 찾을 수 있겠다.

논리학에서는 이를 ‘세뇌 논증(Brainwash Argument)’라고 한다. ‘세뇌(洗腦)’란 ‘뇌를 씻는다’는 뜻이다. 세뇌 논증이란 말 그대로 생각을 하얗게 지워서 판단을 마비시키는 논증을 말한다. 그리고 아무 비판 없이 무조건 주어진 상황과 주장을 따르게끔 만든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세뇌 논증의 원리는 독재 국가들을 보면 금방 깨달을 수 있다. 독재하는 나라들은 예외 없이 ‘구호 천국’이다. 거리는 독재를 찬양하는 문구들로 넘쳐나고 독재자의 사진도 어디에나 걸려 있을 뿐더러, 뉴스 프로그램도 항상 독재자의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반복하고 반복하라. 사람들의 판단력을 없애고 통치의 부당함을 잊게 하는 데는 반복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세뇌 논증이란 집요한 반복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자신이 바라는 쪽으로 틀어가는 기법이다.

불법 다단계 판매에서의 설득 원리 또한 세뇌 논증에 다름아니다. 불법 다단계 업체들의 ‘설득 노하우’는 ‘집중과 반복’이란다. 이들에게 합숙은 기본이다. 몇날 며칠 공동생활을 통해 똑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처음에 의심했던 마음은 어느덧 믿고 싶은 기대로 바뀌기 쉽다. 급기야 포섭된 사람들은 “성공할 수 있다”. 강한 확신을 갖고 업소의 문을 나서게 될 터다.




세뇌논증은 일상에서도 널리 쓰이는 설득 기법이다. 광고 역시 세뇌 논증을 이용한 기법이라고 볼 수 있겠다. 광고에서는 얼마나 자주 사람들에게 ‘노출’되는지가 얼마나 호소력이 있는지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지곤 한다. 환경 파괴가 심한 제품도 ‘자연의 힘’, ‘자연의 목소리’ 등의 문구와 결합된 선전을 반복하여 접하다 보면, 해로움을 잊게 되기 쉽다.

세뇌 논증이라고 해서 무식하게 반복만 거듭하지는 않는다. 세뇌에는 항상 그럴 듯한 ‘무대장치’가 따라붙기 마련이다. 사이비 종교일수록 현란하고 장엄한 분위기에 집착하고, 뒤가 구린 지도자일수록 온갖 화려하고 멋있는 꾸밈말들이 넘쳐나기 쉽다. 의심스러운 집회일수록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모이는지에 조바심을 내는 법이다. 고급차를 몰고 점잖은 외모에 지적인 말투를 쓰는 사람의 논리는 더벅머리에 꾀죄죄한 복장, 촌스러운 어투로 말하는 이들의 주장보다 더 그럴싸하게 들린다. 이른바 분위기로 점수를 따고 들어가는 효과, 즉 ‘후광효과(halo effect)’란 이를 가리키는 용어다.

그렇다면 세뇌 논증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뇌의 원리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된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논리본능이 있다. 무엇에 대해서건 “왜 그렇지?”하고 물으며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으려는 습관 말이다. 이를 마비시키려고 하는 시도가 세뇌 논증이다.

항상 당연한 듯한 주장에도 “왜 그렇지?”, “왜 내가 그 주장을 받아들여야 하지?” 하고 때때로 되묻는 습관을 지니도록 하자. 일상생활은 가장 중독성이 강한 ‘세뇌’이기 쉽다. 오랜 세월 되물음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기 때문이다. ‘콤플렉스’ 역시 나 스스로 자신에게 반복한 세뇌 논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실패와 망신에 대한 경험이 스스로를 옭죄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콤플렉스에 대해 물음을 던져 보자. 왜 두려운지, 왜 남들이 ‘그것’을 지적하기만 하면 화부터 나는지를 차분히 짚어 보자. “왜 그렇지?”라는 물음은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혹시 주변에서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이나 사건이 있는가? 그렇다면 “왜 내가 저 친구에게 상처를 받아야 하지?”, “왜 나는 이 사실을 선생님에게 알리면 안 되지?” 하고 되물어 보자. 세뇌 논증의 위력은 당하는 자의 침묵 속에서 발휘된다. 입을 열고 “왜 그렇지요?”하고 묻는 순간, 세뇌 논증은 힘을 잃기 시작한다.

» 안광복/중동고 철학 교사
물론 세뇌 논증과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데는 세뇌 논증만큼이나 긴 세월과 꾸준한 논리훈련이 필요하다. 하지만 극복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천릿길도 한걸음부터다. 두렵더라도 “왜 그렇지?” 하고 물으며 답을 찾도록 하라. 그럴수록 나의 정신은 두려움과 오해를 몰아낼 만큼 점점 더 강해질 테니까.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 뇌를 깨우는 논리체조 ■

자신을 짓누르는 일상의 믿음들을 예로 들어봅시다. 그리고 “왜 그래야 할까?”라고 묻고 여기에 대한 답을 찾아보도록 합시다.

예) 남자는 절대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
선배에 대한 반항은 ‘죽음’이다.

<체조방법>

오랜 세월 반복되어 주입된 ‘편견’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특히, 광신적인 믿음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왜?”라고 물었다고 해서 세뇌를 통해 주입된 믿음이 쉽사리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믿음에 대해 이유를 찾고, 과연 제대로 된 것인지를 물어봅시다. 문제의 극복은 제대로 된 진단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왜?”라는 물음을 오랜 마음의 병을 벗는 출발점입니다. 꾸준히 포기하지 말고 오랜 편견에 도전해 봅시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쏴라
흥미유발, 템포, 타이밍-설득을 위한 논리 트라이앵글
한겨레
[관련기사]
논리로 키우는 논술내공

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는 이렇게 말했다. “나비처럼 날다가 벌처럼 쏴라.” 무작정 인상 쓰고 덤비지 말고, 유연하게 접근해서 효과 있게 때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미숙한 복서들은 벌처럼 날다가 나비처럼 때리곤 한다. 잔뜩 긴장하여 무리할 뿐, 제대로 된 유효타 하나 건지지 못한다. 권투에서는 힘 줄 때 주고 뺄 때 빼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논리도 그렇다. 설득력은 처음부터 끝까지 목청 높인다고 커지지 않는다. 사랑 고백이 실패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쏟아져 나오는 표현마다 다 절실하지만, 정작 모아 놓고 보면 자기 말이 횡설수설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을 터다.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인지, 그 내용을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전달할 지 계획을 짠 뒤 입을 열도록 하라.

액션 영화를 예로 들어 보자. 엄청난 돈을 들여 ‘스펙터클’하고 ‘판타스틱’한 장면들을 줄줄이 엮었다 해도 타이밍을 잃으면 끝이다. 액션물이라고 해서 두어 시간 내내 화려한 액션만 펼쳤다가는 역효과만 난다. 훌륭한 감독은 절정의 경험을 언제 배치할 지 안다. 시작된 지 10분 안에 주인공들을 관객들과 친숙하게 만들고, 꼭 그만큼 뒤에 갈등과 위기가 일어나고, 손에 땀이 배어 든 순간 화려한 액션이 벌어진다.

잡지도 그렇다. 목차를 보면 권두사처럼 약방의 감초같이 끼어 있을 뿐, 좀처럼 눈이 가지 않는 글들이 꽤 있다. 왜 이런 글들을 실었을까? 대개 독자들은 흥미 있는 부분만을 본다. 하지만 나머지 내용은 끌리는 부분을 두드러지게 한다. 경제학자 파레토(V. Pareto)의 ‘80:20의 법칙’은 여기서 통한다. 매장에서 잘 팔리는 물건은 대개 전체의 20% 정도다. 그렇다면 나머지를 버리고 잘 나가는 20%만 전시하면 어떨까? 판매량이 오히려 준다. 대형 서점이나 동네 책방이나 팔리는 책은 거의 같음에도, 사람들은 큰 서점을 더 좋아 한다. 왜 그런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말과 글의 타이밍을 어떻게 잡을지 감이 설 터다.

템포의 조정도 중요하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은 논리의 영원한 진리다. 늘어지는 글이나 말치고 상대를 감동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리학자들은 내시경 검사로 이를 증명해 보였다. 첫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빨리 끝나지만 짧은 순간 아주 고통스러운 검사를 했다. 두 번째 부류에게는 통증이 길게 이어지지만 못 견디게 아픈 순간은 없게끔 오랫동안 검사를 했다. 그러고 나서 두 무리에게 다음에 한 번 더 내시경 검사를 할 수 있냐고 물었다. 어느 쪽이 더 많이 하겠다고 나섰을까? 길게 검사를 한 쪽이었단다.

사람의 뇌는 겪은 일 중에서 가장 깊고 확실한 부분만을 기억에 남긴다. 짧은 순간의 극도의 아픈 추억은 고통스러운 긴 순간들을 누르고도 남았다. 설득에서도 그렇다. 선동의 달인이었던 히틀러(A. Hilter)는 연설에서만큼은 ‘박수칠 때 떠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연설은 천천히 달아오르다가 이내 울부짖음에 가까운 절정에 이른다. 하지만 내려오는 길은 결코 완만하지 않다. 단두대 칼날을 내리는 듯 단호한 손동작과 명쾌하게 끊어지는 단어들, 박수가 터져 나오면 히틀러는 주저 없이 등을 돌려 단상을 내려와 버린다. 독일어를 한마디로 못 알아들어도, 그의 연설하는 모습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하다. 상대 가슴에 느낌표를 찍으려면 절정에 뒤이어 군더더기를 붙이지 말라.




작가 스티븐 킹(Stephen King)도 똑같은 충고를 한다. 그는 심지어 ‘수정본=원본-10%’라는 공식까지 내세운다. 줄여도 되는 부분은 과감히 빼 버리라는 뜻이다. 그는 꾸밈말을 ‘잡초’에 빗댄다. 빼버려도 말이 된다면, 모두 줄이고 버려라. 글에서 속도감은 그만큼 중요하다.

»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
하지만 서두르는 게 능사는 아니다. 사용 설명서 읽기가 왜 버거운지 떠올려 보라. 급하게 결론으로만 치닫는 글은 마음 불편하다. 철학자 칸트(I. Kant)의 강의는 항상 인기가 있었다. 그는 항상 재밌고도 흥미진진한 일화로 수강생들의 머리와 마음을 달궜다. 그런 뒤에 짧고 분명하게 강의의 핵심을 이야기 하고, 청중들의 눈에 더 듣고 싶어 하는 기운이 남아있을 때 강의를 그칠 줄 알았다.

재미있는 도입과 늘어지지 않는 템포, 그리고 적절할 때 주제를 강렬하게 펼치는 타이밍. 이 셋은 설득을 위한 ‘논리 트라이앵글’이다. 논리 트라이앵글 안에 자기주장을 집어넣을 수 있다면, 그대는 이미 논리의 달인이다.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뇌를 깨우는 논리 체조]

다음 글을 ‘논리 트라이앵글’에 맞추어 설득력 있게 고쳐 보세요.

< 주변에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리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를 때가 많다. 누구는 청소하고 누구는 버리는 사람인가? 왜 사람들은 입장을 바꿔서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내 짝 철수만 해도 그렇다. 한 번도 주변이 쓰레기통같이 지저분하지만 정작 본인은 쓰레기통 근처에 가보는 일도 없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성실하고 똑똑하고 양심적이며 예쁘기까지 한 영희를 보고 배우면 얼마나 좋을까? >

체조 연습

스티븐 킹은 “글을 쓸 때 한 번은 서재 문을 닫고 쓰고 한번은 열어놓고 써라”라고 충고합니다. 쓸 때는 집중해서 쓰고 퇴고 단계에서는 비판이 필요하다는 뜻이지요. 아울러, “퇴고는 (자신의 원고가) 어느 고물상에서 구입한 골동품처럼 낯설게 보일 정도로 충분한 시간을 묵힌 후에 해라”고도 말합니다. 논리 초보자라면 논리 트라이앵글을 퇴고하고 검토할 때 사용하도록 하세요. 주장을 펼치기 전에 높은 검열 기준에 먼저 신경을 쓰면 주눅이 들기 때문입니다. 논리 트라이앵글로 글을 고치고 다듬는 가운데 논리 감수성은 빠른 속도로 자라날 것입니다.



기사등록 : 2006-11-19 오후 10:58:42
문화 충돌, 새로운 도화선
2부 논술 단골 주제 뜯어보기 ⑦ 제7영역: 민족과 역사-3. 논제 따라 구상하기
한겨레
» 박용성/여수여고 교사, 〈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뛰어넘기〉 저자
[관련기사]
박용성 교사의 실전강좌

[서론] 제시문을 비교 분석하면서 논의할 문제를 제시한다.

오늘날의 국제 관계는, 지난 40여년을 지배해 왔던 냉전 체제가 무너지고 새로운 국제 질서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 그런데 이념이나 정치에 의해 갈등이 계속되었던 냉전 시대가 종식되었는데도, 세계 여러 지역에서는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지. 이처럼 탈냉전 시대에도 지역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생각해 보라는 것이 출제자의 의도야.

출제자는 두 개의 제시문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움직이는 결정적 원인은 문화의 차이에 있다는 견해와 기후의 변화에 있다는 견해를 제시하며 논의의 범위를 한정하고 있어.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의 원인을 찾았으면, 그에 따라 탈냉전 시대의 지역 분쟁을 해결하는 대안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지.

제시문 [A]는 탈냉전 시대에는 문화가 분열과 통합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어. 지금 세계의 힘의 구도는 문화권을 중심으로 다극화되고 있는데,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이 지역 분쟁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거야. 반면에 제시문 [B]는 기후(이것을 ‘자연 환경’으로 일반화해도 괜찮아)의 변화가 인류의 역사 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하지. 기상 이변이 심각해지면 사람들은 살기 좋은 곳으로 이동하게 되고, 이러한 이동은 문화적·정치적 변화를 초래하며 국가의 흥망까지도 좌우하게 된다는 거야.

[본론1] 자신이 반대하는 관점을 논박한 뒤, 지지하는 관점을 옹호한다. 자연 환경이 인간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4대 문명의 발상지가 모두 큰 강 유역이었다는 사실은, 비옥한 충적토를 이용한 농경으로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잉여 생산물을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이 문명의 탄생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음을 보여 주지. 그런데 문명 단계로 진입하면서 인류는 자연 환경을 인간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개조하여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어. 특히, 인류 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인간의 힘이 자연 환경을 극복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해지자, 비로소 인류 역사는 자연 환경의 압도적인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지.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기후 악화가 아닌 이상, 기후의 변화로 인한 대규모 인간의 이동은 이제 더 이상 상상하기 어렵게 된 것이 좋은 예야.

반면에 문화가 인간사에 미치는 힘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어. 아니, 오히려 탈냉전 시대가 도래하게 되어 냉전 시대의 역사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이데올로기 대립이나 정치적 이해 관계라는 동인(動因)이 약화되면서, 문화적 차이는 지역 갈등의 중요한 원인으로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야. 특히 오늘날 교통 통신의 발달과 생활 공간의 확대로 말미암아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접촉이 빈번해지면서, 문화적 차이가 정치·경제적 차별과 관련되어 대규모 분쟁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더욱 늘어나고 있지. 문화는 특정한 세계관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문화가 다르면 당연히 가치 규범도 달라지게 마련이고, 서로 대립되는 가치 규범은 물리적 충돌을 낳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 오늘날 인류 역사를 움직이고 있는 결정적 동인을 문화라고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어.




[본론2] 자신이 지지하는 입장의 논리를 이용하여 미래를 전망한다.

존 미시머는 <왜 우리가 곧 냉전을 그리워하게 될 것일까> 라는 논문을 통해, 냉전 이후 세계 정치 구도는 양극화에서 다극화로 변하게 될 것이고, 이러한 세계 정치 구도의 변화는 세계적으로 일어나게 될 수많은 분쟁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예고하였지. 그의 견해는 들어맞았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인도·파키스탄 분쟁, 중국의 국경선 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등 세계 도처에서 일어난 수많은 분쟁이 이를 잘 말해 주고 있지.

이러한 무력 충돌과 분쟁, 그리고 전쟁의 판도를 분석하기 위해 헌팅턴은 제시문 [A]에서 문화의 결정체로서의 ‘문명’을 하나의 틀로 제시하고 있어. 세계를 종교를 기준으로 몇 개의 문명권으로 나눈 뒤, 앞으로 인류가 지닌 충돌의 원천은 이데올로기나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 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면서, 특히 서구 문명권과 비서구 문명권 사이의 대립 양상이 앞으로 세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지. 물론 모든 지역 분쟁을 ‘문명의 충돌’로 단순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급증하는 지역 분쟁의 원인으로 우리는 문화적 차이에 따른 충돌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어. 특히, 민족적·종교적 갈등은 문화적 정체성과 관련되기 때문에 해결이 쉽지 않으며, 주변 지역이 개입할 경우 대규모 분쟁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지.

[결론] 이제까지 논의를 요약하면서 제언을 한다. 서로 다른 문화의 접촉은 오늘날 고도 문명 사회를 이루는 바탕이 되고 있어. 국경을 초월한 시장 경제와 정보 통신의 비약적 발전을 토대로 진행된 세계화는 인류의 삶을 보다 편리하고 풍요롭게 해 주었지. 그러나 세계화의 이면에서는,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종교와 민족을 둘러싼 갈등이 커지고 있어. 민족과 종교 등 문화적 차이에 의한 갈등으로 세계 여러 지역에서 계속 일어나는 분쟁이 이를 잘 말해 주고 있지. 특히, 탈냉전 시대에 이르러 지역 갈등의 원인이 이념이나 정치에서 문화로 바뀌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야.

그러나 서로 다른 문화의 접촉이 반드시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발전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 우리는 유의해야 해. 물론 그러기 위해서 세계의 문화 교류는 하나의 문화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역의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하겠지. 지구촌이 겪고 있는 인종 갈등이나 종교 갈등의 대부분이 문화적 배타주의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생각할 때,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활발한 문화 교류는 세계 평화를 앞당기는 지름길이 될 거야.

박용성 여수여고 교사, <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뛰어넘기> 저자